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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극복 (요 1: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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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명과 극복 (요 1:35-51)


하나님께서는 “묵시(비전, 꿈)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제멋대로) 행한다.”(잠29:18) 고 말씀하셨습니다. 새해 첫 주일에 명확하게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윌리엄 페더의 글 중에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5달러를 주운 뒤,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 기분을 계속 느끼기 위해서, 평생 길을 걸을 때 땅을 바라보면서 걸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평생 습득한 것이 단추 29,519개, 머리핀 54,172개, 수천 개의 동전이었지만, 그 대신 푸르고 광활한 하늘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와 아름다운 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은 노년에, 자신이 인생을 넝마주이처럼 살았다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목표 ․ 꿈 ․ 비전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지만 땅의 소유가 목표일 때는 진정한 의미의 비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근거하지만, 욕심은 자신을 위한 삶에 근거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죽이는 마음이며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뺏길까봐 늘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가도록 돼 있습니다. 더욱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세상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 되며, 잘못된 비전을 올바른 비전으로 착각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하늘로부터 오며,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이뤄 드려야하고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한 갈망으로 불타야 하며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말씀 속에서 가장 큰 틀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새소망교회

새소망교회는 그동안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명하신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해 자연적 교회 성장에 근거해서 목회를 했습니다. 자연적 교회 성장 원리는 사역자를 세우는(지도력), 은사중심적(사역), 열정적(영성), 기능적(조직), 영감있는(예배), 전인적(소그룹), 필요중심적(전도), 사랑의(관계)를 반영하면 교회가 자연적으로 성장한다는 이론입니다. 그동안 행사중심으로 목회하지 않고 8가지 질적 특성 중에서 최소치를 키우려 매년 노력 했습니다. 

최소치를 키운다는 뜻은 물통의 비유에서 쉽게 알 수 있는 원리로 8가지 요인 중에 가장 작은 것을 키우는 만큼 교회가 성장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교회나 성도님의 삶은 나름대로 성숙한 영역이 많이 있지만 본문을 통해 2013년에는 현재 가장 부족한 부분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증가 

요한이 자신의 제자 2명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외쳤습니다. 요한의 두 제자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들이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와서 보라.” 고 하시자 그들이 가서 계신 곳을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10시쯤 됐습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인 안드레는 먼저 자기의 형 베드로에게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고 하고 예수님께 데려 갔습니다. 다음날 예수님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동네 사람인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하며 예수님에게 데려 갔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요한의 제자인 안드레와 또 다른 제자 그리고 안드레의 형인 베드로와 빌립과 빌립이 데리고 온 나다나엘로 구성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고 그 유명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신앙고백을 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고대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로마에서 얼마동안 그리스도교단을 주재(主宰)하다가, 로마황제(네로)치하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특히 순교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로마에 큰 박해가 일어나 모든 성도들이 잡혀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 베드로는 다른 성도들의 권면에 따라 로마성에서 도망쳐 나갔습니다. 환상 중에 예수님을 만나났는데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Quo vadis Domine" 하고 묻자 주님께서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 한다." 고 슬프게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의 소리를 들은 베드로는 다시 로마에 들어가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안드레의 전도로 위대한 나다나엘(바돌로매)도 전도하다가 갈갈히 찢겨져 참수되어 순교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한사람이 메시아를 만난이후,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아가면서 확장되었습니다. 새소망교회는 그동안 삶으로 전도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나름대로 성도님들이 원만한 가정생활이나 인격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입술을 열어서 와보라고 말할 때가 됐습니다. 부족할지라도 공동의 비전 가질 때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새소망교회 한계극복

그동안 저는 평안한 교회, 평안한 가정을 중심으로 목회를 했습니다. 이제는 거룩한 부담을 가져야 할 때가 됐습니다. 우리의 거룩한 행위를 지켜보고 주변 사람이 예수님은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이제는 가까운 사람에게 와보라고 말하는 것이 부담되더라도 말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안드레처럼 자기의 형제 시몬(베드로)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져야 할 거룩한 부담입니다. 새소망교회는 예수님의 특별한 이적을 체험했습니다. 이제는 받은 은혜를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사랑을 표현해서 그 분앞에 데리고 오는 거룩한 부담을 다 함께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금년에 가장 우선한 목표로 세울 때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특별한 은혜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거룩한 부담감 

부담이 없는 신앙을 자랑으로 생각하지 맙시다. 차라리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어나 우리가 체험한 이적과, 누리고 있는 영적인 행복을 보여주고 자랑합시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처럼 평안함을 최우선으로 하면 우리가 지켜온 교회가 이 땅에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층 제 사무실의 일반전화로 걸려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예수소망교회를 찾는 잘못된 전화입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느낀 것은 대형교회는 스스로 교회를 찾으려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우리교회는 스스로 찾아오는 분이 거의 없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교회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금년에는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려는 거룩한 목표를 세우고 다함께 노력할 때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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