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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은 마치(3) (마 13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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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3) (마 13 :31-3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교회) 비유에서 가라지 운동의 유사성(비슷한 점)과 깊숙이 들어 온 잠복성과 알곡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해독성을 경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교회)의 외적성장과 내적성장의 필연성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Ⅰ. 하나님 나라(교회)운동의 외적성장입니다. 

1) 겨자씨로 비유되는 하나님 나라(교회) 운동은 미약하여 보잘 것 없고 낮아지는 겸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 13장 31절에 『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라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이 모든 씨보다 작다고 했습니다. 겨자씨는 근동지방에서 보잘 것 없이 작고 유약한 것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천국운동 자체가 사람들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했습니다(사 11:1).
이사야 53장 2절에는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유대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그는 당시 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사렛 동네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라고 했습니다(마 26:71).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고 했습니다(요 1:46).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습니다(마 11:29).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짐승의 새끼를 탔다고 했습니다(마 21:5). 
당시의 지식인들이나 권력자들이 볼 때 나사렛 동네에서 자란 예수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의 복음은 참으로 미련해 보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도 자체가 미련해 보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참으로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고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에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것들을 택한 것은 궁극적으로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 『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고 했습니다. 

2) 겨자씨로 비유되는 하나님 나라(교회)운동은 궁극적으로 창대한 승리운동입니다. 

본문 13장 32절에 『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천국 실체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고 했습니다. 『 깃들인다 』라는 말은 새들이 이 나무 위에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이 나무를 의지하면서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교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와서 영원히 쉬는 곳입니다. 고통 속에서 영원히 평안을 얻는 곳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부활 후의 삶을 의미합니다. 

시편 16편 8절에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한 말씀의 인용 구절이 사도행전 2장 25절에 『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라는 말씀입니다. 

욥기 8장 7절에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의기 분발하여 떨치고 일어남)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욥 5:11).

전도서 7장 10절에 『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행2:47).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인입니다. 

시편 37편 25절에 『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의인이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시 37:29).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신다고 했습니다(시 14:5).
시편 92편 12절에 『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잠언 4장 18절에 『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의인을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시 146:8).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다고 했습니다(잠 15:6).

잠언 24장 16절에 『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고 했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습니다(히 10:38).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습니다(롬 1:17). 

시편 1편 3절에 『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나뭇가지에 깃들인다는 말은 모든 인생이 머물고 영원히 쉴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곧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의 영원한 쉼터입니다.

겨자씨가 나뭇가지가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고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나사렛 예수가 우리의 구주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17장 22-23절에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찌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인생의 깃들이는 나뭇가지입니다. 깃들이지 못하는 새와 깃들일 곳이 없는 새는 살아있으나 죽은 새입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살았으나 죽은 인생입니다. 


Ⅱ. 하나님 나라(교회)운동의 내적성장입니다. 

누룩은 다양한 음식물을 부풀게 하는 발효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 누룩에 대한 부정적 면입니다.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여자를 악한 존재 곧 이세벨로 상징했습니다(슥 5:7-8; 계 2:20; 17:1). 
바리새인의 누룩은 형식주의의 종교를 말합니다(마 27:4, 16, 23-28). 사두개인의 누룩은 부활을 부인하는 금세주의를 말합니다(마 22:23, 29).
헤롯의 누룩은 내세를 부인하고 육체의 쾌락을 제일로 하는 세속주의를 말합니다(막 8:15). 소제에 누룩은 제외되었습니다.

레위기 2장 5절에 『 번철(부침개 하는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장 11절에 『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찌니라 』고 했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에 누룩은 제외되었습니다.

레위기 6장 16-17절에 『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찌니라 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 이는 나의 화제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주어 그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속죄제와 속건제 같이 지극히 거룩한즉 』이라고 했습니다.

② 누룩에 대한 긍정적인 면입니다. 

복음운동의 변화와 점진적 확대를 의미합니다. 가루는 복음전파의 전 세계적 영역을 말합니다. 
부풀게 한다는 말은 복음운동이 확산되고 하나님 나라(교회)가 부흥되는 현장을 말합니다. 누룩은 요제를 드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레위기 23장 17절에 『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찌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누룩은 복음의 확산, 복음의 폭발력, 복음의 영향력의 우주적 확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누룩은 복음을 통한 교회운동의 팽창 즉, 부흥을 말하는 것입니다. 

1) 목사는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 2절에 『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 4절에 『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라고 했습니다.

설교는 목사의 재량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설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2) 교회 직분자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 5-7절에 『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 『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고 했습니다.

3) 환난과 고난을 통하여 성령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에 『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고 했습니다.

사울은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살기등등했습니다. 다메섹 여러 회당에서 그리스도의 도를 좇는 사람들을 남녀를 불문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하늘로써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울은 놀라 당황하여 땅에 엎드렸습니다. 

사도행전 9장 4-5절에 『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고 했습니다.
그 후 사울은 회심하였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며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행 9:22). 

마침내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했습니다. 제자들은 위험에 처한 사울을 밤을 타서 광주리에 담아 성에서 달아 내렸습니다. 
그 후에도 사울과 유대인들과의 각선 변론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위험 속에서도 교회는 든든히 서가고 교회에 사람의 숫자는 더 많아졌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오히려 교인의 숫자를 많게 해 주고 주를 경외하게 되고 성령의 위로가 더하게 되었습니다. 

4)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 』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설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역사(work)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현장 발효력입니다. 

5)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1장 6절에 『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5장 4-6절에 『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고 했습니다.

6)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요 6:9-11).

예수님의 기도는 부풀게 하는 기도입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18절에 『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고故 정암 박윤선 박사는 시간을 맞춰놓고 기도함으로써 기도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세리의 기도를 받으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눅 18:9-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교회)운동은 겨자씨 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처음은 미미하나 나중은 창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교회)는 누룩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팽창력과 함께 반드시 확장하는 운동입니다. 가루 속에 들어간 누룩과 같이 말입니다. 
교회는 공간자원, 물적자원, 인적자원이 확장되어 가고 팽창되어 가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간자원만 많아도 안 됩니다. 
쓰임 받지 못한 빈 공간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공간은 채워져야 하고 공간은 활용되어야 합니다. 

물적자원만 많아도 안 됩니다. 
물적자원이 많으면 무엇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만나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물적자원이 선용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 때문에 시험이 옵니다. 

인적자원만 많아도 안 됩니다. 인적자원은 영적훈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쟁과 시기만 일어날 뿐입니다. 

우리교회는 겨자씨 운동을 하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우리교회는 누룩운동을 하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생태적 성장도 성장이긴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 말입니다. 프랑스 속담에 죽은 사람의 신발을 신으려고 하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 성장을 내다보면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한 주간도, 아니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교회)의 성장과 팽창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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