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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 18: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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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 18:41-46)
 
 
성경에 보면 여리고라는 성이 있는데 그 곳에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태어나면서부터 시각장애자였습니다. 그는 가족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아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큰 길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여리고 성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웅성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렇게 소란스럽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여리고 성에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가 여리고 성에 들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가슴이 뛰며 흥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디매오가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걸어갔습니다. 그 사람 주위를 많은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이 바디매오가 앉아 있는 곳으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바디매오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향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를 높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둘러 싸고 조용히 하라고 윽박 질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는 ‘그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디매오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바디매오를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 였노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특별한 은혜를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없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를 때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지명은 그 사람의 출신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구레네 시몬’이라고 하면 구레네에서 태어난 시몬이라는 말입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은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말입니다. 

나사렛이라는 마을은 갈릴리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평가할 때 ‘나사렛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말했던 것처럼 볼품이 없고 무엇하나 기대할 만한 것이 없는 작은 마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 수’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아주 낮춰 부르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능력이나, 행하는 일들을 보면 대단하지만 결국은 천한 나사렛 출신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여리고 성의 사람들과 다르게 인식했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지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구원자가 되시는 메시야이시여’라는 말입니다. 여리고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를 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나아간 것입니다. 굉장한 차이입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인식한 여리고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께 간구하며 부르짖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지 않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어떤 기적과 능력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리고 성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르짖은 바디매오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고백이 없었다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는 간구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예수님을 향해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나를 이 질병으로부터 낫게 해 달라고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며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명령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서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를 주시지 않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 가운데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땅에 비를 주실 것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머리를 양 무릎 사이에 파묻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갈멜산 꼭대기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엘리야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들이 오늘 엘리야의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참된 기도의 영성과 자세를 배우고 우리 또한 기도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리고 성의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부르짖었듯이 엘리야는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41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큰 비 소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평안히 궁정으로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씀에 큰 은혜를 받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볕은 그대로입니다. 하늘에 구름 한 점없습니다. 하늘은 전혀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런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실 큰 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축복의 비 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두가 근심과 걱정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가운데 엘리야는 믿음의 귀로 큰 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들은 큰 비 소리를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시작으로 확신하며 갈멜산으로 올라가 기도합니다. 믿음에서 시작되는 기도입니다.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는 자신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는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관심과 시선이 엘리야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3년 6개월 동안 비를 그치게 했고 엘리야의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열어 비를 내리게 할 것입니다. 더욱이 본문 바로 직전에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제사장 850명과 영적인 대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역사를 통해 승리하고 그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합 왕은 엘리야의 능력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고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비가 오고 오지 않는 것, 자신을 통해서 나타난 놀라운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능력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는 인내과 기다림의 기도였습니다. 엘리야는 일곱 번을 기도했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일곱 번 기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이뤄질 때까지 간구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확신이 없다면 일곱 번까지 기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전혀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몇 차례 기도하다 지쳐서 기도를 멈출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곱 번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들었던 큰 비 소리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없다면 드릴 수 없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인내의 기도입니다. 

언젠가 믿음은 기다림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가 120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이 13년을 기다렸고, 다윗이 거의 20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기다렸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큰 비 소리를 들었던 엘리야가 그 큰 비 소리를 들려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큰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자포자기 속에서의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신하며 기다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믿음이 바디매오와 엘이야와 같은 믿음이 되기 바랍니다. 고백할 수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고백되는 믿음이 되기 바랍니다. 들을 수 없는 가운데 듣고, 기대할 수 없는 가운데 기대하고 무릎을 꿇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동일한 은혜로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선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비유로 들으시며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 위에 역사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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