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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오직 주님과 함께 (시 18:1-2, 요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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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주님과 함께 (시 18:1-2, 요 14:6-7)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새해 첫 주일 아침입니다. 시작이 참 중요합니다. 예부터 첫 발자국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첫 단추를 잘 끼우라고 했습니다. 금년 우리교회 신앙 목표를 Only Jesus 라고 정했습니다. 요 14장6절에 근거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만찬에 대한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유다와 베드로가 배반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지금 침울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다락방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해서 “다락방 강화”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자기소개 차원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소개하실 때 “에고 에이미” 어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즉 “나는 .... 이다”라는 표현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포도나무요 생명의 떡이니라.” 하나님도 같은 어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니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중대한 말씀을 하실 때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어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는 “진실로 진실로”라는 반복어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여기 “진실로”라는 말은 영어 성경을 보면 “truly”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헬라어 성경을 보면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그렇게 믿습니다.” “동의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는 이 아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선포이고 고백입니다. 그때 강력한 동기가 내 안에 주어지게 됩니다. 

어느 권사님 며느리가 임신이 안 되어 목사님에게 기도해 달라고 왔습니다. 목사님은 열심히 기도했지만 며느리는 아멘도 없고 반응도 없었습니다. 시어머니 혼자서 며느리 몫까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멘 아멘 하였습니다. 얼마 후 임신이 되었는데 누가 임신 되었는지 아십니까. 결혼한 어느 부부에게 아이가 없습니다. 목사님께 기도해 달라며 왔습니다. 마침 안식년 차 떠나면서 목사님은 “내 가서 임신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와 보니까 그동안 세쌍둥이를 낳았고 지금 또 임신 중입니다. 남편은 어디 갔느냐니까 이제는 제발 애 달라는 기도를 중지해 달라는 요청하려고 목사님께 가기 위해 미국에 갔다는 것입니다. 아멘은 순박하게 받아야 합니다. 아멘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는 내 마음의 고백이고 동의어 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때 우리의 대답은 아멘 아멘 입니다. 새해는 이 원리를 생각하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세 가지를 제시하십니다. 

하나는 “내가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화목제물로 죽으셨습니다(롬 5:10 고후 5:18). 인간은 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차단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제물 되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트인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대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길을 신약시대에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누구나 들어가도록 길이 트였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저마다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속임수의 길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망합니다. 

오늘은 속이는 길이 너무 많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진리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신학의 핵심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말씀”이란 뜻(요1:1)입니다.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세상 만물을 지으신 권위이고 근거입니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인간의 옷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고 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의 운명과 미래와 장래를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내 운명의 주관자입니다. 내 인생의 결정자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생명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시기(요10:10)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본체이시고 근원(요1:4)이십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죽이면 끝장일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여 무덤에 묻고 안심했습니다. 그랬다면 이 세상은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곧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나는 죽여도 살아나는 부활의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생명은 밞아도 가두어도 불태워도 살아나는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들이 이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 생명은 예수 안에서 가지고 있는 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요10:28) 생명입니다. 이 생명의 주체이신 예수께 가기만 하면 누구든지 자녀가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짐을 받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핵심이고 요절입니다. 이제 새해에는 다음의 4가지를 염두에 두고 살았으면 합니다. 

주님 사랑 입자 

새해에는 이 주님의 사랑을 입읍시다. 사랑을 입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다 좋아합니다. 사랑을 입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선생님의 사랑을 입으면 학교생활이 재미가 있습니다. 어려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갑니다. 애완동물들도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언제나 자신 있게 안깁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애완견은 주위를 살피며 눈치를 봅니다.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성도의 가장 큰 은혜는 주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일입니다. 이 삶이 은혜의 삶입니다. 사랑받고 살아가는 삶이 가장 좋은 삶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분들의 공통점은 이런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유아시(1-3세)에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성공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합니다. 소년원에 간 아이들을 보니까 100% 이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흉악범들의 생애를 조사해 보니까 7-80%가 어려서 버림받은 경험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은혜를 입은 생활입니다. 새해에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힘입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동업의 삶 

이 주님과 동업의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함께 살아가려면 동행의 법칙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 주님이 가지고 오시는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의 주님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준비해서 주시려고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봉헌의 삶으로 주님께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께 봉헌할 수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생활이고 또 하나는 십일조생활입니다. 

이 두 가지는 오늘 현대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입니다. 예배생활은 시간을 드리는 일입니다. 시간을 드리되 진정으로 내용 있게 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마음도 없지만 시간이 없어서 예배생활을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시간과 뜻을 드려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어느 미군 부대 곁에 있는 교회에 주일날 예배 마칠 때쯤 미군병사 소대병력이 들어왔습니다. 왜 늦었느냐고 물으니 부대의 군목님이 고국에 출장 가셔서 예배는 우리끼리 드렸는데 축도를 받지 못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송가를 부를 때 축도 직전에 나가버립니다. 여러분 금년 한해를 예배생활에 목숨을 걸어보십시오. 살다보면 예배드리지 못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예배생활에 전념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정체성은 예배생활입니다. 이것을 빼 놓으면 내용이 빠지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십일조 생활입니다. 십일조 생활은 나를 시험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 의존도를 시험하는 항목이 십일조 생활입니다.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쁘고 분주한 오늘의 삶에서 예배생활과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도의 기준입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 이 두 가지를 지킬 수 있다면 나는 분명 주안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신앙인들이 이 두 가지에 뜻을 두고 살면 이 두 가지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는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18세난 한 청년이 성년의 날을 맞아서 인생의 교훈을 받자하고 동네 어른을 찾아갔습니다. “오늘로 성년을 맞이해서 인생을 개척해야 하는데 교훈을 주십시오” 그랬더니 그 어른이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비누와 양초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것부터 하라, 단 주님을 동업자로 모시라”고 했습니다. “동업이라니요” “물건을 만들어 팔거든 수입에서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라. 그러면 그분이 너의 앞길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 젊은이는 그 교훈을 고지식하게 받아 그대로 이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 젊은이가 성공합니다. 

그 젊은이가 윌리암 콜게이트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콜게이트 치약회사 창시자입니다. 새해에는 주님과 동업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몸을 던져 주님을 사랑하고 위탁하고 믿어 보십시오. 그리고 한 해 동안 주님은 나를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인도하시는가를 눈여겨보십시오. 

위탁의 삶 

주님은 길 되시고 진리 되시고 생명이 되십니다. 주님은 나의 삶의 주관자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세상에 보내신 분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분이십니다. 내일의 나의 발걸음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주님께 우리의 삶을 위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나의 전 삶을 위탁하고 살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믿음이 수반하고 든든한 삶의 기초가 다져지게 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금문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높이만도 227메타입니다. 건설하는 동안 32명이 강물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리 아래에 그물망을 설치해 놓았더니 떨어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그물망이 믿음입니다.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삶에 자신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높고 긴 다리 위에 난간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인생에 난간입니다. 그물망 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든든하게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나의 내부에서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100세 넘은 노인들이 살아가는 생활을 관찰하였더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극히 낙관적이었고 고민이 없이 늘 움직이고 잘 활동하더라는 것입니다. 음식은 가리지 않고 맛있게 섭취하였습니다. 그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이것은 좋고 이것은 안 좋다고 가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설탕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어떤 분들은 매일같이 설탕을 먹고 살아도 100세를 살아가는 분이 있습니다. 매일 콜라에 밥을 말아 먹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문제는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문제이고 생각이 문제입니다. 등소평은 “나는 하늘이 무너져도 걱정이 없습니다, 내가 키가 작기 때문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늘 수영하고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 생각이 중요합니다. 노인 요양원에서 죽어나가는 순서를 보면 연령순이 아니고 자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욕하고 원망하는 사람 순 이었다고 합니다. 삶에는 생각이 희망적이고 소망적이고 감사가 있으며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암이 가장 두려운 병입니다. 세계적인 암 전문의 김의식 박사께서 미국 텍사스주립대 앤더슨 암센타에서 31년간 봉직하였습니다. 그 분이 암이 잘 고쳐지는 순서 세 가지를 추천하였습니다. 하나는 잘 먹고 잘 자라는 것입니다. 시골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잘 먹고 잘 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암 병이 잘 고쳐진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의사를 믿고 약을 잘 복용하라고 했습니다. 완치한 분들은 의사를 신뢰하고 따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이 배운 사람들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분들은 약을 먹으면서도 이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심한데 먹어야 하는가 따지고 걱정하고 불안해서 잘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신앙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환자가 신앙을 가지게 되면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믿음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몸 안에서 면역 세포가 강화되어 치료율이 높다고 합니다. 그면서 그분이 말씀하기를 성가대원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면역세포 수가가 천배가 많아져서 암에 잘 걸리지 않고 걸렸어도 치료가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례도 이야기 했습니다. 중보기도자들에게 부탁해서 환자 200명씩 나누어서 한 부류에게는 열심히 중보기도를 하고 또 한 그룹에는 기도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6개월 1년간 기도해 준 결과 기도해 준 그룹에서 치료율이 월등히 높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코멘트 하기를 그것이 기도의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위탁하는 삶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최선의 삶 

최선 다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먼저 자기가 행복하고 보는 사람이 행복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인간은 훈련하고 노력하고 수고하면 한만큼 발전하고 진보하게 되어 있습니다. 90세 된 피아니스트가 매일 연습합니다. 지금도 연습하면 진도를 느낀다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심전력하라고 타일렀습니다. 원시시대는 매일 돌아다니고 뛰며 다녔습니다. 야생동물을 잘 잡아야 살 수 있어 뛰어다니다 보니까 시각과 청각과 후각이 발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만 보니까 멀리 볼 필요가 모두 도태되고 상실해 가는 것입니다. 닭은 옛날에는 날아다녔습니다. 그래야 먹이를 얻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날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땅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모두 비만과 당뇨병과 퇴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함께 더불어 수고하는 삶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 삶을 살아야 행복과 건강과 향상의 삶이 주어집니다. 인간의 삶은 돌봄의 파트너가 있어야 합니다. 동물은 생식 연령이 끝나면 수명도 끝납니다. 그런데 인간은 생식 연령이 끝나도 오래 살아갑니다. 그것은 낳은 자식을 양육하고 돌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봄의 삶이 있는 사람은 건강과 장수가 동반합니다. 그런데 돌봄의 삶이 없거나 약하면 건강도 수명도 얻지를 못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이 수고의 삶과 섬김과 돌봄의 삶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새해는 오직 예수로 살아가십시오. 예수께 나의 삶 나의 인생 나의 내일을 다 맡겨 보십시오. 주님과 동업하고 동행하며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은 금년 한해 나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시는가를 기다려 보십시오. 그리고 매 순간 아멘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주님은 더 강력한 뜻을 가지고 개입하실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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