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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내가 친히 가리라 (출 3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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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히 가리라 (출 33:12-16)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올해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올해에도 우리와 함께 하실 줄로 믿는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에는 만남이 중요하다. 우리의 인생에는 수많은 만남들이 있다. 부모와의 만남, 자식과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배우자와의 만남이 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누구를 만나서 누구와 함께 가는가가 참으로 중요하다. 나와 함께 걸어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나의 인생길이 평안하고 즐거울 수도 있고 고통과 갈등과 번민이 있고 불안하고 복잡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편 23:4에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즉 우리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인생길을 누구와 함께 가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가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들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내버려두시겠다고 했다. 즉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시겠다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가?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세가 하나님께 계명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일 동안 내려오지 않자 아론을 부추겨서 사람들에게서 금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낸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절하며 섬겼다.

왜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절하며 섬겼는가? 왜 그 금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섬겼는가? 그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다. 그들은 거기서 애굽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절하며 섬기는 것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그러다가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해 나왔다.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사실은 모세를 의지하고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가 없어진 것이다. 하루나 이틀도 아닌 사십일 동안이나 모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그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금송아지처럼 보이는 신을 섬기는 것을 보아온 그들로서는 자기들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없어지자 불안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그들이 본 것이라고는 그리고 아는 것이라고는 애굽사람들의 금송아지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사십일 동안이나 시내산에 붙들어 두셨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계명을 주시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는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테스트였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고 이제는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가를 시험하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이 오실 것인데 그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그는 영으로 오셔서 너희와 함께 그리고 너희 안에 있을 것이다.” 그들 앞에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게 계시던 예수님은 떠나가시고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과 함께 계셨던 것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은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보다 훨씬 더 차원 높은 믿음을 요구하신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러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고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모세를 불러내어 시내산에 사십일 간 두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듯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은 나를 떠나실지도 모른다.

또 하나 그들이 실패한 것은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세가 오랫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은 것은 그들의 인내하는 믿음의 시험이었다. 그들은 사십일 동안 버려져 있었다. 그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또는 어떤 지도자로부터도 어떤 지시나 명령이 없었다. 앞으로 될 일에 대한 안내도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광야에 두시고는 그들에게 물으신 것이다. “너희는 나를 끝까지 믿고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가?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구원의 때를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하는 믿음이 있는가?

때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오지 않고 버림받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때이다. 우리의 인내하는 믿음을 시험하시는 때이다. 이렇게 아무 소식이 없고 답답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새해에는 조금만 늦어져도 불안해하고 흔들리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고 안달하며 살아가지 말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느긋하게 평안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믿음을 지키는 삶과 믿음이 되자.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지도자도 보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도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절하는 죄를 범하자 하나님은 급히 모세를 내려보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다 멸해 버리겠다고 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들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다. 차라리 자기의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서 지울지언정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멸하시지도 않았고 또 모세의 기도대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약속한 대로 가나안땅으로 그들을 인도해서 그 땅에 들어가게 해주겠지만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는 않겠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이었다.

도대체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 않는데 가나안땅을 차지하면 무엇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는데 어떻게 그 땅 족속들을 몰아낼 것이며 어떻게 그 땅에 정착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모세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간구한다.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 않으면 나도 안 가겠습니다. 우리 모두 가나안땅에 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 없는 물질이나 건강이나 지식이나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초가 삼간에 살아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누구와 함께 가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가 주어도 하나님이 함께 가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도와준다고 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리고 외면하고 나와 같이 가지 않더라도 하나님만 나와 함께 가신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모세가 간절히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며 함께 가시기를 구하자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다. 14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안식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모든 가나안족속을 쫓아내어 주시고 그들이 그곳에서 마음 놓고 살게 해주시겠다는 분명하고 놀라운 약속이다.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 하나님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여기 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와 함께 가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함께 가셔서 우리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보다 앞서 가셔서 그들을 위해 싸우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신명기 1:30에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했다. 또 31:3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너로 그 땅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했고 8절에는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앞서 가셔서 우리 대신 싸우시고 우리에게 그 땅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가 세상 유혹에 빠져서 욕심에 이끌려서 내 생각을 따라 가느라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려고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자신들을 인도해 준 별을 버리고 헤롯 왕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헤롯 왕궁을 나섰을 때 그 별은 다시 나타났다. 아니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이 별을 버린 것이지 별이 그들을 떠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원하시며, 또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마태복음 1:23에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서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고 하셨고, 그 뜻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밝혀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이 말씀이야말로 새해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아니고 무엇인가? 가장 멋진 새해 선물이 되지 않겠는가? 

지난 한 해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셔서 무사히 한 해를 마감하고 오늘 새해를 맞았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새해를 출발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우리가 보기에 우리의 내일이 불안하고 불확실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평안한 삶을 살고 승리할 수 있다. 이 약속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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