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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가진 자의 능력 (히 11: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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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가진 자의 능력 (히 11:23-26)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연초에 어떤 분에게서 받은 문자 메세지가 마음에 와 닫았습니다. 다같이 읽어봅시다. “그리스도가 없는 가슴마다 선교지이고 그리스도가 있는 가슴마다 선교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슴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우리는 선교사입니다. 
그러나 가슴속에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 가슴속에 예수님이 없습니다. 
그러면 비극입니다. 왜죠? 그 앞에는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혹시 걱정하시는 분이 계실까 해서 다시 강조합니다. “내속에 예수님이 계신지를 어찌 아는가?” 걱정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제가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그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인임을 믿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주인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거하십니다.   

문제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삶이 변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던 삶이 예수님이 주인인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삶의 모습도, 행동도, 생각도, 말도, 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치 못해서 180도 변화되지는 안 되었어도 조금씩이라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내가 내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셨기에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주인이니 가치관도 변했습니다. 
그러니 자동으로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교회를 다니는데도 이런 변화가 없다면, 그래서 믿기 이전과 지금이 똑같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으면 어떻게 변화될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의 삶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인물을 나열 했습니다.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모세를 등장시켜서 믿음이 뭔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크게 쓰신 인물 모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그가 갖고 있는 믿음은 그의 삶에 어떻게 나타났나요? 
모세는 잘 아시는 대로 히브리인으로 태어나 나일 강에 버려졌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막힌 섭리로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죽이려던 사람들 속에서 보호를 받으며 40년간 왕궁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의 핏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포를 구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차에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리고는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80세 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 백성을 구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40년간 지도자가 됩니다.  

이 모세! 그가 가졌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요? 
그가 가진 믿음은 어떤 능력을 갖고 있었나요? 
 

1. 부모의 믿음을 본받은 믿음입니다. 

부모의 믿음은 자식의 믿음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부모가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자식들도 대부분 그 믿음을 본받습니다. 그러기에 부모 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어떠냐에 따라 여러분 자식들의 앞날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아므람과 요게벳입니다. 
그들 부부는 이미 ‘미리암’이라는 딸과 ‘아론’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셋째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해야 할 것인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왕 바로 왕이 이스라엘 사람이 자식을 낳을 때 딸이면 살려두지만 아들이면 하수에 던지라는 명령을 공포한 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낳았을 때 아들을 죽여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하고 그리 같은지요? 예수님도 태어나자마자 헤롯의 손에 죽을 뻔 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피신을 갔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23절을 보세요.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모가 믿음으로 자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태어났을 때 그 부모가 보기에 그 아이가 아름다웠습니다. 

여기“아름다운 아이”라는 단어를 어떤 번역에서는 “특이한 아이”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영어 성경에서는 “적합한 아이”로 번역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부모가 믿음으로 보기에 보통 아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특이하고 적합한 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을 숨겨 길렀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믿음이었습니다. 아이를 숨겨 기른다는 것이 적발되면 온가족이 몰살당할 위험이 있음에도 그렇게 길렀던 것입니다.   

아동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며 어린아이는 3달이 중요하답니다. 
이 석 달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얻고 모유를 먹으면서 기초 체력을 갖추게 되는 중요한 기간이랍니다. 모세도 엄마젖을 먹으며 세 달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하나님께 자기들의 생명을 맡겼듯이 그들 부부도 믿음으로 갈대 상자를 만들어 아이를 넣어 하수에 띄우며 맡겼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식은 누구의 자식입니까? 
여러분 자식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둘 다 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자기 소유로 알고 그렇게 양육합니다. 믿음으로 양육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부모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가 자식입니다. 자식들은 여러분의 신앙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러니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엄마 아빠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은 자식들이 잘 합니다. 

문제는 올바른 신앙은 본받고 잘못된 신앙은 따르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니 그대로 따라갑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을 여러분 자녀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대로 따라 살아도 됩니까? 부모의 신앙은 자녀들의 앞길에 축복의 도구가 될 수도 있으나 반대로 막대한 악영향을 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2. 합당치 않는 부귀와 명예를 거부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세요.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모세는 뒤늦게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공주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결단합니다. 아무리 자기를 길러준 사랑과 성의가 고마울지라도, 그리고 그 공주의 아들이라는 왕족 신분이 아무리 귀하고 소중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단호히 거절하고 포기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왜죠? 그 부귀와 명예가 자기에게는 합당한 것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단호하게 포기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부귀 명예에 목숨을 걸고 삽니다. 

이 부귀영화, 그리고 명예권세만 있으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붙들려고 열심히 달려갑니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잠간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을 모릅니다. 그런데도 전심전력하며 움켜잡으려 하다가 병들고 실패하고 나서는 후회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부귀 하나님이 주시는 명예는 누려도 됩니다. 
그런데 합당치 않는 부귀영화 명예 권세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그것이 모세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세속적인 것으로 오염시키려 합니다. 
예수님이 금식기도 할 때 마귀가 유혹한 것이 뭡니까? 식욕, 명예욕, 권력욕입니다. 이것은 부귀영화 명예 권세를 통해 누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어떻게요? 믿음으로요. 어떤 믿음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깨끗게 하려는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이 귀히 쓰십니다. 딤후2:21절을 아시지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엎디어서 나를 더럽히려는 유혹에 넘어지지 말고 자기 심령을 깨끗하게 하시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올바른 선택을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매사에 선택을 하며 삽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하루에도 수 백 번 선택을 하며 삽니다. 밥을 뭘 먹을까 부터 시작해서 차를 뭐를 타고 직장에 갈까? 그리고 점심도 뭘 먹을까? 일을 어떻게 할까? 누구를 만날까? 수업이 많은 선택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보기에 올바른 선택으로 보여 졌는데 그것이 잘못된 선택일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잘못된 선택처럼 봤는데 그것이 결국 바른 선택일 때가 많습니다.   

모세도 선택을 했습니다. 
공주의 아들로 편하게 왕궁에서 살까? 아니면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을까? 그런데 그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한 선택을 했습니다. 25~26절을 보세요.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여기 “더 좋아하고”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처럼 선택을 해야 할 기점에서 더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기준이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왕궁에서 낙을 누리며 사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선택을 했습니다. 할렐루야!  

왜 이것이 믿음의 선택일까요? 
애굽에서 누리는 낙은 왜 죄악의 낙일까요? 그것은 바로 신을 태양신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를 하는 죄악에서 나온 낙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바로 왕을 태양신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섬기는 왕족과 귀족은 우상 숭배를 통한 섬김을 받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낙은 죄악의 낙이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이것을 알고 단호히 거절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거절할 것을 잘 거절해야 큰 믿음입니다. 무엇을 거절해야 합니까? 우리도 세상에 악을 거절해야 합니다. 분명 죄악인데 잠시 잠간 눈을 감고 악을 행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참 믿음은 거절을 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 살기가 좀 불편해집니다. 
예전에는 별 문제 없던 작은 죄악이 커 보입니다. 옛날에는 아무 양심의 가책이 없이 살았는데 예수 믿으니 그 악이 커보여서 불편합니다. 

술 먹는 것, 담배 피우는 것,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바로 서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옛날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내속에 들어오고부터는 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편하게 사는 것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마귀의 궤략인 줄 모르면 넘어갑니다. 아니면 적당히 손을 잡고 타협을 합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죄악의 손으로 타협하자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많이들 넘어갑니다. 그래서 교회는 나오고 교회 오면 “장로님!” “집사님!” 소리는 듣는데 하나님 앞에 얼굴을 바로 들지는 못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모세처럼 딱 거절해야 합니다. 단호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미련 없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성경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적가치관으로는 절대로 거절이 안 됩니다. “적당히 한잔하는데 뭐가 문제냐?” “남들 다하는데 왜 그게 문제냐?” 하면서 거절을 못하면 나중에는 그 사탄에 포로로 잡힙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심령은 어떻습니까? 혹시 포로로 잡혀 끌려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계시지는 않나요? 요즘 대기 오염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답니다. 우리 심령도 오염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스스로가 자신의 오염도를 대략은 짐작하리라고 믿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심령의 오염도가 제로상태가 되도록 우리 몸을 주님께 드려야하겠습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세요. 

공주의 아들임을 거절하기까지 갈등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세상의 죄악을 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더 좋은 선택인지를 알았습니다. 

모세는 세상의 영화보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더 사랑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능욕 받는 자기 백성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애굽에 대한 배신이요 역적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원수 됨보다 세상 원수 됨을 택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 되지 말고 세상과 원수가 되어 세상의 유혹에서 만들어지는 죄악을 철저히 끊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무궁한 생명의 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4.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26절 끝을 보세요.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입니다. 그 상주시는 분을 바라 보셔야 합니다. 
히11:6절을 아시지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상일까요? 이 상은 보상해 주시는 상입니다. 세상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사랑하면 그런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죽도록 충성하면 상을 주십니다. 

이 상은 현세에서도 주시고 하늘나라에서도 주시는 상입니다. 그러기에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핍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상을 주신다고 했던 것입니다. 

마5:11~12절입니다.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상 주심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게 능력 있는 성도가 되는 비법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잖습니까? 그런데 어찌 불공평한 것을 그냥 두시겠습니까? 

이랜드회장이신 박성수 회장님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대학 4학년 때 루게릭이라는 불치병으로 죽어갔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절망 속에서 날마다 성경 읽고 기도하며 바른 신앙을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2년 후 하나님께서는 그 질병을 말끔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셔서 대 그룹의 회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사회와 이웃을 위해 기부한 돈이 수천억 원입니다. 우리도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26절을 다시 보세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본문은 분명 모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을 받았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이야기를 하면서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겪은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아직 그리스도 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왜일까요?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죄악의 땅에 살던 우리를 구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되게 했습니다. 

그러니 모세의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신앙이야 말로 참으로 귀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헌신, 우리의 봉사. 우리의 예배는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것입니다. 

얼마 전 양영자 선수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탁구의 양영자 선수를 아시죠? 

예전에 우리교회에도 간증하러 오셨지요. 이 양영자 선수는 금메달 포상금으로 평생 100만원씩 나옵니다. 그런데 그 연금을 시골의 어느 노인 목사 앞으로 돌려놓고 몽골에 선교사로 가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중국 내몽골로 가서 성경 번역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양선교사가 금메달리스트이기에 국내에 있으면 어디서나 환영 받고 영웅대접 받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부귀영화 명예 권세 다 내려놓고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뭐 때문에요? 믿음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믿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그 믿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믿음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그 믿음은 능력이 있는데 왜 우리는 힘들어 하고 있나요?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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