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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의 아름다운 열매 (마 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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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아름다운 열매 (마 4:18-22)

어느 주일에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이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날따라 처음으로 안내를 맡은 집사님이 친절하게 어디에 앉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맨 앞줄에 앉고 싶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집사님이 “할머니, 맨 앞줄은 별로 안 좋으실 걸요. 목사님이 설교도 잘 못하고 말씀이 좀 지루하거든요. 아마 금방 졸릴 거예요. 그냥 차라리 뒷자리에 앉으세요.”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아세요?”, “아뇨. 모르겠는데요.”, “내가 이 교회 목사의 어머니입니다.” 그 말에 안내를 하던 집사님이 너무 창피했습니다. 어머니 앞에 자식 흉을 봤으니 창피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잠시 후 조심스레 묻습니다. “혹시 제가 누군지 아세요?”,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아, 그럼 천만 다행입니다.” 하고는 얼른 자리를 피했답니다. 

여러분들도 가만히 보면 예배 때마다 앉는 자리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그 자리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편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고 그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갈 때에 행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는 한 그것을 위해서 선택하고 그것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아갑니다. 

이처럼 행복이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기본 요소는 무엇일까요? 흔히 세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일할 것이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 명대의 유학자요 정치가인 [왕양명] 이 늘그막에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오죽하면 굶는 것, 남에게 냉대 받는 것보다도 한가로운 것이 더 고통스럽고 아프다고 말했겠습니까? 둘째는 소망할 것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만약에 소망이 없다면 지금의 이 어려움을 이길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훗날에 누릴 기쁨, 즉 소망이 있기 때문에 고난도 견디는 행복이 있는 것이거든요. 셋째는 사랑할 것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아쉽게도 사람은 누구나 늙어 갑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의욕도 떨어지고 기운이 쇠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손자, 손녀가 있는 분들이 행복해 합니다. 보고 또 보고 싶어서 못 견딥니다. 어떤 집사님은 자식들 키울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손자, 손녀들을 보면서 느낀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육신은 늙어가도 사랑할 대상이 있으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내 존재의 의미와 행복을 결정하는 내면적 철학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내 존재란 어떻습니까? 신앙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제 1단계의 초보적 신앙은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믿습니다. 자기 욕망, 자기 소원, 자기 출세, 자기 건강을 위해서 곧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욕망이 원인이 되고 자기 소원이 동기가 되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제2단계는 남을 위하여 예수 믿는 수준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남을 위해 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여기서 신앙이 한 단계 더 높아지면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 믿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다다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오로지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하여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의 출발하는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들을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는 사명을 주십니다. 

이제 이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전도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도자로서의 부르심이 그 의미에 깊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 그러면 전도라는 사명이 들어 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는 이 말씀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먼저, 전도의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디냐는 것입니다. 바로 현장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이 가장 좋은 전도의 장소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그 형제와 또 다른 제자들 야고보외 요한을 부르실 때에 그들의 일하는 현장에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거주지, 여러분이 일하고 있는 직장 그 모든 곳이 바로 전도의 장소입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전도를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중에 어떤 권사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일하는 사무실에서 어떤 이를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속으로 ‘아, 전도의 삶을 사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삶의 자리가 바로 전도의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도의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엉뚱한 말씀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 일과 관계있는 말로 부르셨습니다. 고기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고 하는 말만큼 쉬운 이해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혀 낯설지 않는 말씀을 하시면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맞춤형 전도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의 놀라운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지혜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전도란 어떻게 거부감 없이 그 사람에게 다가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하여 얼마나 생각하고, 노력하고, 연구해야 하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충 교회가자고 권해보고 싫다고 하면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위하여 이리도 생각해 보고 저리도 연구해 보고 기도하는 노력이 있고서야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올 해 전도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며 연구하며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를 먼저 알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 수고가 있어야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는 말씀의 또 다른 의미는 오늘 우리들 전부를 어떤 형태로든지 주님의 일꾼 삼으시려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무슨 일에든지 제자가 되어야합니다. 가장 먼저는 이 말씀은 그대로 전도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일생 동안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전도하는 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특히 올해는 우리가 정말 한 사람 이상씩 전도해서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구원 받는 자들이 많아지면 땅 끝까지 이르러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2013년 전 세계 71억 인구 가운데 기독교 인구가 23억 5,400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독교 인구 중에 천주교인이 12억 명, 51%로 가장 많고 우리가 속한 개신교인은 18.6%인 4억 3,900만 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독립교회, 정교회, 성공회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우리가 전도해야할 대상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아 있습니다. 먼저는 가까운 교회주변과 이웃, 직장에서 전도하고 멀리는 해외 선교사를 통하여 세계를 향하여 전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갖가지의 능력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모두에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는 말씀에는 거부할 수 없는 각각의 사명이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고, 그리할 때 그 능력을 더 높은 차원으로 들어서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교사들에게나 구역장들에게는 “주를 위해 열심히 가르치라.” 는 말씀이고, 찬양대에게는 “주를 위해 찬양하라.” 는 말씀입니다. 또한 모두에게 하나님의 일은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물고기를 잡던 그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에는 본래의 그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켜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을 하나님 앞에 드려서 사용하기만 하면 그 능력이 배가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무슨 능력인지는 무르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 내가 평생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믿고 살았던 자기 능력에 한계가 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너무나 일찍, 생각지도 않은 때에 찾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위해 내어 놓지도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해 보지도 못하다가 이런 날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우리의 능력이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 내어 놓을 때 가치가 있고 그 능력이 배가 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는 말씀이 결국 전도에 대한 주님의 목적이자 우리의 사명이라면 부지런히 그물질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물질이란 끊임없이 전도에 열정을 가지는 일일 것입니다. 올 한해 마지막에는 전도의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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