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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에 보답 합시다 (시 1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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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보답 합시다 (시 116:12)

(시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노일 전쟁에 출전한 모리라는 일본 청년이 두 눈에 부상을 입고 입원했습니다. 그때 웨스트란 간호원이 그를 정성껏 간호해 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모리는 자신이 맹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자살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자살할 도구를 찾던 중 손에 꽃가지가 잡혀 뽑아들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에 '이 꽃가지는 비록 꺾이었지만 그 향기는 나와 같은 불구자에게도 향기를 풍겨 기쁨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간호원이 들어와 다시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예수를 믿고 맹아학교를 세우는 등 훌륭한 자선 사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시 116:5)하신 말씀대로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좋아 하시며, 하시는 일은 항상 옳으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시 116:6)하신 말씀대로 순진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시 116:7)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은 그 백성을 후하게 넘치게 주시고 따뜻하게 해 주십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 116:8) 하신 말씀대로 성도를 죽음에서 건 져 주시고, 눈물 흘릴 일을 미리 해결해 주시고,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 116:15)하신 말씀대로 성도가 죽을 때에는 천국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며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은혜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시인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이 보답할 길이 없음을 고백함과 동시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는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후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라 애태우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는 이와 같은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갖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고민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여 날마다 구원의 기쁨과 환희 속에서 활발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시인은 삶의 정확한 푯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을 모색하던 중에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자신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겠다고 다짐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시 116:3-4)다고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그때에 사망의 줄이 자신을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자신에게 미쳤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환난과 슬픔이 마치 죽음과도 같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그때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자신의 영혼을 건져 달라고 했는데 여호와께서 자신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시인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둔 절규요, 구원에의 호소였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올무에 걸려 부르짖는 짐승의 소리와도 같은 생명을 건 부르짖음입니다. 
  
고난이 임할 때 고난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함이 필연적인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이 임할 때 기도함으로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알게 되었고 언약을 성실히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도움을 구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고난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섭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의 기도는 편안할 때 하는 기도와는 격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개인적으로 나아가 공동체적인 위기에 직면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하고 여호와의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자비하심을 증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어리석은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의 체험은 기도의 능력을 깨닫게 함으로 더욱 기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또한 기도 응답은 기도의 능력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더 깊은 기도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기도의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영혼의 호흡인 기도 자체를 즐기게 되며 또한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갈급한 심령이 되게 합니다.
시인이 죽음과 같은 환난과 슬픔에 처했을 때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회상함은 신앙생활의 바른 자세로서 우리 모두가 본받을 자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0년 동안 사람의귀, 팔꿈치, 손 및 인체의 다른 부위들을 여러 각도에서 그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연습을 멈추고 마침내 그가 본 것을 화폭에 담았다합니다.
운동선수나 음악가들도 규칙적인 연습 없이는 절대로 위대해질 수 없다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믿기에, 오랫동안 규칙적이고 일상적인 기도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으나, 하나님과의 자유로운 교제라는 그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러움은 주로 훈련을 통해 생긴다고 합니다.

작가 낸시 마이어스는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아침 자기 책상으로 가는 것과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교회에 간다고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께서 어떤 생각을 주실 때 그 영감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내게 유익이 되건 말건 느낌에 상관없이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고독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많은 경우 기도는 연습과 같다합니다. 우선 기본 음표와 같은 주기도문을 복습하고, 익숙한 악보와 같은 시편을 연습한 후, 새로운 곡과 같은 기도들을 시도해 보면 대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고 깊은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고난이 임할 때 기도 함으로 고난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깨닫게 되었고 언약을 성실히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한 놀라운 사실을 이해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도함으로 깨닫고 감사하며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시 116:6)고 합니다.
여기서 순진한 자란 순수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린애와 같이 천진난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를 여러 말로 번역을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개역 성경) 미약한 자를 지켜주시는 야훼이시라. 가엾던 이 몸을 구해 주셨다.(공동번역(개정) 주님은 순박한 사람을 지켜 주신다. 내가 가련하게 되었을 때에,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표준새번역(개정)] 여호와는 순진한 자를 보호하시는 분이시므로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나를 구하셨다.

[현대인의성경] 여호와께서는 순박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분이셔서 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우리말성경] 여호와께서 단순한 사람을 지켜 주시니, 내가 낮아질 때에 나를 구원하셨다.[바른성경]라고 번역들을 합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는 순진하면 놀림꺼리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너무 순진하면 자기 몫도 챙길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순진하게 살면서 어려움을 당한 자들은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은헤를 주십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기를 원하는 시인처럼 우리도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 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시 116:16)라고 합니다.
인생은 삶의 여정 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당하게 됩니다.
구약에 나오는 의인 욥도 하나님께 이유도 알 수 없는 고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도 않았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인간적인 한계를 실토하기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라고 합니다.
고난은 개인이나 집단의 신앙을 향상시키는 과정이나 수단으로서 그 가치가 큽니다.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은 사단이나 인간이 가하는 허무한 고난과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서 도망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크나큰 환난을 겪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시려고 고난을 허락하시고 구하시는 은혜 주심을 알고 보답하기를 원함 같이 우리도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 116:8)라고 합니다.
인생은 눈물에서 태어나고 눈물로 보내지는 존재라 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올 때 어머니의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눈물흘리는 가운데 태어나 첫 음성을 울음으로 시작하고 죽을 때도 눈물로 보냄을 받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도들이 흘리는 눈물이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흘린 눈물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와 통회자복하며 흘린 눈물입니다.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려다가 흘리는 눈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입니다. 핍박과 조롱 속에서 인내 중에 흘리는 눈물입니다. 이런 눈물은 <주의 병에> 담길 수 있는 눈물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 56:8)라고 합니다. 이렇게 흘리는 눈물은 값진 눈물이기 때문에 주의 병에 담아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눈물 중에 있는 성도들을 그 눈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눈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심 믿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하는 시인처럼 우리도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기를 다짐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스올의 고통이라고까지 표현한 고통과 불행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하며 “구원의 잔을 들고 ”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구원의 복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복을 받을 수 있고 혹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복은 보편적인 복입니다. 이 구원의 복을 감사할 수 있으면 범사가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 시인과 같이 말입니다. 스올이 고통이 우리를 감싸도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감사를 다 합친 것보다 뛰어난 감사는 죄 사함과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죄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어떻게 할 수 없는 죄를 예수님이 사하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우리 됨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우리는 없습니다. 
  
다윗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고   고백합니다.(시32:1)
우리도 그 복을 받았습니다. 혹 다른 복을 못 받았다고 하여도 이 복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서원을 갚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는 공중집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며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가 함께 하는 내용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부르며 구원을 찬송하며 그 이름을 전파하고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사는 길을 택한 시인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의 삶은 감사의 자세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와 찬송은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도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되어 영원한 천국에 거할 때에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일로 영원 세계를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와 찬송을 기꺼이 받으시고 기뻐하신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감사하며 보답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은혜 감사하지 않고 보답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하지 못한 자입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물 안에 하나님께 그 자체를 온전히 바치는 사랑하는 마음의 제사, 감사와 보답의 표시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이 진리에 대한 명백한 해답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적인 번영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그들의 물질을 단순히 가져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들이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께서 살피시고 받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고 있습니다. 아벨의 겸손하고 진실되며 감사하고 신뢰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으나, 가인의 형식적인 예배로부터 하나님의 은총은 걷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은 인간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몸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고 합니다.
  
그 가치는 감사하고 보답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통하여 드려지는 영적 희생에 달려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삶을 성도가 하나님께 드릴 산 제사요 영적 예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고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영적 제사를 원하십니다. 감사로 드리는 영적 제사입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성결한 의무이기에 예배 드리는 각개 영혼이 온전한 찬양을 드릴 때만 그 극에 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할 일은 생명 있는 동안에 여호와 앞에 예배와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하나님께 대한 찬송은 입술의 열매로 드려질 뿐 아니라 삶 속에서 행함의 열매로 드려져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찬송과 행위의 열매로 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서원을 갚겠다는 고백과 다짐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에게 모범이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겠다고 다짐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시 50:14)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맹세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채무자처럼 빚을 갚는데 옹색하거나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그것을 약속했습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에서', '여호와의 전정에서' 그는 맹세를 이행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정직히 행할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이와 같이 모든 면에 있어서 정직하게 살기를 원하며 또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를 잊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그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며 하나님에 서원하였던 것을 갚는 것입니다.  

경건한 자들 앞에서 갚아야 합니다.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시 22:25)고 합니다.

지체치 아니하고 갚아야 합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전 5:4)고 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세례 받을 때 직분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겠다는 내용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서원을 지킴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을 모든 사람 앞에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원을 지키는 자를 기뻐하시며 영육간에 강건하고 형통한 복을 내리심 믿고 서원을 갚으며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보답하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서원을 갚으며 은혜에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육신적으로는 부모님께도 보답 하여야 합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딤전 5:4)

오늘날 우리 주위에 만연하고 있는 사상 중에서 가장 인간 사회를 메마르게 하는 것은 '개인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인해 인간 각 개인마다의 주장이 너무나 상이하고 모든 관계에 대해 폐쇄적이며 모든 권위에 대해서 부정적이며 그래서 심지어는 부모의 권위마저 위태롭게 되어 가족간의 따뜻한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교훈하는 바, 자식들은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홀로 된 어머니를 먼저 가정에서 공경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기에 교회는 이러한 일들의 실제적 실천을 위하여 자녀들을 권면함으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풍토가 조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교회가 정말로 책임져야 할 자들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는 것이며, 자식들로 하여금 사회의 질책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당연한 이치이기에 앞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도 '고르반'(막 7:10-13)을 예화로 말씀하시면서 부모에게 효를 행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녀로 하여금 부모에게 효를 행함으로 보답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의무임으로 바르게 교훈하고 권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삶의 행위들은 어느 것 하나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남은 평생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 때문에 또 누리게 될 구원의 복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세상에서 천국을 살다 하나님 앞에 가야 할 우리들이기에 시인처럼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서원을 갚으며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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