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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누구의 소유입니까? (사 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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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의 소유입니까? (사 43:1-7)

스코틀랜드의 한 숲속에서 개 한 마리가 발견 됐습니다. 그 개는 아주 굶주려 있었고 병든 더러운 개였습니다. 유기견이라고 하죠.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또는 주인이 잃어버린 개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개를 보고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경찰관이 지나가다가 그 개를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목걸이에 이름표가 하나 달려 있는 것을 보았어요. 밥스라는 이름이 달려있습니다. 자세히 봤더니 그 밥스라는 이름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 개는 영국 왕궁에 속한 개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 개가 왕궁에 속한 개라니 경찰은 그 개를 껴안고 경찰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그 개를 깨끗하게 씻어줍니다. 음식을 먹입니다. 병을 치료해줍니다. 그리고 회복 됐을 때 그 개를 껴안고 영국 국왕에게 가서 개를 다시 전달하게 됩니다. 영국 국왕 부부가 에딘버러에 휴가를 왔다가 개를 있어버리고 그 개를 찾기 위해 몹시 애쓰고 있었던 차에 그 개를 찾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게 여기고 또 그 경찰관에게 특별한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자 여러분 개 한 마리도 누구의 소유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개라면 아마 그마만한 대접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개는 적어도 국왕의 개였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찮은 물건도 누구의 손을 거쳤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 이 펜을 보통 플러스 펜이라고 합니다. 가격이 아마 1000원이 안될 겁니다. 만약에 제가 이걸 쓰다가 여기 앞에 있는 성도님께 드리면 성도님 받긴 받지만 아마 이것을 보화처럼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사님이 주신 거니까 잘 쓰다가 다 쓰면 버리겠죠. 

그러나 만약 이 플러스 펜이 유명한 아브라함 링컨이 생존에 사용하던 플러스 팬이라면, 물론 그 때는 플러스 팬이 없었겠지만, 아마 이것을 쉽게 방치해 놓진 않을 것입니다. 누가 가져갈까봐 금고 속에 넣어 놓고 다시보고, 왜? 이게 상당히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아브라함 링컨이 쓰던 펜이라면 아마도 지금 시가로 경매에 나가면 몇 천 만원은 족히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자 누가 쓰던 팬이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누구의 소유냐 하는 겁니다. 

예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권투선수 무함마드 알리, 아주 유명한 사람이죠. 이 사람이 사람들에게 서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십년후에 그 서명이 경매에 올라왔는데 그 싸인한 종이 한 장이 얼마냐, 우리 돈으로 한 장에 170만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제가 서명을 하면 여러분 천원주고 사시겠습니까? 아마 천원주고도 안 살거예요. 목사님 서명이 뭐 필요해요. 그런데 이 무함마드 알리의 서명은 170만원짜로 경매가 되고 있는다는거예요. 

더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껌을 씹다 버리면 그거 누가 주워갑니까? 아무도 안 주어가지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부부가 있습니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라는 유명한 배우 부부가 있는데, 이 부부가 스위스에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남편이 지루해서 껌을 씹다가 껌을 뱉었데요. 뒤에 있던 소년이 그 껌을 받았어요. 그러더니 그것을 잘 보관해 가지고 경매 싸이트에 올렸는데 굉장한 값이 나갈 거라고 사람들은 추측합니다. 

여러분 내가 씹던 껌 버리면 누가 줍겠어요? 그 지저분한 걸. 그러나 유명한 사람이 씹던 껌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 이게 누구를 거쳐갔느냐, 누구의 소유냐, 이것이 그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예요. 가치라는 것은 소유에 의해서 달라집니다. 똑같은 양말, 똑같은 모자, 똑같은 양말이지만 이게 장동건이 쓰던거냐, 이병헌이 쓰던거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하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 이제까지 물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저와 여러분의 가치는 어느정도가 될까요. 만약에 우리의 가치를 한 100점으로 친다면 여러분은 자신을 한 몇 점 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번 옆에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은 몇 점 정도 돼 보이십니까? 아마도 자존감이 높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분들은 나는 90점짜리다, 100점짜리다라고 말할 수 있을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분들은 그렇게 높은 점수는 안주더라구요. 

제가 학생들 수련회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앞에 앉은 학생에게 물어봤어요. “애야 우리의 가치를 100점 만점을 메겨 본다면 너는 몇 점 정도 되는 것 같니?” 그랬더니 그 학생이 잠시 생각하더니, 좀 장난스럽기는 해요. 1점이요, 그러더라구요. 어떻게 자기 자신의 가치를 1점이라고 줄 수 있을까?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던 자기는 또 5점이래요. 물론 뒤에 있는 친구들은 70점, 80점짜리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친구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마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학교를 가봐도 그렇게 인기가 많은 것 같지 않고 집에서도 부모님이 그렇게 자기만을 그렇게 사랑하고 안껴주지 않기에 나는 별로 가치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여러분 그게 자존감이거든요. 여러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 자존감이 올라가요. 그러면 자신에 대한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거예요. 제가 어릴 때 저희 중학교 교훈이 ‘나는 귀하다’. 나는 귀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가치 없게 여긴다는데에 문제가 있어요. 내 가치는 몇 점쯤 될까?

그러면 가치라는 것은 무엇에 의하여 결정되느냐? 누구의 소유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의 소유일까요? 그래서 오늘 저는 설교의 제목을 “당신은 누구의 소유입니까”라고 정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 의하며 사람들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어둠에 속한 자와 빛 안에 거하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있는가 하면 사단에게 속한 자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자 오늘 우리 이사야서 43장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아멘! 

자 하나님을 우리를 향해서 너는 누구의 것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것이라. 내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것이라.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의 소유인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굉장히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국왕에게 속한 개도 그렇게 값진 대우를 받는데 만물의 주인이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의 소유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너는 내것이라 말씀하신다면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생각해 봐야 되요. 

오늘 여기 보니까 야곱아, 이스라엘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야곱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이름을 가르키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르킬 때 야곱이라고 흔히 부릅니다. 그 야곱이라는 이름이 나중에 얍복강가에서 뭘로 바뀌죠? 이스라엘로 바뀌어 집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한 민족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바로 나의 소유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내가 너를 구속하였으니 너는 내것이라. 너는 두려워하지말라.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민족입니까?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저 애굽 땅에서 버려진 그들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세웁니다. 너희는 내 말대로 살아라. 그리면 나는 너희들을 축복할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언약이 맺어졌어요. 

그런데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 된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그랬어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주인으로 모셔들이면 그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만약 여러분 집에 누가 방문했다면 그 분을 대문을 열고 여러분의 집 안방 거실로 모셔 들이면 그를 영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계속 대문 밖에 세워둔다면 영접이 아닙니다. 거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냐 아니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집 밖에 세워두고 있느냐 아니면 여러분의 가정 안에 여러분의 심령 안에 모셔 들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주님 이제는 제가 제 인생의 주인 아닙니다. 주님이 저의 주인이 되어주십시오. 저는 주님께 순종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영접한 사람이예요.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가 맺어진 줄로 믿습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오늘 바로 언약의 백성들을 향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 이 구속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가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값을 치루고 물건을 산 것을 구속이라고 말합니다. 성서적으로 말하면 비싼 값을 치루고 다시 데려오는 것, 그것이 바로 구속입니다. 죄악에 빠지고 사단의 노예되었던 우리에게 아주 값진 대가를 치루시고 우리를 다시 불러 주셨습니다. 데려오셨습니다. 

누구에게서? 마귀에게서. 그래서 그 일을 위해서 바로 하나 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맞바꾸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의 자리로 던져 놓으시고 우리를 다시 생명의 자리로 건져 내서 맞바꾸셨다! 그러니까 우리는 굉장히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갚 주고 사셨어요. 그럼 우리는 누구의 거예요? 하나님의 거예요. 우리를 값을 치루고 사셨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너희는 내 것이라고 주님은 당당히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너는 내 소유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존귀한 존재이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우리를 가리켜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누구의 소유된 백성이예요? 하나님께 소유된 백성이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존귀한 자들입니까? 그러면 과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 누리는 특권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를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자 오늘 우리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 물과 불이라는 것은 위험과 위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험한 가운데 처 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 홍수를 생각해보세요. 노아 방주에 탄 사람들만을 구원 받고 그 외 사람들은 다 홍수에 의해서 휩 쓸려 갔습니다. 그 얘기는 바꿔 말하면 오늘 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한 자들만이 예수의 피로 씻김을 받은 사람만이 보호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속에서도 하나님은 노아 가족을 보호하셨어요.

여러분 또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200만의 인구가 홍해를 건너 갈 때 하나님은 그 홍해 가운데 함께 하셔서 그들을 물 가운데서 건져내셨습니다. 여러분 홍수가 나서 이렇게 집들이 떠내려가는 것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물이 얼마나 무서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물 가운데, 풍랑 치는 물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세요. 물이란 너무 무서워요.

여러분 일본에 쓰나미가 왔던 것을 우리는 2년 전에 기억을 합니다. 그 쓰나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상상이 잘 안 돼요. 여러분이 고속도로에 차를 몰고 달려가면 보통 100km에서 120km쯤 달릴거예요. 좀 하나님 나라 빨리 가고 싶은 분들은 함 150km 쯤 달리더라구요. 빨리 가고 싶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200km 이상 못 달려요. 그런데 여러분 쓰나미의 속도가 어느 정도냐? 약 750km라고 합니다. 차도 200km로 달리면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750km로 밀려오니까 그것을 피할 사람이 없어요. 물이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그런데 물 가운데서도 우리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 불 가운데서도.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모세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에 심판이 임할 때 거기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 던져졌지만 우상에게 절하지 않다가! 그런데 하나님이 그 가운데 함께 하셨어요. 아니 세 사람을 꽁꽁 묶어 집어넣었는데 불 속에 몇 명이 지나다녔어요? 네 명이 걸어 다녔어요. 그럼 그 한 명이 누구예요? 그 한 명은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신 거예요. 다시 불러 나왔더니 세 사람만 끌려 나왔어요.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묶었던 밧줄만 그대로 불에 타서 없어졌어요. 물과 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1절에 보니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5절에 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기 죽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권인 것입니다.

어제 권사님 한 분이 감사한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교회 오셔서 교역자들에게 아주 점심을 맛있게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 음식을 대접해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실은 감사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의 부인께서 우울증이 찾아 오셨어요. 그래서 우울증이 심하니까 치매가 되었어요. 그래서 걱정이 되었는데 이 권사님이 믿음이 있어요. 3년 동안 부부가 앉아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대요. 한 번도 빼 놓지 않았대요. 매일 한 시간씩 예배를 드렸대요. 그 예배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너를 보호하신다는 이 확신을 가졌어요. 놀랍게 3년 동안 예배를 드렸더니 그만 치매가 깨끗하게 나은 줄로 믿습니다. 그것 참 놀라운 일이죠. 그래서 너무 감사해서 이렇게 교역자들을 대접해 주신다. 참 너무 감사한 어른 이셨어요.

여러분 보세요. 예배란 그와 같은 거예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지켜 주심을 확신 할 때 그 치매고 우울증이고 다 떠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울증은 봉사 안하는 사람이 우울증이 와요. 움직이기 싫고 가만히 앉아서 그저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이 찾아와요. 가만히 생각하면 내 처지가 너무 외로운 것 같고 너무 재미없는 것 같고 헛된 일 한 것 같고 보람도 없고 그러면 우울증이 와요. 

그러나 열심히 예배드리는 사람들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우울증이 찾아 올래야 찾아 올 수가 없어요. 바쁜 사람들은 우울증이 안 와요. 한가 할 때 우울증이 찾아 오는 거예요. 오늘 우리 권사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울증을 물리치고 치매도 물리치셨어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그 자녀를 보호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의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 그랬어요. 자 오늘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아멘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내 눈에 정말 보배로운 존재다. 너는 내게 존귀한 존재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아니 너의 생명 대신 다른 사람의 생명을 내어줄 정도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것을 공동 번역으로 읽어보면 이런 표현입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나의 귀염둥이요. 나의 사랑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 보배롭다는 말을 쉽게 표현하자면 보석이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너는 내게 보석 같은 존재야’ 여러분 따라해 보세요. “나는 보석 같은 사람입니다.” 아멘이 적은 것 보니까 별로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은 보석 같은 존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세요. 적어도 네가 나의 자녀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면 바로 보석 같은 존재다!! 하나님 앞에 보석 같이 여기는 존재. 

옆의 분들과 함께 이렇게 인사합니다. “당신은 보석 같은 분입니다.” 여러분 옆의 분들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보석이라구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보석 같은 존재라고 인정하셨다니까요! 여러분 보석에는 흙이 묻어도 역시 보석이예요. 아니 개똥이 묻어도 보석은 보석이예요. 만약에 보석에 개똥이 묻으면 그냥 버리고 가시겠어요? 나는 개똥이 묻어도 그냥 주어서 갈 것 같아요. 그 똥만 좀 털면 그 보석이 얼마나 귀한데!!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보석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신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보석같이 보배롭게 여기신다. 여러분 자신을 보석같이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불행질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어요. 여러분 아내들도 남편에게 사랑 받는 아내들은 당당한 것입니다. 비록 가난해도 사랑받고 인정받는 아내들은 당당해요.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도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한 아내들은 가족으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뭔가 열등감이 있고 기가 죽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주 너무 보석 같이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기만 하면 너무너무 좋아하셔!! 제가 지나가다가 한 번 어떤 애기 엄마가 차를 기다리면서 아기를 이렇게 물끄러미 행복한 얼굴로 쳐다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아기가 자고 있는데 자기가 봐도 너무 예쁜가봐?! 그러니까 그냥 자는 아기에게 볼을 비비고 뽀뽀를 하고 그래요. 그랬더니 그래도 못 참겠나봐? 막 애기 귀를 깨물고 그래요. 너무 예뻐서! 여러분 어린 아이가 예쁘면 깨물고 싶지 않아요? 얘!! 저는 남의 집 아이 깨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우리 손주 나오면 깨물어야 되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예쁘면 깨물고 싶어요. 그렇다고 뭐 아플 정도로 깨물면 안 되지요. 너무 예쁘면 깨물고 싶은 거예요.

한 번은 공항에서 어떤 어머니가 딸을 기다리는데 딸이 나오니까 한 몇 년 만에 오나 봐요. 딸이 퉁퉁해요. 얼굴도 그리 예쁜 얼굴이 아니에요. 딸을 만나더니 엄마가 얼마나 좋은지 달려가서 얼굴을 붙들고 아이고 예쁜 딸 왔구나. 그런데 몸이 홀쭉해졌네. 내가 보기엔 살을 좀 더 빼야하겠는데 엄마의 눈에는 홀쭉하데요. 그 딸이 그렇게 예뻐 보이는 거예요. 부모의 눈에는 자식이 예뻐 보이는 거예요.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사랑한다잖아요. 너무 예뻐서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볼 때는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몰라. 그저 어쩔줄을 모르셔 하나님은 자! 성경이 뭐라고 이야기 하는지 보세요. 

스바냐 3장 17절 말씀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멘.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예요.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볼 때마다 너무 너무 좋아하셔요. 여러분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가치 있게 여기신다면 내 인생은 정말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나를 몰라줘도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신다면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에요. 그래서 우리도 자녀들이 너무 귀하면 금지옥엽 같은 내 새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금지옥엽이 무슨 말이냐 하면 금 같은 가지 또 옥 같은 잎사귀를 금지옥엽이라고 해요. 정말 자녀가 너무너무 소중할 때 우리는 금지옥엽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에게 적어도 이런 확신이 있다면 나의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삶에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때로는 병들어도 때로는 좀 가난해도 실패해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아요. 왜? 하늘 아버지가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줄로 믿기 때문에 종종 우리는 마귀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에게 소리칩니다. 뭐라고 소리쳐요? ‘너는 실패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제가 종종 이야기 합니다만 예언에 나왔던 드라마 중에 ‘제빵왕 김탁구’ 라고 있는데 거기 탁구를 무지 미워하는 구마준이라는 친구가 나와요. 이 김탁구를 보고 ‘너는 쓰레기 같은 놈이야.’ 물론 극 중의 대사이지만 저는 그것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더라고요, 오늘도 마귀는 우리들에게 ‘너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너는 실패자라고 별 볼일 없다고 너는 뭐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너는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고, 네가 사라져도 찾을 사람 없다고 그런 마귀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우울증에 빠집니다. 그리고 자살을 택합니다. 이게 참 무서운 이야기에요. 

여러분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거 사회적으로 너무 충격 큰 거 아시죠? 우리는 베르테르의 효과다. 젊은 베르테르의 죽음 앞에 수 많은 젊은 사람들이 동반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최진실이 죽으니까 불과 열 몇 일 사이에 천 여명이 전국에서 죽었다고 해요. 정답인 애가 죽으니까 한 700명이 따라서 한달 안에 죽었다고 합니다. 이게 베르테르의 효과입니다. 

여러분 그들은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지 못했어요. 이제 중요한 거예요. 마귀는 오늘도 우리에게 속삭여요. 너는 실패자야. 너는 죽어도 그만이야.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고 계세요. 아니야. 너는 내 사랑하는 보석 같은 존재야. 나의 보배로운 아들이야. 나의 사랑하는 딸이야. 나는 너를 너무 너무 사랑한다. 나는 너 땜에 너무 너무 기뻐해. 하고 주님은 말씀하세요. 

여러분 오늘 마귀의 소리를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너무나 귀하게 여기셔요.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우리를 되찾기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 값 대신 내어주신 거예요. 우리는 에수 그리스도 만큼 존귀한 자녀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은 특권이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회복시켜 주신다 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성경 말씀 5, 6절 말씀 보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아멘.

오늘 사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이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입니다. 그들은 포로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어요. ‘내가 너를 보배롭게 여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다시금 반드시 돌아오게 할 거야.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애굽과 구스와 스바도 너희를 대신하여 희생물이 되게 할 거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동서남북으로 흩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고레스 칙령 바벨론의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 해방하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B.C 538년 이스라엘 백성은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회복입니다. 

비록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실패 가운데 있을지라도 질병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이 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의 소유냐? 그리고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곧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멘.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칠판에 <뿌리>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고 한 아이가 나와서 자기 집안의 내역 족보를 소개합니다. 우리 조상 가운데는 이조 판서를 지낸 분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가정은 아주 훌륭한 집안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내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큰 무역회사의 과장님으로 계십니다. 우리 가정은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은 가정입니다. 가정을 자랑하고 들어갑니다. 

아이들이 몇 명 나와 자신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오는 아이를 보니까 고아였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아니 저 아이는 부모가 누군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이야기로 자기의 복보를 소개할까?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선생님은 생각했어요. 내가 오늘 저 아이의 가슴에 내가 오늘 못을 박고 있구나. 선생님이 깜짝 놀랐어요. 이 아이는 말릴 틈도 없이 강단위에 올라갔고 의젖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저는 오늘 제 아버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를 낳으신 아버지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그 하나님께는 많은 자녀가 있는데 저는 저의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자녀입니다. 하며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핑 돕니다. 아이가 당당하게 소개를 마치고 내려올 때 선생님은 달려가서 그 이이를 꼬 껴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맞아. 너의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지. 너는 바로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지.’ 하면서 그 아이를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당당함을 가지고 우리가 이 땅의 왕자로서 공주로 살아간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나님은 자녀를 반드시 지키시고 축복하시고 사랑하시고 회복시키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을 갖는다면 하나님 자녀의 의식을 갖는다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어요. 

그래서 다니엘 같은 이는 비록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우상을 거절하고 우상에게 주었던 음식을 거절하고 그는 채식을 선택했습니다. 왜 하나님 자녀의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 같은 이는 형들에게 미움 받고 버림받았지만 그는 원망과 불평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당당함을 가지고 그가 있는 곳에서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니까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다윗같은 이는 목동이었지만 그는 어린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란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물맷돌 몇 개를 가지고 거대한 장수 골리앗과 대적하여 그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 뒤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위대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그분이 우리를 보호하신다면,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무엇이 두려울까요? 오늘 이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이 새해를 승리하며 살아가는 자녀의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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