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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게 하셔서 복 주시는 하나님 (왕상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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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게 하셔서 복 주시는 하나님 (왕상 17:8-16) 

본문은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으로 온 백성이 고통을 당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사는 한 과부에게 명하셔서 엘리야에게 음식을 주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르밧에 갔을 때 성문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나에게 물을 달라. 그리고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 여인이 대답합니다. “저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밖에 없습니다. 제가 지금 나뭇가지를 줍는 것은 그것으로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음을 기다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는데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엘리야의 말을 들은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대접하고 났더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본문이 주는 교훈 몇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3년 6개월간의 가뭄 속에서도 엘리야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뭄이 시작되자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서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얼마 후에 시내가 마르게 되니 우물이 깊은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엘리야를 보내셔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엘리야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자연적인 능력으로 채워주시지만 자연적인 방법으로 안 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라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이 40년입니다. 광야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으로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광야를 횡단 하던 백성의 수가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장정만 60만 명이 넘었습니다. 여자들과 20세 이하의 남자들까지 합치면 족히 200만 명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0년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끼도 굶기지 않으시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새벽이면 하늘에서 이슬처럼 만나가 내리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거두어서 먹게 하셨는데 그 맛이 꿀 섞은 과자 같았습니다. 마실 물이 없을 때에는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을 적셔주셨습니다. 신기하게도 광야 40년 동안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신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인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풍성할 때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환경이 좋으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풍성할 때도 그리고 어려울 때도 모두 다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환경이 좋을 때보다 오히려 환경적으로 어려울 때 더욱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어려우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가 결혼을 하고 두 번 쌀이 떨어지고 수중에 돈도 떨어지는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서 공급해주셨습니다. 한 번은 방학동 삼은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아침에 마지막 쌀로 밥을 해서 먹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 쯤 교회에서 쌀 40kg를 주었습니다. 또 한 번은 교회를 개척한 후에 집에 쌀이 떨어지고 수중에 돈도 떨어졌는데 교회 청년이 우리 집에 쌀 20kg 두 포대와 고기 몇 근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 청년이 군대에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쌀과 고기를 사주고 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자녀들의 필요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마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하신 후에 우리들에게 이런 교훈을 주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0-32)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2.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길르앗에 우거하던 엘리야에게 거기를 떠나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하니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릿 시냇가로 갔습니다. 또 9절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니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엘리야는 가뭄 중에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자기가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였습니다. 만약 엘리야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자기가 결정했다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의해서 결정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유혹을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노아의 성공은 인간적인 상식이나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서 방주를 만든 결과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승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과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명령대로 순종했습니다. 독자 이삭을 드리라는 명령에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씀대로 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세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믿는 우리들에게는 신령한 헌법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은 헌법이 기준이 되어서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판단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차원에서 성경은 모든 일의 옳고 그름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성경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대로 사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요 16:13에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 17:17에 답이 나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성령님은 우리들을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엘리야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설교시간마다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세 가지 방법 중에 기준이 되는 것은 역시 성경입니다. 성령께서도 성경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고 올바른 하나님의 종도 성경 말씀 안에서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했는데 성경에서 벗어났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또 어떤 설교자의 설교내용이 성경에서 벗어났다면 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어도 내 이성을 내려놓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이 어려운 말씀을 하셔도 우리는 목숨을 내놓고라도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심게 하십니다. 
   
본문의 사건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를 위하여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엘리야를 위하여 과부를 희생시킨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과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종을 섬겼더니 그것이 과부에게 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를 복주시기 전에 먼저 주의 종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먼저 심게 하신 것입니다.
   
주의 종을 섬기는 것이 복입니다. 마 10:40에 보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종과 주님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뭄 중에서 엘리야만 보호하시려고 계획을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는 시돈의 사르밧 과부도 보호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를 가뭄과 흉년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하여 먼저 그녀로 하여금 심게 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명령과 엘리야의 요청대로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대접했습니다. 그랬더니 가루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갈 6:7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 때 항상 하나님 자신이 만들어놓으신 법칙대로 역사하십니다. 자연적인 일들도 하나님의 법칙대로 역사하시고 초자연적인 일들도 하나님의 법칙대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자연적인 일들에도 적용되고 초자연적인 일들에도 적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 중에 기억해야 할 것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말씀대로 심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으면 때가 되면 거두기 때문에 심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고 좋지 않은 것을 심으면 좋지 않은 것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심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을 때는 때를 따라 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네기를 봄에 합니다. 그러면 가을에 거두게 됩니다. 때에 맞지 않게 심으면 모가 죽거나 열매가 부실합니다. 때에 맞게 심어야 열매가 실하고 풍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사가 때가 있지만 우리들은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순종해서 그 때에 심어야 합니다.
   
본문 9절에도 보면 사르밧 과부가 그냥 심은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시기 전에 이미 사르밧 과부에게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었던 것입니다.
   
저는 부흥회를 가서 헌금을 하려고 하면 가끔 ‘이 교회에서 말고 우리교회에다 드리자’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비전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기도하면 하나님은 거의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다. 인색한 마음 갖지 말고 드려라” 저는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심는 것입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사람인지라 저도 모르게 그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곤합니다. 그것이 혼의 잠재력입니다. 그럴 때 저는 한 박자 늦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심을 형편이 되지 않아도 울면서라도 심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주의 종을 섬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가물어서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가루로 아들에게 떡 하나 만들어주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과부는 담대하게 주의 종을 대접합니다. 과부는 심을 형편이 되지 않았으나 울며 씨를 뿌린 것입니다.
   
시 126:6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본문에 나오는 과부의 처지가 바로 울며 씨를 뿌려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말씀대로 심었더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16절에 보니 가루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때로는 없는 중에 심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말씀을 붙잡기보다 환경을 붙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인간적으로 볼 때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종자는 먹지 않습니다. 비록 풀뿌리를 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는 상황이 되어도 씨앗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심을 형편이 되지 않지만 울면서라도 심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심을 형편이 되지 않아도 울면서라도 심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심은 것보다 많이 거두게 하십니다. 
   
13절에 보니 엘리야가 요구했던 떡은 작은 떡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엘리야에게 작은 것을 심은 것입니다. 물론 그 여인이 느끼는 가치는 큰 것이지만 말입니다. 작은 것을 심었더니 하나님은 그 여인에게 많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심고 거두는 법칙 중에 우리를 신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조금 심었는데 심은 것 보다 더 풍성하게 거두게 하십니다.
   
눅 6:38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보면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이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것보다 많은 열매를 주시는 분입니다.
   
인류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70억의 인구를 만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씨앗으로 아담과 하와를 주셨습니다. 그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70억이 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창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믿음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구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23억이라고 합니다. 넘치게 열매를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심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심음으로 인하여 풍성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후 9:10에 보면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심을 씨앗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 씨앗으로 심게 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심은 것보다 많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희 교회를 보니까? 중간 중간 힘들고 어려운 과정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저는 심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심은 것보다 더 주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심지 않고 모았다면 지금만큼 되었을까요? 심은 것을 다 모았어도 지금만큼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심을 마음을 주시고 순종하게 하시더니 심은 것보다 더 많이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심은 종류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본문에서 여인은 엘리야를 섬기기 위하여 가루와 기름을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심은 대로 가루와 기름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은 종류대로 거둔 것입니다.
   
왕상 18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비가 오는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물을 심었습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송아지를 잡아 올려놓고 그 위에 12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그 때가 어떤 때입니까?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았던 때입니다. 그때 물은 금보다 더 귀한 것인데 12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거두게 하셨습니까? 먹구름이 떠오르게 하시더니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게 하셨습니다. 12통을 심고 몇 천만배도 더 되는 물을 얻은 것입니다. 풍성하게 거두되 심은 종류대로 거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엘리야에게 심기 위하여 자식을 포기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아들에게 먹이려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 순종하여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아들을 지켜주시고 아들을 살려주십니다.
   
본문 뒤에 보면 이 여인의 아들이 심히 위독하여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아들을 살려서 여인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 자기 침상에 누이고 그 아이 위에 세 번 엎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의 혼이 돌아와서 아이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여인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기 위하여 아들을 먹이는 것을 포기했더니 하나님은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던 것입니다. 심으면 심은 종류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을 심어야 할까요? 이 시간 우리가 심어야 할 것을 일일이 열거한다면 이 설교시간 내내 그것만 말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가 심는 것을 정리해서 4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생각이 심는 것입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생각대로 됩니다. 생각을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렘 6:19입니다.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유대인들의 잘못된 생각이 재앙을 불렀던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도 재앙도 생각의 결과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 결과 생각의 열매를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좋은 생각을 하십시오.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고 믿음의 생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이 심는 것입니다.
   
둘째, 언어가 심는 것입니다.
   
말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말은 능력이 있어서 그대로 됩니다. 말에 능력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대로 역사를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민 14:28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말, 선한 말,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깨비 방망이]라는 동화가 생각나네요. 도깨비 방망이로 두드리면서 “금 나와라 와라, 은 나와라 와라” 하면 금이 나오고 은이 나오는 것처럼 말에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도깨비 방망이는 허구이지만 말의 능력은 실제입니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즉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말의 힘입니다. 말이 심는 것입니다.
   
셋째, 행동이 심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 역시 씨를 뿌리는 것이기 때문에 행한 대로 돌려받게 되어 있습니다. 시 62:12에 보면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시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따게 하십니다. 물론 이것 역시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행한 대로 갚으시기 때문에 행함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때가 되면 악인은 악의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고 선인은 선한 열매를 따게 될 것입니다. 행동이 심는 것입니다.
   
넷째, 물질이 심는 것입니다.
   
고후 9:10에서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은 물질을 심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이웃에게 물질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심는 것이며,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은 물질로 풍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질축복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록펠러입니다. 록펠러는 평생 4,982개의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한 번은 기자가 록펠러에게 물었습니다. “미국 내의 그 많은 사업가들이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재투자해도 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고 그 많은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봉헌을 했는데도 어떻게 세계 제1의 부호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까?” 록펠러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제학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씨는 반드시 풍성한 결실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록펠러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 법칙에 철저히 순응했고 그 결과 엄청난 재정의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과 사람에게 열심히 물질의 씨앗을 심읍시다. 그래서 재정의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심게 하셔서 풍성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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