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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담과 맺으신 행위언약 (창 2: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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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맺으신 행위언약 (창 2:16-17)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서론 

사람에게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저는 어제 중학교 동창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인천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동창들을 거의 35년 만에 만나니까 다들 할아버지가 되어서 길에서 만나면 못 알아볼 것 같았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늙어갑니다. 그리고 늙으면 병이 듭니다. 고혈압, 당뇨병, 암과 같은 갖가지 병이 듭니다. 그나마 병이 나으면 감사한데 그렇지 않고 죽으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왜 인간은 언어가 다르고 종족이 달라도 다 병들고 죽는 것입니까?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인도 사람이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보리수 밑에서 도를 닦았는데 본인은 깨달았는지 몰라도 저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듣겠습니다. 생로병사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상대하실 때 아무렇게나 상대하지 않으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간의 관계를 맺으실 때도 ‘언약’(covenant)이라는 매개수단으로 관계를 맺으십니다. 언약은 성경에 300번 이상 사용되는 굉장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언약을 모르면 복음을 알았다고 할 수 없고, 언약을 모르는 사람이 설교해서는 안 된다고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처럼 언약은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천국에 갔는데 베드로가 입구에서 지키고 서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베드로가 “내가 너를 왜 천국에 들여보내 줘야 되느냐?” 이렇게 물어보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강남중앙침례교회 다녔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베드로가 강남중앙침례교회 다닌 사람 중에도 못 들어간 사람이 많다고 할 것입니다. “내가 너를 왜 천국에 들여보내 줘야 되느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정확히 대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해야지 엉뚱한 소리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을 왜 천국에 들어가게 해줘야 되느냐고 물어보면 성경에 그렇게 언약하지 않았냐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약속과 하나님의 언약은 차이점이 있는데 언약은 반드시 지켜야 되지만 사람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은 지키면 반드시 상을 받고 어기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됩니다.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짐승이 쪼개지듯 쪼개질 것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켜야 된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언약이 나오는데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언약이 있습니다. 첫째, 구속언약(covenant of redemption) 둘째, 행위언약(covenant of works) 셋째, 은혜언약(covenant of grace)입니다. 

구속언약은 창세전에 삼위일체 하나님 간에 맺으신 언약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죄악에 빠진 인류 가운데 구원하실 사람을 택하시고 성자 예수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택한 영혼들의 죗값을 세상에 육신을 입고 가서 갚아주겠느냐? 그리고 네가 나의 거룩한 법을 100% 지켜 내가 택한 사람들에게 의와 영생을 주겠느냐?” 

이렇게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십자가를 지고 택한 자들의 죗값을 갚으라는 것과 둘째, 하나님의 법을 100% 순종해서 영생을 확보하라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자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가서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을 하겠다고 언약을 맺으셨고,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이 택하고 성자 예수님이 속죄한 영혼을 거듭하게 해서 믿음을 갖도록 하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언약이 맺어진 것입니다. 이런 언약을 창세전에 하셨다는 내용이 성경 어디에 있느냐?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히 13:20).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영원한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구속언약을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한 언약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원이 창세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것도 영원한 언약 때문이고 성부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것도 영원한 언약 때문인 것입니다. 

행위언약은 하나님이 온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과 맺은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법을 주셨습니다. 이 법에 순종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고 불순종하면 사망을 대가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아담 홀로 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대표자로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행위언약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온 인류에게 사망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은혜언약은 성부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의 대표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수동적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능동적 순종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100% 지켜서 의와 영생을 얻게 되었고 성령이 택한 자들에게 믿음을 주어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법을 100% 지키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하신 것입니다.  

세 가지 언약을 이해하는 것은 복음의 깊이를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실 때 인간 개개인과 맺지 않으시고 대표자와 맺으셨습니다. 온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과 맺으신 언약이 행위언약이고 택한 자의 대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맺으신 언약이 은혜 언약인 것입니다. 오늘은 구속언약, 행위언약, 은혜언약 중에서 행위언약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행위언약의 명령(precept)은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외에 다른 것은 다 먹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결코 불합리한 명령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는 물도 풍부하고 각종 나무가 철마다 열매를 맺는데 아담과 하와에게 그것을 다 공짜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과일을 배부르게 먹는 것입니다. 사과, 배, 감, 딸기, 키위 다 공짜로 먹는데 딱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10,000가지 반찬이 있는데 9,999가지는 다 먹고 1가지만 먹지 말라고 하면 차라리 안 먹겠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1가지만 빼고 9,999가지를 먹겠습니까? 당연히 9,999가지를 먹지 않겠습니까? 선악과만 빼고 모든 실과를 다 먹게 하셨는데 그게 왜 불합리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요구하신 것은 아담과 하와가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이 만든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만든 법을 지켜야 되는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법을 지켜 순종하면 영생을 대가로 얻고 불순종하면 사망한다는 것이 하나님이 일류의 대표인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인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 3: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4).

 하나님의 형상은 첫째, 지식 둘째, 의 셋째,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지식과 의와 거룩함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아담의 양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법인 십계명을 기록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십계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는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함은 아담이 타락 이전에 하나님의 도덕법을 어긴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지만 그때 십계명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법을 문서화하고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이전에 하나님은 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누구에게 주셨느냐? 아담을 창조하실 때 아담의 양심 안에 하나님의 법을 주신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도 살인이 죄인 줄 알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방인들도 그 양심 안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어 있다고 로마서 2장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원시인들도 간음이 죄라는 것을 압니다. 로저 윌리엄스라는 영국 식민지시대 미국의 종교가가 있는데 그는 미국의 인디언들이 영국 사람들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글을 썼습니다. 미국의 인디언들은 지푸라기로 집을 지어놓고 문을 열어놓아도 남의 집을 건드리는 법이 없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철문을 걸어놔도 어떻게든 들어가서 도둑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아담 때부터 양심 속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안 나와도 하나님의 법을 아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인 십계명을 알고 지킬 능력도 있었고 십계명을 어긴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의지는 가변적이었습니다.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타락 이후에도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는 아담이 타락 이전에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담이 자유의지로 불순종한 다음부터 인간의 의지는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능력이 없다는 것이 개신교 교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것은 상당히 피상적이고 성경의 진리에 깊이에 들어가지 못한 형편없는 말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하나님이 아담을 시험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시험기간이 한 달인지 일 년인지 영원인지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와 있지 않고 하나님이 그런 말을 하시기도 전에 선악과를 따먹어서 시험기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험기간 동안 아담이 순종하고 시험을 통과했다면 아담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가 영생을 얻게 되었을 것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이 불순종하여 모든 인류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적인 머리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이 언약에서 아담은 실패한 것입니다. 아담이 대표자라는 사실에 관한 근거는 많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 개인에게 준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준 것을 아담이 대표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하셨는데 창세기 3장에서 하와에게도 책임을 물으십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한 언약에 하와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두 곳에서 아담이 온 인류의 대표자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의 대표자로서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 있던 온 인류를 말하고 뒤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부 하나님의 택한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담이 대표자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아담의 불순종은 곧 온 인류의 불순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요즘 신학자들은 원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담의 죄가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원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담이 불순종해서 실패할 때 우리도 같이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주신 어떤 법을 지켜서 행위로 영생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호 6:7).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종교를 보십시오. 불교든 유교든 이슬람이든 자기들의 말대로 행하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담이 행위언약에서 실패해버렸다는 것을 부정하는 거짓된 종교인 것입니다.  


Ⅱ. 행위언약의 약속(promise)은 무엇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7).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는 이면에 약속도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생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만약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선악과를 먹어버렸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아담 때부터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는 함께 실패했습니다. 혹시 아담이 아니라 내가 거기 있었으면 따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아담은 지식과 의와 거룩함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런 아담도 실패했는데 지식도 훼손되고 의도 없고 거룩함도 없는 우리가 에덴동산에서 성공할 리가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된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 5:3). 

아담의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이기는 하지만 심하게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영생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인 십계명을 100% 순종하는 상급으로 오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했으면 영생이 상급으로 왔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아담은 이미 생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상급으로 또 생명을 얻느냐며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아담이 지닌 생명을 가변적인 생명이었습니다. 불순종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생명이었습니다. 순종의 테스트를 거쳐야 영원히 죽지 않는 조건적인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100% 순종을 해야 무조건적인 영생을 상급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은 누구 안에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100% 지켰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일분일초도 어기지 아니하시고 한 계명도 어기지 아니하시므로 100% 다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보상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영생을 얻어도 잘못하면 잃어버리는 줄 아십니다. 우리는 아담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받은 영생은 잃어버릴 수 없는 영생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 확보한 완전한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진시황이 권력과 돈을 다 동원해도 얻지 못했던 영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Ⅲ. 행위언약을 위반한 형벌(penalty)은 무엇인가? 

행위언약을 위반한 형벌은 분명합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하와가 선악과를 먼저 먹고 아담에게 주매 그도 먹으므로 불순종했습니다.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좋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온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시험이 실패했습니다. 너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라는 것이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인데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 뱀을 신으로 둔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나님보다 자기 아내 하와를 앞에 두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에 두는 것은 모두 우상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여 온 인류에게 사망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영적 사망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둘째, 육신적 사망입니다. 육신적 사망은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영혼은 예수 믿은 사람은 천국에 가고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셋째, 영원한 사망입니다.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육신을 입고 사망의 부활을 해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영영히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사망입니다. 아담 때문에 온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결국 병이 들어 죽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져 영영히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왜 병이 들고 죽습니까? 한마디로 조상 잘못 만나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대표자로서 맺은 언약을 불순종해서 그런 것입니다. 


결론 

창세기 2~3장이 없다면 우리가 왜 병들고 죽는지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2~3장은 우리의 첫 조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우리가 이런 비극을 겪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망의 고통에 처한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이 영원한 구속언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두 가지를 행하셨습니다. 첫째, 죄 없는 삶을 사셔서 영생을 확보하셨고 둘째,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갚아주셨습니다. 능동적 순종으로 영생을 확보하시고 수동적 순종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가 바르게 살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죄를 용서해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인데 지금 몸을 갖고 계속 살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육신은 벗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죽지 않는 몸, 썩지 않는 몸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해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땅에 살면서 어려운 일이 있고 병이 들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너무 잘산다고 자랑하지도 마십시오.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영생과 죄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에게 성령이 역사하시는 은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8).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죄사함을 받으셨습니까? 영생을 얻으셨습니까?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구원받았으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거룩한 법을 구원받은 우리 마음에도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주신 거룩한 법을 마음에 새기고 거룩한 법에 따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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