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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에 빠진 인생 (고후 5:13-21)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에는, 목회자들도 귀했고, 성경도 귀했다. 그나마 선교사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한 교회만을 돌볼 수 없었던 선교사는, 그 마을에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 가운데, 성경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조사로 임명해 놓고, 다른 마을로 전도하러 갔다. 
그래서 몇 달에 한 번씩, 교회를 다시 방문했다. 그 당시에는 전기불이 없었기에, 저녁 예배시간에 조사들이, 가물거리는 호롱불 밑에서, 두꺼운 돋보기를 끼고서, 성경을 읽는다. 어느 산골 교회에서, 조사가 시편23편을 읽는데, 호롱불이 가물가물해서, 글씨가 잘 안 보였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 자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읽었다. 그렇게 읽고 보니, 너무나도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이렇게 성경을 읽고 난 다음, 조사가 비장한 얼굴로 설교를 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을 자르셔도, 저는 부족함이 없다.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전 교인들도, 손을 들며 “나도요. 나도요. 여호와가 나의 목 자르셔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다. 여호와가 나의 목을 자르셔도 좋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여호와가 나의 생명 거두어 가셔도 좋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가졌던 신앙이다. 이런 믿음의 신앙의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사도 바울은 (13上)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고 했다. 미쳤다(엑시스테미, ἐξίστημι) = 엑크(ἐκ, 안에서 밖으로) + 히스테미(ἵστημι, 서다, 붙잡다) ‘놀라다, 흔들어 놓았다, 혼이 나왔다.’는 말이다. 주님이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면, 주님께 빠져서 살아보자.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에게는, 거룩한 비전을 향한, 열정이 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산 위에서 120년 간 방주를 만든 노아를, 동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비난했다(요10:20).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들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행12:15). 따라서 거룩한 믿음의 길을 걷다가, 미쳤다고 비난당함을 두려워하지 말라. 살아가면서,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야,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음악에 빠져야 음악가가 되고, 문학에 빠져야 문학가가 된다. 무엇에 빠져야, 진정한 성공 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에 빠진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복음에 빠져 본 사람만이, 복음의 일꾼이 된다. 어떤 사람은 돈에 빠지고, 쾌락에 빠진다. 또 도박과 오락에 빠지고, 공부와 사랑에 빠진다. 

인생은 무엇에 빠져 산다. 무엇에 빠졌느냐가 참 중요하다. 빠져 살 바에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거룩함에 빠져 살기 바란다. 성령이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복음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무엇에 빠졌고, 또 우리는 무엇에 빠져야 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져야 한다(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강권은 ‘함께 잡다’로, 꼼짝달싹 못하도록 붙잡혔다는 말이다. 
포로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젊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 사랑의 포로가 된다. 그 사랑에 빠져, 포로가 된다. 그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사랑에 빠져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15上).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사랑은, 대부분 이기적 동기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부부라도, 서로를 위해서 죽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부모를 위해 죽는 자식이 드물고, 자식을 위해 죽는 부모도, 흔하지 않다. 그런데 부모도, 자식도 아니고, 같은 동족도 아닌, 나사렛 예수, 이스라엘 땅에 태어났던 한 사람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아니 나를 위해 죽으셨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주님의 사랑에 빠져 살자는 말은, 아주 당연하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롬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의인을 위해서도 죽는 일도 쉽지가 않은데, 주님은 죄인인 나를 위해 죽었다.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시집가기를 거절하고 평생을 바쳤던, 어떤 간호사가 있었다. 동생도, 이제는 누나도 살 길을 찾으라고, 권유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주변 사람들도 동생을 위해, 그렇게까지 희생할 필요가 있느냐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동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오직 동생을 위해 살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사춘기 시절, 병을 앓다가 수술을 받게 되어, 수혈의 필요했다. 
그녀는 아주 독특한 RH- O형이라, 피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10살도 안되는 남동생이, 수혈하겠다고 자원을 했다. 마침 같은 혈액형이어서, 수혈을 했고, 수술을 끝난 뒤, 남동생이 의사에게, 뜻밖에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저는 이제 언제 죽나요?” 

잘못된 지식이지만, 소년은 자기의 피를 빼면, 죽는다고 알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누나를 위해 수혈을 해주었다. 나중에 이 소년의 누나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나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저는 이제, 제 평생을, 동생을 위해 살겠다. 죽기를 각오하고, 나를 위해서 피를 주었던, 내 동생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 그리고 그 결심을 실천했다고 했다. 자기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수혈을 한 동생을 위해서, 한 여인이 빚진 마음으로, 평생 동생을 사랑하고, 뒷바라지하며 살았다. 

이 여인이 동생의 사랑에, 이렇게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빠져, 헌신하며 살아감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빠졌던, 그리스도의 사랑에, 오늘 우리도 한 번 빠질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주님이 삶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15中).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다시 사셨다. 그리스도가 다시 사셨던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하여, 살게 위해서라고 했다. 나를 위해 죽고, 나를 위해 다시 사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존재 이유요, 목적이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목적도 없이 인생을, 그냥 보내고 있는가? 내 인생이 방황하고 있고, 삶이 무기력해 보이고, 감동도 없다면, 그 이유는 목적의식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순간, 분명히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생긴다. 예수 그리스도다. 오늘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위해 죽었고, 너를 위해서 다시 살았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이유도, 너를 위해서 존재하니, 너도 나를 위해서 살지 않겠니?”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일은, 영광스런 일이다. 우리 모두 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나 한 사람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뼛속 깊이 느껴지고 깨달아지기를 축원한다. 그러나 그 사랑을 경험하고, 느끼는데서 끝나면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빠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바울은 아주 좋은 학벌과,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사람이다. 그는 엘리트로, 출세가 보장되어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서, 그 사랑에 포로가 되고, 예수님께 빠지고 말았다.  

모두 다 버리고, 예수님께 빠져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선교하고, 때로는 감옥에도 가고, 매도 맞았다. 때로는 굶주리면서, 복음전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베스도 총독이, 이런 바울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행26:24下)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총독이 보니까, 바울이 너무 한심하게 보였다. 어쩌다가 저렇게 똑똑한 사람이, 예수한테 미쳐서, 저 모양이 됐나, 이렇게 말했다. 바울은 주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일에 빠져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그리스도를 알고, 그 사랑을 경험했다면, 마땅히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빠져야 한다. 

2. 육신을 따라 알면, 주님을 알 수 없다(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거듭난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육신을 따라, 즉 사람의 겉모양이나, 육체의 그릇된 동기에 의해,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출생, 신분, 부, 관직 등,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하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런 외적 판단기준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도 그리스도를 육신을 따라,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구세주로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육신적인 배경으로만,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중생하고 변화되어서는, 예수님을 이전과 같이 그렇게 알지 아니하고, 그를 구세주로 알고, 예수님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인간은 변화될 수 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인간의 가장 큰 갈망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아무도 자기 존재, 그대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절망할수록, 자신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불만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 속에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하게 커진다. 그런데 변화는 쉽지 않다. 바울은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전 인류가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감격스런 복음의 소식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사람이 변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사실 이 고백은, 사도 바울 자신의 신앙 고백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예루살렘 곳곳을 다니면서, 심지어는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쪽에서 볼 때, 바울은 원수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원수 같은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바울을 사랑하시고, 바울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있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치고, 변화되지 않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나와도, 세월이 흘러가면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어도,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생활을 수십 년간 해도, 변하지 않았다.  
정말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홀연히 변한다. 그의 가치관이 변하고, 삶이 변한다. 정말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밤을 지새우며, 그 사랑 앞에 울먹여 본 경험이 있는가? 정말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변한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게 된다. 사랑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이 사랑에 대한 경험이 없기에,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섭섭 병이 생기고, 불평과 원망이 생긴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바란다. 또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보라. 그러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바울은 거대한 학문과, 무력을 자랑하던 로마를 향해서, 편지를 쓰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한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다. 바울은 로마의 발달된, 그 당시의 군사력도 과학도, 철학도 단 한 사람의 영혼도, 변화시키지 못함을 알았다. 
그러나 복음을 전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변했다. 인간을 자유하게 하고, 변화시키는 놀라운 복음,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 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 복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빠졌다. 

이 사랑만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바울은 빠졌다. 이 사랑을 전하는 일에 빠졌다. 주의 이름으로 요청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감격을 아는 모습을 좀 보여 주기 바란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변하게 되어 있다. 변하지 않는 삶,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거룩한 삶으로 변화가 없는 인생, 그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자기를 위해 사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안에 없는 사람이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빠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18-21)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에 의하면, 인류 최대과제는,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데 있다. 인간의 비극은, 하나님을 등진데서 부터 비롯되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인간의 근본 문제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관계의 문제가 가장 중요했기에, 하나님은 관계를 중재할 수 있는 중보자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바울은 전도자의 책임을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라 했다(18). 복음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된다. 더 이상 하나님을 등질 필요가 없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복음의 말씀을, (19)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라고 했다. 

(20) 전도의 메시지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이다. 복음전도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세상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가정이 하나님과 화목할 때, 가정과 삶에 하나님의 복이 있다. 그때 세상은, 화목한 세상, 화목한 공동체가 된다. 복음은 개인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세상을 변혁시키는, 유일한 처방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빠져 있었다. 또 우리가 예수님에 빠져, 살아야 할 이유이다. 주님을 위해, 영광스런 비전을 위해, 나를 바꾸고, 내 이웃을 바꾸고, 이 세상을 바꾸는 헌신을 하자.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 주를 위한 거룩한 목적과, 소명 앞에 헌신하기 바란다.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가지고,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님이 허락해준 인생, 내가 어떻게 살든지, 그것은 분명히 자유다. 그러나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받게 될 심판이 있다는, 이 분명한 사실을 잊지는 말라.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주님에 사랑에 빠져 살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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