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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롬 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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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롬 9:10-13)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로마서 9장 10∼13절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들의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꿈틀거리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겠다”고 말씀합니다. 아직 무슨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의 인간됨을 미리 보시고 그렇게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에서와 야곱의 다른 가치관

오늘날 영어권에는 ‘에서 신드롬’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것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어느 날 형 에서가 사냥을 하고 오는데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를 도와 부엌에서 일하면서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에서가 와서 팥죽을 달라고 하자 늘 장자가 못된 것에 한이 서려 있던 야곱이 “형,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면 팥죽 한 그릇 줄께”라고 제안했습니다. 겨우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까짓 것 명분 가지고 뭐하느냐? 옛다! 장자 명분 너에게 주었다. 맹세한다. 팥죽 한 그릇 줘”라고 말하여 팥죽 한그릇을 받아먹고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그는 장자의 명분을 잃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죽기 전에 장자에게 특별히 축복할 때도 에서가 축복을 받아야 할 터인데 사냥하러 나간 틈에 야곱이 들어가서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다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꿈’과 ‘희망’을 팔아먹은 대표적인 인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위해 미래를 무시하는 근시안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증세를 ‘에서 신드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꿈과 비전을 포기한 인생은 황무지와 같습니다. 지금의 현실에만 집착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저버린 사람은 그 삶 자체가 황무지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찬란한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꿈을 얻으면 그 꿈이 현재는 외롭고 괴로울 지라도 장차 위대한 축복으로 변화됩니다.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죄의 용서와 거룩함, 질병의 치료와 아브라함의 축복, 그리고 영생복락도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 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안에 꿈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앉으나 서나 예수 안에서 우리가 새사람이 된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부푼 꿈을 품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빼앗으니까 형은 동생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 리브가가 알고 야곱을 친정집으로 빼돌렸습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하는 일을 늘 도와주는 사랑스러운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사냥을 해서 그 고기를 아버지께 대접하므로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기 오라버니에게 야곱을 부탁했고 야곱이 하란으로 가다가 밤에 해가 지니까 들판에서 돌로 베개하고 잠을 자는데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13절로 16절에 “또 본즉 야훼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야훼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야훼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하나님을 존경하고 신본주의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꿈에 나타나서 야곱에게 격려해 주었던 것입니다. 말라기 1장 2절로 3절에 보면 “야훼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야훼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고 기록하였고, 히브리서 12장 16절로 17절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팥죽 한 그릇을 가지고서 그 귀한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것은 망령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주 짓밟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본주의요 하나님을 무시해 버린 행동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세상의 순간적인 이득을 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대단히 잘못된 행동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스스로를 점검하고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에서는 악인의 꾀를 쫓아서 자기 생각으로 살고, 야곱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산 것입니다. 야곱도 처음부터 신실한 신앙인은 아니고 육신적인 것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며 복을 받으려고 결정한 것은 야곱의 신앙태도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처음부터 신실한 신앙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면서 변화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야곱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는 못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보려고 애를 쓰는 그러한 신앙은 아직 자라지 못한 육신에 속한 신앙입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잘 섬겨야 복받는 다는 것을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야곱의 그 마음을 하나님은 어여삐 보신 것입니다. 온전한 변화는 나중에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 믿었으나 자기 힘으로 살려는 야곱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둔다고 야곱은 자기가 꾀를 내어서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외삼촌 집에 도망을 갔습니다. 외삼촌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레아와 라헬이었습니다. 야곱은 굉장히 예쁘고 복스러운 동생 라헬을 사랑해서 그녀를 얻기 위해 7년동안 머슴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외삼촌 라반이 그를 속여서 라헬 대신 언니 레아가 야곱의 처소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에 화가 나서 따지는 야곱에게 삼촌 라반은 “이곳의 관습은 언니를 먼저 시집보내지 동생을 먼저 보내지 않는다. 또 7년 동안 일해라. 그러면 라헬도 너에게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라헬을 위해 또 7년을 일해 14년 동안이나 일을 했습니다. 자기가 형을 속였으니 결국 자신도 삼촌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결국 자기 꾀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레아의 여종과 라헬의 여종까지 아내로 받아들인 야곱은 이제 무려 아내가 네 사람이나 되었습니다. 그녀들에게서 12명의 아들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거의 14년간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자식들에게 먹여 주고 입혀주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 이제 고향산천으로 돌아가야 되겠는데 빈손 들고 돌아가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또다시 꾀를 내어 외삼촌과 거래를 했습니다. 야곱은 고향에 있을 때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늘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 하늘에 별들을 헤아려보고 별들을 가슴에 품고 믿음이 그 별들처럼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것은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니 영원하리라”했으니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야곱은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 외삼촌에게 또 꾀를 부렸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제 월급을 따로 정할 것이 아니라 저는 이제 순수한 색깔의 짐승들만 칠테니 그것들이 얼룩덜룩한 새끼를 낳으면 그것들을 제 월급으로 주십시오”라고 제안했습니다. 외삼촌이 생각하니 상식적으로 순수한 색깔의 짐승들이 얼룩덜룩한 새끼를 많이 낳을 가망성은 아주 적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순수한 색깔의 짐승만 야곱이 치게 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이 떠나고 난 후에 짐승들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실 때 군데군데를 벗겨져 얼룩덜룩해진 나뭇가지를 자주 보게 했습니다. 야곱은 그때마다 눈을 감고 짐승들이 새끼를 가지면 다 얼룩덜룩해질 것을 소망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꿈을 꾸고 환상을 그려보고 믿으며 입술로 늘 말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바라봄으로 마음속에 심어야 합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축복받고 성공하고 승리하고 건강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것을 바라보면 그것이 우리 삶속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마음이 늘 낙심하고 탄식하고 실패하고 패배한 것을 바라보면 그것이 또 삶속에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가 잘 되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축복받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건강한 것을 바라보십시오. 좋은 것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마음속에 깊이 느끼면서 사십시오. 그렇게 바라보고 느끼고 입술로 감사하고 찬양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기도해도 아무런 좋은 결과가 없는 것을 탄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축복해 주기로 결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게 하시고 야곱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얼룩덜룩한 짐승들을 얼마나 많이 낳았던 지 나중에는 한 떼, 두 떼, 세 떼, 엄청나게 많은 짐승떼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외삼촌 라반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아이구 내 팔자야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하고 한탄을 해 보았지만 이미 한 약속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야곱은 자기의 몫인 얼룩덜룩한 새끼들을 다 거두어가지고서 형 에서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 거기에서 사기꾼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큰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3. 형 에서와 야곱의 만남

고향에 있던 형 에서는 마음에 아주 큰 분노를 품고 동생 야곱이 돌아오면 죽이려고 작정했습니다. 야곱은 이제 형 에서와 생사를 건 만남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자신이 거느리고 온 짐승들과 자식들과 아내들을 미리 보내겠다고 형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형 에서는 당장에 눈을 치켜뜨고 사병 400명을 동원시켜서 말을 타고 동생에게로 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속이 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태까지 살았지만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먼저 거느린 짐승들과 가족들을 다 얍복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건너지 않고 이쪽 편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형이 정말 죽일 각오를 하고 자신의 처자식들을 칼로 쳐 죽이면 자기는 달아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의 꾀입니다. 그가 여태까지 하나님을 믿어도 신실한 믿음이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자기만 살고 처자들은 형의 칼날 앞에 내놓는 것은 정말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렇게 야곱이 쪼그리고 앉아서 형이 어떻게 하는지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키가 큼직한 장정 한사람 나타나더니 야곱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서 그 사람하고 씨름이 붙었는데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야곱도 얼마나 고집이 센지 밤새도록 뒹굴어도 항복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침이 되어 해가 뜨려 하니 이 사람이 “내가 떠나야 되겠다. 이제 나를 놓아주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나를 축복해 주면 내가 놓아 주겠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놓아 줄 수 없다”고 말하며 계속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에게 “네 이름이 뭐냐?”고 물었고, 야곱이 대답하자 그 사람은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주의 사자가 손을 들어 야곱의 환도뼈를 내리치자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환도뼈가 어그러지고 난 다음에 그는 야곱 즉 사기꾼이 아닌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이스라엘로 변화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과 씨름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아와 고집의 환도뼈를 어그러지게 해서 우리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져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깨어지지 않고 믿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만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깨어지고 환도뼈가 어그러져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게 되면 진실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오로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런 마음에 변화가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400명의 군대를 거느린 형 에서는 마음에 분이 가득차 단 칼에 동생의 목을 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동생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어 다리를 절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형이 가까이 와서 보니 기가 막힙니다. 그 모습에 형 에서는 미운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같이 계시니 에서의 원수 된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결국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냥 말에서 내려 저벅저벅 걸어와 동생의 목을 얼싸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동생 야곱도 울고 형제가 눈물로 하나가 되어 화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환도뼈가 위골되듯이 우리가 먼저 깨어져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야곱 먼저 스스로 변화되니 형이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도 가정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변화되면 내가 변화 되겠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이 먼저 변화되면 아내가 변화 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탄식을 하는데 아내가 변화되면 성령께서 아내를 통해서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변화되면 자식도 변화되고 우리가 변화되면 이웃이 변화되고 우리 민족이 변화되면 다른 나라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깨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씨름해서 지면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에서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어 주시고 원수와도 화해하게 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축복의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1장 8절로 10절은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기록합니다.

사기꾼 야곱이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까? 야곱은 엎치락뒤치락 했지만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초기 삶은 육신적인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얍복 강 나루터에서 환도뼈가 위골되어 어그러지는 체험을 하고 난 이후에는 신령한 신앙인으로 변화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 중에 고난이 오는 것이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속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육신적인 겉사람은 후패해지고 영적인 속사람은 강성해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우리는 더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육신적인 겉사람은 깨어지고 영적인 속사람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신령한 사람이 되어 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는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중심으로 서야 바로 살 수 있게 되고 하나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야곱이 하나님의 권위를 존경하고 신본주의로 살고 꿈을 꾸고 살고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인품을 보시고 그를 사랑했다고 말한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이 육신이 깨어지는 체험을 하고 그 이후에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꾀를 의지하지 않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야곱과 같이 하시므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게 만들어 주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인간의 꾀와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온전히 깨어져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손을 잡고 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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