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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2) (눅 1:6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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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오신 예수님(2) (눅 1:68-75)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눅 1:68-75)”

저는 오늘 누가복음 1장 68절로 75절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해 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큰 은혜와 축복은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있고 예수님을 모르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세상의 자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그 일생을 책임져 주시고 죽음 이후에 영생의 자리로 인도하시지만 세상의 자녀들은 죄와 절망 가운데 살다가 이 세상 떠나게 될 때 저 영원한 지옥형벌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만방에 전해야 됩니다. 불쌍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침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이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 것인가를 우리가 살펴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1.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심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장 68절에서 69절에,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 구원의 능력을 다윗의 반열에서 일으키셨다고 말씀합니다. 그 분이 바로 온 인류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뿔로 오실 것은 이미 구약 곳곳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편 132편 17절에서 18절에,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내가 그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옷 입히고 그에게는 왕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속량하셨다 하셨어요. 속량이라는 말은 빚을 갚았다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 우리를 구속하였다 속량하였다 다 같은 의미입니다. 당시 빚을 지면 사람을 그 빚값으로 가져가서 그를 하인으로 부립니다. 노예로 부립니다. 그런데 그 친족 중에 돈 있는 사람이 와서 돈을 갚아주고 그를 자유케 해주는 것을 ‘속량시켜준다 구속시켜준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47절 48절에 보면, “만일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은 부유하게 되고 그와 함께 있는 네 형제는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이나 동거인 또는 거류민의 가족의 후손에게 팔리면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그의 형제 중 하나가 그를 속량하거나”. 말씀합니다. 친척 중에 와서 대신 와서 돈을 내고 그를 자유케 해주는 사건이 속량인데 온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 마귀의 노예가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 없으신 몸으로 그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1860년 2월 5일 뉴욕, 샐리 마리아 딕스라는 9살 난 여자 아이가 그 노예 시장에 경매로 붙여졌을 때 그 매겨진 가격이 900불입니다. 이를 알게 된 뉴욕 브룩클린에 있는 플리마우스(Plymouth)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 아이를 우리가 살려주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성도들이 헌금을 걷어가지고 이 아이를 경매시장에서 값을 주고 지불하고 자유함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의 운명이 노예로부터 자유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전 성도가 헌금을 해서 노예로 팔려간 한 아이를 살려낸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친히 던져서 온 인류를 구원해 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버림받아야 마땅하고 죄짓고 불의하고 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주님께서 오셔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람들은 다 나를 잘 섬겨주기를 원합니다.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높임받기를 원합니다.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낮아지셨어요. 섬기셨어요. 희생하셨어요. 칭찬 대신 욕을 먹으셨습니다. 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할렐루야. 십자가에서 모든 죄와 질병과 가난과 저주를 다 짊어지고 돌아가신 예수님.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주님께서 죄 없으신 주님께서 피 흘려 모든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죄 없는 짐승이 주인 대신에 죽어서 피를 흘렸습니다. 주인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집에서 기른 흠 없는 동물들이 죽어갔어요. 생각해보세요. 요즘 애완용 동물들 많이 집에서 기르는데 겨울이 되면 옷도 해 입히고 또 발톱에도 뭘 발라주고 온갖 좋은 음식을 다 먹이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그런데 주인이 죄 지을 때마다 그런 애완용을 하나씩 잡아 보는 앞에서 죽인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그랬어요. 집에서 애지중지 기른 양이 주인의 죄 때문에 죽어갑니다.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잡혀가 죽어가는 양을 보면서 다시는 ‘죄짓지 말아야지’ 그러면 또 죄지어요. 또 양이 죽습니다. 또 집에는 동물들이 죽어가요. 그래서 구약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죄 없는 동물들이 주인의 죄 때문에 죽었어요. 피의 제사. 그것은 장차 예수님이 죄 없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릴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피 흘림 없이 죄 사함이 없으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8절을 보면,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 나시리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셨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 예수님이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해 주셨어요. 여러분 이 세상에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있지만 죄의 문제를 열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어요.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자꾸 요즘 악한 영들에 의해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얼마 전에 SBS에서 밤에 뉴스 나온거 보니까 강원도에 있는 이단 집단에는 사람들을 미혹해서 집단으로 생활하는데 거기 교주가 하나님이래요. 그런데 본인은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성령님이래요. 그런데 거기 들어가서 거기 서 들어가서 살면서 다 갖다 바치는 거예요. 얼마나 절망 중에 삶을 사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어떠한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어디서 그런 소리하면 ‘아, 저 사람은 이단이다.’ 거기 가 있는 사람은 빨리 데리고 나와야 해요. 이단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죄 값을 지불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의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2. 모든 원수로부터 건져주심

둘째로 우리 주님이 모든 원수로부터 건져주십니다.

누가복음 1장 70절 71절에,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마귀의 손에서 건져내시기 위함이라. 온 세상이 죄로 뒤덮혔어요. 왜? 공중 권세를 잡은 원수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죄를 심어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기억해야 될 것은 세상의 잘못된 풍습을 따라가면 안 돼요.

여러분 TV를 보면 너무나 자극적이고, 또 어떤 드라마를 보면 이것은 건전한 사람이 살지 않은 모습이 아닌 잘못된 모습을 아름답게 만들고. 우리가 정신 차려야 됩니다. 이 세상이 죄로 뒤덮혔어요. 때로는 보는 것이 죄고, 듣는 것이 죄고, 생각하는 것이 죄고, 행동하는 것이 죄 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늘 예수의 보혈로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8절~19절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여러분 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이미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고 여러분은 영적으로 이미 하늘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죽은 고기는 물에 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악의 홍수에 떠나가지 말고 살아 역사하는 성령의 은혜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예수 잘 믿어야 돼요. 예수 잘 믿고 주님 뜻대로 살면 모든 문제와 어려움들을 이기게 만들어 주시고 놀라운 승리와 축복과 기적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에게 미움을 집어 넣어주고 싸우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다 악한 원수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마음의 미움도 떠나가고 절망도 떠나가고 마음의 상처도 떠나가고 평안함이 다가 오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시편 118편 6~7절에, “야훼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야훼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주님이 우리 편이세요.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세요.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말합니다. “위험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사람은 결코 두려움이 없다.” 

그러므로 악한 원수 마귀가 우리를 쳐들어와서 괴롭힐 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절망은 물러가라. 슬픔은 물러가라. 악한 생각은 떠나갈 지어다.” 

로마서 8장 31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하나님이 우리 일생을 인도하여 주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두려워 할 것이 없어요. 염려할 것이 없어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마귀는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할 그 때에 패했어요. 이미 끝났어요.

지금 우리에게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은 두려움뿐이에요. 으르렁 으르렁 거리지만 가까이 가보세요. 이빨 하나도 없어요. 이빨 뽑힌 사자가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 두려워할 것이 없어요.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흑암의 세력은 떠나갈지어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러분 환난을 당하지 않지만이 아니라 환난을 당하지만 문제가 있지만 고통이 있지만 괴로움이 있지만 슬픔이 있지만 질병이 다가오지만 담대하라 담대하라 담대하라. 할렐루야.

김장환 목사님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 책에 보면요. 거기에 ‘10대 해방자’라고 하는 선교단체를 이끄는 세익 게이터라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나오는데요. 늘 마약에 찌들어서 계속 범죄행위를 하므로 17살까지 전과 17범. 감옥을 들락날락 들락날락 들락날락. 마약을 하고 마약을 하는 돈을 만들기 위해서 도둑질을 하고 이런 일을 하다가 감옥에 들락날락 했는데 그 독실한 크리스천 아버님이 이 아들을 변화시켜 보려고 결혼을 시켰는데 그 며느리도 도망가고 말았어요. 기도하는 중에 그 지역에 부흥회가 열렸어요. 그래서 아들을 설득하고 설득해서 아들하고 도망간 며느리를 데리고 와서 같이 부흥회에 참석했는데 성령이 임해가지고 변화를 받았어요. 이 아들이 완전히 새사람이 되가지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이 되고 이렇게 마약에 찌들고 나쁜 길로 가는 청소년들을 이끄는 선교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여 이끄는 귀한 주의 종이 됐는데요. 

이러한 고백을 했어요. “수많은 대적이 나를 넘어뜨리려 하였고 악한 마귀가 나를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와 미워하는 악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궁극적인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승리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세요.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면 예수님이 탄생했는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함께 계세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우리의 인생의 길을 인도하시고 함께 하여 주셔서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절망의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시는 것입니다.

D.L 무디(Dwight L. Moody) 목사님의 예화가 기억이 납니다. 눈이 펑펑 오는 겨울날. 시카고에는 원래 눈이 많이 와요. 집을 나가는데 어린 아들이 쫓아 나옵니다. “야,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지니까 내 손을 잡아라.”, “아냐. 안 잡을래.”, “내손 잡으라니까.”,“아빠 그러면 새끼손가락만 줘.” 새끼 손가락만 잡고 나가다가 꽈당 넘어졌어요. “거봐 내가 뭐라고 그랬니.” 그 다음 부터는 손을 내밀라고 해서 아빠 손을 잡고, 가다 미끄러지려하면 손을 덥석 들어 올리고, 덥썩 들어 올리고 그래서 눈길을 잘 갈 수 있었다.

저는 그 예화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주님의 손을 꽉 붙잡고 아니 손에 붙잡혀 가면 얼마나 좋아요. ‘주님 저 혼자 갈래요.’ 하다가 ‘콰탕탕’ 넘어지고 ‘주님 새끼 손가락만 주세요.’하고 또 새끼 손가락만 붙잡고 가다가 ‘콰탕탕’ 넘어지고 주님이 ‘뭐라 그랬냐. 내게 맡겨라’, ‘탁’ 주님의 손을 붙잡고 가면 어떠한 환란이 와서 넘어뜨려도 다시 벌떡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넉넉히 우리는 이기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3. 평생 주님을 섬기게 하심 

이 예수님이 셋째로 우리에게 오셔서 영원토록 주님을 섬기게 만들어주십니다.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삶을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75절에,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예수님 믿고 나서 우리에게 주신 기쁨이 무엇이냐 따라하세요. “주님을 섬기는 기쁨.” 할렐루야. 무슨 기쁨이요? 섬기는 기쁨.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요. 무엇을 해도 아깝지 않아요. “무슨 말씀하시나?” 그게 아니고, 여러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근본이에요. 희생. 어느 부인이 집 남편과 가족을 위해서 음식 준비하는 것을 귀찮아가지고 ‘에휴, 빨리 죽어버려야지 언제까지 밥해야 하나.’ 그런 부인 없어요. 기쁨으로 해야해요. 기쁨으로. 왜? 남편을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니까. 또 음식을 만들어주고 잘 먹어주면 그게 기쁜 거예요. 밥, 반찬투정하지 않고 잘 먹어주면 그게 기쁜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요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다 주시러 오셨잖아요. 희생하고 섬기러 오셨잖아요.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었다니까요. 그러면 우리도 주님을 섬기는 기쁨도 마찬가지에요.

그렇게 날 위해서 아낌없이 주셨으니 이제 나의 삶도 아낌없이 드리기 원합니다.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감사를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재능을 드리고 드려서 주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투루카나 가보니까요. 아, 참. 그 전날 영상 49도. 아니 한국에서 영하 7도 8도하다가, 49도가 되니까 얼마나 더운지 9명 타는 프로펠러 비행기로 거기 갔는데 얼마나 더운지요. 하여간 그 지역에 산다는 것이 기적이에요. 

여러분 저는 몇 시간 안 있다 왔는데도 정말 고생을 했는데 거기서 평생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땅에는 가시가 아주 촘촘히 박힌 가시떨기 나무. 지나가기만 하면 가시가 찔러요. 밤에는 전갈이 나오고 독사들이 나오고요. 어디 나무그늘이 별로 없어요. 큰 나무 밑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나무 밑의 교회인데 우리 또 어디가도 물이 없으니까 깊이 파야만 돼요. 깊이 파야만 물이 나오는데 물도 없지요. 물 길러 저 먼 길을 가야되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광야 길을 갈 때 불평한 게 조금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런데서 28년을 지내시면서 거기 병원 있나요, 약국 있나요, 편의점이 있나요, 그 흔한 뭐 파는 데가 있나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허허벌판이에요. 거기서 그들을 섬기며 살았던 우리 선교사님. 우리는 너무나 지금 복 받은 인생을 살고 있는 거예요. 이제 우리가 결심해야 돼요. 이제 나의 남은 여생,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기 원합니다.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 섬기며 살기 원하느냐.

1) 성결

여기 보니까 성결한 모습으로 섬기라. 성결을 말씀해요. 성결이 뭐냐. 구별되어진 모습. 세상과 구별되어진 모습.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모습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잘 들어주세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똑같이 화내고 똑같이 욕하고 똑같이 거짓말하고 똑같이 사기 치면 믿지 않는 사람하고 뭐가 달라요. 무언가 달라야 된다니깐요. 성결이라고 하는 것은 그분들보다 무언가 그분들을 감동시킬만한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는 것이 절제있고 아름다운 말하고 성격이 절제되어서 쉽게 화내지 아니하고 잘 자신을 다듬을 줄 알고 또 어디를 가든지 사랑을 베풀어서 사람을 감동시키고 대접을 받기보다는 대접하기 원하는 그래서 구별된 삶, 성결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23절로 24절에,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을 옷 입고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그 삶의 모습을 통하여 이웃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혼자 예수를 믿었지만 여러분을 통해서 온가족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 갔지만 여러분을 통하여 온 직장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할 때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지만 여러분을 바라보고 그 사업장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 변화되고 예수 믿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구들이 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나의 변화된 모습을 통하여 온 학교가, 캠퍼스가, 주의 복음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이 말씀합니다. “성결한 삶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이다”. 우리가 변화된 모습으로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만방에 증거해 줄 것입니다.

2) 의로움

성결한 삶의 모습은 의로움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성결은 의로움과 연결되어 있어요. 의로움은 뭐냐.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입니다. 잘 들어주세요. 사람에게 인정받는데 우리가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또 높은데 있는 분에게 잘 보여서 줄을 잘 서 가지고 빨리 출세해 보려고 합니다. 이 모든 노력,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잘 보이세요. 하나님 앞에 잘 보이면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버림을 받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까지 갔지만은 하나님 앞에 의로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높여주셨잖아요. 하나님만 붙들고 있으면 여러분, 그것이 바로 승리의 길이고 축복의 길인데 왜 사람을 붙잡고 그냥 온갖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요. 의롭게 살아야 돼요. 성결하게 살아야 돼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돼요. 우리가 빛을 비추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빛이 가물가물해가지고 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그런 삶을 살아요. 왜, 내가 의롭지 못하니까. 내가 거짓말하고 내가 남을 속이고 내가 남을 헐뜯고 내가 남을 모함하고 내가 남을 짓밟고 사니까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일천만 크리스천이 있는데 우리가 성결과 의로 무장만 하면 이 나라가 뒤집어져요. 왜 아직도 이 모양이냐.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정신 차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이 대한민국을 새로운 나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32장 16절로 17절에,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의로운 세상이 오면 참된 평화가 온다는 거예요. 막 다투고 네가 옳으네, 내가 옳으네. 막 욕하고. 그렇게 살지 아니하고 이제는 평화, 평화, 평화로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 때 그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성결과 의의 모습을 통해서 큰 감명을 끼치게 해주셨던 김교신 선생님. 

그 넷째 딸인 김정옥 할머니가 그 아버지의 그 책이 일본말로 나온 것을 번역을 했는데 이런 말씀을 남겼어요. “사랑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 주고 싶으나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어떤 이는 문학을 주며, 어떤 이는 예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의(義)’의 골절을 세우며, 그 혈액을 만들어 평생 주님을 섬기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의와 성결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와 성결로 옷 입고 그 다음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돼요.

3) 두려움이 없는 삶

두려움이 어떻게 들어왔죠? 두려움이 죄로 말미암아 들어왔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 뭐가 들어왔어요? 두려움이 들어왔어요. 여러분, 죄의 결과가 두려움입니다. 이제 주님 앞에서 성결케 되어서 죄를 쫓아내야 돼요. 두려움을 쫓아내고 맘에 기쁨과 평안함이 넘쳐나야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넘쳐나게 될 때 두려움이 쫓겨나갑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명하노니 두려움은 물러갈지어다. 염려, 근심, 걱정, 절망은 떠나갈지어다. 마음에 주님의 평안함이 다가올지어다. 

이사야 41장 10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기억하세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의 손에 붙들려 살면 돼요. 걱정할 것이 없어요. 염려할 것이 없어요.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뭘 두려워하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제 의와 성결로 옷을 입고 두려움을 내어 쫓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길 때 주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그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주시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는 삶을 주셔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주의 사랑을 만방에 증거하며 사는 복된 주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와 축복 속에 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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