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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출 7: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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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출 7:14-19)


출애굽 사건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결정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모든 구원역사의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 출애굽 사건은 이미 창세기에 약속으로 예언되어있습니다. 창 15:13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 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역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우선 모세를 택하셔서 특별한 존재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거절할 뿐 아니라, 이전 보다 더욱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했습니다. 

어찌 보면 바로의 반응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다면, 하루아침에 엄청난 노동력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장정만 60만이 넘는 노예를 잃어버린다면, 나라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 보다 더 중요한 이유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출 5:2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을 따를 수 없고, 그래서 이스라엘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명을 따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실 심판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것인지 몰라서 그 명을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노동력을 잃어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두렵고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 명을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셔서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재앙을 무려 열 가지나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재앙인 열 번째 재앙 한 가지만 내리셔도 바로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을까요? 성경 몇 곳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출 7:17입니다.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다음으로 출 8:10입니다.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그리고 출 8:22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한 마디로 여러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을 모르던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열 가지 재앙 기사를 읽고 묵상하면서 깨닫고 마음속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서 여호와시로구나 하는 점을 깨닫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열 가지 재앙 중 첫 번째 재앙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일 강물이 피로 변했고,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강물에서 악취가 났습니다. 이렇게 되어 애굽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피 재앙의 우선순위 

우선 왜 하필이면 이 피 재앙이 열 재앙 중 첫 번째로 주어졌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 왜 나일 강을 첫 번째 재앙의 대상으로 삼으셨을까요?

출 1:22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바로 왕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산파들에게 엄히 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일 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저주의 자리였습니다. 어린 자식을 산채로 수장시켜야 하는 어미의 통곡과 눈물의 자리였습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바로가 악행을 저지르는 죄악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 우선 이 나일 강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나일 강이 애굽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자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나일 강이 애굽 사람들에게 통곡과 눈물의 자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바로의 죄를 심판하신 자리가 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와 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탄압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큰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저지른 참혹한 죄에 대하여 바로 죄를 저지른 그 자리에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일로 바로와 애굽 백성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죄와 허물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조금 불경스러운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뒤 끝이 있는 분입니다.’ 있어도 너무 많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결코 있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죄를 짓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하나님은 전혀 뒤 끝이 없는 분이십니다.’ 없어도 너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심판은 결코 하시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연약하여 죄를 짓고 허물을 범했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우상의 심판

본문 1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바로가 아침에 나일 강으로 나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에게 그 때 나일 강가에서 바로를 만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바로가 아침에 나일 강가로 나왔을까요? 우연히 그 날만 바람 쐬러 나왔을까요? 아니면 그 날 아침 갑자기 수영이 하고 싶어 나왔을까요? 

8:20을 보면 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이번에는 파리 재앙을 내리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가 또 아침에 나일 강가로 나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는 습관처럼 아침 마다 나일 강 가로 나왔습니다. 나일 강을 숭배하는 아침 제사를 드리러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점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이 점에 대해 분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집트를 가보면 나일 강은 다른 강들과 달리 정말 신비롭습니다. 사막 한 가운데를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대체로 강은 수풀이 우거지고 비옥한 땅을 흐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나일 강은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가 없는 사막 한 가운데를 흐릅니다. 겨우 그 강가에만 푸르름이 보일 뿐입니다.

게다가 나일 강은 매년 아프리카 중부 지역의 우기 때 수량이 갑자기 대폭 늘어서 이집트 지역에 대홍수가 일어납니다. 이 때 상류에서 떠내려 온 토사가 이집트 농경지를 뒤덮습니다. 그리고 홍수 이후 그 땅이 비옥해져서 홍수 다음 농사가 잘 됩니다.

고대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런 현상은 경이롭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일 강 자체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신을 ‘하피’라고 불렀습니다. 매년 대홍수가 일어날 때 이 하피 신이 이집트에 도래했다고 믿고 대대적인 숭배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는 매일 아침 나일 강을 신으로 섬기기 위해 강가로 나온 것입니다. 매일 아침 이 하피 신에게 아침 제사를 드리기 위해 나일 강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일 강을 하나님으로 알고 숭배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바로가 하나님인 줄 알고 숭배하던 그 나일 강을 치셨습니다. 그 강물을 모두 피로 변하게 한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피에서 죽음을 보았습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고 그 피가 흘려진 것을 죽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 푸르게 넘실  거리며 흐르던 나일 강이 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나일 신 즉 하피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 섬기던 나일 강 신 즉 하피 신이 죽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바로와 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알게 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던 하피 신보다 위대한 신이라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난 1월 8일 교역자들과 함께 동계 등반에 나섰습니다. 힘겹게 매서운 추위와 눈으로 뒤 덮힌 오대산 정상 비로봉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외에도 다른 팀이 정상에 와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역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20여명의 사람들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바닥에 비닐을 펼쳐놓고 준비해 온 제사 음식을 늘어놓았습니다. 제주 격인 사람이 종이를 펼치더니 제문을 읽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해 복을 주고 평안을 지켜달라고 기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큰 절을 세 번 하고는 부지런히 다시 싸들고 하산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제사는 10분도 채 안돼서 끝이 났습니다.

저는 우선 저들의 정성에 놀랐습니다. 그 강추위에 눈이 뒤  덮힌 해발이 1565미터나 되는 산 정상까지 올라와 제사를 드리는 저들의 정성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저 높은 산이 하나님인 줄 알고 우상숭배하는 저들의 영적 무지를 보고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엉뚱한 것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믿고 섬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심령 속에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우상을 철저하게 배격해야 하겠습니다.

영적 무지의 깊이

본문 23절을 보면 간과해서는 안 될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바로가 나일 강이 피로 변하고 애굽의 모든 물이 피로 변했는데도 별 것 아니라는 듯 궁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됐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분명히 바로가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요술사들이 자기들의 요술로 물을 피로 변하게 하자 생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무려 10번이나 재앙을 내리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넷째 재앙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 파리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온 애굽에 파리가 가득하자 바로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파리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약속을 어기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의 영적 무지의 깊이가 너무도 깊습니다.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게 됐지만 상황이 달라지자 금새 잊고 말았습니다. 영적 무지의 깊이가 너무 깊어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아도 영적 무지를 바꾸어 가기가 힘이 듭니다.

술과 담배에 찌든 아버지를 보고 자란 자녀들은 마음 깊이 다짐합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절대로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을 것이라고.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자녀들도 마음 깊이 다짐합니다. 나중에 결혼하면 절대로 아내를 때리지 않겠다고....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교도소 사역을 해본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 대부분이 아버지를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 대부분이 아버지에게서 자기도 모르게 배운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는 우상숭배가 뼛속 깊은 곳까지 각인되어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우상을 숭배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신의 아들로 인식하고 통치행위 자체를 우상숭배와 동일시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을 알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을 알게 됐습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았습니다. 부분적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 그 심령 깊은 곳에 담겨있는 영적 무지가 다시 작동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일어납니다. 조그만 미혹에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상황이 달라지면 그 은혜를 잊습니다. 그 고백이 입술만의 고백이 되고 맙니다. 우리 안에 깊은 영적 무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우리 안에 있는 이 영적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알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해 여호와를 아는 일에 더욱 힘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영적 무지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목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며 또한 우리에게 베푸신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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