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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들은 누구인가? (요 1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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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누구인가? (요 17:6-11)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6-11)

17장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제사장의 기도문입니다. 6절에서 19절까지는 두 번째 부분으로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기도해주신 제자들은 누구인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9) 주님이 특별히 기도하신 제자들은 누구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명칭이 많습니다.  신자, 교인, 성도, 그리스도인, 제자, 예수쟁이.  이런 명칭들 가운데 가장 부담 가는 칭호가 바로 제자입니다. 신자, 교인, 성도, 다 좋은데 제자라는 말은 선뜻 붙이지 못합니다. 제자로 부를만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비록 적고 초라한 무리들이지만 이들이야말로 주님이 목숨 걸고 부르신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통해서 과연 제자란 어떤 사람들인가를 깨닫고 주님이 위하시는 참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은 누구인가?

첫째로, 세상에서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시고 하나님 소유로 삼으신 자들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6)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16) 왜냐하면 하나님이 택하신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의 소유권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본래 소유권은 성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9) 그런데 그 소유권이 아들에게 양도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6절) 

우리는 누구나 다 본래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셨으니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이 생존시키시니 하나님 소유요, 하나님이 부르시면 떠나야만 되는 존재이니 하나님 소유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우리가 아무리 ‘내 인생은 나의 것’ 하면서 큰 소리 쳐도 실제로 내 것은 아닙니다. 부모도 자식도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데는 도리가 없습니다. 김일성도 스탈린도 사담 후세인도 하나님이 목숨 내놓으라 하시니 다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그 소유권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공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유하셨다고 다 하나님 소유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전국민의 43%는 무신론자입니다. 우상 숭배자도 많습니다. 하나님께 소유된 것을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제자란 바로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자기 소유로 불러 낸 사람들입니다. 겉모양은 세상 사람들과 똑 같지만 소속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신 사람과 하나님이 없는 사람!  마귀의 영에 속한 사람과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  
  
11제자들은 갈릴리의 초라한 시골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어부나 품꾼들입니다. 그들은 나사렛의 무명한 목수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자 따랐습니다. 3년 반 동안 열심히 따른 그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모습을 그들은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낙심하면서 문을 닫고 모여 있었습니다. 겉보기에 너무나 초라하고 시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진정한 소유가 된 영광스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합니다. 이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요, “세상에서 불러 낸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한 주님의 제자라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실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내가 잘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결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중이 여기세요. 우리는 세상을 사는 동안 무수히 많은 선택과 유기에 부딪칩니다. 싫든지 좋든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 당하고 버림받습니다. 내가 황인종으로 태어난 것, 내가 어떤 부모에게 태어난 것, 나의 혈액형, 나의 국적, 내가 함께 사는 배우자, 나의 자녀들, 남자와 여자, 성품, 직업, 병들고 죽는 것 등등.  어느 하나도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인생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선택으로 나는 주님의 제자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선택을 가장 소중이 여기시기 고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제자들은 주님을 통해서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8)  
  
제자들은 주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메시아 구주이심을 전해들은 사람들 입니다. 이들은 학교를 제대로 나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유학 가서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들으면서 유식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공회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본래 무식쟁이였는데 어떻게 유식해졌을까?(행4:13) 

비록 문법을 모르고 문학을 몰라도 그들은 유식한 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확실히 알고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식이 뭘까요? 형이 상학입니까? 예술적 감각입니까? 법학이나 철학입니까? 자연과학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합니다.(잠9:10) 

사도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자신이 기왕에 알고 있던 모든 율법의 지식이나 철학적 지식을 다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논리적으로 고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씀의 능력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지식이요, 영생하게 만드는 지식이요, 안식과 만족과 기쁨과 위로와 모든 축복을 주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문 앞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 붙였습니다. 기하학은 몰라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면 영혼이 죽고 지옥에 떨어집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복음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6절 말씀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고 합니다. 이름을 나타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인격을 보여줬다는 말입니다. 요즘 자칭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1992년 10월 28일 종말이 온다고 떠들어 댑니다. 제자들이 받은 계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알리는 계시입니다. 이런 계시는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하십니다. 주님의 모든 교훈들은 아버지께 받은 것들입니다. 산상 수훈, 천국 비유, 제자론, 용서와 화해, 종말에 관한 말씀이 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행동 하나 하나가 다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소경을 고치고, 중풍병자 문둥이를 고치고, 베데스다의 병자를 고치고, 바다를 잔잔케 하고, 성전에서 제물 파는 자들을 쫓아내고, 마태의 집과 삭개오의 집에서 잡수시고, 나사로를 살리신 모든 일들이 다 주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제자들이 받은 계시는 곧 우리에게 구원 진리입니다. 구원 진리를 성부는 성자에게 주셨고, 성자는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성경 기록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전달해 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성경 계시에 의존하여 믿음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성경은 신앙과 삶에 대하여 충분한 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제자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제자들이 받은 성경 계시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았다면 분명히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셋째로, 진리이신 주님을 영접하고 믿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8)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를 믿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식과 신앙을 혼동합니다. 교리를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예배 절차를 알고, 교회 제도를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요즘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비판한다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절대로 아닙니다. 비행기를 설계하고 만들 만한 지식이 있다고 해도, 비행기에 자기 몸을 싣지 않는 사람은 어디도 갈 수 없습니다. 농사의 비법을 제아무리 많이 알지라도 씨를 뿌리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의학적 지식이 제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자기의 몸을 의사의 손에 맡기지 않는 사람은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지식과 신앙은 바로 그런 관계에 있습니다. 아는 것을 믿을 때에 비로소 신앙이 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의 부조리가 많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의 논리는 공기가 오염됐으니 숨을 쉬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정치 안합니까? 불경기가 됐다고 경제활동 안합니까? 학교가 부패해졌다고 자식 교육 안 시킵니까? 가정불화 많다고 결혼 안합니까? 불량 식품 많다고 식사 안합니까? 왜 하필이면 영혼의 신앙 문제에 관해서만 구실을 붙입니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면 생명이요,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구실 붙여서 하나님이 진리요, 그리스도가 진리라는 엄연한 사실을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부패한 것은 내 자신이지, 하나님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길입니다.  이 길로 오세요.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히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55:1-3)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6-7)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마11:2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마22:8-9)  
  
길이 준비되어 있는데 굳이 딴 길을 고집하지 마세요. 언젠가 목욕탕에 불이 났어요. 소방차가 달려가서 고가 사다리를 창문에 걸쳐 놨습니다. 목욕탕 안에 있던 사람들 중에 챙피해서 가만히 있다가 타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체면 불구하고 벌거벗고 사다리 타고 내려옵니다. 왜요? 목숨 건질 길이 거기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는 공회원 신분을 무릅쓰고 밤중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찾아 왔습니다. 여러분 이 핑계 저 핑계 마시고 주님을 믿으세요. 사회적 신분이나, 소유가 무슨 소용입니까?  지식이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영생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주님께 영혼을 맡기고, 생명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삶과 생명과 영혼까지 모두를 예수께 맡긴 자들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여러분은 교인이 아니라 생명을 맡긴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18) 제자란 주님께서 세상에서 불러낸 자들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주님께서 세상에 보낸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불러냄과 보내심! 거기에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끝 날의 완전한 천국에 이르렀다면 우리는 다시 보냄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세상 끝 날이 이르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천국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아직도 세상에 더 살아야 합니다. 지구상에는 65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들을 하나님 품으로 불러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먼저 부르신 제자들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저는 외딴 섬에서 캄캄한 밤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밤이 되자 등대에 불이 켜졌습니다. 항해하는 배들에게 이 빛은 항구로 가는 길을 안내합니다. 그러나 이 등대가 깊은 산속에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야 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비취는 빛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안내하는 빛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있는 곳은 음식이 썩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다 썩어빠진 세상입니다.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쉽게 썩지 않도록 도전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교리적으로 이 세상에 있는 교회를 전투적 교회라고 합니다. 천국에서 완성될 교회는 승리적 교회요 영광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지상에 있는 한, 전투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전투 요원들입니다. 내가 속한 모든 처소, 모든 분야에서 썩지 않도록 투쟁하세요.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죽은 물고기가 되지 말고,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 물고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하나님께로 안내하고, 세상의 소금이 되어 부패를 막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인류 역사 속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셨듯이, 우리는 이 역사 속에 남아서 주님이 하시던 일을 계속해야 될 제자들입니다.


제자로 사세요

제자란? 첫째로, 하나님이 세상에서 불러내셔서 자기 소유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은 사람들입니다.  넷째로, 세상에 보내져서 주님이 하시던 역할을 계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자가 되세요. 단순한 종교인이 되지 마세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확신하고, 세상 속에서 도전하고 투쟁하는 하나님의 전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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