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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여리고 성을 만날 때 (수 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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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성을 만날 때 (수 6:12-21)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를 새로운 지도자로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첫 번째 관문인 여리고성을 만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해야지만 가나안으로 전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리고 성 하면 생각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 새로 부임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의 이곳 저곳을 살피면서 돌아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성경공부하고 있는 한 교실에 들어 가셨습니다. 교실에 들어가서 보니 아이들의 성경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에게 질문했습니다.

“얘야,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는지 아니?” 이 아이는 당황한 기색을 하면서 목사님께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안 무너뜨렸어요, 정말이예요” 목사님도 당황해서 옆에 있는 아이에게 “그게 아니라,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는지 너는 아니?” 아이가 울먹이면서, “목사님, 왜 저를 의심하세요, 저도 아니에요.” 당황하는 목사님을 향해서 선생님이 오시더니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 아이를 잘 아는데 얘네들은 절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지 않을 얘들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때에 마주치게 된 것이 여리고 성입니다.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령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성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자료에 의하면, 여리고 성은 구릉지에 있었고, 돌로 된 기초 위에 거대한 토벽으로 쌓은 성입니다. 8 에이커 정도되는 넓이로, 돌로 된 기초의 높이는 4-5미터(12-15피트)였고 그 위로 폭 2미터, 높이 6-8미터의 진흙벽돌로 된 성벽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땅한 공격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스라엘로서 여리고 성을 점령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막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강하게 막고 서 있던 여리고 성은 올 한 해 동안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고 서 있는 강한 장애물들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여리고 성에 맞서 무너뜨리며 가나안 땅으로 전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에게 있을 장애물들에 대해서 어떻게 준비하며 맞서야 할지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축복의 땅은 전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 그들은 먼저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신 그 축복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반겨 맞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적들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비록 가나안의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곳에 그냥 들어가도록 여리고성을 옮기시거나 적들을 제거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군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의 40년의 시간들을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군사로 양육하셨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용된 단어가 군대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취급하시지 않으시고, 군사로 계수하셨습니다. 여리고 성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도 13절에 보면, 무장한 자요, 그리고 후군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군사로서 훈련을 받았고, 그 싸움에서 승리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깨닫고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은 그것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을 이길 때에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께서 그 여리고성과 같은 장애물들을 없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탄탄대로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그 장애물들을 이길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땅에서의 소망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품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평안과 복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 13절에 고백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앞에 하는 말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2절)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에 그에게 비천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배고프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궁핍함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모든 것이 그 앞에 있었지만 이러한 것들이 더 이상 그를 넘어뜨리는 장애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깨달았고, 그것은 바울에게 능력 주시는 자, 하나님 안에서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장애물이 없는 곳으로 이끄시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이 있고 내 자신이 부서지는 듯한 시험과 악한 세력과의 전쟁을 통하여서 승리케 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맛보기를 원하십니다. 여리고 성 뒤에 가나안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여러 시련과 고통 뒤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복을 준비해 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여리고 성부터 무너뜨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기 위한 방법은, 세상 어떠한 전쟁에서도 찾아볼 수도 없고,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전술입니다. 여리고 성을 앞에 둔 여호수아는 그 성을 정탐하도록 두 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사히 돌아왔지만 그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방법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적들은 이스라엘이 옴을 알고서 여리고 문을 닫아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 성을 너의 손에 붙였다고 하시면서, 여리고성을 점령할 이해하기 힘든 명령을 내리십니다. 매일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라고 합니다. 앞에는 무장한 군인이 가고, 그 뒤에 일곱 명의 제사장이 양각 나팔, 곧 양뿔로 만든 나팔을 불면서 가고, 그 뒤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고, 그 다음에 나머지 군사들이 따르도록 했습니다.

총 칠일 동안 여리고 성을 빙 돌라고 하셨는데, 처음 육일 동안은 한 바퀴씩 조용히 돌고, 마지막 칠일 째는 일곱바퀴를 돈 후 성을 향해서 나팔 소리와 함께 모든 백성들이 소리를 지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칠일 동안 성을 돌고, 그 앞에서 소리지르는 것이, 그 성을 점령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된다는 말입니까? 사람의 목소리와 나팔의 소리가 아무리 큰들 그 높고 두터운 성이 그 소리에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도저히 상관이 안 되는 일들을 하라고 하십니다.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성벽을 타고 올라갈 사다리를 만들거나 문을 부술 무기를 만드는 것이 상관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고 성을 돌고 고함을 지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상관이 없는 둘을 상관되게 하시는 분께서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들의 주위를 도는 일과 성을 점령하는 일은 하등의 관계가 없지만, 그것을 관계 있는 일로 연결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의 상관성을 보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과 순종을 보고자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이기는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과 같은 존재들을 만났을 때에 이상한 주문을 하십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주문하십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벽에 놓을 사다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양각 나팔을 불며 여리고성을 돌라고 하십니다. 어떻게든 성문을 열어 보려고 하는데 조용히 성을 돌다가 마지막 날에 소리를 지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일들을 주문하십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십니다. 그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십니다. 먼저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애써 보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외부에 있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결단하지 못하는 믿음의 장벽인 마음의 여리고성을 먼저 무너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문하시는 명령에 대해서 나의 상황과 환경에 연관성이 없다고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장벽을 무너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운행하심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상관있다고 생각해서 행하는 일들을 전혀 상관없는 일로 만드시기도 하시고, 내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상관있게 만들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하나님을 불신하는 내 마음의 여리고 성을 먼저 무너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여리고 성의 함락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을 도는 이스라엘의 행진의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셨습니다. 그 군대행진의 중심은 맨 앞과 뒤에선 군사들도 아니었고, 양각 나팔을 부는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언약궤가 그 행진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려 주고 싶으셨습니다. 바로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실 때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특별한 무기와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하지만, 견고한 성과 무기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여리고성은 무너져 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치는 시험은 우리의 영적인 삶을 무너드립니다. 비록 시험이 눈에 보이는 외부적인 물질과 건강, 사람과의 관계적인 면에서 올 수 있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합니다. 허약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일을 맞이할 때에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승리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계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과 고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이 소년이었을 때에 이스라엘의 사울왕의 군사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장군의 군사가 싸우게 되었습니다. 거인 골리앗의 외모에 전의를 상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의 조롱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이 때에 소년 다윗이 이것을 보고, 거인 골리앗과 싸우기 위에 물맷돌을 가지고 앞에 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사무엘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성도들의 승리의 비결은 눈에 보이는 칼과 창에 있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해결점을 찾아서 헤매는 삶속에서 믿음의 승리가 있지 않습니다. 모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여리고 성이라고 하는 믿음의 장애물 뒤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가나안의 축복은 여리고 성을 제거해 주심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여리고 성이라는 강한 대적들과의 전쟁을 통하여서 시작되었던 것을 봅니다.

우리에게 있는 시련과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의 시작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있는 여리고성을 먼저 무너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눈에 보이는 삶의 문제의 해결점을 좇아 가려고 하는 인간적인 마음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문제 해결과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문제가 해결이 되며, 준비하신 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올해 있을 여리고와 같은 장애물들을 만날 때에 도리어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시작입니다.

올 한해 서로 빌었던 하나님의 복이 풍성하게 누려지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배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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