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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장하는 사람의 습관 (시 9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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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사람의 습관 (시 92:12-15) 
 
 
오늘 본문말씀에 의인이 받을 복을 "성장의 복"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의인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의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의인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경적인 의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나이가 많아도 성장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젊어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늙어도 꿈을 꿉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젊어도 꿈꿀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늙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함부로 살면 젊어도 추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늙어도 강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젊어도 약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늙어도 결실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젊어도 결실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꿈꾸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강하게 하고, 푸르게 하고 결실케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속에 나타난 의인은 여호와의 집에 심겨지는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의인을 나무에 비유하고, 악인은 풀에 비유합니다. 때로는 연약해서 실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의 내면세계가 항상 하나님께로 향하여 있어서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신앙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그가 바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의인을 축복하십니다. 의인에게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는 복을 주시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은 성장의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성장의 복을 "발육의 복"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발육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나 정신 따위가 발달하여 크게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모든 생명체의 발육은 정말 중요합니다. 발육이 좋아아 합니다. 발육이 좋은 것이 복입니다. 동물도 발육이 좋아야 합니다. 식물도 발육이 좋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도 발육이 좋아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발육이 안되면 미숙아가 됩니다. 발달단계에 합당하게 성장해야 정상입니다. 발육이 좋은 것은 복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무도 발육이 좋은 것이 복입니다. 모든 생명체에 발육이 더디거나, 발육이 안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신앙에 있어서 성장은 주님이 바라신 바이며 그것은 성도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신앙은 성장에 묘미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위해서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 때는 신체적 성장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키 가슴 어깨 이런 것들이 성장하는 것에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나 신체의 성장은 곧 멈추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영적 성장입니다. 

성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습관의 사전적 의미는 "동일한 상황 아래에서 반복된 행동이 상황에 따라 안정화되고 자동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반복적인 학습은 우리의 습관을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이런 습관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습관은 중요한 삶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습관은 사람을 만듭니다.

행복도 습관이고 불행도 습관이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이 좋은 사람을 만들고 나쁜 습관이 나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멕스 루케이도는 성장하는 사람의 네가지 습관을 말했습니다. 
1. 기도의 습관, 2, 공부의 습관, 3. 헌금의 습관, 4, 친교의 습관

하나님의 백성들이 네 가지 습관을 실천하는 것은 신앙성장의 지름길입니다. 습관이 성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습관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그리스도인의 영성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장하는 성도의 습관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집에 심겨졌고, 하나님의 뜰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중심 아이디어입니다. 
세상에 뿌리를 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둔 성도를 일컫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의인을 종려나무에 비유하고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무에서 중요한 것은 뿌리입니다. 뿌리가 마르면 가지나 잎이 무성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곧 말라비틀어지고 고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 복있는 사람, 의인을 물가에 심기운 나무라고 했습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가뭄에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땅 속 깊이 있는 물을 빨아들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태풍과 같은 바람에도 끄떡없이 견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향목은 물도 없는 사막에서도 땅 아래로 50미터까지 뿌리를 내립니다. 사막에서도 깊은 곳에는 물 줄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황량한 사막이지만, 뿌리는 물에 잠겨 있으므로 혹독한 가뭄이 있어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의인에게 주어진 성장의 복은 여호와의 집에 심겨져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심기워졌다는 것은 주님 안에서 사는 삶, 주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에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뿌리를 내린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뿌리는 세상에 내리고 가지만 하나님의 전에 드리웁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에 심기운 나무가 아닙니다.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가지를 하나님께 드리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높으신 뜻으로 자기의 뜻을 삼고,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으로 삶의 원칙을 삼아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하나님의 뜻과 식대로만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품을 결코 떠나지 아니합니다. 한마디로 믿음의 지조를 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를 말합니다. 굳이 오늘날의 용어로 해석해 드리면 교회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번성합니다.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인생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죄악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사단은 전략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죄악에도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저 눈을 이곳 죄악 세상에 두고, 그곳에 즐거움을 두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그리하여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도록, 이렇게 유혹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그러나 그것은 잠깐입니다. 순간입니다. 그 후에는 그것으로 인해 후회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인생,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잠깐의 죄악에 악을 누리는 것에 넘어가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음에 감사하고 뿌리를 깊이 내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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