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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전히 찬송하리라 (시 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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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찬송하리라 (시 43:1-5)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아우슈비츠 (Auschwitz) 수용소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수용소 내에 천 명을 한꺼번에 질식사 시킬 수 있는 가스실이 있었습니다. 한 번에 독가스 5kg으로 1,000명을 죽였는데, 그런 독가스를 2년 동안 1만kg을 사용했다니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비참하게 죽어갔는지 짐작이 됩니다.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유대인들이 부르짖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습니까?” 연합군이 수용소를 탈환한 후 그곳을 조사하다가 벽에 쓰인 글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 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 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 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어 연합군은 그 아래 적혀있는 글을 보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God is here!”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들을 떨게 만들었던 것은 고문과 학살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자신들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회의와 갈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시체가 타는 냄새로 가득한 화장터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죽어갔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전히 찬송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본문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신을 하던 다윗 왕이 읊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배신과 분노로 몸부림치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도하려는 심경이 보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삶 가운데 낙심하며 불안해하는 상황이 생긴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송을 적극적으로 권면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극히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괴로워도 우리가 할 일은 여전히 찬송하는 일입니다. 여전히 찬송할 수 있음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 피터슨 (J. W. Peterson)의 찬송입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여전히 찬송해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이집트 콥트교회 인도자 자카리아 보트로스 (Zakaria Botros)는 이슬람권에서 가장 복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위성 방송을 운영하면서 한 손에는 성경과 코란을 들고 둘을 비교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모슬렘들이 이 방송을 보고 개종하고 있습니다. 매일 접속자만 60만 명에 이릅니다, 모슬렘들이 진정한 복음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입니다, 과격 이슬람 단체에서 그에게 공개적으로 현상금 1억 달러를 걸었습니다. 

그에게 “현상금이 걸렸다는데 두렵지 않습니까?” 하고 누군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매일 매 순간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하실 뿐입니다. 저는 매 순간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역에 가름부음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는 어렵고 힘들다 해도 여전히 찬송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다윗은 사울 왕의 핍박과 원수들을 피해 쫒기는 생활을 할 때 힘이 되신 하나님을 상기하였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에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할 것을 믿었습니다. 곤란에 처하여 부르짖을 때마다 건져 주신 하나님이셨기에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하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믿는다면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믿는 다면 두렵지 않습니다. 또한 앞을 막을 자가 없기에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모든 불안과 낙심이 물러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여전히 찬송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쁨이신 하나님을 알기에

에드먼드 히윗 (Eliza Edmunds Hewitt) 여사가 불량소년을 교화하던 중 소년이 던진 기왓장에 허리를 맞았습니다. 척추를 다친 그녀는 7개월 동안 병실에 누워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내가 이렇게 될 수 있는가” 라고 불평하며 가해 소년을 증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흑인 여자가 들어와 병실의 커튼을 걷었습니다. 밝은 햇살이 들어오자 청소를 하며 그녀가 찬송을 불렀습니다. 히윗 여사는 “청소부 주제에 무엇이 좋아 찬송하느냐” 라며 쏘아붙였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형편과 처지를 찬송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주셨는데 어찌 기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히윗 여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얼마나 원망하고 증오하며 살아왔던가?”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영감적인 시를 주셨습니다. 

바로 찬송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찬양은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도 기쁨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알고 찬송해야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보다 더 이상 기쁨의 대상이 없다고 찬송합니다. 하나님만이 기쁨의 근원이시며 이유 자체이십니다. 세상적인 기쁨은 속히 사라지나 하나님 이 주신 기쁨은 영원합니다. 고통을 당하던 다윗이 하나님 전에 나아가 맛본 기쁨은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고통 중에 여전히 수금으로 찬송할 이유 자체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다 해도 여전히 기뻐하며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우리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기쁨이 없다면 섬김이 계속적으로 불가능하며 영적 충만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워도 여전히 찬송하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도움이신 하나님을 보기에

1963년 20만 군중 앞에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이라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어 가수 조안 바에즈 (Joan Baez)가 ‘우리 승리하리라- We shall overcome’ 를 불렀습니다.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언젠가 승리하리라. 내 마음속 깊이, 나는 확실히 믿노라. 우리 언젠가 승리하리라.” 그렇지만 그 연설을 듣고 감격했던 사람들 가운데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조안 바에즈 노래 역시 감동을 주는 노래에 불과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흑인이 미국을 통치하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인 줄 알았으나 흑인 오바마 (Barack Obama)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습니까? 누가 그 꿈을 이루어지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의를 꺾으시고,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시며 도우셨습니다. 그러기에 도우신 하나님을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여기의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는 낙심과 불안 가운데 있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찬양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바라는 자를 도우십니다. 병든 자에게 건강을, 불행한 자에게 행복을, 짐이 무거운 자에게 가벼움으로 도우시며 찬양하게 하십니다. 

찬양사역자 밥 소르기(Bob Sorge) 목사의 찬양이 깊이가 있고 균형이 있는 느낌을 주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찬양집회 도중 성대를 다쳤고 이후에 목소리를 잃고 전혀 찬송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찬양을 전문적으로 하는 그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합니다. “저는 제 목소리가 이렇게 되기 전에는 우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밤마다 울었습니다. 울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누구입니까?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입니까?’ 제 평생에 그렇게 강렬하게 하나님을 추구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 속에서 수많은 꺾임을 경험했지만, 거기서 일어섰을 때 도리어 더 큰 축복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목소리를 잃은 이후에 찬송을 보다 넓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좁은 의미의 찬송이 아니라, 삶 전체로 드리는 찬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후 연약한 목소리였지만 그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지역에서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고난 중에 찬송하는 것이 실로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고난 중의 찬송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전히’ 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영혼을 깨우치며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힘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길을 인도해주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찬송할 상황이 아니더라도, 감사할 형편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찬송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적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하나님을 바라며 찬송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여전히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찬송하리라’ 의 결단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놀라운 기적을 맛보는 찬양대와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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