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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와 헤롯 (렘 31:15-17, 마 2: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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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헤롯 (렘 31:15-17, 마 2:13-18)
  

오늘은 마태복음 서두를 본문으로 하여 읽었습니다. 마태복음 서두를 보면 아주 끔찍한 보고서(2:16)가 등장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 중 주연은 예수와 헤롯입니다. 헤롯은 당시 유대를 통치하던 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온 왕입니다. 이 둘의 악연이 성경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수백 년 동안 세상에서 기다렸던 그 왕 메시야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왕이 태어나니까 세상에서는 세속의 왕이었던 헤롯이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옴으로서 세상과 대치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는 곳 마다 대치가 이루어졌습니다. 복음화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 반드시 이 대치가 이루어집니다. 개인에게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본문은 그 대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불화를 주려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동방에서 박사들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에 거주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입니다. 그들은 메시야의 태어남을 고대하며 연구하던 사람들입니다. 메시야가 태어나게 되면 하늘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천체의 변화를 연구하던 중 계시를 받고 특별한 별의 움직임을 따라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당연히 메시야가 태어나면 예루살렘 그리고 왕궁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심하지 않고 왕궁으로 가서 왕이 태어났다는데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헤롯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놀랐을 것입니다. 그 후 헤롯은 왕이 태어났다는 말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인류 역사상 있을 수 없는 끔찍한 짓을 벌리게 됩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다녀간 시점으로 해서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살고 있던 가정에서 두 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헤롯 

이 헤롯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에는 헤롯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헤롯(Herod)은 가문을 말하고 Family를 말합니다. 즉 “헤롯가”라는 뜻입니다. 해롯가는 BC37 ~ AD70년 사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을 다스린 왕조입니다. 이런데 이 헤롯 왕조의 가계가 아주 복잡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헤롯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여러 헤롯들 중에 증조부가 되는 큰 헤롯 소위 헤롯 대왕입니다. 이때 헤롯대왕의 나이가 70 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왕이 될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 충격 받았습니다. 이 헤롯은 과대망상의 병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왕권교체에 따른 정변이 일어날까 봐 아내와 두 아들과 5명의 유능한 참모들까지 처형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16절을 보면 두 살 미만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살해된 아이들이 대략 14,000명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헤롯은 참 무지한 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의 왕은 정치적인 왕이 아니고 죄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는 메시야임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가 불행을 불러옵니다. 그때 헤롯 자신의 아이들도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이미 예레미야 31장1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예레미야는 기원전 670년경에 활동하던 예언자이니까 수백 년 전에 이미 이런 사실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 헤롯은 예수와 악연이 깊습니다. 예수님은 출생순간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까지 이 헤롯 대왕과 그의 아들들에게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추종자들은 헤롯의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계속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예수와 헤롯은 악연이었고 숙명이었고 두 사람은 왕권에 대해서도 서로 충돌하였던 사이였습니다. 

예수의 신적 왕권과 헤롯의 인간적 왕권과 치열하게 충돌하였습니다. 헤롯 대왕은 BC 37- BC 4까지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로마시대의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친 로마적인 왕이었습니다. 당시 헤롯은 장군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정치가 마르크 안토니우스의 눈에 들어 유대의 왕으로 봉해졌습니다. 당시 왕은 로마가 인정해야 가능했습니다. 헤롯은 로마의 묵인 하에 국내정치나 외교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헤롯은 기원전 73년에 이두메 사람 안티파터와 아랍족장의 딸인 크프러스 사이서 태어났습니다. 이두메는 에돔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두메는 유대인들이 경멸하고 멸시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이 안티파터는 유대인의 왕이 되려고 애쓰던 왕자들 중 하나인 히르카너스를 추종하던 중 내전이 일어납니다. 히르카너스와 안티파터는 당시 유력한 장군 카이사르 편에 가담하여 승리한 후 공로를 인정받아 히르카너스는 왕이 되고 안티파터는 뒤에서 실권자로 있습니다. 그때 안티파터는 15세인 아들 헤롯을 갈릴리지역 집정관으로 임명하고 그 후 헤롯은 갈릴리 지역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이를 분봉왕이라고도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이 헤롯을 극심하게 싫어했습니다. 

유대인이 아니고 이두메 사람 즉 에돔 사람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어머니는 아랍여자였습니다. 당시 유대법에는 유대인 이방인만 개종이 허락되었는데 이들이 유대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헤롯은 로마로부터 인정받아 승진하여 분봉왕에서 유대인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헤롯은 줄타기 외교에 수완을 발휘하여 로마에 환심을 사서 왕권 유지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헤롯은 기원전 23년에 골란고원 등 넓은 지역을 헤롯에게 맡기기까지 했습니다. 이제는 전 유대인의 왕으로 로마로부터 계속 영지를 늘려가고 있었습니다. 

예수와 헤롯의 관계

우리는 성탄절만 되면 예수와 헤롯의 악연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헤롯이 죽이려 했고 그래서 피난하여 망명생활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예수님이 태어나자마자 죽이려 했고 그의 아들 헤롯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는데 재판으로 일조했고 그 손자 헤롯들은 제자들이 복음 전파하는데 많은 장애를 주었습니다. 이런 헤롯에 대해서 예수는 성경 누가복음19:12-15에서 그를 언급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신분이 귀한 사람이 먼 나라에 가서 왕으로 임명받고 돌아오려고 떠났다. 

그는 자기 종 열 명을 불러서 각각 열므나씩 주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돈으로 장사하라”, 그러나 그 종들은 그를 미워하여 사절단을 그의 뒤로 딸려 보내어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되기를 윈치 않습니다”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으로 임명되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얼마나 이문을 남겼는지 알아보려고 종들을 불러 모았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셨을 때에 여리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여리고에는 헤롯의 겨울 궁전이 있었습니다. 헤롯은 그의 죽음을 그곳에서 맞이하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헤롯의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헤롯은 로마로 가서 왕권을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왕권을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오병이어 사건 직후 이 시대의 대안은 예수밖에 없다고 해서 실제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 6:15). 당시 바리새인들과 헤롯이 이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평소에는 원수지간이었지만 예수를 잡아 죽이는 데는 한통속이 되어 대치하였습니다.

기원 전 4년

시대적으로 보면 기원전 4년은 역사적인 해입니다. 이 헤롯은 기원전 4년에 여리고에 있는 겨울 궁전에서 죽었습니다. 그해 헤롯 가문은 유대인들과 아주 질긴 악연을 가진 해입니다. 악은 죽을 때 발버둥 치게 됩니다. 해가 질 때 갑자기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땅거미라고 부릅니다. 귀신 나갈 때 몸을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고 나갑니다. 헤롯이 죽을 때를 전후한 기원전 4년은 역사가 몹시 뒤틀렸던 시기입니다. 가장 어두웠던 해이고 역사가 가장 소용돌이치던 해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태어나셨고 헤롯은 태어난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일로 어린 아이들 14,000명이 학살당하여 죽습니다. 또 헤롯은 죽기 직전 당시 에세네파 거주지인 쿰란에 있던 수도원을 악의적으로 방화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합니다. 에세네파는 예수 시대에 바리새파 사두개파와 3대 파벌을 형성하였던 한 파입니다. 에세네라는 말은 “경건한 자”란 뜻입니다. 그들은 재산을 공유하고 농업을 중시하며 독신주의로 은둔의 삶을 살았던 청결주의들입니다. 쿰란지역에 동굴을 파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던 사람들입니다. 

당시 헤롯이 이렇게 병든 사람입니다. 또 후계자 문제로 가족들끼리 싸움이 시작되자 죽음을 앞둔 헤롯은 왕권이 불안하여 자기 아들 둘을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헤롯은 죽을 때까지도 왕권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구스도 황제는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헤롯의 돼지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죽을 때가 되자 그의 선생들인 유다스와 말티아스가 학생들을 사주하여 성전꼭대기의 황금 독수리 상을 치우도록 했습니다. 십계명 상 우상이고 죄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고 헤롯이 병상에서 일어나 두 선생과 제자들을 잡아 산채로 불태워 죽였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평생 마음에 한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자기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수하고자 했습니다. 유언장에 유대인 귀인 1천명을 예루살렘에 모이게 하여 여리고에 있는 전차 경주장으로 인솔하여 놓았다가 자기가 임종하자마자 학살하라고 군인들에게 명령을 하달시켜 놓았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죽으면 울어줄 사람이 한사람도 없을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귀인 1천명이 죽었다고 사람들이 통곡하게 될 때 그 통곡이 자신을 위한 통곡으로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시대가 이렇게 어두웠던 그 시기에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 듣고 오늘 이란 땅에서 예루살렘까지 기쁨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헤롯은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왕은 나밖에 없는데 나의 왕권에 도전하는 자가 태어났다니 그 소식은 헤롯의 마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그 때를 기준으로 하여 두 살 이내의 남자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장이 주는 증언입니다. 헤롯은 죽기 직전 미쳐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빛과 어둠은 공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오면 어둠은 100% 거부하고 저항하고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나는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예수를 반대한 것입니다. 세상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양심껏 활동하고 소신껏 행동해 보십시오. 모두 싫어합니다. 따돌림을 당합니다. 오늘 이 시대도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은 빛을 싫어합니다. 내 안에 예수가 오시는 것도 주저합니다. 한동안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겨내야 평안해 집니다. 이것은 모든 공동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가정에 이 빛이 오면 그곳에 한동안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사회에서도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집은 유교로 찌들었던 집안입니다. 우리 집에 이 복음이 들어온 후 제사제도를 바꾸는데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사회에서나 국가에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와서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고 핍박받았습니까. 천주교에서는 초창기 복음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제사제도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이 1만 명에 이릅니다. 

그래서 전도가 힘든 것입니다. 이 빛이 두려운 것입니다. 이 빛을 받아들이는데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주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복음화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둠의 생활에서 빛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빛이 세상에 왔으되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함이라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라(3:19).” 그래서 빛이 비취면 반드시 그곳에는 저항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시대분별입니다. 기원전 4년은 암흑시대였습니다. 그 시대가 얼마나 어두웠으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내려 보내셨겠습니까. 그래서 그 시대에는 두 부류가 공존해 있었습니다. 하나는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고 기다렸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에세네파 사람들이고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수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거부자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리새인들이었고 헤롯 같은 사람들입니다. 헤롯이나 바리새인들은 모두 예수가 오신 줄을 알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 알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번복하지 않고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이 두 부류는 서로 원수지간이었지만 예수를 거부하는 데는 한통속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은 그 시대를 분별해야만 하는 의무가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에게도 이런 본분이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자들과 신앙인들이 그 길을 찾지 못하였으니 그 시대인 들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시대분별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지도자들과 종교인들 몫입니다. 

세 번째는 소명감입니다. 사람은 소명의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 각자 소명을 받아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아무 의미 없이 사람을 세상에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무의미하고 한가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세상에 오신 사명입니다. 헤롯은 그 시대에 백성들을 섬기라고 세운 치리자입니다. 

그 시대를 염려하고 백성의 삶을 안내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두 그 사명을 망각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아이들을 죽이고 권세에 과대망상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이 헤롯이 많아서 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에서는 아이들을 학살하듯 죽이는 권세자들이 있습니다. 북한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굶어죽거나 말거나 권세에 과대망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리아가 그렇습니다. 

자기 백성을 향하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 사람들이 오늘의 헤롯입니다. 모두 소명을 잃었고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헤롯을 만난 것이 불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중요한 시대에 앞을 보지 못하고 오신 메시야를 보지 못하고 그 시대를 방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그렇게 어둡고 타락했기 때문에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오시는 주님을 고대하고 맞이하는 시간이 대림절이고 성탄절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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