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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약을 세우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왕하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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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세우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왕하 13:23)

(왕하 13:2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학생들이 다 떠나간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신사 한 명이 서 있었습니다. 잠시후 청년 한 명이 급히 운동장으로 들어와 그 신사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신사는 어릴적 친구와 나이 오십이 되면 이 운동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오늘이 그 날이어서 친구를 만나러 나온 것이었습니다. '저, 혹시 어릴적 친구를 만나러 오셨나요?' 청년이 물었습니다. '예, 그런데 당신은....' '저의 아버님이 이년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 어릴적 친구와 약속을 했다면서 오늘이 되면 대신 만나 달라고 저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사는 친구의 죽음이 슬펐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지켜준 친구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사람 사이에 한 번 언약을 맺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갈라디아서 3:15) 어릴 적 맺은 약속이 나이 오십이 되는 날까지 기억되고 또 지켜지는 것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쉽게 약속을 합니다. 약속은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불신하게 만듭니다. 한 번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만 다른 사람들로 부터 신뢰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이 고난을 당하여 괴로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을 때 그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하시며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이나 슬픔을 외면하거나 모르는 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그만큼 하나님께 더욱더 사랑스런 존재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욱더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비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합니다. 

그러므로 견디기 힘든 고난 중에 있다고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며, 우리에게 찾아오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제하시고 자신의 무한하신 사랑의 팔로 우리를 감싸주고 보호하며 위로하여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그들 스스로 형벌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가장 큰 형벌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적의 수중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왕하 17:18-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꾼의 손에 넘기시고 마침내 그의 앞에서 쫓아내시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결코 돌아설 기미가 보이지 아니하는 북 이스라엘을 당장에 멸망 시키지 않은 이유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운 언약 때문이라고 합니다. 
 
폴랜드의 귀족 출신인 캐서린은 스웨덴의 왕자 존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스웨덴 왕궁에서 권력 다툼이 생겨, 이에 휘말린 존은 형 에릭에 의해 평생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에릭이 국왕으로 있는 동안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감옥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캐서린은 급히 왕이 있는 스톡홀름으로 달려갔습니다.  캐서린은 왕께 나가 간청했습니다. "폐하, 저를 제 남편이 있는 감옥으로 보내 주십시오”“감옥은 햇빛을 못 보게 되네. 그대는 그것을 알고 그런 간청을 하는가?" 캐서린이 말했습니다. "폐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무죄이건 유죄이건 간에 존 왕자는 저의 변함없는  남편입니다." 왕은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캐서린에게 말했습니다. "짐의 생각으로는 그대의 남편이 감옥에  보내진 순간부터 그대는 그와의 언약에서 풀려났다고 여겨지는데..." 그러자 캐서린은 자기의 결혼반지를 빼어 왕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폐하, 부디 이 반지에 새겨진 문구를 읽어 봐 주십시오." 왕은 <오직 죽음으로써만>이라는 글귀를 읽은 후 캐서린을 설득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은  캐서린을 존이 있는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그 후 캐서린은 17년 동안 감옥에서 그의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어둠 가운데서 보냈으며, 국왕 에릭이 사망한 후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아스의 부친인 여호아하스의 재위 때에는 이스라엘은 아람의 하사엘에게 완전히 유린당했고 많은 영토도 빼앗겼으나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 힘이 있었거나, 하나님 앞에 그들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이 무엇입니까? 그 자손으로 하여금 번성하고 창대케 하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신 언약입니다. 하지만 이는 실로 까마득히 오래전의 일이고 무엇보다도 이미 오래전에 이러한 언약 관계를 이스라엘 자손이 스스로 깨어 버렸습니다.
언약을 어기면 쪼갬 곧 죽음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어진 언약에 나타납니다. 

창15장에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시고 자녀가 없음을 한탄하는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가나안을 가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시자 아브람은 '무엇으로 알리이까'하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보증으로서 또한 아브람과 맺은 언약의 영원성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번제물을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새를 제외한 모든 동물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았습니다. 

당시 언약을 맺는 쌍방은 희생 제물을 둘로 나누어 그 언약을 체결하는 표로 제물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이는 만약 계약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이 언약을 어기면 희생 제물과 같이 쪼갬이 된다는 엄숙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도 때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벗어나고 싶은 유혹에 부딪히게 됩니다.
가난한 청년 두 사람이 성공을 다짐하며 평생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자고 언약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두 청년 중 한 사람은 목사가 되었고 한 사람은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사업가가 된 친구는 사업이 번창하자 처음에는 맹세한 대로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러나 수십 억 원이 넘는 큰돈을 벌게 되면서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친구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여보게 친구, 내가 젊은 시절에 자네와 맺은 언약을 취소하고 싶네. 내가 10만원씩 십일조를 드릴 때는 조금도 아깝지가 않았는데 이제 몇 억 원을 십일조로 드려야 하니 아까운 마음이 든다네.” 

그러자 친구 목사님이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친구가 수 십 억원을 버니까 탐심이 생겨서 십일조를 안 하려고 합니다. 도로 10만원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십일조를 많이 하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오는 탐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저녁 해질 때 깊이 잠든 중에 하나님의 현현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바로의 압제를 받다가 400년 후에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하시고 다시 언약을 세워 선포하시기를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주시기로 하신 땅의 이름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펜실베니아의 창설자인 윌리암 펜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매우 친했다합니다. 인디언들에 대한 호의와 친절 때문이었다합니다. 어느 날 인디언들은 농담으로 하루 동안에 도보로 통과하는 모든 지역을 다 그에게 주겠다고 말했다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윌리암 펜은 해가 지평선에 떠오르자마자 걷기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걸었다합니다. 그의 여행이 끝나자 인디언들에게 찾아와 그 땅을 달라고 요청했다합니다. 인디언들은 그 말을 진지하게 실행한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가 통과한 땅들을 모두 주었다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필라델피아 시의 일부분이 된 것이라 합니다. 윌리암 펜은 단순하게 인디언들의 말대로 실행함으로서 광대한 땅을 차지하였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기쁘게 주시며 한 말씀이라도 어기는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후에 이삭에게 반복되었습니다.
창26장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가나안에 흉년이 들자 그랄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이는 치욕스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삭을 지키시고 복 주셨습니다. 이삭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유목 생활을 하던 이삭에게 흉년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요, 절망이었습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고 강우량이 부족하여 마실 물조차도 없다면 이것은 사람이나 가축 모두가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입니다. 그리하여 이삭은 가나안을 떠나 애굽 땅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시하는 땅에 거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가나안의 전경 지대인 그랄에 거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시고 복하여 주셨습니다. 이 땅에 네가 살면 내가 너와 함께 동행하여 주고 네게 복을 주겠다는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창 26:3-4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지정하여 땅에서 농사를 지은 그 해에 이삭은 백 배의 추수를 하였고 복을 주시므로 번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이삭을 만류하시고 가나안에 거하게 하시고 네가 거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에게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너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도 반복되었습니다.
창28에 야곱이 아버지의 명령대로 아내를 얻기 위해, 또 어머니가 조언한 대로 형 에서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집을 떠나 의지할 곳이 없게 된 야곱은 부모가 지정해 준 하란 땅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 에서에게 쫓기는 몸으로 거의 뛰다 시피해서 벧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에 있어 있을 수 없는 종교 체험을 이곳에서 하게 됩니다. 야곱은 하란까지 가야 하는 머나먼 여행길에서 동반자도 없었고 쉴 곳도 없었습니다. 벧엘에 이른 야곱은 날이 어두워지자 한 곳에서 돌로 베개 삼아 들판에서 잠을 자면서 외롭고 슬픈 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밤에 야곱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정든 집을 떠나 절박한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꿈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에 꿈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방법으로 잘 나타나는데 특별히 족장 시대에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외로움과 고뇌에 지쳐 있는 방랑자 야곱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엄청난 위로와 기쁨이었습니다. 벧엘의 꿈의 내용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가 있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있었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의 미래를 보장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기업의 복을 야곱에게 하셨고, 후손을 티끌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창 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리고 때가 되매 야곱에게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벧엘에 올라가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야곱은 자기 가족뿐 아니라 모든 종들에 이르기까지 이방 신상 즉 모든 우상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자신을 정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복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일대 신앙을 개혁한 야곱 가족은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벧엘에 도착한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치며 이전의 모든 하나님의 복을 감사하고 칭송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감사하고 찬양하는 야곱을 위해 여러 약속들을 해주셨으며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밝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창 35: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이렇게 반복된 언약이기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이 언약은 물질의 복과 가나안 기업의 복을 포함됩니다.

(창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 13: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노아 홍수 이래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두 번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증표로 노아에게 무지개를 주셨습니다(창 9:11∼17). 흔히 우리에게 무지개는 아름다운 것으로, 더 나아가 희망의 한 상징처럼 인식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 나오는 음악에서도 "무지개 너머 어딘가엔… 그곳은 당신이 꾸는 꿈들이 실현되는 곳이에요"라고 했고, 우리 동요에도 무지개는 희망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무지개, 곧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한다고들 합니다. 우리의 삶에 무지개가 뜨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밖에 있는 무지개를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 마음속에 스스로 무지개를 띄워 작은 희망을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무지개는 비가 그친 뒤 물방울이 많은 대기에 햇빛이 비칠 때 나타나는 반원 모양의 호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빛의 굴절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무지개는 노아 홍수 후 더 이상 물의 심판이 없다는 언약의 증표입니다. 동양 사상으로는 오색영롱한 무지개라 하기도 합니다.  마야족의 경우도 다섯 가지로 인식하며. 영어권에서는 여섯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무지개의 색깔은 무수히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무지개의 색깔을 일곱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지개의 일곱 빛깔이 각각 지닌 의미의 약속도 눈길을 끕니다. 빨강(정열) 주황(인내) 노랑(평화) 초록(휴식) 파랑(희망) 남색(겸허) 보라(사랑) 등이라 합니다. 모두 우리 삶 속에서의 지혜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양 사상으로는 일주일을 하루씩 나눠 볼 때 일(해) 월(달) 화(불) 수(물) 목(나무) 금(쇠) 토(흙)로 규정하는 역시 삶의 기본 요소들입니다.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이 지니는 의미와 뜻은 약속을 받고 지키는 사람의 몫이라 합니다.

약속은 약속한 이와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의 결단으로 이뤄집니다.
인간에게 무지개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십니다. 그분이 신실함으로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때 그 약속은 복이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언약의 핵심은 메시아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나타나리라'는 복이었습니다.

(창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자기의 구속받은 자로 삼으신 것과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열국의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전달케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귀중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연단시키시고 좀더 견고히 세우시기 위해 그를 시험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귀한 아들 이삭까지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위를 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칭찬해 주시고 이삭 대신 예비한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도록 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할 것이라고 복을 약속 하시고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시며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받은 복은 먼저 큰 민족을 이루게 되는 복으로 영적인 면에서 아브람의 후손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복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성도들의 수적인 증가가 이루어져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으로 아브람을 통해서 온 인류가 복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아브람의 후손을 통하여 출생할 메시야가 주시는 구원의 복이 만인에게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음을 밝히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갈 3:15-16)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타락한 이래로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진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나 능력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무능력한 인생들이 되었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긍휼하심으로써만 그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극히 자비로우신 분이셔서 우리의 죄악대로 심판하여 벌하지 않으시며 오래 참고 기다리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소망과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이제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이 언약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언약'을 특별히 말씀하는 이유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이 언약에 기초하여 자신의 신실하심과 긍휼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말씀 안에 있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여성도는 의혹이 떠오를 때면 그 의혹에 관해 말해 주는 성경구절을 찾고 그 구절을 인용하여 반복해서 자신에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녀가 낙심해 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맞아 들였을 때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고 확신하느냐?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며들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경에서 요일 5:14-15 구절을 찾았다합니다.

이것을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 5:14-15)이라는 말씀을 베껴 쓰고 그 밑에 날자를 쓰고 나는 나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시기를 원한다.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계획과 나의 삶을 위한 주님의 뜻과 합당하므로 들어주실 줄 믿는다.'라고 적었다합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침실 거울에 붙여 놓고 의혹이 생겨날 때 마다 그 종이쪽지를 가르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합니다. 

'이것이다! 나는 내가 거듭났음을 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셨음도 알고 있다. 내가 바로 그날 하나님 아들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했으니 다시는 방황하지는 않는다.' 또한 어떤 일에 죄책감을 느낄 때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다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그의 죄를 사하여 주셨는 가에 대하여 의심이 생기면 성경 요일 1:9를 적었다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그리고 그 아래에 그녀가 고백한 죄를 쓰고 날짜와 '할렐루야 내 죄가 사하여졌다'고 적어 놓았다합니다. 점차로 그녀의 의심은 사라져 깨끗해졌다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음으로 진리로 받아들이면 약속하신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맺은 언약을 지금도 기억하고 이루십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되 언약을 세우신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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