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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빈 방 있습니까?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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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 있습니까? (눅 2:1-7)

해마다 이맘때면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는데, 컴퓨터시대가 되니까 인터넷 성탄카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수신자는 자신의 메일박스에서 바로 카드를 읽고 캐롤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성탄카드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등장한 성탄카드 역시 그리스도의 탄생과는 거리가 멀고 상업주의에 치우쳐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카드의 그림들은 예수님 탄생에 대한 그림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산타클로스의 그림이 더 많습니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 가운데는 크리스마스는 산타클로스가 태어난 날로 아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왜 좋으냐?'고 물으면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한 신문에서 컴퓨터 영상을 기사화 해놓은 것을 보았는데 선물을 가득 실은 썰매를 탄 산타를 향해 사람들이 두 손을 높이 들어 환영하고 있고, 오른쪽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들고 그 산타를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있고, 정말 중요한 것이 뒤로 가는 모습이 오늘의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형용할 수 없는 우주적인 신비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하늘과 땅이 연결된 사건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의 세계가 연합된 사건이고 또 하나님과 인간이 연합되는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순전히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목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는 너무나 높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거룩합니다. 인간이 그곳까지 접근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한자리에 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려고 스스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 “인간은 죄인이고 그 자리가 너무 낮아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이를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에게로 찾아오셨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이고 복음의 핵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 ‘역사를 바꾸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부터 이 세상의 역사는 뒤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역사를 B.C. 라고들 말하는데 이 말은 “Before Christ”, 즉 “예수 이전의 역사”, “기원전의 역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원전의 역사는 모두 인간의 역사이고, 구세대의 역사이고, 원시적인 역사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A.D. 즉 “Anno Domini”(라틴어)로 바뀌었습니다. 이 말은 “새 역사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이후의 역사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이 세상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3. 예수님은 ‘세계인에게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만 해도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그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소개되었고 알려졌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얼마나 숭고한 뜻을 지니고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했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1. ‘학수고대하고 기다렸던 메시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 예수님이 오시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하면서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 속에서 탄식하면서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랬으면 오신 메시아를 열광적으로 환영했어야 합니다. 2. ‘예수의 오심은 구약성경의 약속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구약성경의 주제는 예수의 탄생 예언입니다. 이사야가 이미 탄생 700년 전에 이 사실을 예언했습니다. (사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보다 더 분명한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예언된 그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환영할 일입니까? 마땅히 환영할 일입니다. 

3. 마땅히 환영할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주신 사랑 가운데서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친히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incarnation’이라고 하고, 한문으로 ‘成肉身’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는데, 마틴 루터는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에는 이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오셨으면 사람들은 마땅히 오신 예수를 열광적으로 환영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사람들이 정말로 그의 오심을 축하하고 맞이하고 영접했습니까?  영접은 고사하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 인정을 베푸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가운데 짐승들이 있는 마구간으로 밀려나셨습니다. ‘그의 나심을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오셨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가 자기들이 지배하는 민족들을 인구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세금을 더 효율적으로 거두어들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에도 호적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강제로 인구를 조사하게 되니 만삭이 된 마리아도 가게 된 것입니다(아마 베들레헴에서의 메시아 탄생에 대한 예언을 알고 있었다면 마리아가 이때 가게 된 것이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름). 

많은 사람들이 몰렸기에 방을 얻지 못한 사람이 어찌 요셉과 마리아 뿐이었겠습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만삭이 된 산모에게 방을 내어줄 수 없었다면 그 당시 인심도 알만 합니다. 아마도 여관 주인도 돈 많이 주는 사람들에게 다 빌려주었을 것입니다. 이제 곧 해산할 것 같은 산모에게 자신의 방이라도 내어주는 인심이 없었던 당시의 모습, 그저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어보려고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는 사람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이 처음 성탄일이라면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요셉은 방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오늘날 이 사회에 태어나신다 해도 방은 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택의 홍수 시대에 살아도 늘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 한 주님은 방을 구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아마 우리의 정서로 생각하면 주님은 어느 다리 밑 정도에서 태어나셔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웠을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 어린아이들에게 예수님이 방을 구하지 못하여 마구간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한 어린이가 선생님에게 “그 사람들 아직도 집을 못 구했어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당시의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태어나셨습니다. 인간들의 무성의 속에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신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1977년 ‘가이드포스트’라는 잡지 12월호에 실제의 이야기 하나가 실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1980년 성탄 무렵에 일간신문 한 구석에 칼럼으로 소개되었는데, 그 칼럼의 제목이 ‘윌리의 성탄절’이었습니다. 이 칼럼을 보고 감동한 연출가 ‘최종률’ 씨가 이 내용을 작품으로 만들어 ‘증언’이라는 극단을 통해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 연극이 ‘빈 방 있습니까?’라는 작품입니다. 

올해도 32년 째 그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데, 내용은 단순한 내용인데 그 작품은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그 작품의 대본도 올라있고, 각 교회의 청년회에서 성탄절 즈음에 무대에서 공연도 많이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성탄극을 준비하던 어느 교회 청소년부 연극반에서 연출 교사는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진아인 ‘덕구’에게 조연급인 여관 주인역을 맡깁니다. 모든 면에서 소외되고 있었고, 왕따였던 ‘덕구’는 눈물겨운 연습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갑니다. 

마침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공연을 합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연극은 매끄럽게 진행됩니다. 드디어 여관 장면, 요셉이 여관 문을 두드립니다. 여관 주인으로 분장한 덕구가 나옵니다. 요셉이 말합니다. ‘빈 방 있습니까?’, “우리 집엔 빈 방이 없습니다” / ‘죄송합니다. 아내가 만삭이 되서... ’ 

(극에 몰입해 있던 덕구, 요셉과 마리아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덕구 : “글쎄 사정은 딱하오만 지금 우리 집엔 손님들이 꽉 찼어요. 우리 유대사람만 있는 줄 아시오? 로마 병정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단 말이오. (사이) 하여튼 당신네들한테 줄 방이 없... (고민한다) 방이...”

무대 뒤에서 난리가 납니다. 덕구가 틀릴까봐 불안해 하며 작은 목소리로 소리칩니다. 

이 선생 : 너 잘하다가 왜 그래? 들어와. (손짓한다)  
덕구 : "방이 없습니다. 우리 집엔 빈 방이 없다구요." 
덕구 : (마침내 자제심을 잃고) 요셉! 마리아! 가지 마세요. (몇 걸음 쫓아가서) 우 우리 집엔 바이 있어요. 그짓말 아녜요. 진짜 빈 바이 있다구요. 연극은 다 망치고 엉망이 됩니다. 연출자가 무대로 뛰어나와 사과하고 .... 그 뒤의 마무리들도 참 감동적입니다. 마지막 장면, 아버지를 따라 지방으로 이사 간 덕구가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의 내용이 감동적입니다. 

지진아 덕구라는 아이의 투명한 영혼을 통해 성탄의 의미를 다시 생각게 하는 작품입니다. / 지금까지 덕구 역을 박재련 장로님이라는 분이 32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성탄 때가 되면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종말 때의 모습입니다. 시내 중심가에서 수년 동안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리 전체에 알콜 냄새가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신 첫 번 크리스마스가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북적거렸지만 그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앞으로 주님의 재림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때에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해 오실 것입니다. 그날 우리들이 그 한심한 사람들 사이에 있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최대 관심은 이미 오신 예수를 마음으로 만나는 일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들어오실 빈 방이 있습니까?  이 뜻 깊은 성탄절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방이 있습니까? 금번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다가 경배할 수 있었던 동방박사들처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로 기뻐하며, 뜻 깊은 시간들을 보내시는 가운데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체험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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