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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한 해의 끝에서 새로운 다짐 (빌 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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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에서 새로운 다짐 (빌 3:12-16)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독일 유대인들이 소련으로 도망가 영주권을 가지고 살았는데 히틀러는 도망간 유대인을 잡아 넘길 때마다 많은 돈을 주었답니다. 러시아 경찰들은 돈벌이가 생겨 유대인들만 보면 영주권 조사했는데 유대인 두 명이 지나가는 것을 본 경찰은 영주권 조사를 하려고 따라 갔답니다. 

한 명은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고, 한 유대인은 영주권이 없었습니다. 영주권이 없는 유대인이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네가 도망쳐라."라고 했답니다. 경찰은 도망가는 유대인이 영주권이 없구나 생각하고 쫓아가 잡았답니다. 
"너 영주권 없지?" 경찰이 물었습니다. 
"있어요." 
"어디 봐." 

그는 영주권을 보여 주었습니다. 경찰이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도망쳤어?"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의사가 나에게 약 먹고 뛰라고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따라가는 것을 보았으면 서야지?" 유대인이 말했답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경찰님에게도 약 먹고 뛰라고 그런 줄 알았어요." 

2012년 한 해 부지런히 달려왔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지고 감사하시는 성도님도 계시겠지만 만족하지 못한 결과 앞에 낙심하는 성도님도 계실 줄 압니다. 올 해로 끝이 아니라 내년도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집니다. 

2012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며 새로운 다짐을 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오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다짐을 하길 원할까요?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의 푯대를 분명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인간의 교훈서나 자기 개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할 때 감옥에 있었습니다. 노년의 때입니다.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금을 받고 편안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보장된 노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안정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 한 채도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때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적으로 볼 때는 파산되고, 부도나고, 실패한 때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연말이 되었는데 별로 되어진 것도 인간적 희망도 없는 때입니다. 이 때 바울은 어떤 고백을 합니까?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고 했습니다. 포기하거나 절망한 것이 아닙니다. 후회하거나 낙심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무엇을 향해 달려간다는 말입니까? “푯대”입니다. 목표물입니다. 

그 목표물이 무엇이겠습니까? 출세하는 것, 사업에 성공하는 것, 부자가 되는 것, 건강, 명예, 권력이겠습니까? 바로 뒤에 나옵니다. ‘부름의 상’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로 그 상의 성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인생을 완주하고 주어질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구원의 완성 상급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故) 함석헌 선생님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 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명정을 주시고 내 대신 살아 달라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내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살다가 보면 때로는 잘되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는 일도 있고, 때로는 우는 일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는 푯대가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분명한 목표가 있듯이 이륙하는 비행기가 착륙지점이 있듯이 우리 인생은 분명한 푯대가 있습니다. 늘 시선을 고정하는 푯대 말입니다. 바로 그 푯대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영광스런 상급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견딜 수 있고, 희망과 기쁨에 부풀어 있었던 것은 영원한 상급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목표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마지막 인생 결승점에서 잘했다 칭찬하실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나가야 합니다(14b).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히브리서 12장 26절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그 나라의 상급에 대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자꾸 곁길로 가고 힘이 없어지고 낙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상급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시는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니라"(히11:6). 

어제 저녁 눈이 왔습니다. 저녁에 눈을 치우고 아침 새벽 4시에 나가 보니 또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혼자 눈을 치우는데 여전도사님이 오셔서 같이 눈을 치웠습니다. 반절 치우고 반절은 놓아두었습니다. 와서 누군가 치우며 하나님의 상급받을 자가 있겠지 홀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눈이 많이 왔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최 집사님이 와서 혼자 남아 있는 반절의 눈을 다 치우고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늘에 상급이 있을 줄 믿습니다. 올 한 해 주님을 위해 수고한 모든 것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처럼 주일날 한 번도 놀러가지 못하고 교사로 헌신하고, 성가대로, 찬양 리더로, 식당 봉사로, 가난한 사람 구제로, 장학 사업으로, 최빈국 아이들 가르치는 일로, 어려운 나라에 교회를 건축해 주는 일로 헌신하고 수고한 모든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않은 줄 믿습니다. 

몇 개월 전에 몇 년 동안 적금을 들어 해외에 가족 교회를 건축하겠다고 헌금한 집사님 부부가 계십니다. 쓰지 않고 허비하지 않고 적금을 모아 해외에 교회를 짓겠다고 헌금한 그 마음을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늘의 상급이 크실 줄 믿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주님 안에서 목표를 새롭게 다짐하는 연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선한 행위에 대한 상급의 약속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1-42)”

물질의 충성에 대한 상급도 약속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물질과 가정을 희생하면 금세와 내세에 크게 갚아 주시겠다는 약속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고 했습니다.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영광의 면류관(벧전 5:4)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의 푯대를 분명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흔들리지 말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주님을 위해 사는데 필요 없는 과거를 잊어버리길 원하십니다.(13b)

바울은 지나온 과거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지나온 과거는 잘 된 일도 있고 잘못된 일도 있습니다. 잘 된 것에 집착하면 자랑이 되고 교만이 됩니다. 과거 잘못된 일에 집착하면 올무가 되고 거침돌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삶이란 시간 속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은 잘되었던 잘못되었던 다시는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단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간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자는 신앙의 경주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할 사람이 살아 온 뒤를 자꾸 본다면 어떻게 제대로 경주를 할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 후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 못 중 하나가 무엇이겠습니까? 시시 때때로 과거 애굽 생활에 집착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자유가 없는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 미화합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예수 안 믿었을 때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았을 때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롯의 아내를 보십시오. 우리 주님을 위해 사는데 필요 없는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데 방해되는 걸림돌은 다 잊어 버려야 합니다. 

지난 해 실패했던 것, 가슴 아팠던 것을 다 십자가에 묻어 버리고 잊어야 합니다. 잘못된 과거에 집착하면 좌절합니다. 과거의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데 가담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과거에 집착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우상 장사의 아들입니다. 자기 부인을 두 번이나 비겁하게 이방 왕에게 내어 준 자입니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형과 아버지와 삼촌을 속인 사기꾼입니다. 이삭을 어떻습니까? 그도 아버지를 본받아 아내를 외간 남자에게 내어 준 사람입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살인자입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간음한 사람입니다. 과거의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역사 속에는 밑바닥 인생에서 시련을 이기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셰익스피어가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비천한 신분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목축업과 도살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빵집 아들이었으며, 천체 망원경을 발명한 케플러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선술집에서 종업원 노릇을 하였습니다. 

'전기분해의 법칙'으로 유명한 패러데이는 대장간 집 아들이었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천재적인 물리학자이자 대수학자인 라그랑주의 아버지는 투기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에 성공했다면서 "만약 내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위대한 수학자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과거의 올무에 잡혔다면 역사 속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맛있는 과일은 빛만 있어도 안 되고 빛과 어둠이 적당히 조화되어야만 합니다. 몇 번 실패했다고 실패한 과거에 집착하여 의지를 꺾지 말아야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평생 모은 재산인 뉴져지주 웨스트오렌지에 있던 공장과 연구시설 (당시 평가 2백만불)이 전소하였습니다(1914/12/09). 24세의 아들 찰스군이 불탄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 67세의 아버지 에디슨 곁에 와서 위로의 말을 하자 에디슨은 부인까지 불러내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기존 건물과 묵은 시설이 아까와 뜯어 고치지 못하는 나의 작은 마음을 책망하시려고 새 것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는 패배를 내일의 성공을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하나님은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주님을 위해 사는데 필요 없는 과거를 잊어버리길 원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만족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3:12-13a).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대단한 일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곳에 교회를 세웠고, 수만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12a, 13a). 그는 계속 기록 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12b). 12, 1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미 얻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올 한해 무엇인가 얻은 것이 있습니까? 취업이 되었습니까? 원하는 학교에 진학을 하였습니까? 명예를 얻었습니까? 부를 얻었습니까? 건강을 얻었습니까? 열심히 전도하여 생명의 열매를 거두었습니까? 열심히 봉사했습니까? 이미 얻었다고 만족할 때 쇠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전거는 가지 않으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온전히 이루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 일독을 하였습니까? 조금 온유해졌습니까? 용서와 사랑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제자 훈련을 받았습니까? 이룬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성숙과 성취에 만족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물은 머물 때 썩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만 해야 하겠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년에 더욱 열정을 내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마지막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연말이 되면 이제 내년에는 그만해야 하겠다고 자꾸 회피하고 싶은 경향이 있습니다. 사명 붙들고 더욱 바울처럼 열정을 가지시길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목표가 분명한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고자하는 열망 그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목표만 세웠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이 사역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바울은 죽는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그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면 기도하여 기적을 일으켜 간수를 변화시켰고, 편지를 통하여 양육하였습니다. 마지막 사도행전을 마치면서도 셋방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열심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고후11:2)”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열정을 보십시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9)” 

힘을 다하여 복음 전하는 일, 말씀을 가르치는 일, 상담하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려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고 해도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제 저녁 한 집사님이 식사를 하자로 해서 등산을 하고 교회에서 청소를 하신 여러 집사님들과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부부가 바닷가에 가서 일출장면을 찍었다고 스마트폰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내가 입맛이 까다로워 좋아하는 음식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몇 시간씩 밤에 차를 타고 먹고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아침 일찍 온 일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대단한 열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업도 잘하시고 부부가 아주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봅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집사님이 열린 교회에서 목회하면 나보다 더 잘 하시겠다”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21번의 법칙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면 최소한 21번 연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군 조종사가 모의 훈련을 몇 번 하는 것이 실전에서 가장 효과적인가를 알기 위한 조사에서 나온 법칙입니다. 

늘 남보다 뒤떨어진다는 의식에 발목 잡힌 사람에게는 100번의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안 되어도 100번 반복하면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머리가 달라붙으면 전류를 흘려보내 감전시키는 실험에서 거머리는 떨어지고 붙고를 반복하다가 100번째에는 안 붙는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없는 거머리도 100번이면 학습이 되는 것입니다. 거머리도 100번에 통했다면, 사람이 100번 반복하면 통한다는 것입니다. 습관과 관련하여 "10년 법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취에 도달하려면 최소 10년 동안 집중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성공하는 사람들의 열정 포트폴리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넬슨 만델라, 지미 카터, 달라이라마를 위시한 세계적인 기업가, 정치가, 학자, 작가, 음악가, 크고 작은 기업의 CEO들, 퓰리처상이나 아카데미상 수상자들, 교사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 노벨상 수상자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한 전 세계 200여 명의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지속적인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년에 걸쳐 이들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행동과 사고방식의 패턴을 찾아냈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점을 도출해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열정'이었다고 합니다.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구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이루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정의 사람들입니다. 열정을 가지면 절망적 상황도 희망의 거름이 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고후4:8-9표준)

2012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새해를 맞이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의 푯대를 분명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주님을 위해 사는데 필요 없는 과거를 잊어버리길 원하십니다.(13b)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만족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3:12-1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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