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의로운 사람 (마 1:18-25)

첨부 1


의로운 사람 (마 1:18-25)

창세기가 천지창조를 말한다면,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통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말해줍니다. 창세기가 천지 창조의 순서를 나열한다면,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창세기(Genesis)가 우주의 기원에 관한 것이라면 마태복음은 구원자의 기원, 즉 족보(genealogy)로부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의 계보라.”(마1:1) 아브라함으로 시작한 계보는 요셉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6)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기 위해서 한 가정을 선택하셨습니다. 나사렛의 마리아, 베들레헴의 요셉이 아기 예수의 부모로 낙점되었습니다. 요셉은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은 베들레헴이며, 성장한 곳은 어머니 마리아의 고향  나사렛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마을입니다. 아마 전통적으로 빵 굽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었다고 추측이 됩니다. 베들레헴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야곱의 아내 라헬이 마지막 아들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어서 장사된 곳입니다. 

그리고 룻이 보아스를 만나서 만난 곳입니다. 룻의 아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이며 다윗의 조부입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태어난 곳입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이 더욱 주목 받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5:2)

  
요셉: 의로운 사람

베들레헴 출신으로 직업이 목수인 요셉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약혼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아직 육체적인 관계가 없었는데 임신을 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 사실 앞에서 얼마나 참담하고 배신감을 느끼겠습니까?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며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의 번민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는 수많은 밤을 잠도 못 자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조용히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19절은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당시의 법대로 한다면 처녀가 간음을 하였을 경우에 성읍 바깥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죽여야 마땅합니다(신22:23). 마리아는 범법자이며 사형죄에 해당합니다. 정의의 기본 원칙은 잘못한 사람이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정의의 핵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형평성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과는 다르게 높은 수준의 율법을 발전시킨 민족입니다. 

구약에는 613개의 법조항이 있으며,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에 그들은 의로운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God's righteousness)가 아니라 “자기의”(self-righteousness)로 가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보아도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마7:3)
  
반면에 요셉은 “자기의”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의롭기 위해서는 마리아가 공개적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녀는 마땅히 부끄러움을 당해야 합니다. 그녀는 사형감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기의”를 포기하고, 마리아를 살려주기로 했습니다. 마리아의 일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19절). 

마태복음은 의로운 사람이란 상대방의 잘못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감추어주는 사람임을 강조합니다. 요셉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의란 무엇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의는 자기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무조건 잘못을 덮어주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벌과 심판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긍휼하심보다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자비하심보다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자비의 법 위에 세워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심판과 용서를 계속해서 반복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시 103: 9) 
  
요셉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는 약혼자 마리아에게 화가 났지만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분노하기 이전에 상대방에 대한 긍휼과 배려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기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의에 빠져서 상대방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자리에 서고 싶어합니다. (지적질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의와는 무관합니다. 남의 실수를 꼬집고 잘못을 폭로하는 것이 의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1:19-20) 하나님의 의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더디 하는” 것입니다.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면 상대방을 실족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긍휼이 없는 자기 의에 빠진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야2:13) 누구도 자기 의로 구원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와의 관계를 가만히 끊으려고 결심한 때에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20절) 하나님은 마리아와 요셉을 예수의 부모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살아가는 요셉을 아버지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만한 사람입니다. 

  
요셉: 주의 아버지

당시에는 보통 남자가 15세 정도에 결혼했다고 합니다. 요셉은 아직 어린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묵하고,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그는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보호해줄 수 있는 남자다운 남자였습니다. 예수 탄생 후에 천사가 나타나 헤롯왕이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현몽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갓난아이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을 했습니다.(마2:13) 

그는 목숨을 걸고 아내와 자식을 지켜주는 남자였습니다. (상남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가정을 위해서 몸 바쳐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평생 목수 일을 하면서 가정을 돌보았습니다. 그의 손에는 굳은살이 박혀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주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여인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켜낸 남자입니다. 
  
요셉은 분명히 예수님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을 통해서 유대인 남자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요셉에게 율법과 기도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조상 다윗 왕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력을 키워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밑에서 목수 일도 배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요셉이 사용하던 연장들을 가지고 놀면서 목수 기술을 습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요셉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을 것입니다. 친밀한 아빠와 아들의 관계가 맺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을 “아바”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아버지를 가깝게 부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도 ”아바“ 라고 불렀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도 감히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지 못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예수님께 가깝고 친밀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에는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그는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예수님에게는 아버지 요셉의 이미지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 요셉은 두 팔 벌려 아들을 안아주는 그런 아버지였을 것입니다. 
  
요셉의 삶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교훈이었습니다. 특별히 아버지 요셉의 성품은 예수님의 성장에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성품은 예수님의 성품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셉처럼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성품과 성격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품이란 정직함, 성실함, 신뢰성, 의로움과 같은 일차적인(primary) 인간성을 말합니다. 성격이란 이차적인(secondary) 특성인데, 내향성, 외향성, 주도성과 같은 개성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일차적인 인간성, 즉 성품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성품, 즉 사랑과 정의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성품은 예수님의 성품 형성에 바탕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선택한 최고의 아버지였습니다. 성경에 요셉에 관한 기록은 얼마 없습니다.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장남인 예수님은 경제적인 책임을 일찍 맡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영향력은 충분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혈연관계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드렸습니다. 아들 예수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아버지의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 의로우신 메시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줌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34) 

하나님의 정의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단번에 우리를 위한 정의를 이루셨습니다.(벧전3:18) 값비싼 대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룬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고 숲 속에 숨었습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수치를 감추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3:2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수치를 덮어주기 위해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신 것을 상징합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수치를 덮어준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를 덮어 주기 위해서 자신이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자격 없지만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자기 의”에서 벗어날 때 시작됩니다. 자기가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없습니다. 자기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결국 그 기준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은 평화를 맛볼 수 없습니다.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기 때문에 분쟁하고, 싸우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요셉을 바라보십시오. 짧지만 영향력 있었던 그의 삶을 묵상하십시오. 그는 진정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입니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없습니까? 혹시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억울하고 분하신 일들이 많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것처럼 상대방을 향한 분노의 속도를 더디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다시 한 번 상대방의 상황과 여건을 바라보며 은혜를 베풀면 어떻겠습니까?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를 품고 살아간다면 주의 천사가 여러분을 방문하여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 하나님의 의로 살아간다면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