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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탄일종이 땡땡땡 (눅 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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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일종이 땡땡땡

누가복음 2 : 10 - 20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이 아침,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의 기쁨을 모두 함께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제가 어렸을 때 불렀던 성탄절 노래를 함께 불렀으면 합니다. ‘탄일종이 땡땡땡’입니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 멀리 퍼진다 /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부드럽게 울린다 / 주 사랑하는 아이 복을 주시려고 /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60년대, 70년대에 주일학교를 다닌 분이라면 다 아는 노래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입니다. 나무 장작 난로에서 나온 연기로 매캐한 시골 예배당에서 불렀습니다. 돌림노래로 부르면서 목에 핏줄을 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로 종이 깨져라(?)하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성탄 발표회 준비를 하기 위하여 눈길을 헤치고 예배당으로 가면서 신이 나서 불렀습니다. 지금은 그리운 소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여지없이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서 동요가 사라진 것처럼, 교회학교에서도 이런 찬양을 부르지 않게 된 것은 아픔입니다. 이것은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 안 부르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한 없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종소리 그 자체를 들을 수 없습니다. 예배당 종소리를 규제하여야 할 소음 문제로 다루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가 사라진 것은 좋은데 마음속에서 행복도 사라진 것같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시대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회복하여야 할 행복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탄일종은 다시 울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탄일종을 듣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성탄의 종소리를 울려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거기에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I. 말씀  

구주가 구유에 탄생하셨다는 소식이 천사들에 의하여 천한 목자들에게 전하여졌습니다. 강림하신 분이 강보에 싸여있다는 것입니다. 이 성탄의 소식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10절과 11절 말씀입니다.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식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천사의 등장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천한 목자들에게 먼저 이 소식이 전하여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놀라운 소식이 놀라운 방법으로 전하여졌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천사에게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천사가 남자에 가까운지 여자에 가까운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전하여진 말씀대로 구주가 탄생하셨습니다.

1. 그들은 구주 탄생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비한 방법으로 목자들에게 소식이 전하여졌습니다. 만일 전하여진 소식도 없이 소식을 들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이만 저만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에 두고 유언비어, 흑색선전이 판을 치고 있다는 뉴스가 있습니다. 표를 모으는데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어떤 이야기도 함부로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소식을 열심히 퍼 나릅니다. 각 당의 선거대책위원회는 산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하여 불법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서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책선거는 늘 교과서에만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이 이런 일을 하였다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검증할 시간이 없고, 유권자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모든 것은 후지부지 되고 말 것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켜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겔 22:2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는데 말하였다고 선전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종교계에도 정치판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성탄의 소식은 목자들이 구주 탄생의 소식을 들었다는데서 출발합니다. 우리에게 성탄이 기쁨의 소식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들은 말씀이 없다면 성탄절은 산타클로스의 축제가 되고 맙니다.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우셨던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탄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의 소식은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천사는 목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보리니’[euJrivskw/휴리스코]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너희는 가서 보게 될 터이라’고 미래의 일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서 보아야 한다는 명령 그 이상입니다.

2. 그들은 가서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보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보아야 할 사명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사실을 이야기하는 정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사람은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도 요나는 도망쳤습니다. 가서 전하는 사명을 받았음에도 요나는 도망쳤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요나의 불순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불순종이기도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달려가야 합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달려가는 뜨거움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은 거기에서 사명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성탄절이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만 하는 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만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의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은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나누는 전도의 기회입니다.  

말씀을 듣고 사명을 발견한 사람이 하여야 할 일은 순종입니다. 
  

II. 순종  

천사가 전하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던 목자들의 순종을 통하여 기쁜 소식을 전하여야 할 우리의 순종을 발견하게 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천사들이 소식을 전하고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자[dievrcomai/디엘코마이]’라는 말은 ‘가로지르다’, ‘뚫고 지나가다’, ‘통과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길을 막고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려움을 헤치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자[eijdw'/에이도]’는 ‘발견하다’, ‘알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보기 위하여 어려움을 헤치고 나가서 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들은 말씀의 성취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1. 그들은 이루어진 일을 보고자하였습니다.

우리 여기에서 ‘가보자’는 목자를 만나게 됩니다. 결코 마음에 없는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도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없습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서 폐가 나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습니다. 그 문제로 고민하다가 하루는 가족들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

이렇게 담배를 끊은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계속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담배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딱 한 대만!’ 하고 구석에 몰래 숨어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내에게 들켰습니다. 그때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남자가 약속을 며칠도 못 지켜요!”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앞으로 담배를 안 핀다고 했지, 언제 옆으로 담배를 안 핀다고 했나?”

그는 중얼거리면서 담배를 옆으로 물고 피웠다고 합니다.

참으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할 결심이라면 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심조차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결심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뿐만 아니라, 옆으로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크고 놀라운 일을 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목자들은 ‘가보자’고 결심하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16절 말씀입니다.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목자들은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빨리[speuvdw/스퓨도]’라는 말은 ‘속도를 내다’, 즉 부지런하게 열심히 하도록 ‘재촉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두르다’, ‘진정으로 갈망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헤치고 나가서 부지런하게 열심히 찾았습니다.


2. 그들은 빨리 가서 찾았습니다.

목자들은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만나보자’며 신속하게 행동하였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결단을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길 때 열매를 맺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무엇이든지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매우 냉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쉽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칸트는 “생각해 보겠다”고 간단하게 말한 뒤, 바로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결혼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을 모아 연구하였습니다. 결혼을 해야 좋을지 안해야 좋을지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집에 찾아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당신의 따님과 결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을 들었답니다.

“여보게, 너무 늦었네. 내 딸은 벌써 결혼해서 두 아이의 어엄마가 됐다네!”

분석이나 생각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칫 버스가 지나간 뒤에 손을 드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사랑은 눈에서 시작해서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부딪히는 거기에 역사가 있습니다. 조금 어설퍼도 사랑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결단한 것을 실천하는 순종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에는 작은 사랑이라도 즉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가보자’, ‘만나보자’ 그리고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17절 말씀입니다.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목자들은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고 나서,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요셉과 마리아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그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도 가리키는 지는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목자들이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이야기하였다는 것입니다.


3. 그들은 말한 것을 전하였습니다.

‘가보자’, ‘만나보자’ 그리고 그 다음은 ‘이야기하자’입니다.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 성령님 감동하심에 순종하며 따라갑시다.” 바로 MD 사명가입니다. 

성탄절은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절기는 아닙니다. 성탄의 기쁨을 우리끼리만 나누는 절기도 아닙니다. 온 세상이 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전하는 기회가 성탄절입니다.

엊그제 장로님들이 여수에 있는 돌산중앙교회를 다녀왔습니다. 출발하는 차 안에서 어느 장로님이 여수에 가면 ‘나비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가면 그곳에 꼭 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나비섬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없었습니다. 그 장로님이 오시는 차 안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비섬은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 어디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바로 우리 안에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것이 성탄의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에는 우리 모두가 나비섬을 하나씩 마음에 등기하시고, 자신이 나비섬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는 사람들을 통하여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III. 결과  

목자들은 천사의 말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순종한 그들을 통하여 놀라운 결과가 있었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목자들이 전하여 준 말은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들에게 전해준 말을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놀랍게 여기다[qaumavzw/다우마조]’는 ‘경탄하다’, ‘놀라다’, ‘감탄하게 하다’는 것입니다.

1. 말씀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주의 탄생 소식을 천한 목자들에게 전하게 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놀랐게 받아들였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자신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기 바랍니다.  

또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19절 말씀입니다.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목자가 전하는 말은 아기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 고이 간직되었습니다. ‘새기다[sunthrevw/]’는 말은 ‘조심스럽게 시중들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이것은 한 치도 틀림이 없이 주인을 섬기기 위하여 주인의 곁에 서 있는 하인의 모습입니다. 


2. 말씀을 새기어 생각하였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좋은 말뿐만 아니라 나쁜 말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상처가 많은 이유는 마음에 새겨진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좋지 않은 기억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며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일’들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20절 말씀입니다.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자기들에게 일러주신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였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할 때 가장 큰 열매는 그 자신이 거둡니다.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3. 영광을 돌리고 찬양하였습니다.

전도의 가장 큰 열매는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맺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맺으신 것을 내가 맺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내가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 자신이 기쁜 것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순종함으로 기쁨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그 기쁜 때문에 또 다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버거운 의무감에서 하는 복종은 결코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의무적으로 한 일은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하게 할 뿐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으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는 기쁨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이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가보자, 만나보자, 이야기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번 성탄에 말씀에 순종하여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나비섬의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순종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진심을 담은 예쁜 카드를 전해 보십시오. 교회에서는 성탄헌금으로 이웃들에게 쌀을 나눌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 예수님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아기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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