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행 2:37-40)

첨부 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행 2:37-40)
  

1. 최고의 선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요?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건강도 좋은 선물입니다.
모자람 없이 쓸 수 있는 재물도 좋은 선물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육신이 쉴 수 있는 가정도 좋은 선물입니다.
땀을 흘린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직장도 좋은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요?
눅11:11-13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악한 세상 사람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준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께서 영적인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좋은 것을 주시겠지요!”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지적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라고!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최상의 것입니다.

성령님만 계시면 밥도 해결됩니다. 
생선도 해결됩니다.
육의 문제만 해결되는 줄 아십니까? 
영혼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보세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사도행전 2장에는 역사의 흐름을 전격적으로 뒤 바꿔 놓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나 잡아먹고,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역사의 변두리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던 어부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했습니다.
작은 계집종 앞에서도 부들부들 떨면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날 궁리나 하던 갈릴리 사람들은 더 이상 겁에 질린 초라한 인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숨죽이는 그런 가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방문을 걷어차고 한길로 달려 나왔습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자기의 생명을 순교의 제물로 기꺼이 바쳤습니다.
세계가 소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칼과 창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대 로마제국을 대항하여 그 칼과 창을 맨몸으로 받아가면서 사랑을 외쳤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계란으로 태산 같은 바위를 깨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일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이 놀라운 일을 일으켰습니까?
무엇이 이 갈릴리 사람들로 하여금 이토록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게 했습니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렇게도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임재였습니다. 
성령의 오심이었습니다.
이 날이 바로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고,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2. 행 2장에 나타난 성령임재의 증거들

사도행전 2장에는 성령임재의 증거들이 나와 있습니다.

① 방언이 터졌습니다.
② 술 취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③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그 증거들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방언이 터졌습니다.

4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7-8절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그런데 방언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1절 “..........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신 큰일은 무엇입니까?
36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정리하면,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이시며, 누구든지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신 큰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방언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방언하기를 기도하십시오.
방언은 성령임재의 외적인 증거입니다.

2) 술에 취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13절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성경은 성령 충만한 상태를 술 취하는 것과 비교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사도도 엡5:18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술 취하면 마음의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하여 사실은 잘 모릅니다.
아직 술에 취해보지 않았으니까요!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고 철모에다가 술을 받아 마신 적이 있습니다. 
목이 말라 벌컥벌컥 마셨는데 어떻게 머리가 아프던지........

그러나 술 취한 사람들을 옆에서 자세히 관찰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① 술에 취하면 소극적인 사람이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술 취한 사람은 겁이 없습니다. 무서움을 모릅니다. 허세를 부립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한 사람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대담해집니다.

베드로의 변화를 보십시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는 계집종 앞에서도 3년 동안 사랑을 받았던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이 되었을 때 어떻게 변했는지 아십니까?
행4:19, 20절에 보면, 그를 잡아 죽이려는 서슬이 시퍼런 산헤드린 의원을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성령의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대담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오직 하나님만 의식하면서 삶을 결단합니다.

② 또한 술에 취한 사람은 말이 많아집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반복합니다. 
평소에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이나 제 정신으로 못할 말들을 술기운에 모두 쏟아 놓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한 사람도 말이 많아집니다.
찬송하느라고 말이 많아집니다. 기도하느라고 말이 많아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기 속에 일어난 변화를 간증하느라고 말이 많아집니다.
만나는 친구마다 ‘예수 믿자’고 전도합니다.
“얘, 너는 또 예수 믿자는 얘기니 너는 그것 밖에는 할 말이 없니?”라고 핀잔을 줍니다.
그래도 그는 또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합니다.

③ 그리고 술에 취하면 세상 근심, 걱정 모두 잊어버리고 즐거워집니다.
술이 들어가면 노래를 부릅니다.
내일 아침 산수 갑산에 가더라도, 아이들에게 줄 등록금이 없어도 그저 기분이 좋아서 밤하늘의 달을 쳐다보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와 기쁨을 가집니다.
육의 일이 잘 되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간에,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님의 능력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확신이 갑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미덥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뿐, 기대할 뿐, 기다릴 뿐이지 염려하거나 안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롬8:28절을 ‘아멘’으로 믿으며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사람이 되십시오.
성령 충만을 갈망하십시오.

3)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37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일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됩니다.
이 일은 지식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논리적인 설득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 3,000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탄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①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실 때 일어나는 현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3천 명의 사람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이들은 불과 몇 주 전에 나사렛 예수께서 재판받으실 때 “이 사람을 없이 하소서, 못 박게 하소서,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라고 외치던 무리 중의 일부였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첫째 변화는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쳤던 사람들이 이제 예수님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을 다루기 시작하실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② 그 다음,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실 때에 일어나는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과의 관계를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의자에 앉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많이 알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직 성령께서만 우리 각자에게 예수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그들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성경은 ‘마음에 찔려’라는 말로 그런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이들은 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목사를 찾아와서 “제게도 희망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 패역무도한 깡패들보다 훨씬 더 나쁩니다. 
복음서에서 가장 희망 없는 사람들이 누군 줄 아십니까? 
세리와 죄인들이 아니라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자신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그들의 비극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제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은 영적인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는 눈 먼 바보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긍휼만 바라고, 주님께 울부짖는 일이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여러분은 언젠가 마지막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그 여행은 아무도 동행하지 않는 혼자만의 여행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잘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두렵습니까? 
이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외치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결론은 하나뿐이며, 매우 간단합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8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자신이 지금까지 바보짓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자신이 세상의 덧없는 영광에 매여 살아왔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회개란 아무것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고백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에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회개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아보시고 미소 지으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43: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어느 부모도 자식의 잘못을 반추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자식에 대하여 “그놈이, 그놈이.......”하고 자꾸 되 뇌이면 “이제 그 얘기 그만해요.”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그의 자녀의 잘못을 자꾸만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예루살렘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박해와 가족의 냉대와 추방과 그 밖의 많은 것을 의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죽음을 의미했고, 실제로 로마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습니다. 
오늘날 무슬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가까운 가족이 그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명예살인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영생을 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5: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