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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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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마 1:18-25)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로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신자들에게는 신앙적인 의미로, 불신자들에게는 공휴일로, 백화점과 각종 상점에게는, 짭짤한 매출을 보장하는 연중대목으로, 저마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는 날’이 되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는 모른다.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 불린 것은, 4C 무렵부터다. 예수님 당시에는, 태어난 날보다, 돌아가신 날이 더 기념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이 기록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이 땅에, 분명히 태어났다. 그 날이 언제일까? 성경에 따라, 그 날짜를 유추해 보면, 

(눅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밖에서(아그라울레오, ἀγραυλέω 야영하다, 들에서 살다)는, 단순히 집밖을 의미하지 않는다. 농경지의 들판에서 야영했다는 의미이다. 목자가 가축을 데리고, 농경지로 들어갈 수 있는 기간은, 3개의 절기(신년절, 대속죄일, 장막절)이다. 

절기 안에 하나님의 인류구속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일은, 신년절과 속죄일 장막절이 있는, 유대력으로 7월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신년절은 나팔절인데, 영광의 나팔을 불며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눅2:13-14)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이 이 땅에, 아기의 몸으로 탄생함으로서, 인류 구속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알렸다.  

속죄일은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는 날이다. 물론 마지막에 이런 일이 있지만,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오셨고, 백성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러 오셨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장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가, 천막을 치며 살았는데, 이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매…” 여기에서 ‘거하시매’(σκηνόω, 장막을 치다)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장막절에 출생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모른다. 

어째든 마태복음은 마태가 썼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했다. 마태는 복음서를 쓰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예수님은 구약에 약속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였음을 밝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책의 첫 부분에,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하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했다. 그리고 곧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기사를 기록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고 있다. (18上)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1.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셨다(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약혼하고, 같이 동거하는 일은,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다. 이점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우리 모두는 육신의 부모님이 계신다. 먼저 나를 낳아주신 인간 어머니가 계시고, 또 나를 낳게 해주신, 인간 아버지가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육신에서 태어났고, 육신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다. 예수님도 육신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육신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인간의 힘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면서, 인간의 어머니는 허락하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려면,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셔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인간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친히 아버지가 되셨다. 죄가 없어야 하니까,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흠 없는 화목 제물로 바쳐야 했다. 예수님은 죄와 상관없는 분이 되셔야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아버지는 허락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육신에서 태어나셨지만, 육신으로 나지는 않으셨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이는 믿음의 문제다. 어떻게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마22:41-46) 예수님의 주변에 바리새인들이 몰려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질문하셨다.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물으셨다. (43)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라고 했는데,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하시자, 그 질문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은 능히 대답하지 못했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 인간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가지신 분임을, 깨닫지 못했다. (마1:1-17)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통해,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임을 말씀한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로서 다윗의 자손이다. 오늘 본문 (마1:18-25)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계보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아가 되신다. 
이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똑같다. 

그러나 굳이 설명하라고 하면, 지금 과학이 발전하여,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갖지 않고도, 얼마든지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실험관 아이나, 또 체세포를 통해, 아이를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가 지금의 세계보다 훨씬 발전되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동거(συνέρχομαι)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하면, 그런 줄 알고, 받아들임이 믿음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에,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이성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요셉도 마리아가 자기와 동거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마리아가 자기 아이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배었다고 생각하고, 그 당시 율법에 따라, 마리아를 돌로 쳐 죽여도, 아무도 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만히 끊고자 했다. 가만히 끊는다는 말은, 이혼을 뜻한다. 자기 아내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거나, 정신적으로 수치와 조롱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로, 이미 법적으로는 부부이기에, 이혼하려면, 이혼증서를 써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음행했다고, 이혼증서를 써 주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요셉은, 그 당시에 이혼할 수 있던, 구실을 찾아야 했다. 예를 들면, 음식솜씨가 너무 형편없거나, 또 알지 못했던 병을 가지고 있다며,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적당한 구실로, 이혼증서를 써주어, 돌려주기를 원했다. (20上)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하나님은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요셉을 다윗의 자손으로 불렀다. 

즉 요셉이 다윗의 혈통으로서, 그리스도의 나심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고, 믿게 되었을 때, 마음에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다. 

2. 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는가?(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나? 천사가 아니다. 천사는 그 이름을 전해 주었을 뿐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어주었나?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의 이름을 짓는 것은, 아버지의 권한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이 그 이름을 지어주셨다. ‘예수’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호세아’나, ‘요시아,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나온다. 모두 똑같은 뜻이다. 그러나 그들과 예수님은 다르다. 그들은 자기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보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려고 오셨다.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무엇이라고 밝혔는가? (21下)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를 구원하시는가? 

자기 백성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예수님을 믿는 자들,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 받기를 원하는 백성들을, 모두 구원한다는 말이다. 그들을 어디서 구원하는가?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거룩한 보혈을 흘림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다. 
하나님과 우리의 원수 된 사이를, 화목하게 해주셨다. 그래서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물론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실 때,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케 하신 것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예고된 말씀이다. 

(22-23)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말이 나온 역사적 배경은 이렇다. 
옛날 유다 왕 아하스 때,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은 연합해서, 유다를 침공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다 나라에는 힘이 없었다. 유다 왕 아하스는,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어야 하지만, 믿음이 없어서,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아하스에게 보내서 이렇게 말씀했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말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마찬가지이다. 유다가 전쟁에서 이기기는, 인간의 시각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으로는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 말씀을 주신 의도가 무엇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니, 적군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 유다 왕 아하스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루살렘 성에서, 금과 은을 취해서, 앗수르 왕에게 보내었다. 
어쩔 수 없이 선지자 이사야는, 두 번째 아이에 대해, 언급한다(사8:1-4). 그래서 이사야 가정에, 두 번째 언급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다. 그 아이가 태어나서 세 살쯤 되었을 때,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 이스라엘 왕 베가가 죽었다. 아람 왕 르신도 죽었다. 

그 결과 유다는 안전했다. 유다는 두 나라와, 전쟁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이 유다를 보존하고, 지켜주었다. 두 번째 아이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다면, 첫 번째 아이의 예언도, 이루어짐이 당연할 것이다. 하나님은 예언하신 그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지켜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저버리는 법이 없다. 이 세상에서 힘든 일을 당해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운가? 

이 세상이 모두 다 나를 저버리고 떠나버린다 할지라도, 우리 곁에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은 영원한 임마누엘이 되신다. 내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인간적인 시각에서는, 불가능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하신 분이다.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보내주신 분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시기 바란다. 

3. 요셉의 순종(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자, 지체하지 않고 그의 아내를 데려왔다. 
더 이상 꾸물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다. 그래서 즉시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곧바로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요셉이 본래 계획은,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뜻을 꺾었다. 하나님이 지시한 그대로 순종했다. 하나님께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또한 마리아에게, 설명할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즉각적으로 순종할 뿐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요셉에게, 배울 점이 있다. 
지금 요셉은 엄청난 일을 겪고 있는데, 그는 사람에게는 입을 열지 아니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입을 열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처신해야 지혜로운 길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하나님은 요셉의 고민을 해결해 주셨다. 

우리도 요셉처럼, 무슨 일을 당하든지, 사람들에게는 입을 봉하고 살자. 하나님에게만 입을 열고, 기도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요셉은 마리아의 뱃속에 잉태해 있는 생명이,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다. 
그래서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그는 그 아들을 낳기까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아니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아서, 예수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분부하신 대로,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했다. 요셉의 순종이, 우리의 순종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의 죄에서 건져주기 위해 보내주셨다. 이 사실을 믿고, 순종하여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기 바란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어떻게 영접하는가? 그 이름을 믿어야 한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기 위하여, 오신 분으로 믿어야 한다. 내 인격을 걸고, 믿기 바란다. 이것은 하나님이 미리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크리스마스는 나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정말 영접하고 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성탄절은 참 기쁜 날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해서, 하나님의 아픈 심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못난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며, 죽게 만드셨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우리는 성탄을 맞이해서,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시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다. 이 놀라운 계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리고 요셉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신 이유를, 올바로 믿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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