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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말씀대로 믿은 복 받은 여자 (눅 1: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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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믿은 복 받은 여자 (눅 1:39-45)
   
성탄절이 되면 항상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한 부분을 편집하였습니다. 감상하신 후에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생애 최고의 성탄절” 프로페차이 동영상 자료실 - ‘성탄절’에서 2번 상영

세상에는 참으로 존경받을만한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사상과 봉건제도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나라에서 여성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을 보면, 민주화 되어졌습니다. 우리나라가 참으로 많이 발전되었습니다. 당선자께서는 아주 잘 하실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예배와 설교 핸드북에 나와 있는 한 여성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전라도 광주에서 1934년 6월 미국선교사 한 분이 과로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남긴 것은 담요반장과 강냉이 가루 2홉이 전부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유언에 따라 의학연구용으로 의대에 기증되었습니다. 가난한 조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나셨습니다. 가난하고 어두운 나라 조선에 와서 22동안 가난한 조선 사람들이 먹는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고 고무신을 신고 살다가 모든 것을 주고 떠났습니다. 

그는 ‘조선인의 친구’로 산 것이 아니라, ‘조선인’으로 살았고, 천의 형벌을 받은 것으로 버림받고 내침을 당한 나환자들과 병든 이웃의 친구로 살다가 떠났습니다. 그는 독일계 미국인 선교사였던 엘리제베스 셰핑(Elisabeth J. Shepping 서서평 1880-1934)이란 여자 선교사님이셨습니다. 그 분이 1912년에 한국에 들어오셨으니 올해가 101년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조선 땅은 가난과 고난으로 얼룩져 있었고, 사는 환경이 매우 열악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은 순회 진료를 다니며,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고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당시 여성들 500명을 만나면 이름을 가진 여성은 10명이 채 안 되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학교를 세워 배우지 못한 여성들을 가르쳤으며, 나환자들의 권익을 위해 힘썼습니다. 과부들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일본총독부가 나환자들의 정관수술 정책을 세우자 나환자들을 이끌고 총독부를 찾아가 행진을 벌림으로 오늘의 소록도 갱생원이 세워지게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최초로 광주시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는데, 기록에 의하며 ‘수천의 광주시민과 나환자들이 좇아 나와 어머니라고 부르며 오열했다’고 합니다. 서서평선교사의 삶이 우리 기독교인의 삶이요,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원본의 삶입니다. 

1934년 그녀가 사망하자 동아일보는 "자선, 교육 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자모 서서평 양 장서. 생전에는 재생한 예수의 칭호" 라는 4단 톱기사를 대서특필하였습니다. 그녀가 별세하자 광주유사이래 처음인 사회장을 치렀습니다. 

독일출신 간호사 쉐핑(서서평)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입니다. 32살의 처녀의 몸으로 한국에 들어와 그는 여러 병원, 군산예수병원- 세브란스- 광주제중병원에서 근무하고, 무명 배 저고리와 검정통치마에 남자용 고무신을 신고 금주금연운동, 인신매매반대, 축첩금지, 공창제도 폐지운동을 벌였으며 고아들을 14명이나 양자로 입양하여 먹이고 입히고, 교육 시키려고 미국으로 보내서 그 아이들이 잘 자라 세계 곳곳에 훌륭한 일들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누군가가 찾아오므로 빛이 비추어지기 시작하고,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었고, 가난하던 사람들이 부요해지고, 비참한 삶이 변하여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 얼마나 갑사한 일입니까?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온 세상이 캄캄하고 암울하였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을 때에 한 줄기 빛으로 찾아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죄악을 다 사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사야9:2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어둡고 암울하며, 희망도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영원한 생명, 온전한 축복의 세계가 열려졌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고 있었는데, 빛이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어두움이 물러가고 생명이 들어오고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오심으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은 드러남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났습니다.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만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드러났습니다. 아들 예수님이 오심으로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드러났습니다. 인간의 어두운 죄악이 드러나고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어릴 때에는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요즈음에는 제발 아무런 사고 없이 지나가기만 바랄 뿐입니다. 

요즈음 교회들은 대부분이 차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술집과 호텔, 백화점은 성탄특수를 노리고 판촉에 열을 올리고 기독교인들보다 비기독교인들이 더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시내에 나가보면 정말 화려합니다. 일 년 중에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달이 12월이고 가장 좋아하는 날은 성탄절이라고 합니다. 10월 초에 태어난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베이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가장 경건한 날인데, 가장 타락한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성탄절에는 청소년들을 지켜야 한다"는 광고 문구를 보았습니다. 가장 쉽게 탈선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을 둔 가정에서는 유념하라는 뜻으로 이런 표어를 만든 줄 압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청소년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합니다. 교회에서 밤을 새우며 놀아도 좋으니 교회에 나와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명동이나 신촌에 나가지 말고, 교회에서 캐럴을 부르고 선물을 교환하면서 교회에서 놀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했던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 목사님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자녀 중 하나가 부스 목사에게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아버지, 힘드시겠지만 이 서류를 서명해주시면 재산이 정리됩니다." 부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까스로 서명한 후 그 서류는 봉해졌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서류를 열었을 때 가족들 모두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 부스가 사인해서 남긴 마지막 서류에는 부스 자신의 이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대신 그 서류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그가 마지막 까지 남기고 싶었던 이름, 그가 세상을 떠나가는 순간까지 붙들고 있었던 이름, 그의 자녀들이 붙들고 살아주기를 기대했던 이름, 그가 그의 가족들에게 남길 수 있었던 최대의 유산은 돈이 아닌 예수의 이름이었습니다. 

윌리엄 부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장차 교회에 닥쳐올 위기를 내다보면서 외쳤습니다. 

"20세기의 최대 위기는 성령 없는 종교,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회개 없는 용서, 중생 없는 구원, 하나님 없는 행정 그리고 지옥 없는 천국을 외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빈껍질만의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진정 있어야 할 것이 들어 있을 때, 소중한 것이지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는 불에 태워질 뿐입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축하공연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리 준비를 잘하고 멋진 연출이라고 하여도 예수님이 없는 예배는 콘서트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아닙니다. 무슨 축하 예배를 준비하던지,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항상 말하게 되는 사람, 마리아에 대하여 말씀드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리아의 수태고지의 사건이 있은 이후에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있어 마리아의 헌신을 높이 평가해주고 칭찬해주고, 길이 기억해야 하는 인물인데, 마리아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한 편에서는 지나치게 높이고 받들고 숭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를 신의 반열에 놓고 예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그를 애써 외면하고 오해받기 싫어서 말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들, 마리아를 숭배하고 지나치게 높이는 이들은 가톨릭교회가 그렇고, 개신교회는 그의 고귀한 헌신마저도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숭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그의 헌신과 순종은 참으로 귀감이 되고, 우리도 그를 본받아야 하는 귀한 헌신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 가브리엘 천사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란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이르렀습니다. 마리아에게 다가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처녀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고 안심을 시켰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1-32)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처녀로 남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 동리 청년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지만, 그도 경건한 사람이요, 결혼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요, 지금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둘러 덮으면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여도 여전히 불안해하였습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6-37)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은 성경 중에 가장 확신을 주고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못할 일이 없으시고, 하나님은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라면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 앞에서 신앙고백과 같은 말을 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 1:38)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여종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둘레”라고 하여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의 단수 여성형입니다. 마리아는 처녀로 임신한 것이 드러나게 되면 온갖 수모와 비난과 나아가 돌팔매질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수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섭리를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이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아첨하는 노예적인 복종이 아니라, 인생의 겸손함을 보여주는 것이요,  하나님의 더 크신 뜻에 순종하려는 헌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면 능치 못하실 일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모든 생명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위임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은 참으로 위대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제3자적인 심정으로 이 사건을 보고 있지만, 아기를 수태하므로 받게 되는 수모와 위기는 상상을 초월할 문제였습니다. 장차 약혼자인 요셉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릅니다. 파혼은 물론이고 부정한 여자라고 하여 장로들에게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돌에 얻어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떠나면서 하신 말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간구하는 것보다 더 좋고 귀한 것으로 역사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성탄절에 있어 절대로 주인공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헌신은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단이 되었고, 방법이 되었고, 귀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아들 예수님에게 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모든 성도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였다는데 있습니다. 지금 거룩한 성탄을 맞이하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데 있어 가장 본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친족 엘리사벳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나이 많으신데, 임신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천사의 말로는 그가 임신하여 여섯 달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유대의 한 동리로 뛰어 달려갔습니다. 나사렛에서 엘리사벳이 사는 유다는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의 몸에 있는 세례요한이 이제 몸 안에서 6개월정도였는데, 복중에서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눅1:42)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어떻게 아기를 가진 것을 알겠습니까? 마리아가 무슨 자랑이라고 남자 없이 임신하였다고 떠벌리고 다닌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엘리사벳은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아 마리아가 임신하였는데, 그것도 성령으로 임신한 것을 알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하여 마리아는 세상의 모든 여자 중에 가장 복을 받은 여자임을 알았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43-44)라고 했습니다. ‘내 주의 어머니’라는 말을 하여, 이 말 때문에 천주교회에서는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라고 하여 마리아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다고 말합니다. 만백성을 구원하실 주님을 그 몸에 모시고 있기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내 주의 어머니라”고 하였을 뿐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신성을 인성에 포함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예수님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리아는 메시아요, 주님이신 예수의 어머니이시지만,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신의 어머니라고 마리아를 신성시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수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문안할 때에 엘리사벳의 몸에 있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앞에는 항상 기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당연한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있을 때에 기쁨으로 뛰놀아야 합니다. 

엘리사벳은 마지막으로 가장 위대한 설교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45)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은 여자라고 하였습니다. “믿은 ”이란 말은 그리스어로 ‘피스튜시사’라고 하여 동사 ‘피스튜오’의 부정과거능동태분사형으로 이미 믿었다는 말이요, 어느 한 때만 믿은 것이 아니라, 항상 믿고 있었고, 꾸준히 지금도 계속하여 틀림없이 믿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호티’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은 “....이기 때문에, for because)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믿은 여자 곧 마리아는 복되다는 말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와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지금 엘리사벳에게 왔을 때에도 어김없이 자기 몸에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시와 시학을 통하여 등단한 시인 김상현의 “노루는 발을 벗어두고”라는 시에서 이런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까마득히 어렸을 땐/ 누워서 별을 세고/ 그 보다 조금 커서는 / 뜨락의 꽃송이를 세고 /그리고 어느 날부터서는 돈을 세다 늙어버렸다.// 가슴에 꽃 시들고/ 꿈 잃어버린 지금은/ 그저 가난할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탄의 계절에 마리아를 사용하신 것처럼 주의 복음전파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나를 사용하여 달라고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목숨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대가를 치루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말이요, 즉시 순종하겠다는 결단입니다. 

겸손과 순종, 기쁨과 찬양, 자기 드림과 복종은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여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기쁘게 드리고는 하나님은 비천한 몸을 돌보셨으며, 복되게 하시려고 선택하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음에“라는 말이 가장 고약한 말이요, 우리를 실패로 끌어내리는 사탄의 말입니다. 이런 말은 자기 무덤을 파는 말입니다. 흔히 인생에는 중요한 날이 두 번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날이고 다른 하나는 태어난 이유를 발견한 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 주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데,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나를 쓰십시오. 라고 결단하십시오. 

말씀대로 믿은 복 받은 여자, 마리아처럼,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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