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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거두지 말고 (레 1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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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거두지 말고 (레 19:9-10) 
 
 
❚까치밥

여러분, 혹시 ‘까치밥’을 아십니까? 가을이 되어 탐스럽게 열매 맺은 감나무에서 감을 딸 때 다 따지 않고 꼭대기에 몇 개를 남겨둡니다. 까치들이 먹으라고 남겨둔다 해서 ‘까치밥’이라고 부르는데 겨울이 되면 이 남겨진 몇 개의 감이 얼어서 그야말로 아이스 홍시가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집 마당에 감나무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까치밥을 남겨두는 것을 보고 “야, 사람들이 까치 생각을 다 하네”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디 까치뿐이겠습니까? 이 우리네 아름다운 풍습 덕에 먹이 구하기 어려운 겨울을 새들이 견디며 살았지요. 까치는 물론 온갖 새들과 비둘기도 감을 쪼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이 까치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사람이 옆에서 굶어 죽어 가는데 까치만 먹을 것을 남겨주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추수를 하면서도 이삭을 흘려 놓아 어려운 이웃들로 하여금 줍게 했고, 마을 공동으로 겨울 땔감을 마련해 노약자 가정에서도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배려해왔습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습니다. 우리가 하루 밥 세끼를 꼬박꼬박 먹기 시작한 것도 사실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난하고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빠듯했지만 그래도 인정이 살아있어서 남을 배려하고 그야말로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는 정신이 있었기에 세상은 그리 냉랭하지 않았습니다. 그 매섭게 추운 겨울도 따뜻한 정이 있기에 견딜 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이웃을 돌아보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이 인정이 참 그립습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사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런 정은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다 거두지 말고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풍습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우리 풍습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눔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계십니다. 일반적인 수준의 이웃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 알아본 것처럼 가난한 자와 약자, 소외된 작은 자들의 벗이 되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이웃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레위기 19장은 지난 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성결법전’이라 불리는 레위기 17~26장 안에 들어있는 말씀입니다. 왜 레위기 17~26장을 ‘성결법전’이라고 부르는지 지난 시간 말씀드렸지요? 레위기 19:1~2에 하나님이 “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거룩한 외모, 말투나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삶이 거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결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규정을 레위기 17~26장에 모아놓았는데 맨 먼저 ‘예배생활’에 대한 규정이 나오고, 그 다음으로는 실생활 즉, 가정생활, 결혼과 출산, 부부간의 성생활, 농업과 상업, 먹고 입고 잠자는 의식주 생활에 이르기까지 규정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나오는 레위기 19장을 보면 아주 구체적인 규정들이 나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안식일을 지키고 우상숭배 하지 마라” “제물을 잘 드려라, 즉 예배생활을 잘 지켜라” 그 다음이 바로 오늘 본문인 9~10절입니다. 어떤 규정이 나옵니까? 다시 한 번 읽습니다.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그렇습니다. 진정한 거룩은 다른 모습으로도 나타나야 하지만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나눔의 삶을 사는 데서 실천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입니까?

먼저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즉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할 때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밭을 다 추수하여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저 밭 구석은 다 거두지 말고 일부러 조금씩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또 “네 포도원의 열매를 딸 때” 즉 과수원에서 과실을 거두어들일 때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다 거두지 말고”와 “다 따지 말고”라는 말씀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도 “다 거두지 말고”입니다. 

우리의 까치밥 풍습처럼 나무에 열매도 조금 남겨두고 한 발 더 나아가 자연적으로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것입니다. 왜요?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이고, 거류민이란 우리 땅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을 뜻합니다. 가난한 사람이야 그렇다고 치고 외국인이 왜 불쌍한 사람입니까? 요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외국 여행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성경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주 특별한 이유 없이 남의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거류민, 외국인에 관한 가장 좋은 예가 하나 성경에 나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요즘 말로 치면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남의 나라로 이민을 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로서는 이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청천벽력,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왜요? 당시는 전형적인 씨족사회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온 가족이 한 동네 모여 살고, 그 가족과 가족이 모여 대가족을 이루고, 나아가 씨족을 이루는, 우리로 치면 어느 동네에 경주 김씨, 밀양 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게 바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 고향을 떠나면 그야말로 굶어죽는 겁니다. 누가 취직을 시켜주기나 합니까? 오히려 얼굴만 봐도 슬슬 피하는 기피대상이 되어 돌을 던집니다. 그러니 전쟁이나 기근(룻기에서 엘리멜렉 일가가 기근으로 모압에 이민간 것처럼)이나 범죄 등 특별한 사정이 아니고서는 절대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득이한 사정으로 남의 나라 가서 사는 사람을 성경은 거류민 혹은 나그네라고 부르고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3대 사람들, 고아 과부 나그네에 포함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명령한 것입니다. “네가 소유한 밭에서 곡식을 추수할 때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마라, 네가 소유한 포도원에서 포도를 거둘 때 다 따지 말고 조금 남겨두어라,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마라, 그것들은 다 가난한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남의 땅에 와서 사는 불쌍한 외국인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양식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사는데 서양 같은 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은 아니지만 동남아나 가난한 나라에서 생계 때문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거류민에 해당된다는 겁니다. 

얼마 전 TV를 보니 틀림없이 우리나라 사람인데 꼭 네팔이나 스리랑카 사람 같이 생긴 분이 나와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정말 차별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외국 사람처럼 생겼더라도 서양 사람처럼 생겼으면 이런 차별 받겠냐고 하소연 하는데 한국 사람인 저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이 단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먹고 살려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얼마나 차별하고 함부로 대합니까? 깊이 반성하고 회개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유대 랍비들은 밭모퉁이를 그 밭 전체 면적의 1/60로 규정했습니다. 또 포도 같은 과일을 막대기로 딸 때 그 막대기가 닿지 않는 곳의 열매까지도 모두 따기 위해 나뭇가지를 흔들고 살피는 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규정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 한 구석에 여유를 가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는 게 너무 바빠서, 또 나 하나 먹고 사는 게, 가족들 먹여 살리고 자식 키우는 게 너무 분주해서, 저 밭 모퉁이를 남겨두는 것처럼 내 마음 한 구석도 남을 위해 남겨두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힘들도 나도 바쁘고 나도 어렵지만 적어도 오늘 말씀처럼 내 마음 한 구석은 남을 위해 남겨두고,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쓸 줄 안다면 세상이 변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이것을 바로 진정한 ‘거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남겨두어야 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10절 마지막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그렇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고 그 사랑의 하나님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명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도 착한 일을 하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지만 그것은 단지 선한 일을 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거나 자신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이라 한다면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라고 하셔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이 진정한 거룩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다 바쁘고 힘들지만,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모퉁이는 좀 남겨 둡시다. 까치밥은 좀 남겨 둡시다. 이것이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실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남겨 둘 것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퉁이를 남겨둘 것인지 생각하도록 합시다. 제일 먼저 물질입니다. 돈 말입니다. 돈? 나도 없지요. 돈이라는 게 아무리 생겨도 모자란 것인데 나도 항상 모자라고 아쉽습니다. 나 하나 쓰기도 벅차고요. 하지만 그 물질, 그 돈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다 쓰지 말고” 아주 작은 모퉁이라도 남겨서 남을 위해 쓴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말입니다. 아주 조금과 전혀 아닌 것과는 액수 차이는 얼마 안 나지만 마음은 천지 차이입니다. 돌아보십시오. 과연 나는 나의 수입, 월급, 사업, 장사, 농사의 결과 중 아주 적은 것이라도 나눔과 사랑을 위해 쓰고 있는지 아니면 전혀 안 쓰고 밭 모퉁이까지 남김없이 싹 거두고 사는지 말입니다.

물질뿐 아니라 시간도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내 시간 나를 위해 쓰는 데도 모자라지만 아주 작은 모퉁이를 남겨 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귀합니다. 관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재능기부’라는 것이 유행입니다. 가진 돈은 없지만 시간을 쪼개서 내 작은 재능을 기부하는 일입니다. 요리나 손 기술, 음악이나 미술,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재능이라도 남을 위해 나누고 기부하니 세상이 따뜻해집니다. 이밖에도 얼마든지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고 기부할 수 있습니다. 다 거두지 않는 것입니다. 다 나만 위해 쓰지 않는 것입니다. 이 작은 모퉁이를 남을 위해 나누고 쓰면 어찌 하나님이 더 큰 복을 내려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퉁이만 주지 않으십니다. 한 귀퉁이만 남겨주지 않으시고 아예 복을 덩어리째로 주십니다.

올 연초, 아주 작은 나눔 실천으로 <밭 모퉁이> 운동을 소박하게 전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1월 4일(금) 올해 첫 월삭기도회 때 한 끼 이상 금식해서 모은 헌금이 있습니다. 해마다 이 헌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썼는데 올해는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우리 교회 안에, 또 주변에 의외로 한 끼 먹을 쌀도 부족한 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쌀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무슨 기증식 같은 것 거창하게 안 합니다. 조용히 소박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왕 할 것 조금 더 하자, 요즘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다지만 쌀 10kg들이가 2만원 조금 넘는데 이거 하나 못 하겠나? 나 먹는 쌀 중에 모퉁이만 조금 떼면 되는데”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일단 지난번 월삭 금식헌금을 종자로 해서 소박하게 앞으로 꼭 한 달(2월 3일 첫째주일까지)만 해보렵니다.

단 몇 분이 참여해도 좋습니다. 많이 하시면 더 좋습니다. 이게 무슨 과시용도 아니고 그냥 우리의 소박한 마음 모으는 거니까 말입니다. 교역자나 교회 사무실에 아예 사다가 주시던지 아니면 돈으로 2만원 주세요. 한 포대면 좋고 더 하시면 더 좋고요. 그래서 오늘부터 딱 2월 3일까지 한 달만 모아 우선 모인대로 설(구정)에 우리 교회 가정 중 어려운 분들과 나누고 그 다음에 좀 넉넉하면 교회 주변도 나누려 합니다. 저도 소박하게 참여할 테니 오늘 말씀 듣고 마음이 생긴 분들은 한 포대든 두 포대든 참여해 주세요. 그냥 거창하게 말고 모퉁이 남겨두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게 바로 작은 것을 나누는 ‘밭 모퉁이’ 운동입니다. 이뿐 아니라 앞으로 더 다양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 올해 우리도 어렵고 교회도 허리띠 바짝 졸라매야 하지만 작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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