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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도피성과 예수 (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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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성과 예수(수 20:1-9) 

우리 사회에는 학대 받는 여성들이나 학대 받는 아동들이 피신하여 생활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 폭력 남편 또는 폭력 부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피신처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의식주를 제공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돕는 기관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제도가 성경에 나와 있다. 도피성이란 제도이다. 
도피성이란? 오살한 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지정해 놓은 성읍을 말한다. 오살한 자란? 고의성 없이 실수로 사람을 죽게한 자를 오살자라 한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과실치사”로 사람을 죽게 한 자를 뜻한다. 성경은 실제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신 19: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오살한 자가 도피성으로 피신하게 되면 피해자 가족의 보복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도피성 제도는 오늘 본문 외에도 성경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다(출 21:3, 민 35:11~, 신 19장). 그 만큼 이 도피성 제도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라 할 수 있다. 

청년 시절, 교회에 출석한 이후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알기 위해 성경을 읽는 중에 도피성 제도에 대한 내용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오늘날도 세계 도처에 인권이 유린되는 나라가 많다. 얼마 전에, 다큐멘타리에 인도의 어린 소녀들, 미얀마의 어린 아이들이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있는데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러나 정부도 사회단체도 어느 누구도 그들을 돌봐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부터 약 3500년 전, 고대 사회에서 이와 같은 민주적 인권보호제도가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다면 이 도피성 제도가 단순히 오살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서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인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도피성 제도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특별히 구약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예표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모형론”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모세가 그렇고, 출애굽 사건이 그렇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는 구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을 감당한 인물이다. 그러니까 구약의 인물이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라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실체가 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도피성 제도도 역시 완전치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가?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도피성은 유일한 피난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도피성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오살자의 유일한 피난처이다. 다른 곳으로 가면 생명의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도피성으로 가야만 생명을 구원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유일하신 구원자가 되신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안상홍, 신천지의 이만희, 구원파의 박옥수, 통일교의 문선명, 몰몬교의 요셉 스미스와 같은 교주들은 도피성이 아니다. 위장된 도피성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예)2013년 부산 WCC 10차 대회, 그들의 신학은 보편구원론과 종교다원주의.


2. 도피성만이 안전한 장소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율법의 규칙 중에 이런 것이다. 피해자의 가족 중의 한 사람을 “피의 보복자”로 삼아서 가해자를 죽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때 보복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는 도피성이다. 오살자는 속히 도피성으로 도망쳐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성읍의 장로에게 자초지종을 다 말하면 장로는 그 사람을 안전한 곳에 거주하도록 조처하게 된다. 만약 피의 보복자가 와서 오살자를 내달라고 해도 장로는 내주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오살자는 그 성 안에만 있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안전한 도피처가 되신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외쳤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오살자가 도피성 안에 거주해야만 생명을 보장 받는 것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안에 거해야만 한다.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3. 오살자의 자유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도피성으로 피한 오살자는 먼저 회중 앞에서 장로들에 의해 재판을 받아야 했다. 장로는 오살자의 사실 진위를 가려서 사실이 판명될 경우 오살자를 성읍에 거주하게 한다. 무조건 다 받아 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례 받았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이름을 올렸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거짓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여전히 죄 아래에 있고 사망의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도피성 되신 예수께로 피하는 자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진실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 자유의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 말씀은 난해하지만 신약적으로 적용한다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인을 죄악과 사망에서 풀어주심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하신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 19: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오살자가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 보복자에게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된 것처럼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자유를 얻게 한 것을 말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4. 도피성의 위치

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도피성은 이스라엘 전국의 48개 레위인의 성읍 중에서 6개가 지정되었는데, 요단강을 기준으로 동쪽에 3개, 서쪽에 3개. 전국적으로 6개가 지정되었다.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 산지에 위치해서 잘 보이는 곳.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높이 달리심으로 모든 죄인들이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이(요 3:14, 12:32, 갈 3:1) 도피성 역시 높은 산지에 있다.

2)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이정표를 세우고 길을 닦아둠.
신 19: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3) 전국 어느 곳에서든지 속히 갈 수 있도록 균형적으로 배치함.
그리스도의 복음이 누구에게나 파악되리 만큼 단순하고 평이한 것과 같이 (롬 10;6-8), 도피성 역시 어디서나 갈 수 있도록 편리하게 각처에 설치되어 있었다(신 19:2-3)

아무리 도피성 제도가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너무 멀거나 찾아가기에 어려우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셨다.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도피성을 찾는 오살자처럼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은 찾기 쉽고 편하다.


5.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함께 허용된 장소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도피성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이스라엘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이방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롬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구약시대에 성전 출입에 제한이 있었다. 제사장, 레위인, 유대인, 유대인 여성 그리고 이방인들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의로 제자를 삼아..”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때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여러 나라 말을 하게 되었다. 민족과 인종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온 인류의 소망이 되신다. 

사막에서는 신기루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신기루는 열이나 찬기운 때문에 대기 밀도가 급변 
으로 빛이 굴절해서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도피성은 오아시스다. 멀리 오아시스가 보여서 부지런히 찾아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신기루 현상 때문이다. 

시 146: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피성이 되신다
히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방황한다. 엉뚱한 곳에 가서 엎드리고 빈다. 그러나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의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 방황하지 말고 도피성도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면 된다.

교회가 도피성이 된다
여러분이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했던 자리. 시험들면 피하고 멀리하는데, 그것은 사탄의 궤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힘들고 어려우면 교회당으로 나오라. 이런 저런 일도 교회를 멀리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회복될 수 있는 방법도 다시 교회당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한 주 후면 성탄절을 맞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누구신가? 우리 인생 여정에 진정한 도피성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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