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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 (창 47:7-31, 창 50:1-14)

첨부 1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 

1. 야곱은 20여년 전 죽은 것으로 알았던 아들 요셉이 살아 있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에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 왕이 보낸 수레를 보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더 물어 볼 필요도 없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봐야겠다.”(창45:27-28) 

그러나 야곱은 애굽으로 출발하기 전에 브엘세바에 가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아무리 요셉이 살아 있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애굽 바로 왕이 수레를 보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이 과연 바른 옳은가 여부를 알고자 한 것입니다. 당시 야곱의 나이 130세(창47:9)인 연로한 가운데 야곱은 자신이 가나안 땅을 떠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야곱은 약속의 가나안 땅에서 죽게 될 것이고 그 자손들이 이 땅을 실제로 소유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벗어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여부를 알고자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야곱은 애굽으로 이주해가는 것이 단순히 개인적으로 기근을 피하기 위한 것인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야곱아, 야곱아” 이렇게 부르시며 곧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창46:2-4)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한 것이니(창15:13-16) 두려워 말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때가 반드시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올라오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는 것이 확실한 하나님의 뜻, 그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임을 가슴에 품고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은 모두 70명이었습니다.(창46:25-27) 

야곱이 바로 왕이 보낸 수레를 타고 드디어 애굽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토록 그리웠던 아들 요셉을 만나고 그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왕 앞에 서게 했습니다. 이때 바로가 야곱에게. “노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하고 묻자 야곱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그네처럼 살아온 세월이 130년이 되었습니다. 내 조상들의 나그네 생활에 비하면 내 나이가 얼마 되지 않지만 정말 고달픈 세월을 보냈습니다.” 

야곱은 그 자신의 생애와 그 조상들의 생애를 ‘나그네길’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 받았지만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오랫동안 방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은 가나안 땅을 약속받았지만 그 광활한 땅을 모두 점령해서 살만큼 식솔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할 당시 거느린 식구라야 겨우 70명뿐이었을 정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큰 민족을 이루기까지’는 가나안 땅 여기 저기를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그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175세를 살았던 조부 아브라함(창25:7)과 180세를 살았던 아버지 이삭(창35:28-29)에 비하면 적게 살았지만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험악한 세월’은 자신의 고달프고 쓰라린 과거, 즉 형으로부터 도피하여 외삼촌 집에 살았던 사건(27:41-45), 그곳에서 외삼촌과의 갈등, 딸 디나가 강간당했던 사건, 디나로 인해 아들들이 세겜 족을 살육한 사건, 그리고 아들들이 요셉을 죽이려다 노예로 팔아버린 사건(37:18-36) 등등 고통과 눈물로 얼룩진 많은 악한 날들을 회고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날들이 단순히 고달프고 고통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이루어가시기 위해 베푸신 연단이었고, 그 자신을 믿음의 자손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며 보다 더 거룩해지고 성숙하게 만들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였습니다. 


2.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고백한대로 인생은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가장 합한 왕이었던 다윗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대상29: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는 말은 모두 어느 한 곳에서 영구히 거주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고, 언젠가는 떠날 운명에 처한 ‘임시 체류자’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윗이 인생을 이렇게 비유한 것은 인생이 거하는 이 땅이 그 자신의 소유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영원히 거할 터전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땅의 임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인생은 그 땅의 사용권을 여호와로부터 얼마동안 허락받은 임시 노동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레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25:35)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비록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과 같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나그네임을 고백했습니다. 

(시39: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다윗이 역대상 25:15에서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고 한 고백과 시편 39:12에서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는 고백은 ‘이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으므로 이 땅에서는 생을 계속 유지할 소망이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나그네만이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는 동생을 죽인 가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시 33:5)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창4:9) 나는 모릅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라고 대답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이려는 뻔뻔한 대답이었습니다. 죄를 범한 인생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 회개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기만하려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려고 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강퍅하게 구는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4:11-12)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여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말씀은 가인이 한 곳에 안주치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방랑자, 나그네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가인만이 아니라 그의 부모 아담과 하와 역시 나그네 인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에덴 동산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은 낙원으로 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창3:23-24)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생들은 먹고 입고, 집을 짓고 살기 위해 땀 흘려 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면 저마다 자기 집에 돌아가 쉬었다 아침이 밝아오면 다시 일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며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끝에 역전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빼어난 재능과 능력으로 인기를 누리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남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 방석에 앉은 사람도 있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백년해로(百年偕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좋은 일을 남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웃과 인류에게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재산과 생명을 앗아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짐승같은 인간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70억 인생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 아담은 930세를 살다(창5:5)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흙으로 돌아갔고, 인류 역사상 최장수를 누린 무드셀라는 969세를 살고 죽었습니다. 인류에 대한 홍수 심판 속에 구원받는 노아는 홍수 후 350년 더 살다 950세 죽었습니다.(창9:28-29) 

그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의 향년은 175세였습니다. 착하게 살았던 악하게 살았던,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살았든 그렇지 않았던 사람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면에서 나그네이며 잠시 머문다는 면에서 거류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인생이 되지 못한다면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이’ 소망이 없는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3. 야곱의 70명 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여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그가 애굽에 거주한지 17년째, 야곱의 나이 147세가 되었을 때 임종을 가까워 오자 아들 요셉을 불러 이렇게 유언합니다. 

(창47:29-30)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대로 가나안 땅을 다시 올라가지는 못하지만(창46:1-4)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는 것입니다. ‘조상의 묘지’는 조모 사라가 묻힌 가나안 헤브론 땅을 말합니다. 야곱의 조부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헤브론에 매장했습니다. 헤브론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약속의 땅에 ‘열국의 어미’ 사라를 장사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성취될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바닷가의 모래처럼, 하늘의 뭇별들처럼 번성하여 그 땅에 살게 될 것을 믿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하여금 이 약속의 땅을 계속해서 고대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자신이 죽었을 때에도 그 아들 이삭이 헤브론 땅에 아브라함을 장사했습니다.

(창25:7-10)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야곱이 이러한 가나안을 떠나 애굽에 이주해서 17년을 살면서도 그는 항상 고향 가나안 땅을 늘 그리워하였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살 때에 아들이 국무총리이기에 극진한 대접을 받고 살았습니다.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나그네 땅이라고 늘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고향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육신의 고향은 본래 갈대아 우르였지만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은 그곳을 고향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고향으로 여겼습니다.(창12:1)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가나안 땅, 고향 땅에 가서 살고 싶어했습니다. 야곱은 죽을 때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조부모가 묻힌 곳, 부모님이 묻힌 곳, 그 약속의 가나안 땅을 그리워하면서 자신도 그 고향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400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되어 살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겨우 17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라는 확실한 믿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이 그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옮겨 묻었습니다. 야곱이 죽으면서 유언한대로 행했습니다.(창49:29-33) 

요셉은 야곱의 유언대로 행하기 위해 애굽 왕 바로에게 요청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운명하시면서 ‘내가 죽거든, 내가 가나안 땅에다가 준비하여 둔 묘실이 있으니, 거기에 나를 묻어라’ 하시고,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맹세하라고 하셔서,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였소. 내가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오.” 

바로 왕이 허락하자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묻으러 올라갈 때에, 바로의 모든 신하와, 그 궁에 있는 원로들과, 애굽 온 나라에 있는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안과, 그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안 사람이 요셉과 함께 올라가고, 거기에다 병거와 기병까지 요셉을 호위하며 올라가니, 그 어마어마한 상여 행렬이 볼만했습니다. 장례 의식에는 애굽의 중요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동원된 일종의 국장(國葬)이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총리 요셉의 위치와 그에 대한 왕의 신뢰도가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명령한 대로 아버지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모셔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굴에 장사했습니다. 그 굴과 거기에 딸린 밭은 아브라함이 묘 자리로 쓰려고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사둔 곳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거주하며 110세를 살았습니다.(창50:22) 그리고 자신의 임종이 가까울 때 형제들에게 이렇게 유언합니다. 창세기50:24-25입니다.

(창50:24-25)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요셉은, 자신은 비록 죽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마치 자신이 그리했던 것처럼 일일이 형제들을 찾아보시며 보살펴 주실 것임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창47:11-12)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반드시 이르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행하실 때 자신의 유골을 약속의 땅으로 이장(移葬)하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야곱처럼(창49:29-33) 자신이 죽자마자 유해를 가나안 땅에 안장하라고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훗날 출애굽시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 땅으로 이장토록 당부한 것은 그의 깊은 믿음을 잘 보여 준 것입니다. 히브리서11:22입니다.

(히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즉 그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훗날 그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 그곳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횃불언약,창15:13-21)을 굳게 믿은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겨 장사한 것은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400년만에 출애굽하게 될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야곱의 장례는 증조부 아브라함으로부터 400년 후 이루어질 출애굽 사건을 예표하는 장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해를 출애굽 할 때 반드시 가나안으로 이장하도록 유언한 것은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굳게 믿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과 요셉은 애굽에서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상급인 가나안 땅을 영원한 본향으로 믿고 열렬히 소망했던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400년 애굽에서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할 때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출애굽기13:18-19입니다. 

(출13:18-19)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00년간을 지냈으면서도 결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된 성도들은 ‘가나안’이라는 소망,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를 항상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애굽과 같은 세상에 동화되지 아니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믿음을 깨끗하게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인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나그네처럼 장막에 거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더 나은 본향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히브리서11:9-16을 보겠습니다. 

(히11:9-16)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더 나은 본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신 성도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그네 인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께서 성도 여러분이 영원히 거처할 본향 하나님 나라를 준비해놓았으니 근심하지 말라, 그리고 나그네 인생의 눈물이나 고통 등이 전혀 없는 영원한 집, 본향을 준비하고 그곳으로 성도 여러분을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세상을 나그네처럼 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그네 인생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이 전부인양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고전15:17-19)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떠났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받은 낯선 땅으로 가서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나그네처럼 천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여 세우신 견고한 하늘의 도성,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히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가 되신 성도 여러분(갈 4:28), 믿음의 선진들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을 가리켜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손 야곱 역시 그 자신 ‘조상의 나그네길’을 살고 있다고 고백햇습니다. 인생은 누구이든 모두가 다 ‘나그네’입니다. 무드셀라처럼 세상에서 969년 동안 장기체재하는 나그네가 있는가 하면, 이에 비해 단기체재하는 나그네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비록 천년을 산다 해도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약속을 지키는 데 더디신 분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오래 참으셔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천체는 불에 타서 녹아 버릴 것이며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이 타서 없어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녹아 버릴 텐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천체도 그 열로 녹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의만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깨끗한 생활을 하여 평안한 마음으로 그분을 뵙도록 노력하십시오.”(벧후3:8-14)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생명도 없고 영원한 집도 없습니다. 잠시 거쳐 가는 세상을 나그네와 거류민처럼 사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본향,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벧전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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