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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고후 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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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고후 9:6-15)


유치원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선물을 주시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머뭇거리자 선생님께서 힌트를 주셨습니다. “끝이 ‘다’로 끝난다.” 한 아이가 금방 알아차리고서는 대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요.” 또 다른 아이가 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예요” 
이 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일어나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뭘 이런 걸 다...” 

아이들은 선물을 받고 나면 온통 선물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잊어버리고 선물 뜯어보는 일에만 정신을 쏟습니다. 
선물을 뜯어보고서 선물이 자기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것이면 기뻐하면서 그제 서야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선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만일 선물이 다른 아이들 것보다 못하면 왜 나는 이런 것 주느냐고 따지고 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선물 준 사람을 보지 않고 선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준분의 성의와 따뜻한 마음보다는 선물의 가치 여부로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귀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지금 힘들고 고달픈 내 처지와 형편만을 보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감사보다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주셨습니다. 저들이 430년이나 바로의 압제 밑에서 고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저들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만나를 먹게 해 주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이렇게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본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형편이 못된다고 불평입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자기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지금의 자기들의 고달픈 처지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위해 보내주셨습니다. 세밀하게 크고 놀라운 은혜로 여기까지 구원의 길을 걷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우리의 힘들고 딱한 처지만 바라봅니다. 어렵게 꼬인 상황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해 오신 감사를 더욱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께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특별한 당부를 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당시 큰 흉년이 들어서 예루살렘 교회가 너무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 비록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더니 저들이 최선을 다해서 분에 넘치게 정성을 보아서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케도니아 교회보다 형편이 나은 고린도 교회가 이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6절 말씀에 보는 대로 즐겨 참여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인색하게 굴지 말고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께서 어떻게 하면 헌금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지 그 비결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알자 

사도 바울께서 본문 8절에 너무도 소중한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지금 자신들의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헌금 약속을 해 놓고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주셔서 형편이 나아지면 약속한 헌금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고린도 교인들에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넘치는 은혜를 계속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이 점도 간증삼아 본문 조금 뒷부분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12장을 보면 바울이 남다른 크신 은혜 즉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한 바가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치 않는 질병에 걸려 큰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사역을 감당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으십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토록 큰 은혜를 받은 것을 이 병 때문에 다 잊어버리고 오히려 병 고쳐주시지 않은 것 때문에 하나님께 원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고후 12:9를 보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사도 바울에게 넘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께서 더 나아가 이런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질병도 내가 교만하지 않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로구나...” 그래서 차원 높은 감사를 주께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비록 여전히 필요한 것이 많고 채워야 할 것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 사모님께 간증처럼 들은 이야기입니다. 원래 목사님께서 목사가 될 생각이 없던 분이시고 자신도 사모가 될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못했답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던 어느 날 목사님께서 실명을 하시게 되었고, 삶의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답니다. 목사님은 너무 큰 충격에 빠졌고, 심지어 자살까지 기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모님의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심지어 이 사람과 헤어져서 나만이라도 새 삶을 시작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를 했답니다. 뜻밖의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네게는 과분한 사람이다. 앞으로 이 사람과 함께 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들의 그 고통 속에 하나님께서 큰일을 시작하셨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 힘든 처지와 형편만 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으로 더 큰 은혜로 역사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는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자 

본문 15절을 보면 사도 바울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감사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감사의 고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들도 이렇게 감사의 고백을 하며 살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뇔러 C 넬슨이라는 분이 [소망을 이루어주는 감사의 힘]이란 책을 썼습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지를 과학적으로 연구해 놓은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일단 우리 존재 저 깊은 곳에서 파동이 일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사를 고백하면 이것이 강력한 렌즈가 되어 우리 존재 안에 흩어져 있는 에너지를 통합시키고 집중력을 발휘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 감사의 힘은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답니다.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이 감사의 고백은 우선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친답니다. 스트레스와는 정 반대로 감사의 고백은 심장 박동을 느려지게 해서 혈압을 떨어뜨려주고 소화 작용을 촉진시킨답니다. 뇌에 영향을 미쳐서 여유롭게 인간관계를 이끌어 갈 수 있게 해 준답니다. 우리의 삶의 태도를 바꿔준답니다. 인생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준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소망을 이루는 데 까지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의 고백은 이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에너지를 모아줍니다. 그래서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에모토 마사루라는 분이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감사가 물에 끼친 영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그릇에 물을 각각 담아놓고 한 그릇에는 “고맙습니다.”라고 쓴 글을 붙여놓았고, 다른 그릇에는 “망할 놈”이라고 욕을 쓴 글을 붙여놓았습니다. 다음 날 이 물을 얼려서 물의 결정체를 전자 현미경으로 관찰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고맙습니다.”라는 문자를 붙인 물의 결정은 무척 아름다운데“망할 놈”이라는 문자를 붙인 물의 결정은 험악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러 다른 나라 말로 실험을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도 감사에 영향을 받아서 반응을 보이는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도 감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마 14장 13절 이하에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를 받아 드셨습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받아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감사기도 후에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기적을 낳는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움직인 것입니다. 
감사는 고백할 때 능력을 발휘합니다. 감사를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감사는 넘치는 하나님을 우리 삶 속에서 만나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해 줍니다.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자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께서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돕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자는 것입니다. 
요 14장을 보면 예수님의 귀한 가르침을 볼 수 있습니다. 요 14:1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제자들이 큰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 보답으로 무엇인가 해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발씻음의 은혜를 받은 너희가 서로의 발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넘치게 하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그 감사를 어떻게 갚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고, 감사의 예물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그 받은바 은혜를 주님의 이름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감사의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께서 고린도 교인들이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나서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 6절에서 15절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하나의 선순환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감사의 고백을 고린도 교인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께서 바라는 것은 이 감사의 고백을 듣고 고린도 교인들이 넘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헌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헌금을 전해 받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15절을 보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나서 자신이 다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장기기증 릴레이”가 무려 10명까지 이어진 일이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목회하고 있는 강태선 목사님께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장기기증 운동본부를 찾았습니다. 강목사님께서 신장을 기증하는 것을 계기로 “가족 교혼 장기이식 프로그램”이 가동되게 되었습니다. 

강목사님의 신장은 황규득씨가 받았는데 이분의 남편 박종만씨는 아내의 생명을 살려준 것에 감사해서 그 보답으로 자신의 신장을 조순임 씨에게 기증했는데 그 남편 김희규 씨가 또 감사의 보답으로 다음 사람에게 그 아내가 감사의 보답으로 다음 사람에게... 이렇게 해서 10명으로 이 릴레이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처음 신장 기증을 한 강목사님께서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이 아빠를 따라 자기도 어른이 되면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고백하던 한 목사님께서 이것을 이웃에게 나누게 되자 그 감사는 릴레이가 되어 10사람에게로 번져갔고, 이를 지켜보던 딸도 감동시켜서 장차 이 대열에 참여하기로 했고, 이 이야기를 듣는 수많은 사람들도 이 감사를 함께 느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천국의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감사를 나눌 때 그 감사가 릴레이로 나누어지면서 이 땅에 천국이 확산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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