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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 (말 4:1-6) -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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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 (말 4:1-6)

서론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입니다. 예언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말라기 시대를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이나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끌려가다가 죽기도 하고 포로 생활하면서도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왜 바벨론에 끌려가서 70년이나 죽을 고생을 했느냐? 그 이유는 그들이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더 이상 우상숭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 섬기기로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외형적으로만 돌아왔지 마음이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로 하나님을 괴롭게 해놓고“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괴롭게 했습니까?”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언제 우리가 도둑질했습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도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말라기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온다고 예언했던 것입니다. 

Ⅰ. 여호와의 날은 어떤 성격의 날인가? 

봄에 동일하게 햇빛이 비쳐도 어떤 사람은 자신을 조롱한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겨울이 지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햇빛으로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여호와의 날을 대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 (말 4:1). 그리고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 (말 4:2).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여호와의 날을 맞이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먼저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만은 팔자걸음을 걷는다든지 말하는 태도가 건방진 것을 의미하지 않고 사람의 사상이나 삶 속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자기 힘으로 잘 살 수 있고 죽은 후에도 좋은 세상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만인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권위와 결정권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여호와를 섬긴다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도 교만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을 행하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손해를 끼치고 마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요 8:44).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0). 

예수님의 편을 들지 않는 사람들은 마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말라기가 예언하고 있는 그날은 무서운 날이 될 것입니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말 4:1). 

초개는 지푸라기를 말합니다. 교만하고 악을 행하며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푸라기처럼 취급하시므로 아궁이에 던져져 모두 타버리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오시면 자신들을 로마에서 해방시켜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엉뚱하게 예수님께서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를 따라 다녀봤자 아무 유익도 얻지 못했다고 하면서 일부 열심당원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로마로부터 해방되고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을 로마 황제가 그냥 두겠습니까? 

A.D. 70년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Titus)에 의해서 유대인 110만 명이 죽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110만명이 죽고 9만 7천 명이 포로로 끌려가 나라는 완전히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돌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은 무서운 날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은 축복된 날이 되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2). 

제 처가가 충남 청양인데 그곳에서 송아지가 태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사람과 다르게 두 다리로 나가서 뜁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어다닌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해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단순히 육신의 질병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대속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비춰주시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눅 1:77~79). 

사가랴는 예수 그리스도를 돋는 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는 의로우며 돋는 해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육신이 약한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한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죄로 인하여 멸망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광선을 발하여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마음의 상처를 입고 슬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의 광선을 발하여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날은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는 날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시고 의인들과 함께하는 날이 됩니다.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 4:3).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소수의 남은 자들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들은 그야말로 발바닥의 재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사람이 지금은 똑같아 보여도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들과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똑같이 옷을 입고 다녀도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마 10:14).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사도들을 박대하는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말고 발에 먼지를 털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왜 성도들이 복음을 거역하는 자들을 발의 재처럼 여기게 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롬 16:20). 

사단을 우리가 발로 밟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도 사탄의 역사가 일어나면 자식들이 잘못되고 가정이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단의 목을 잘 밟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나 교회에서도 우리 성도들의 기도로 사단의 목을 밟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날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날, 축복의 날, 사탄을 이기는 승리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Ⅱ. 여호와의 날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그러면 여호와의 날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말라기서는 두 명의 위대한 선지자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명은 모세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엘리야입니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말 4:4). 

이 말씀은 모세에게 준 율법을 모두 지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100%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이스라엘 민족적 역사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모세의 율법을 주셨을까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율법은 내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몽학선생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몽학선생은 진짜 선생님이 아닙니다. 몽학선생은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학생을 아버지의 허락 받고 회초리로 때려 진짜 선생님에게로 데려가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 것입니다. 결국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된 선생이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이 가진 참된 기능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 4:5~6). 

엘리야 선지자는 말라기보다도 훨씬 이전인 아합 왕 때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온 다음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미래의 일을 예언할 때 과거에 알고 있던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도 다윗이 보좌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다윗이 와서 보좌에 앉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예언인 것입니다. 또 신약의 교회를 예언할 때도 다윗의 장막이 세워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장막이 그들에게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말라기가 예언하고 있는 엘리야 선지자는 침례 요한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증거하셨습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4). 

그러므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날만 나오면 무조건 재림을 말한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관 지으려는 소위 ‘미래적 해석법’은 로마 가톨릭의 제수이트(Jesuit)가 만들어 놓은 음모입니다. 

제수이트는 예수회의 사도들을 말하는데 개신교도들이 교황을 향해 적그리스도라고 하자 이들이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올 것이라며 칠년환란, 천년왕국과 같은 미래적인 해석법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은 재림이 아닌 초림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믿음이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지만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님의 초림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마 3:3). 침례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하라”였고 회개의 증거로 침례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번 성탄절에 침례식이 있습니다. 진실로 죄를 깨닫고 회개한 사람은 꼭 침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침례는 예수님과 합하여 죄에 대해서는 죽고 새 생명을 얻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준비하는 방법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침례 요한의 메시지에 따라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주님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준비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고 사도가 되며 초대교회 성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을 마무리 짓고 400여 년 후에 올 신약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연속극의 마지막 장면이 다음에 할 연속극을 기대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듯 말라기도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Ⅲ.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구약시대가 앞으로 다가올 초림이라는 위기의 날을 예언함으로 끝나고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신약시대는 앞으로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미국이 온 세상을 지배하거나 중국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끼리 싸우고 전쟁하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영원한 세계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원한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하는 새로운 인류가 되는 것입니다. 진시황제가 그렇게 얻으려고 했던 영생이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실 때는 얼마나 약하게 오셨습니까?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구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재림하실 때는 영광스러운 심판주로 하늘의 천군과 천사를 대동하고 오시는 것입니다. 재림의 날은 최후 심판의 날입니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전 8:11). 

사람들이 요즘은 악을 담대하게 행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죽여서 가방에 넣어 버렸답니다. 얼마나 악독합니까? 하루에 대한민국에서 천오백명의 사기꾼들이 감옥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요즘 전화로 사기 치는 것 때문에 난리입니다. 전화와도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끊어버리십시오. 
 
사람들이 지금은 담대히 악을 행하고 입술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지만 그 모든 악에 대해서 영영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초림의 날도 무서운 날이 되었는데, 심판을 위해 오시는 재림의 날은 얼마나 무서운 날이 되겠습니까? 

요한계시록에 보면 차라리 바위가 내 머리에 떨어져서 내 머리가 박살이 나고 자기가 감추어졌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엘리야가 와서 미리 경고하지만 재림은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옵니다. 기도하다가 재림의 날을 알았다는 사람들이 역사상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이단자이며 사기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고 없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준비하는 원리와 재림을 준비하는 원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모세의 율법인 십계명을 보고 우리는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십계명은 우리의 죄를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자기 얼굴에 묻은 것은 거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십계명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우상숭배하고 절해본 사람은 죄인입니다. 제삼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제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마음대로 쓰되 하루는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인데 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학대하는 사람들은 죄인인 것입니다. 제육은,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칠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자기의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제팔은,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제구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제십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십계명을 보면 자신의 죄가 보이지않습니까? 열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어겨도 죄인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고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진실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죗값을 대신 치르고자 십자가에서 온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공자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습니까? 석가모니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활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최후 심판의 날이 기쁨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죗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갚아주셨으니 우리가 갚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날이 되고 구원의 날이 되며 원수를 밟는 날이 될 것입니다. 
 
재림은 다른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과 엘리야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한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구원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녀들은 부모님들의 영혼이 구원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께 부모님 좀 교회에 모시고 나오라 하면 우리 부모님은 불교 신자라 못 오신다고 합니다. 세상에 그런 불효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님은 지옥에 가고 자기만 천국에 간다는 말 아닙니까? 남편이 교회에 안 나오면 아내가 부지런히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 신발이라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신발이라도 먼저 나왔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최후 심판의 날에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것이고 담대하게 악을 행하며 산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억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기쁨의 날, 감격의 날, 원수를 밟는 날, 축복의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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