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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사 4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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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사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사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새해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금년 한 해 세초부터 세말까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오는 은혜와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승리하는 한 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이러한 제목으로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좀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유다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70년의 포로 기간이 끝나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사43: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해내려고 하십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실 사람은 바사 왕 고레스를 가리킵니다. 바벨론은 바사에 의해서 멸망할 것입니다. 그 때 갈대아 사람들, 곧 바벨론 백성은 이전에 그들이 즐기던 배를 타고서 급하게 도망칠 것입니다. 

사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네 가지로 자신을 칭하고 계십니다. 첫째, “여호와”입니다. 둘째, “너희의 거룩한 이”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창조자”입니다. 넷째, “너희의 왕”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칭호 속에 사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다 들어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시기에, 이스라엘의 운명을 홀로 주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기에,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끝까지 보살피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만 믿으면, 걱정이나 불안에 떨 필요가 전연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한 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사43: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사43: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과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그 가운데 길을 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모조리 홍해에 빠져서 다 죽었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과거지향주의를 경계하십시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 우리의 기억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 영원토록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거지향주의를 경계하십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시103:2에서 다윗은 노래하기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의 뜻은 하나님이 그 동안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하심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우리는 잠시라도 이 사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뜻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거지향주의를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크고도 놀라운 일들을 계속해서 새롭게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크고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크고도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밤에는 불 기둥을 이스라엘에게 비추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또한 반석에서는 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와 마찬가지로 요단 강을 건널 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걷는 것처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견고한 여리고 성의 성벽이 무너져 내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 뒤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계속해서 크고도 놀라운 일들을 행하여 오셨습니다.  

삼상7:12 말씀처럼,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1:23 말씀과 같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또한 창22:14 말씀처럼,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출17:15 말씀과 같이,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십니다. 그러기에 승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있습니다. 

KTX를 타면, 좌석의 절반은 순방향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역방향으로 되어있습니다. 역방향으로 앉아서 지나가는 경치를 보는 것보다는 순방향으로 앉아서 다가오는 경치를 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순방향의 좌석이 좀더 비쌉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눅9:62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힘써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않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는 앞에 있는 푯대만을 바라보면서 힘껏 달렸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우리게 많은 은혜와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 정도로 끝난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한량없습니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자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저 큰 은혜 바다 향해. 자 곧 네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찬송가 302장 가사를 늘 음미하기를 바랍니다. 그저 얕은 물가에서 오가는 것으로 만족을 삼지 맙시다. 하나님의 넓고 큰 은혜의 바다로 마음껏 노 저어 들어갑시다. 그리해서 금년 한 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사42:9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새 일을 알리셨습니다. 그런 후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새 일을 행하시려 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게 그의 말씀대로 행하십니다.  

사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여기에 “보라, behold”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의를 집중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대로, 이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려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행하실 일은 곧 이스라엘의 목전에 확연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시며,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으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축복을 수도 없이 체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또다시 낙심에 빠지지는 않습니까?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두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둘째, 사막에 강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본시 광야는 길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바다를 가르시고, 그 가운데 길을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내지 못하시겠습니까?    

둘째,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십니다. 본시 사막은 물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막에 물을 내십니다. 바다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가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역으로 어찌 하나님이 사막에 강을 내지 못하시겠습니까? 

천지와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얼마든지 젖은 곳을 마르게 하십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얼마든지 마른 곳을 젖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언제라도 이와 같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제 곧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구원해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지도 말며, 생각하지도 말아야 할 만큼 전적으로 새로운 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구원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길이 없는 광야와 같고, 또한 물이 없는 사막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수가 되셔서,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셔서, 우리를 천국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답답한 가슴에 목이 타는 것처럼 여겨집니까? 언제나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앞으로도 사막에 강을 내실 하나님이십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실 새 일을 믿고, “아멘”이라고 기쁨으로 화답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을 곧바로 분명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사43: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내실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결과 나일 강의 물고기들이 죽었습니다. 또한 애굽의 가축들도 죽었습니다. 애굽의 장자들도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행하실 새 일은 그 때와는 다릅니다. 이제는 광야에 사는 들짐승들, 예컨대 승냥이와 타조도 하나님을 존경할 것입니다. 그것들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광야에 사는 들짐승들도 다 함께 그 물을 마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광야에 길을 내시며, 또한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새 일로 인하여, 우리 주변에 있는 불신자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 주여! 우리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겠습니다. 그들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게 하겠습니다. 그들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겠습니다. 그러하오니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실 때,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존경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도 우리의 복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그가 행하신 새 일을 체험한 우리의 찬송을 바라십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가 두드러집니다. 19절에서는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내가 광야에 길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20절에서는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21절에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애굽 군대가 그들을 바짝 추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급기야 그들 사이에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울부짖기만 하는 겁쟁이들, 애굽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말하는 비관론자들, 왜 자기들을 그 곳으로 이끌고 왔느냐고 모세를 향하여 삿대질하면서 불평하는 다혈질의 사람들, 등등 이스라엘 백성은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그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와 같이 외쳤습니다. 출14:13 말씀입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그렇습니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우리의 자리를 내드려야 합니다. 

떠들지 맙시다. 설치지도 맙시다. 우리는 하지도 못하고, 우리는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우리가 다하는 것처럼 큰 소리 치면, 하나님은 잠잠히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도록 자리를 내드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행하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광야에 길을, 우리를 위하여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러낼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를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행위입니다. 오직 우리는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만 합니다. 

TV 연속극을 보는 사람은 온통 그 곳에 정신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옆에서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바둑판만 들여다봅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는 그와 같은 정성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찬송을 건성으로 부릅니다. 설교 시간에는 딴 생각을 하든지, 아예 고개를 수그리고 좁니다. 예배가 조금만 길어져도, 연신 시계를 쳐다봅니다. 그러면서도 말은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서는 섭섭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기를 주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힘써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해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앞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힘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과거지향주의를 경계하십니다. 지나간 날들은 다 잊어버립시다. 그리고 새 마음으로 새 출발합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실 새 일을 소망하면서, 앞을 향해 힘차게 믿음으로 전진합시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 예배할 때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합시다. 

그리해서 날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 역사를 이루도록 합시다. 이제 민6:24~26에 있는 말씀을 읽음으로 결론을 삼겠습니다. 이 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이 금년 한 해 세초부터 세말까지 우리 모두에게 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민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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