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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하여지고 충만하며 (눅 2: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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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여지고 충만하며 (눅 2:39-40)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39)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40)
<누가복음 2장 39~40절>

할렐루야! 
날도 춥고 길도 미끄러운데 잘 오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걸으시고, 건강하다고 큰소리치지 말고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건강하게 예배의 자리에서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 
따뜻한 나라에 계신 분들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너무나 춥습니다. 
러시아 선교사에게 
‘한국이 너무 춥다고, 영하 10도 쯤 된다’고 했더니 
러시아에서는 영하 23도는 따뜻하게 느껴지고, 
이번에 한파가 몰아쳐서 영하 40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너무 추워서 사망한 사람이 124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내일 밤(31일) 11시부터 본당과 비전센타에서 동시에 
위성중계를 하면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인터넷 중계는 교회 가까운데 사는 이들이 
편히 이불 덮고 앉아서 예배드리라고 중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객지, 해외, 다른 나라에 있는 분들을 위해 중계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춥다고 집에 앉아 있는 이들, 다음부터 그러면 안됩니다.
교회에 갈 수 있을 때 가야 합니다. 올 수 있을 때 와야 합니다.
송구영신예배, 한 해를 보내고 맞는 것을 
교회에서, 예배의 자리에서 맞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온 가족이 송구영신예배에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에 보면 다른 때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송구영신예배만은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1년에 하루 교인이 있습니다.
첫 시간, 첫 마음, 첫 몸, 첫 제물, 첫 찬송, 
첫 음성, 첫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오늘 주보에 축복의 새해 헌금봉투를 넣어 드렸습니다.
2013년에 제일 먼저 쓰는 돈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해 정성껏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13년 첫 번째 수요일(2일)예배에, 
첫 금요심야기도회(4일), 첫 주일밤(6일)에 신년축복성회로 모입니다.
축복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합니다. 
“2013년 멋지게 다가온다. 2013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라고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국 ‘런던 정경대’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1994년 당시 만 16세였던 미국 청소년 1만 명을
29세 때까지 연구한 자료를 모아 분석해 보았습니다.
연구진은 16살 때‘나는 행복하다’, ‘내 인생은 희망적이다’
라는 항목에 낮은 점수를 매긴 학생일수록
평균 소득이 낮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반면 행복감이 가장 강했던 아이들은
나중에 29살이 되어서 살펴보니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꼈던 아이들보다 연봉 1만 달러,
우리 돈으로 천 만 원 이상을 더 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돈도 잘 버는 게 맞는 말입니다.
<2012년 11월 22일, 조선일보, B1면, 참조.>

그러므로 입으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경제학자들이 2013년 전망에 대해 
통계학적으로 안좋다느니, 밝지 않다느니 말합니다. 다 믿지 마세요.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 앞에서 계산하는 죄를 범치 말라고 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멋지게 다가올 2013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 동네 나사렛

예수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와 함께
율법을 따라(눅2:39)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안나’를 만났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그 후에 예수님의 가족은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눅 2:39)고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나사렛에 이르기까지
어떤 길로 … 어떻게 갔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어린 예수와 그 부모가 예루살렘을 떠나 
나사렛으로 돌아가는 동안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신을 떠났는지도 모릅니다. (마 2:13~18)

아니면 나사렛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의 통치가 두려워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마 2:19~23)
<목회와 신학 편집부, 『누가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 2007), p.134. 참조.>

이유가 무엇이든 … 지나온 길이 어떤 곳이든 …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렛에 도착했습니다.

나사렛은 구약 성경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동네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역사와 무관한 곳이었고
중요한 인물을 배출한 적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46절에 보면
나다나엘이란 사람이 나사렛을 가리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 (요 1:46)
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나사렛은 보잘 것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나사렛을 가리켜 
“본 동네”라고 표현했습니다. (눅 2:39)

나사렛은 특별할 것도 … 대단한 것도 없는 동네였지만
예수님과 그 가족의 집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디로 떠났든지 간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본>동네는 어디일까요?

2012년 … 우리들 나름대로 
- 주일을 지키며 예배드렸고
- 말씀을 읽고 듣고 보며 그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표현했습니다.
-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음식 앞에 기도하고, 
예수 향내 풍기며 살고자 힘썼습니다.
- 주님과 함께 행복한 동행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생활 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부터 2013년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겠습니까?
무슨 신비로운 나라로 갑니까? 아닙니다. 

앞으로 살아갈 다음 365일도 …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여전히 우리의 본 동네 … 
우리의 일상생활이 이어지는 가정과 일터입니다.
- 가정에서 가족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 …
- 일터에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 …
- 힘들지만 잠을 쫓아가며 공부하는 것 …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한 해를 보냈던 
우리가 계속해서 해야 할 변함없는 일입니다. 가야할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 그 일이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열정은 전에도 했던 것, 반복되는 것, 지금 하고 있는 것, 
나중에도 해야 하는 것을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잘 하는 것을 
종교적인 열정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는 사람들과 새해에도 잘 사시기 바랍니다. 
삶의 현장에서 반복되는 일이지만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상이 중요합니다.

몇 년 전 러시아의 부자들 사이에서는 
재미 삼아 거지나 소매치기 생활을 체험해 보는 일이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돈 많은 은행가나 사업가 등 신흥 재벌들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고 2500만원까지 내고 
일종의 ‘모험’을 즐긴다는 사실이 영국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거지 생활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전문 서비스회사에 660만 원 정도를 내면 됩니다. 

그러면 회사는 분장사를 통해 썩은 무 냄새가 나는 넝마와 
지저분해 보이는 피부 화장으로 완벽한 거지 모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거지가 된 사람들은 
기차역처럼 행인이 많은 곳에서 구걸 행위를 즐겼고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은 돈을 버는지 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점에서 누가 더 비싼 물건을 훔치는지 … 
또 교통경찰관으로 가장한 뒤 
누가 더 많은 뇌물을 챙기는지를 겨루기도 했습니다. 
<2003년 1월 13일, 동아일보 (인터넷판), 참조.>

그러고 싶어서, 장난삼아, 체험을 위해 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거지가 아니었습니다. 연기자였을 뿐입니다.
계속 그 일을 하며 살고 싶겠습니까?

누군가는 일상이 힘들고 고달파서 떠나고 싶어 합니다.
지루하고 밋밋해서 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일상은 외면하고 / 도망쳐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이유가 있는 곳입니다.

반복되는 생활을 이어가는 가정에서 … 일터에서 … 교회에서
하나님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사는 것,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지 못하고 사는 것,
어디에서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냈던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현재)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을 하기 전에
릭 오버라는 제독과 면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독은 젊은 장교 카터에게 
전술과 전략에서부터 군인의 자세, 태도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고
카터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대답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제독이 화제를 돌려서 
해군사관학교 시절에 어떻게 살았고 공부했는가를 물었습니다.
또한 웃으면서 성적은 어떠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성적에는 자신이 있었던 카터는 점수와 등수를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독은 대뜸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성적이 자네가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 
칭찬을 기대했던 카터는 
당황해서 우물쭈물 거리다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이때 제독은 카터를 무섭게 쏘아보면서 되물었습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카터는 더 이상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카터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은 내가 오늘 받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실지 모른다. 
그럼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날 카터는 인생의 좌우명을 얻었습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물으실 때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2012년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아니라면 왜 최선을 다하지 않으셨습니까?

강하여지고 충만하여

본 동네 나사렛에 머물기 시작한 예수님의 생활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 2:40)
나사렛, 그 별 볼일 없는 곳에서 예수님은 자라며 강해졌습니다.
지혜가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했습니다.
갈릴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자랑할 것 없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대로 성장하고 계셨습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손꼽힙니다.
어느 날 그를 방문한 기자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아인슈타인의 실험실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별로 보여줄 게 없다고 거절했지만
기자는 반복해서 아인슈타인에게 실험실 방문을 청했습니다.

아이슈타인은 주머니에 만년필을 꺼내고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 실험실이 여기에 있습니다.”
첨단 장비가 있는 복잡한 실험실을 상상했던 기자는
당황하면서 급히 물었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어느 것이 최첨단 과학 장비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구겨진 종이로 가득 찬 휴지통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첨단장비요? 바로 저기 있군요. 저 휴지통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일상생활 중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때마다 만년필로 메모를 하고 골똘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연구를 위해 따로 실험실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내겐 그것을 적고 계산할 수 있는 만년필과
필요 없어진 메모지를 버리는 휴지통 하나면 충분합니다. 
실제로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아인슈타인의 여러 업적들은
대부분 탁월한 아이디어일 뿐 실험실에서 실험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조차도 그의 생각을 실험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 년 이상 기다려야만 하는 것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윤선현, 『하루 15분 정리의 힘』
(서울: 위즈덤 하우스, 2012). pp.56~57. 참조.>

아인슈타인이 생활 속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도구를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아닙니다.
매일의 일상에서도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고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과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성장하고 변화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달라져야 하는데 자꾸 외향적인 것만 달라지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경에서 모범적인 교회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편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살후 1:3)
믿음에는 ‘자랄 수 있는 속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작년보다 올해 믿음이 커졌습니까?
만약 믿음이 자라지 않았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자기 집의 하인이 병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가, 형제가 병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부리고 있는 하인이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겠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오실 필요 없다고 그냥 말씀만 하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말을 듣고 
“내가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마 8:10)
영문 성경에 보면 
“엄청난 믿음, 위대한 믿음”(such great faith –NIV)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고 달라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믿음이 위대하지 못하고, 믿음이 대단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예수님 나도 물위를 걸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나워진 바람이 두려워 물에 빠졌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작은 믿음’(little faith)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마 14:31)
믿음이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신뢰하는 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그 부모와 함께했던 시간동안 
매일의 일상 속에서
육신이 자라고 / 지혜가 자라고 / 영혼이 성장했던 예수님처럼
우리들 또한 믿음이 자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를 향한 계획이 있음을 믿고
그 계획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멈추거나 정체하지 않는 … 성장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마을 나사렛에 있느냐 …
아니면 크고 견고한 예루살렘 성에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겨진 곳에서 꽃 피울 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며
강하여지고 / 충만해지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도전과 변화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 첫째 목표를 정하는 것
- 둘째 목표를 실행하는 것
- 셋째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은 목표를 정하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은 
실패의 교훈을 얻는 50%의 실패이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은 100%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성전에 올라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것을 믿는다면
세상의 문제에 … 염려에 … 괴로움에 … 도전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답으로 … 염려를 평안으로 …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작도 안하려는 것입니다.

장로님들께 내년에는 도전하고 변화하자고 하면서 …
지나가는 말로 내년에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복근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장로님들이 당연히 좋다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장로님 한 분이 매직으로 왕자를 그리자고 하시더군요.
해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헬스클럽에 가자고 할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인데 해볼 생각도 하지 않으시더군요.

2013년에 우리는 많은 일에 도전하고 또 큰 변화를 이루려고 합니다.
내일 밤 송구영신 예배에 오시면
여러분에게 ‘도전 결심서’라는 것을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보는 분들도 
도전리스트와 신년사를 다운받아 쓸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여러 가지 도전하실 수 있는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이 도전하고 변화할 내용을
기도하며 결심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습관을 바꾸는 것, 쉽지 않습니다.
하던 일에서 새로운 일로 전환하는 것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하지 않던 일에 매일 시간을 들이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감당하실 줄로 믿습니다.

금년에 우리 기둥교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열정으로 달려왔습니다. 
선교사, 어려운 교회, 어려운 기관을 도왔고 …
어려운 나라 520 여명의 어린이들을 후원했습니다. 
이 땅의 소망이 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어려움을 뛰어 넘기 위해 애썼고 …
하나님과 행복한 동행이라는 목표로 전진해 왔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움도 … , 잘못한 일도 많았습니다. 
부모님께,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쳤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많은 걱정과 부담을 끼쳤습니다. 

성도 하나 하나 보살피고 책임져야 하는 담임목사인 제가
연회의 감독직이라는 사명을 감당키 위해 분주히 뛰느라고
교회 일에, 여러분에게 소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독으로 당선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과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모자람을 이해해 주시고
덮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2년 행복한 동행의 추억을 발판으로 삼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멋진,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2013년을 
기대감으로 맞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처럼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롭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삶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잘 것 없는 곳으로 표현되었던 나사렛에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롭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사람의 삶의 현장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초라하고 작은 곳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도 주의 크신 은혜지만
이후의 삶이 더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평생 신앙생활 하며 장로로 선택받게 하시고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하여 원로장로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고 모범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 기둥교회 원로장로님들 
이 한해가 가는 마지막 주일에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우리 모두 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 아니라
은혜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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