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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에 계셨다! (겔 48: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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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에 계셨다! (겔 48:30-35)


오늘 우리는 2012년 마지막 주일을 주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해를 살아온 이 시점에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고백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있다면 저는 이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도와주셨다."  이 고백만큼 귀하고 아름다운 고백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 시간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서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집사님!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와 주셨어요."

어떤 책을 읽다가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베푸는 성인식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디언 소년들은 13살이 되면 아주 독특한 성인식을 갖는다고 합니다.  우선 그의 아들이 13살이 가까워지면 아버지는 그에게 사냥하는 법, 정찰하는 법, 칼 쓰는 법, 낚시하는 법 등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13살 생일날 저녁에 아버지는 그를 아주 깊고 깊은 숲 속으로 데리고 갑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족이나 부족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자기 아들을 데리고 저녁 어둑할 무렵 눈가리개를 하고서 깊은 먼 숲 속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숲 속에 아들을 홀로 내버려두고 아버지는 나옵니다.  아버지와 약속한 일정한 시간이 지나간 후에 소년은 눈가리개를 풉니다.  그때 이 소년은 울창하고 우거진 어두운 숲 속에 홀로 버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이제부터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깊은 숲 속에서 공포의 밤을 홀로 지새워야 합니다.

나뭇가지가 스산하게 찰싹거릴 때마다 느닷없이 자기에게 달려들 동물들을 떠올리면서 온 몸을 움츠릴 것입니다.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 혹시 늑대라도 금방 어둠 속에서 뛰쳐나올 것 같은 긴장을 느끼면서 그 밤을 버티면서 견딥니다.  바람이 불면 더욱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힙니다.  너무나 무서운 밤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 밤의 몇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새벽의 여명을 알리기 시작하는 빛줄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꽃들이 눈에 보이고, 무성한 나무들이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위를 돌아보다가 소년은 갑자기 숲 속에서 몇 미터 떨어진 가까운 곳에서 활과 화살을 들고 자기 쪽을 향해서 겨냥하고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소년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거기에서 아들과 함께 온 밤을 함께 지샌 것입니다.  사실상 소년은 홀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거기에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에스겔서의 메시지입니다.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에스겔 1장부터 32장까지이고, 두 번째 부분은 33장부터 48장까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 부분인 에스겔 1장부터 32장까지의 메시지는 "여호와가 거기에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며 이스라엘이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부분인 33장부터 48장에 들어가면 "여호와가 거기에 계시다"는 중심 메시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합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인 32장이 끝나고 33장에 들어가면 21절에서 결정적으로 이스라엘과 수도였던 예루살렘 성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성이 함락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적의 수중에 떨어졌고,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드라마의 마지막이 결코 아닙니다.  몰락과 함께 그 성을 회복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36장 33절은 시온 땅인 예루살렘의 회복을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에스겔 36장 33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황폐하고 황무한 그 땅이 다시 건축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회개하면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복의 절정으로써 예루살렘 성이 다시 재건되고, 하나님께서 그 성에 충만하게 거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에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도시의 이름을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  여기에서 "삼마"라는 말은 "거기"(there)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삼마"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성의 이름을 그렇게 지으신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 또한 "여호와 삼마",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 보면 여러 하나님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스스로 계시하신 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계시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간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이름을 통해서 계시된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첫째로, 그는 과거에도 거기에 계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경험한 가장 어두운 과거는 어떤 과거였을까요?  그것은 포로된 것입니다.  우선 애굽이라는 나라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70년 동안이나 포로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본문의 배경은 바로 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70년 동안의 노예 생활을 상상해 보십시오.  과거 우리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당해야만 했던 36년 동안의 노예 생활도 우리 역사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는데 70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완전한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바닥까지 떨어진 절망의 자리에 하나님이 개입하시자 갑작스럽게 놀라운 해방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를 얻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 감격을 시편 기자는 126편 1절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것이 생시인지 꿈인지, 도무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126편 3절에 보면 그들은 이렇게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이스라엘의 감격이 우리의 경험 속에 비교될 수 있는 사건은 꼭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와 여러분, 우리가 주 앞에서 구원받은 사건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기 전,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의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를 묘사할 때 성경은 정확하게 노예생활이라고 하는 사실을 아십니까?

요한복음 8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죄에 끌려 다니다가 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심으로 저와 여러분이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사건을 신학적인 용어로 '구속'이라고도 말합니다.  여기에서 구속이라는 말은 죄의 값을 치르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피 값으로 저와 여러분을 죄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할 많은 제목들이 있지만 우리의 감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감사의 원인은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 이 위대하신 사랑, 이 위대하신 희생을 인하여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성가에 보면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그 거룩한 하나님 성에서 찬양할지어다.  다 주의 크신 이름 높이며 우리에게 행하신 위대하신 일 감사하세 오 주의 신실하신 그 사랑"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그 밤, 우리가 주를 몰랐을 때에도 우리가 죄의 포로가 되어 신음하고 고통스럽게 아파할 그 때에도 주님께서는 함께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던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보면, 노예생활을 하던 백성들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셨는가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분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지나온 어두운 밤, 최악의 밤 거기에도 그분은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여호와 삼마,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지난 한 해는 계속되는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모두가 힘은 한 해였습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인생 여정에서 가장 어두운 밤의 때를 지나야 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삼마이신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에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하나님은 지나온 우리의 과거에도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이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다면 오늘 송년의 주일에 그분 앞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잊지 마십시오.  지나온 한 해가 힘들고 어려웠어도 신실하신 우리의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에 계셨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삼마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두 번째로, 그는 현재에도 여기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우리의 신앙 여정에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지하고도 새로운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이제부터 걸어가야 하는 신앙의 여정 그 길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고난 못지 않은 비슷한 고난이 그리스도인들의 생애 가운데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고난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어려움 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자꾸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아직도 우리의 인생의 길에 고난을 허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고난에 직면할 때마다, 고통을 통과할 때마다, 고난의 무게가 너무 힘들 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투정을 합니다.
"주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푸념하다가 마침내 그분의 도우심을 통해서 이 고난의 언덕을 넘어섰을 때 우리가 주님께 공통적으로 드리는 고백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이 대답은 조금 뒤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약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형님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챈 야곱이 형의 분노를 피해서 혼자서 머나먼 하란으로 가는 길로 나아갑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다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들판에서 하루 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 들판에서 밤을 지내다가 야곱은 꿈을 꾸고 환상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접하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 드린 야곱의 고백이 있습니다.  창세기 28장 16절의 말씀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여기에 계셨는데 내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그분은 언제나 거기에, 그리고 여기에 계셨습니다.

이번에는 신약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이 십자가가 모든 것의 마지막이라고 판단을 했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제자들 가운데 역시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절망 가운데 엠마오 길을 가던 두 제자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모든 상황은 끝났다고 판단했습니다.  예수고 구원이고 이제는 과거의 착각일 따름이라고 하늘을 향해 냉소하면서 길을 가던 두 제자의 곁에 누군가가 소리 없이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이 대목에서 아주 흥미 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6).

그분을 몰라봤습니다.  왜요?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제 아들이 몰랐을 따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몰랐을 따름입니다.  왜냐구요?  우리의 눈이 가리워졌기 따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뭘 어떻게 합니까?  눈을 떠야지요.  눈을 감지 말고, 눈을 떠십시오.  이 시간 옆에 있는 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눈을 떠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눈을 뜨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주님, 제 눈을 열어주십시오."  그리고 금년 한 해 여러분이 걸어 왔던 인생의 길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십시오.

지난 한 해를 지나오면서 우리가 그렇게 절망했을 그때, 우리가 그렇게 분노하고 싶었던 그때, 내가 속았다고 느꼈을 바로 그때, 마음도 몸도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도록 시름에 빠졌을 그때, 우리가 몸서리치도록 뼈 속까지 추운 외로움에 몸을 떨었을 그때, 인생의 들에서 아무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낀 나머지 나는 그저 홀로라고 느꼈던 바로 그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때 그분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냥 우리가 몰랐습니다.  내가 몰랐을 뿐입니다.  그는 거기에 계셨고, 지금도 여기에 계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저 높고 높은 곳에만 계시는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신앙여정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와 전혀 관계하지 않는 멀리 계시는 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걸어가는 하란 길, 우리의 엠마오 길에 여전히 함께 하십니다.  그의 이름은 지금도 변함없이 여호와 삼마, 거기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여기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주님, 몰라서 원망했습니다.  주님, 몰라서 불평했습니다.  주님, 몰라서 제가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감사하겠습니다.  이제는 감사를 드리오니 우리의 감사를 받아주시옵소서."
그래서 그의 이름은 지금도 변함없이 "여호와 삼마"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삼마", 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세 번째로, 그는 미래에도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에스겔서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본문 48장 35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예루살렘 성의 둘레가 9km, 약 6마일로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종전의 예루살렘 성의 둘레보다는 넓혀진 느낌입니다.  그러나 본분에서의 에스겔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이 회복되고 넓혀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성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의 영광은 단순히 구조적인 어떤 회복이 아니라 이 성에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영광스럽고 충만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임재가 제한 없이 드러나는 것이야말로 이 성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겔이 보았던 회복된 예루살렘의 환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도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준비하신 새 예루살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연결점이 있다면 그것은 요한계시록 21장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여기에서는 요한이 환상을 봅니다.  1절에서 요한이 본 환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마치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새 예루살렘 성은 단장을 하고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천국입니다.  영원한 나라, 영원한 천국의 본질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3절이 제일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성경에서 새 예루살렘, 영원한 천국을 묘사할 때 제일 많이 표현되는 단어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과거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천국을 사모하면서 자주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화려하고 무궁한 곳 저 좋은 천당 
천하 사람 다 못 가도 우리는 가서
우리 주님 천만성도 같이 앉아서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의 본질이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에 계십니다.  그 백성들과 더불어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함께 있는 바로 그 곳이 천국의 본질이요, 천국의 영광입니다.

이어지는 그 다음의 구절을 보면, 천국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맞이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겨주십니다.  "너희가 세상 살 동안 힘들었지?  내가 알아."  힘들고 아팠던 우리의 눈물들을 주님께서 친히 씻어주시면서 다시는 사망이 없고, 다시는 애곡이 없고, 다시는 이별이 없고, 다시는 고통이 없고, 다시는 상처가 없는 그곳에서 그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런 천국을 주님께서 예비하시고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신다면 비록 이 땅의 세상살이가 좀 험하고, 좀 힘들어도 저와 여러분이 여전히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2012년을 시작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의 이 시점에서 주 앞에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송년주일에 주 앞에서 감사를 드려야 할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커다란 이유는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천국의 소망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 삼마이신 하나님, 그분은 저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후 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13살 먹은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라는 소년이 수혈하다가 잘못되어 AIDS에 걸린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 책임이 아닙니다.  수혈을 하다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이런 난치의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명랑하고 밝게 삽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그는 유명한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명 인사들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하여 부동산 부자 도날드 트럼프, 가수 마이클 잭슨 등이 찾아와서 이 소년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5년이 지난 어느 날, 18세가 되었을 때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이 소년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알고 이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이제 아빠는 더 이상 너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구나.  아빠가 너에게 더 이상 줄 선물도 없고."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을 때 이 라이언이라는 소년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 대답이 세상을 놀라게 했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빠, 무슨 소리를 하세요. 아빠와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를 교회에 데리고 가 주셨고, 저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고, 저는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영접했잖아요.  그리고 저는 영생의 선물을 받았구요.  저 이제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잖아요.  거기에서 아빠와 엄마를 만날거구요.  아빠, 어떻게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을 저에게 주실 수 있나요?"

그날 저녁 라이언의 온 가족은 주님께 눈물어린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감사의 파티를 열었다고 합니다.  라이언의 감사, 라이언 가족의 감사가 오늘 송년주일에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의 감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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