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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왕하 6: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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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왕하 6:14-17)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열왕기하 6장 14∼17절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우리를 둘러싸는 원수들은 존재합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경쟁자, 훼방하는 자, 원수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없으면 좋겠지만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항상 원수들과 그들이 주는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극복하고 이기며 살아야지 그렇지 않은 곳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들을 극복하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1. 환경을 바라보고 절망하지 마라 

오늘 본문말씀에 등장하는 엘리사의 종처럼 눈에 보이는 환경을 바라보고 절망하면 안됩니다. ‘인간은 천재로 태어나서 세상에서 살다가 죽을 때는 전부 둔재로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천재와 같은 존재들인데 세상에 살면서 자꾸 환경만 바라보고 좌절하고 낙심해서 천재가 전부 둔재가 되어서 세상을 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에서 어두운 면을 찾아보면 어느 곳에나 그러한 면은 있습니다. 우리의 그림자 뒤에도 어두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종처럼 적군을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탄식하지 말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마음의 두려움은 만병의 근원이며 정신적 감기와 같습니다. 마음의 두려움은 우리에게 파괴적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감기에 걸리면 부정적인 생각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불안과 좌절에 빠지게 되어 패배적인 말을 하며 감기처럼 기침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평안과 안심을 주려고 오시지만 마귀는 두려움과 불안을 먼저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귀의 일은 사람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아는 것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다가오고 두려움이 떠나면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인 것을 알게 되면 마음에서 두려움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쫓겨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면 두려움이 와서 점령합니다. 사랑이 믿음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믿습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가족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 상호간에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친구도 사랑해주는 친구는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해도 힘이 없으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고,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함과 동시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을 만합니다. 

잠언 29장 25절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워하면 누구든지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디안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기드온이 나팔을 부니 백성들이 3만 2000명이나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3만 2천명 수가 너무 많다. 이 중에 두려워하는 사람 집으로 다 돌려보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우리 가운데 마음에 적군이 두려운 사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 2만 2000명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고 남은 자는 만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자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돌려보내시는 것입니다. 성공학으로 유명한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정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는 힘이 있다”고 말하였고,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린다 새퍼딘은 그의 저서 『두려움이 나를 망친다』라는 책에서 “두려움은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심하게 하고, 늘 경계심을 품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자신이 없게 만들고, 매사에 비판적이게 하여 자신을 망치게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마치 정신적인 악성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현미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마비시키는 바이러스 같이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새퍼딘은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어린 다윗이 마음속에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니 하나님의 능력이 플러스된 다윗이 되어 골리앗이 아무리 커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골리앗은 다윗의 물맷돌 한방에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우리를 둘러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000년 전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우리의 가슴속에 와 계십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셔서 과거의 우리를 청산하시고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가지고 이미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2. 우리와 같이 계신 이를 보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우리 마음속에 모셔들이면 우리 주위에 용서와 의의 은혜가 둘러 진을 칩니다. 또한 성결과 성령 충만이 둘러 진치고, 치료와 건강이 둘러 진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이 둘러 진치고, 부활과 영생천국이 둘러 진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의 군대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지 아니한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하시면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어린아이의 가정교사와 같으며, 바람이 없는 것 같으나 언제나 존재하는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 속에 와서 조용하게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으로 성령이 오셔서 함께 계신 것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해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진치고 있으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도와주고 낙심되었을 때 용기를 주고 불안할 때 담대함을 주는 효과를 발생하는 영적인 영양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온몸에 두르고 무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의 교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신앙생활도 혼자하려고 하면 얼마 있지 않아 넘어지는 것입니다. 한사람이면 넘어지나 두 사람이면 견딜 수 있고, 두 사람이 쓰러져도 세 사람이면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같이 있겠노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이루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합치면 힘이 되고 흩어지면 힘이 없어집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기 때문에 교회와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배가 되어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기도할 때도 혼자하는 것보다 교회 와서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좋고 구역에 나가서 지역에 나가서 구역장과 지역장의 도움으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 굉장한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처럼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우리의 환경의 어려움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실상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이여 이 청년의 눈을 열어 보게 해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자 아람 군대를 보았을 때는 벌벌 떨었으나 눈이 열려 보게 되니 하나님의 군대들이 불마와 불병거가 둘러쳐진 것을 보고 담대한 마음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음속에 영혼의 눈을 떠서 실상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청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눈이 떠지지 않았을 때는 부정적인 환경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서 마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기 시작하면 큰 기쁨과 평안과 담대함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 일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 허물, 질병, 저주, 절망, 죽음을 가져다주는 마귀의 권세를 청산하고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셔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일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시간이 날 때마다 자꾸 맡기십시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마음속에 염려, 근심 되는 것을 아뢰고 또 아뢰며, 맡기고 또 맡기며,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하니라. 그 날에는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늘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는 플러스인생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눈을 열어 영적 실상을 보라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속에 날 위해 일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쳐다보고 기도하고 아뢰면 주님께서 홀로 역사하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모든 일에 주인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허락도 없이 우리가 자꾸 먼저 움직이면 우리를 질병의 감방에 가두든지 낭패의 감방에 가둬 주님 하시는 일에 간섭 못하게 만드십니다. 주님은 홀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답답하거든 주님께 나와서 엎드려서 기도하십시오. 

하루 종일 엎드려서 기도하고 또 하되 마음에 평안이 넘칠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모두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희망찬 기대와 꿈을 마음속에 가지면 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행복한 일이 일어난다. 결국은 일이 잘된다.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이러한 생각과 기대가 부풀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계시므로 나는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좋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마음의 향기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 주님이 우리 속에 와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고 기록합니다. 마음에 희망찬 기대와 꿈과 소원이 있으면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그 꿈과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믿는 것밖에 도리 없지 않습니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는다’는 믿음으로 첫째도 믿고 둘째도 믿고 셋째도 믿고 그저그저 믿으면 주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시며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고요.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이 주신 믿음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쓰는 사람은 믿음이 자라고 기적을 행하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다 믿음이 있으므로 오늘부터 그 믿음을 사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말씀이 있고 믿음이 있는 이상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아무리 다가와도 마음에 믿음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무엇보다 말씀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창조적인 입술의 선언을 계속해야 합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기록된 것처럼 말은 입에서 나오면 그때부터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였고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해야 할 일은 문제를 당했을 때 감사와 찬송을 해야 합니다. 

감사와 찬송의 고백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는 반복적으로 감사하십시오. 답답한 일을 당할 때도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제일 좋습니다. 미운 사람이 있을 때도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미움을 가라앉힙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로 17절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아무 힘이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감사이고, 마귀의 역사를 막는 것도 감사이며,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 기도가 나오게 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도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50편 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감사 찬송을 하니 감옥이 진동하여 손발을 묶고 있던 차꼬가 모두 풀어지고 옥문이 열리고 자살하려던 간수와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감사는 진동을 일으킵니다. 

악한 마음을 진동하고 마귀의 진을 진동하여 훼파하며 하나님의 보좌를 진동해서 감화와 감동이 일게 합니다. 또한 현실을 진동시켜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반복해서 감사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한 감사의 찬송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큰 영광이 나타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위기와 고난의 순간마다 온전히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보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고통의 바닷물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항상 우리의 주위에는 하나님의 십자가 군대가 둘러 진 쳐 있습니다. 용서와 성결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고, 치료와 아브라함의 축복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으며, 영생복락과 생명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내린 진리의 군대들을 생각하고 소원하고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우리에게 그러한 군대의 능력이 역사하여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하기도 전에 이미 승리하게 되고 고난의 파도를 걸어가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셔서 지켜주심을 감사합니다. 환경이 아무리 칠흑과 같이 어둡고 힘들지라도 우리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국의 군대가 우리를 둘러싸고 지키고 있음을 보게 하여주옵소서. 두려움 없이 담대히 세상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언제나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와 찬양이 떠나지 않게 능력과 힘을 부어주옵소서. 그래서 이 고난 많은 세상을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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