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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약의 표시 (출 4: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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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표시 (출 4:18-31) 

1. B.C.1530 년경, 당대 최고의 강대국 애굽의 왕자로 군림했던 모세가 동족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쳐죽이고 모래밭에 파묻은 사건이 폭로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피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미디안의 목자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고 장인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어 약 40년간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나이 80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인도하여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소명의 말씀입니다.

(출3:1-10)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렇게 해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능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애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출4:16-17)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모세는 애굽으로 떠나기 앞서 장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출4:18)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애굽에서 도피한 지난 40년 동안, 자신이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일가족이 몰살당했을 수 있었고, 수많은 동족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예감 등으로 인해 모세는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한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 동족들과 고난을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탈북자들 가운데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내부의 비밀을 처음 공개했고, 그것을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대한민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기여를 했다.’는 면에서 대한민국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보훈증서를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훈장을 받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동유럽 유학생들, 외교관이나 체육인, 공작원 출신들 그리고 정치범 출신들이 탈북내지는 망명하자 그 성분 좋고 머리 좋은 청년들이 목숨 걸고 대한민국으로 갔다는 자체가 큰 충격이었고 그로 인해 북한 엘리트층의 동요는 아주 심각했다고 합니다. 

외교관 ‘1호’로 망명한 고영환씨는 처음으로 김정일의 ‘기쁨조’ 실태를 폭로하면서 김정일 체제를 흔들었고, 유도 영웅 김창수씨도 정치적 목적에 활용되는 북한의 스포츠 실태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정치범수용소 출신인 안혁씨도 베일에 감춰진 정치범수용소를 전 세계에 알렸고 이 역시 북한 내부는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충격이 컸던 만큼 북한에 남은 가족들은 처절한 보복을 당했습니다. 

인민군 총정치국 고위 간부였던 유학생 조승군씨의 부친은 자살했고 가족은 모두 수용소로 추방당했습니다. 고영환씨의 가족은 연로한 부모들까지 모두 요덕수용소에 끌려갔고, 수용소를 폭로한 안혁씨의 가족은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이런 가족들 때문에 평생 죄인의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도 아닌 평화 시기에 인민을 수없이 굶겨 죽이고 정치범수용소에서 수십만명을 학살한 김정일 정권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처절하게 싸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황장엽씨였습니다. 그의 직계 친척 150명이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끌려갔고 1500여명의 지인이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추방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모세 역시 자신의 애굽인 살해 사건과 도피로 인해 자신의 친척들과 동족들의 안위(安危)가 극히 염려되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40년 전 당시 자신의 사건으로 인해 고난당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과연 살아 있는지 여부를 알고자 애굽에 가려고 했을 때 그의 장인 이드로는 단지 모세가 골육지친에 대한 정(情)을 잊지 못하여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하고있다고 생각하여 평안히 가라며 인사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4:19)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애굽으로 가라는 소명을 받았지만, 그리고 정작 장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칠 수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는 말씀으로 그를 안심시키면서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독려하신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그 지팡이,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습니다. 양을 치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로 불리우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러 왔다고 말할 때 만일 그들이 나를 믿지 않으며 내 말도 듣지 않고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네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입니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것을 땅이 던져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것을 땅에 던졌더니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그 앞에서 피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저 뱀의 꼬리를 잡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손을 내밀어 그 뱀을 잡으니 다시 그것이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에게 나타난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이니라.”  

그리고서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네 손을 품에 넣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손을 품이 넣었다가 꺼내 보니 그 손이 문둥병에 걸려 눈처럼 희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 보니 손이 전과 같이 정상대로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너를 믿지 않고 처음 기적에 관심을 갖지 않을지라도 두 번째 기적은 믿을 것이니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아라. 이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니라.’(출4:1-8, 17) 

모세가 애굽에 가기를 두려워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보여주신 것이 ‘지팡이’와 자신의 ‘손’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팡이’로 부르며 그 지팡이를 손에 잡은 것입니다. 본래 모세가 양떼를 치던 그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해서 애굽으로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처자식들을 나귀에 태우고 떠나는데, 손에는 단지 양을 치던 그 지팡이, ‘하나님의 지팡이’만을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하나님의 지팡이’만을 가지고 애굽으로 떠났습니다. ‘민족의 해방을 가로막는 애굽 왕 바로의 모든 세력은 그 지팡이 앞에 굴복되어질 것’을 예견하게 하는 ‘하나님의 지팡이’만을 손에 잡고 애굽으로 출발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네가 애굽에 돌아가면 내가 너에게 보여 준 기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할 것이니 그가 백성을 놓아 주지 않을 것이니라. 그때 너는 바로에게 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일러 주어라. 이스라엘은 내 맏아들이니라.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놓아 주어 그가 나를 섬길 수 있게 하라고 했는데도 너는 거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 맏아들을 죽이겠노라.”(출4:21-23) 


2.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한 지도자로 세워 모든 것을 준비하게 하여 애굽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제 모세가 식솔들을 거느리고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가는 도중 하나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없이 갑자기 모세를 죽이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 십보라가 재빨리 날카로운 돌을 주워 자기 아들의 포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참으로 당신은 나에게 피의 남편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려 주셨는데 그때 십보라가 ‘피의 남편’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할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기 위해 지도자로 모세를 세우시고 모든 것을 준비하게 하여 애굽으로 출발하게 하시고 무슨 이유로 모세를 죽이려 하셨겠습니까? 이유는 모세가 자기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시고 맺은 언약의 표시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창12:1-3)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는 말씀으로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이 100세가 다 되도록 자식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창17:4-8)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음과 같은 언약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17:9-14입니다. 
(창17:9-14)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을 ‘할례받은 민족’이라 부르며 이방인들과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1) 첫째로 ‘할례’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표(the sign of the covenant)입니다. 누구든지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대로 그 언약의 자손이 되어 언약에 포함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갈3:6-9) 그러므로 할례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의 표시입니다. 2) 둘째로 할례는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표시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3) 셋째로 할례는 언약을 맺은 백성과 언약을 받지 못한 이방사람을 구별하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훗날 소년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17:26)...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할례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 영원히 기억해서 지켜야 할 표시입니다.(엡1:3-6) 더 나아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선택된 백성임을 영원히 기억해서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할례받은 백성은 이방 사람과 구별되어 성결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비록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언약을 배반한 것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과 무관한 인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세운 지도자일지라도 그를 죽이려 하시자 그의 아내 십보라가 재빨리 그 뜻을 깨닫고 날카로운 돌칼로 아들에게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이 때 할례를 받은 아들은 둘째 아들 엘리에셀인데 애굽으로 가는 여행 중 낳은 아들로 생후 8일이 지났음에도 할례를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를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여행 중이라는 생각에 할례 의식을 잠시 소흘히 여겼던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서기 전에 자신의 가정에서부터 하나님과의 언약,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한편 이 사건 이후 십보라는 아들들을 데리고 미디안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고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모세가 그의 처와 더불어 두 아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던 중 아들의 할례 문제로 인해 하나님에 의해 죽을 뻔한 위험을 당하자(출4:24-26), 다시 그들을 장인 이드로에게 보낸 것입니다. 즉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당한 모세는 그의 처와 아들들의 생명마저 염려한 나머지 그들을 안전한 처가로 되돌려 보내었던 것입니다. 

(출18:1-4) 모세의 장인이며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 보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함이요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3.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이렇게 육체적인 할례를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 할례 의식을 행하게 하신 그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할례 행위 자체로서 아브라함의 특권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으로 오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점차 할례의 의미가 타락하게 되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할례의 참뜻을 따라 살라는 경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10:12-16입니다.

(신10:12-16)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아무리 육체적인 할례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지 아니하면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육체적인 할례에 그치지 말고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진정한 할례받은 민족,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마음의 가죽을 베라’는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경고했습니다. 예레미야4:3-4입니다.

(렘4:3-4)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형식적으로 회개하지 말고 ‘묵은 땅을 갈아 엎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에 파종하듯’, 우상숭배와 온갖 부정부패 등 악행을 회개와 순종이라는 쟁기로 갈아서 완전히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바로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는’ 진정한 할례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방인으로 남아 있는 한 육체적인 할례 의식만으로는 언약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서 육체적인 할례를 받았을지라도 여전히 그 마음과 생활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으며 언약의 축복에서 제외될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4.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표시인 ‘할례’가 그 의미가 변질되고 타락하게 되었을 때, 율법을 완성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육체적 할례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고 할례의 참된 의미와 축복을 ‘세례’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구약의 할례에 대해 이렇게 그 참된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할례를 받은 것이 유익하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받은 할례는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본래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할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에다가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보내신 성령을 따라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롬2:25-29)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축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15:5)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창15: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러므로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러한 인정을 받았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은 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기 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할례를 받은 후에 된 일이 아니라, 할례를 받기 전에 된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할례를 받지 않고도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으니, 이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의로움을 인정받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또한 할례를 받은 사람의 조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할례를 받은 사람의 조상만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가졌던 믿음, 하나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롬4:9-13)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아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6-9을 보겠습니다.

(갈3:6-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따라서 사도 바울은 자신은 비록 유대인으로서 육체적인 할례를 받았지만 그 보다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할례를 두고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했습니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골로새서2:11-12입니다. 

(골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다시 사셨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세례(침례)식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하여 예수와 함께 자신을 물속에 장사지내는 것을, 물에서 나오는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옛 사람은 물속에 장사되었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옛 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예수와 함께 새 사람이 되어 다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옛 사람, 죄인은 세상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살아났습니다. 죄에 종노릇하던 죄인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탄이 소유를 주장할 수 없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예수 믿는 여러분을 예수 십자가의 피값주고 산 것이라고 말합니다.(롬6:3-5) 간단히 말해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5. 예수 믿고 세례받으심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되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 믿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할례받은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지라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행함이 없기 때문에 생명이 없습니다.(약2:19,26) 성도 여러분의 할례, 세례가 효력을 나타내어 약속받은 언약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고전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사도 바울이 성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갈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성도 여러분의 세례가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더불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옛 사람의 생활을 갈아엎으시고,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고 날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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