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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다시 한 번 사표를 제출합니다 (출 6: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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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사표를 제출합니다 (출 6:28-30)

  전윤호 시인이 쓴 ‘사직서 쓰는 아침’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저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 채 잡혀 먹히기 싫은 심정으로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되는 시일 것입니다. 예전에 ‘매일 사표를 쓰는 남자’라는 말이 회자되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었습니다. 직장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몇 년 전 취업정보업체인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12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조사에 의하면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사표를 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응답이 33.7%로 가장 많았습니다. 직장인 3명 가운데 1명은 지금 직장을 다니고는 있지만,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잘리지 않고 정년까지 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자신의 능력이 무시당할 때 사표를 내고 싶어 하고, 세 번째는 자신이 한 일보다도 너무 적은 월급을 받는다는 생각에 사표를 내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상사의 끊임없는 참견과 잔소리, 끝이 보이지 않게 반복되는 야근,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업무 등으로 인해 사표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지요. 사표를 내고 싶어도 사표를 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월급 때문이고, 두 번째가 가족 때문입니다. 자신이 사표를 내면 수입이 없어져 가족들이 살기 힘들 것이기에 사표를 내지 못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무려 50%를 넘었습니다. 
  
비단 직장인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낍니다. 주부는 남편이나 자식들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이 고생한 것을 알아주지 않을 때에는 주부라는 일에 사표를 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사표를 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주인공 김혜자 씨가 당당하게 주부라는 직업에 사표를 내고 1년 동안 휴가를 떠났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 때 그 모습에 많은 주부들이 공감했고, 그래서 그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누구나가 그런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전윤호 시인이 ‘사직서 쓰는 아침’이라는 시에서 말한 것처럼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여기 그런 마음이 굴뚝같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그는 40살에 민족의 지도자가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 자리를 얻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살인자가 되고 맙니다. 애굽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세는 애굽에서 피신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고, 거기에서 40년 동안 처갓집의 양치기 일을 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그 40년은 모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모세는 애굽의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당대 최강대국인 애굽의 모든 문화를 몸에 익혔습니다. 최고의 학문과 언변을 배웠고, 무예도 배웠습니다. 그러던 그가 양치기로 있던 그 40년에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양을 칠 때에는 40년 동안 익혔던 학문이 아무 쓸데가 없었습니다. 사람이라고 거의 다니지 않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를 몰고 풀을 찾아 여기저기 다닐 때에는 수사학을 통해서 배웠던 그 유창한 말주변도 다 필요가 없습니다. 양떼들을 모아놓고 연설할 수도 없는 노릇인이라, 그는 말하는 재주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이제는 그저 평범한 양치기 노인으로 늙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평범한 양치기로 늙어가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애굽 땅에서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정이 6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자신의 능력에 벅찰 뿐만 아니라, 강대국 애굽의 왕인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켜라’ 그렇게 외친다 해도 바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정중하게 거절을 합니다. 자신은 능력이 안 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세는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는 놈입니다.’ 그게 첫 번째 거절 이유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시려 하자, 이번에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말한다 한들, 그들이 나에게 너를 보낸 분이 누구냐고 물을 텐데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그렇게 말하며,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말하면 된다.’ 그러시면서 기어이 모세를 보내시려 합니다. 모세는 세 번째로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말한들, 그들이 내 말을 믿어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울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또 한 번 거절합니다. 

그렇게 가지 않겠다고 우기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모세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던지자 뱀이 되었고, 모세의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보니 나병이 생겼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증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마지막으로 꺼낸 카드가 있었습니다.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도 잘 못하는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설득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겠습니까? 저는 못갑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보내십니다. 도저히 하나님을 설득할 수 없자 모세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 나는 아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화를 내시면서 결국 모세를 보내십니다.

모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은 이스라엘을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혹 40년 전이라면 모르겠습니다. 그 때는 애굽의 왕자였습니다. ‘애굽의 왕자’라고 하는 사회적 신분 하나만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고도 남을만한 자격이 됩니다. 거기에다가 그 때는 젊었습니다. 열정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때는 자신을 쓰시지 않더니만,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을 부르시니 무엇보다 모세는 겁이 났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강력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 일일이 다 대답을 해 주십니다.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입니다. ‘너는 가기만 해.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실거야!’ 그러면서 말입니다. 
  
결국 모세는 그 말씀을 의지하여 형 아론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불러모아 놓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전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해방시키실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나를 당신들에게로 보내셨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세의 그 말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며 고난 중에서 자기들을 해방시켜 주신다는 사실로 인해서 하나님께 머리를 숙여 경배를 드렸습니다. 

모세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바로 왕입니다. 모세는 아론을 대동하고 바로 왕을 찾아갑니다. 아마도 바로 왕을 만나러 갈 때 모세는 마음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40년 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 후에 숨어 지냈습니다. 이제는 아무 권력도 없고, 힘도 없는 노인입니다. 그런 자신을 강대국 왕인 바로가 만나나줄까 하는 걱정도 있었을 것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을 때 그들이 모세의 말을 믿어주고 따라준 것처럼 하나님이 도우시기에 바로 왕도 자신의 말을 믿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를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순간 모세의 모든 기대를 무참히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바로가 한 마디로 모세의 제안을 거절해버린 것입니다.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여호와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세와 아론을 내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욱 중한 노역을 명령하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국고성을 건축하는데 동원되어 벽돌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바로 왕을 만나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가하니까 쓸데없는 요구를 한다.’고 생각한 바로가 벽돌을 만드는데 필요한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짚을 구해다가 벽돌을 만들어야 하는데, 짚을 공급해 줄 때와 똑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일이 두 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짚도 구해야 하고, 이전과 똑같이 정해진 양의 벽돌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너무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바로 왕에게 가서 항의를 합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입니다. ‘짚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예전과 똑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라고 하느냐?’고 말입니다. 바로 왕으로부터 그 모든 일이 모세가 바로 왕을 찾아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달라’고 요구한 때문임을 알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에서 모세와 아론을 만나자 거세게 항의합니다. ‘너희 때문에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하게 생겼다’고 말입니다.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을 찾아가서 사표를 제출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다 했는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학대를 당하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저더러 백성들에게 가라 하셔서 백성들에게 갔고, 하나님께서 이제는 바로 왕에게 가라 하시기에 바로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었는데, 왜 하나님 말씀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나 이 일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첫 번째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여러분,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의 사표를 받아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사표를 반려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바로 왕에게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제는 바로가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믿고 모세가 다시금 이스라엘 자손에게 찾아가서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강한 역사를 통해서 너희를 해방시키실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래도 모세를 믿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세 때문에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고 생각하고는 모세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모세의 말을 따랐다가는 더 힘들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다시금 하나님을 찾아가서 두 번째로 사표를 제출합니다. 그것이 본문 바로 앞인 출애굽기 6:10-12절의 말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도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제 말을 듣지 않는데 바로 왕이 제 말을 들어주겠습니까?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지요? 저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찌 바로 왕을 설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저 이 짓 못해먹겠습니다.’ 모세는 단단히 마음이 상해서 하나님께 두 번째 사표를 제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표를 반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다시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바로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 사표 받아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여러분, 모세의 마음에 공감이 되십니까? 하기 싫다는데 하나님께서 억지로 자신에게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말을 믿고 따라줄 것 같더니만, 자기들에게 일이 힘들어지니까 이제는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의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바로 왕은 아예 말의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했는데도 일이 풀려갈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이 더 꼬이기만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과감하게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사표를 제출하고 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그 두 번째 사표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등을 떠밀면서 다시금 바로 왕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일을 맡기신 사람에게는 끝까지 그 일을 맡기십니다. 도중에 힘들어 사표를 제출해도 그것을 받아주지 않으십니다. 이 후에도 모세는 여러 번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 때마다 모세의 사표를 받아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40년 동안의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야 했고, 힘들지만 그들을 위해서 섬겨야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2012년도 마지막 주일을 맞았습니다. 내일이면 2012년도를 접어야 하고, 모레가 되면 새로운 해를 맞게 됩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시시다. 지난 1년의 삶이 우리에게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닙니다. 우리에게 힘든 일도 참 많았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에 겨워 그것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내 삶의 자리에서 훌쩍 떠나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사표를 제출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어 신앙인이라는 것에 사표를 내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는 것에 사표를 내고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의 것들을 즐기고 살고 싶은 욕망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라는 것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기고 하고, 신앙인이라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신앙인이라는 것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접어야 할 때도 있었고, 신앙인이라는 것 때문에 나를 위해서 시간을 마음껏 쓰지도 못했습니다. 그럴 때에는 종종 신앙인이라는 것에 사표를 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는데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 같아 기도자라는 것에 사표를 내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절박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느긋해 하시기도 했고, 나는 꼭 이루어주시라고 믿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루어주지 않으실 때도 있었습니다. 믿고 기도하면 다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어기시고 이루어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여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사표를 내고 싶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 사랑에 아무런 열매도 맺히지 않아 ‘사랑의 사도’라는 것에 사표를 내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베푼 사랑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면 나를 희생하고 사랑한 그 수고에 보람을 느낄 텐데, 나는 아무리 사랑을 베풀어도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어, 사랑을 베푼 내가 지쳐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내게 맡겨주신 사역에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한다고 했는데 칭찬을 듣기는커녕 오해하고 모함하는 소리가 들려 마음이 상할 때에는 정말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입니다. 나는 힘들게 헌신하고 수고하는데 어떤 사람은 빈둥빈둥 노는 것만 같아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느냐?’고 짜증도 나고, ‘나도 그만둬버릴까’ 하는 생각에 사표를 꺼내들 때도 있었습니다. 
  
주부는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주부라는 일에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직장인들은 직장 상사가 맘에 들지 않아서, 또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한 채 허무감에 사로잡혀 직장에 사표를 내보려 했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부모 사표내고 싶을 때도 있었고, 가장이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가장이라는 자리 사표내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삶에 사표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너무너무 삶이 힘들고, 앞날에 대한 희망마저 사라져버릴 때에는 내 인생에 사표를 내버릴까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인생에 사표를 내고 자살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처럼 세상 걱정 근심, 힘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사표 한 장 던져놓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큼 절박한 순간을 경험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목사라고 어찌 사표 쓰고 싶을 때가 없었겠습니까? 어떤 때에는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때로는 열심히 준비한 설교에 아무도 은혜를 받지 못한 것 같아서 설교자 사표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목사로서의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교인들이 힘들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할 때에는 ‘목사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에 사표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저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때로는 인간관계를 바르게 맺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에 사표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교회를 바르게 이끌지도, 지도하지도 못한 것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에 사표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미국의 릭 웨렌(Rick Warren) 목사님의 말이 생각나곤 합니다. 새들백교회라는 큰 교회를 담임하는 릭 웨렌 목사님은 월요일마다 사표를 낸다고 합니다. 교회에 사표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속으로 진진하게 자신의 사역을 반성해 본다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릭 웨렌 목사님보다 훨씬 부족한 저는 더 자주 사표를 내야 합니다. 더 많이 반성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이나 사역에 대해서 사표를 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의 사표를 하나님께서는 번번이 반려하셨습니다. 그랬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40년을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표가 반려되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사표를 받아들이셨다면 분명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가 그의 이름을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사표가 수리되었다면 광야에서 매일 아침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내리는 만나를 어찌 먹어볼 수 있었겠습니까? 모세의 사표가 수리되었다면 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뵈올 수도 없었을 것이고, 율법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멀리서나마 가나안 땅을 볼 수 있는 특권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사표를 극구 거절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표를 제출하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칠 때 즈음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그만 됐다. 사표를 내거라. 이제 네가 했던 그 일을 여호수아가 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는 사표를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꼭 들어가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에 보게 하옵소서.’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에게 화를 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명기 3:26) 대신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표를 내려 해도 하나님께서 수리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표를 내겠다는 어리석은 생각보다는,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대로 해도 일이 잘 풀려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데도 오해를 받기도 하고 힘에 겨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렇게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표를 낸 후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하늘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싫어해도 하나님께서 사표를 내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까지는 조금 힘들다고 하나님 앞에 사표를 내던지고 우리의 일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주어진 일에 충성하십시다. 사표를 던지고 싶을 만큼 일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지금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실 기적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수고에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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