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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러므로 회개하라 (계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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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회개하라 (계 2:12-17)


집회를 다니다보면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데,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교회를 위하여 많은 봉사를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세상 사람과 어울려 방탕하고 가정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숙해져야 할 아기 엄마, 아니 중년 부인들이 넘어진 모습들을 볼 때 청소년들만 위기가 아니고 부모들도 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 생활은 언제나 믿음을 흔드는 유혹이 있다. 유혹은 달콤하게 다가와서 달라붙으며 유혹에 이끌리는 사람은 분별력을 잃고 타락하게 된다. 

오늘 소아시아 교회 중 3번째 교회로 등장하는 버가모 교회가 바로 유혹에 쓰러진 이들로 책망을 받고 있다. 버가모 교회는 본래 어떤 교회인가? 
이 교회는 순교자 안디바가 목숨을 내 놓은 교회이다. 그 와중에서 피 흘리는 두려움이 있었으나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교회였다. 
버가모는 소아시아의 수도였다. 정치, 권력, 학업의 중심지였고, 특별히 이방신을 숭배하는 신전과 재단이 있었다. 버가모 시는 화려한 도시이지만, 계2:13 말씀을 보면,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버가모 교회는 믿음으로 든든히 섰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안디바가 순교할 때, 로마의 관리를,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게 하는 신상 앞에 그를 끌어다 놓고 말했다. 
"안디바야, 로마의 황제 신상 앞에 절하라" 
안디바가 대답하길, 
"만왕의 왕은 예수밖에 없으니 나는 절하지 않겠노라" 
그 때 로마의 관리는 노하여 소리치길, 
"안디바야, 온 세상이 너를 대항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안디바는 말하길, 

"그렇다면 내가 온 세상을 향하여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선포하노라" 
이 대답을 듣고 로마의 관리는 놋가마 속에 안디바를 넣어 볶아서 죽였다. 처절한 고충의 순교였으나, 버가모의 교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죽음과 공포와 두려움 따위가 신앙을 유혹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달콤하게 다가오는 유혹이 신앙의 원수인 줄 모르고 넘어지는 이들이 생겼다. 달콤한 것이 문제다. 그것을 가리켜 계2:14에서는 말한다.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도다." 또, 계2:15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회는 유혹으로 인해 더러워 진 것에 대하여 주님 앞에 책망을 듣게 되는데, 이 잘못된 신앙생활의 오염을 씻고 회개하라고 한다. 우리는 이 시대에도 버가모 교회와 같은 모습을 발견한다. 믿음을 지키면서도 유혹에 넘어지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하겠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 

1. 세상의 유혹을 따라가려는 것을 회개하라. (계2:14) 

계2:14에 기록된 발람의 잘못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행음(行淫)하게 한 일이다. 
발락이 발람을 선대하여 온갖 물질 공세로 선지자 발람을 초대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자할 때, 발람은 세상적 유혹을 몇 번이고 이겼으나 결국 그 유혹에 따라간 자가 되었다. 유혹하고 유혹 당하는 이 이야기는 민수기 22장∼24장 사이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발람은 유혹을 따라가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민수기 2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음하여 우상 숭배하게 되는 타락으로 떨어지는데 결국 발람은 발락에게 이스라엘의 저주받는 비결을 가르치고 말게 된다. 선지자로서 자처하던 발람 선지자가 세상 물질의 유혹에 빠져 버린 것이다. 

오늘 우리들을 끈질기게 유혹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물질이다. 그리스도인이면서 그것을 허용하며 따라가려는 것이 문제다. IMF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베사메무쵸란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영화를 우리 교인들도 보았는지 차를 타고 가면서 신나게 떠든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기 몸을 팔아서 가정의 생활비를 해결하려는 영화인데 남자가 여자의 유혹 받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자식을 키우는 아줌마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있으며 누구든지 그럴 수 있다고 이해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마저 믿음을 지키노라 하면서 물질 유혹에 빠지고 조금만 더 수입을 올려야 된다고 기준을 정하고 세상의 유혹을 따라가고 하나님보다 세상의 환영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심각한 일이다. '인생의 젊음은 다 지나가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백발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더 늙기 전에 멋있게 낭만적으로 살아야하지 않는가?' 하면서 삶의 중년기를 성숙한 신앙에 세우지 못하고 세상에 곁눈질하고 있다면 발람과도 같은 것이다. 

골3:5을 보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 더 늙기 전에 취해야할 것을 얻기 위해서 세상을 향한다면 그것이 행음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씁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또, 한 해를 보내며 뭔가 문득 외로울 수도 있다. 사람인데 어찌 위기가 없으며 유혹이 없겠는가? 하지만, 유혹을 따라 가려는 발걸음이 옮겨지기 시작했다면 회개하자. 돌아서라. 

2.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을 회개하라. (계2:15)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죄를 행하는 것은 계2:15의 말씀대로 니골라당을 이해하면 된다. 
니골라당은 잘못된 이단 신앙이었다. 저들은 육과 영을 분리하여 육은 더럽고, 영은 깨끗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육은 영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으므로 육신은 그의 육적 욕구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사설을 가르쳤다. 즉, 먹고 마시고 방탕하고 음란하고 애인을 맘대로 바꾸고 쾌락을 추구해도 영혼 구원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영혼이 구원받는데 육체는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니골라의 교훈을 쫓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교회의 순결을 더럽히고 가정 안에서 가정의 순결을 더럽혔다. 니골라당의 무리들은 안타깝게도 이런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므로 혼합신앙을 더욱 가중시켰다. 더러운 죄가 죄임을 모르고 죄를 저지르면서도 당당하게 믿음을 지키는 것처럼 살아갔으니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은지 모른다. 사실 육체는 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입장 때문에 생기는 방탕주의적 생활도 큰 죄이지만 육체는 영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여 더러운 육체를 미워하고 학대하며 금욕주의로 가는 생활도 죄 중의 죄이다. 어떤 사모는 자기 남편이 영적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그럴러면 결혼생활도 금하고, 육체적 욕구를 금해야 한다고 해서 남편의 고환을 잘라버렸다. 

죄가 죄임을 모르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육체를 미워함으로 더욱 영적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죄가 죄임을 모르기에 이런 것이 순수한 것 같지만, 신앙을 오염시키고 가정을 오염시키는 죄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너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의 몸은 성령이 내주하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몸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잘 관리해야 된다.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행하는 어리석은 행동과 생활을 회개하자. 

3. 다른 사람을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을 회개하라. (계2:14∼15) 

발람은 결국 발락이 바라는대로 이스라엘을 직접 저주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을 모압 여자들로 말미암아 유혹하게 함으로 행음하게 하고 멸망받게 하는 우회적 제안을 하였다. 
오늘 우리는 신앙인의 이름을 가지고 살면서 우회적 방법으로 죄를 수용해선 안된다. "힘을 냅시다. 그것은 죄입니다. 용기를 가집시다. 유혹을 이깁시다.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이들을 오히려 방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유혹에 이끌리는 것을 방치하여 두는 삶이었다면 무책임한 혼합주의다. 

젊은이들을 결혼시킬 때도 잘만 살면 된다고 할 뿐 모압의 신을 섬기는 여자이든 남자이든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방임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 기준이 세상적인 것으로 혼합되어 있어 신자와 불신자의 만남을 우려하지 않는다.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고 사람조차도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옳다고 사람을 불신앙적으로 방관하고 마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 사람을 위한다는 인간적 명목으로 새 가족이 헌신하려는 것까지 중지시키고 십일조와 주일성수신앙까지도 '편하게 해, 안해도 돼, 적당히 보면서 해' 이런 타협주의적 자세로 신앙을 오염시키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나 자신이 엄청난 살인죄, 두려울 만큼 큰 죄를 지어서가 아니다. 유혹에 끌려가고, 알지 못하고 죄를 짓고, 다른 사람들을 유혹으로 미혹되게 하는 "죄", 스쳐지나가는 죄를 회개하라. 누구든지 핍박을 받고 욕을 먹는 일에 대해선 대항하며 이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달콤하게 다가오는 유혹은 분별하지 못하고 이끌려가고 죄악에 오염된다. 

유혹을 피하자, 싸우자, 이기자. 그러나, 먼저 회개함으로 시작하자. 회개하자. 당신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바꾸라. 그러면 이기는 자가 된다. 이기면 만나를 주고,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주신다. 지금의 여기까지 온 나를 보라. 어떻게 지켜온 믿음인가? 배고플 때도 싸워 이겼고, 가족의 핍박과 반대 속에서도 싸워 이겼다. 병들었을 때도 싸워 이겼고, 시련을 성숙의 기회로 삼았다. 그런데 왜 살며시 다가오는 물질, 그리고 달콤한 유혹 앞에서 끌려가는가? 회개하며 새로 시작하자. 세상적 영화는 잠깐이다. 중년의 유혹도 잠깐이다. 쓸쓸한 감정도 잠깐이다. 미래의 영광이 영원하고 신앙은 영원하다. 한해가 저무는 12월, 회개함으로 만나와 흰 돌을 받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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