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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스겔 선지자의 소명 (겔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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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선지자의 소명 (겔 2:1-3:3)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끊임없이 말씀하기를 원하시고, 동시에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 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에서 멀리 떠나서 방황하고 있을 때이든지 또는 어려움을 만나 고통 가운데 유리하고 있을 때 더욱 그리하십니다. 이 때 주님은 당신의 종들을 불러 주님과 백성 사이의 사역자로 세우십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송하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만나야 하는 백성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도전적입니다. 

4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주님의 말씀이 계속 됩니다.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4-5절).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에스겔은 어떻게 하나님이 자신을 선지자요 제사장으로 부르시며 환상을 주셨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사는 복잡하고 생생한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1장에 보면,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이 너무나 강력해서 선지자가 바닥에 엎드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이 그 자리에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2:1)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주어 백성들에게 전하게 하신 말씀은 두루마리 책에 있었습니다. 에스겔이 받은 임무는 어려운 소명이었고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선지자 직무를 수행하면서, 귀를 가졌으나 듣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고, 맹독을 가진 전갈들 가운데 거해야 했습니다.  

그가 처음 사역에 대한 사명을 받았을 때 선지자로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되면서 그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졌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소명만 받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도우심의 능력도 함께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의 얼굴을 화석보다 굳게 하셨습니다.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3:9).  

에스겔은 자신이 선포해야 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받아먹어야 했는데(3:1), 그 맛은 꿀처럼 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선지자는 완전히 하나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전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백성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자신들 가운데 한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2:5).   

본문은 제게도 끊임없는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저의 가슴에서 계속 타오르면서 제 자신의 설교와 사역을 평가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저의 실패를 들춰내며, 제게 더 깊은 헌신을 촉구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스스로 묻습니다. 

 “내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가?”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양자의 관계를 맺는 소임을 부여받은 사역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특히 사람들이 자신들 가운데 하나님의 대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려면, 사역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선지자이자 제사장인 사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하며,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에게 말하는 자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1.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해야 했음 (= 선지자적 사명) 

4절=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에스겔이 받은 소명은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 문제를 에스겔 36:22-23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22절=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절=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은 하나님의 명예가 열방 가운데서 회복되어야 하며, 그 명예는 하나님의 거룩과 관련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지금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우리 모두는 선지자적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회를 향해, 이 나라를 향해 하나님의 의를 요구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이방인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조차도 그분 이름을 더럽히기 일쑤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세상은 예수님의 교회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거룩을 효과적으로 증명할 때까지 내일의 세계는 교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오늘처럼 거룩에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칼빈주의에서 복음주의, 심지어 카톨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신학적 전통이 거룩을 요구합니다.  

거룩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살아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독교 신학을 훼손하려는 사람들이 복음을 지나치게 상대화 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문화는 거의 완전히 타락해버렸고, 따라서 거룩은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라는 성경의 주장을 뒷받침해 줍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하면서 거룩하라는 명령을 백성에게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 말을 듣게 되도록 먼저 사랑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엡 5:1-2=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성도 여러분! 사랑이 없는 거룩은 하나님의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이 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그는 자신과 백성을 동일시해야 하며 그들의 구원에 열정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에스겔의 경우는 아주 극적이었습니다. 백성이 경고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것을 선지자가 못본체 내버려둔다면, 하나님은 선지자의 생명을 취하겠다고 위협하셨습니다(3:20).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21:6). 

구역장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맡은 구역원 앞에서 탄식하고 있습니까? 구역원들은 구역장 여러분의 삶에서 이러한 열정이 넘치는 것을 보고 있습니까? 주일하교 교사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질문은 목회자인 제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교인이기는 하지만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깊이 사랑하시며 교회가 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까? 

우리 주위에는 교회를 낯설게 여기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사역은 이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이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말하고 있습니까?  

다문화 가정, 지체 및 정신 장애인들, 탈북자들, 조선족들, 이주 노동자들, 혹은 마약과 술과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를 갈망하며 회복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우리 교회는 이들을 따뜻이 맞아주며, 이들이 어려움과 차별과 비난의 사슬을 끊도록 도와주는 공동체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자야 슬피 탄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십시오.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며 우리의 질병과 아픔을 치유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리하여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2.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아뢰어야 했음 (= 제사장적 사명)

4:4= “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요구하신 행동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상당 기간을 처음에는 왼쪽으로 그 다음은 오른 쪽으로 누워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에게 자신과 그의 백성을 동일시하며, 백성과 함께 백성을 위해 고난을 당하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가 가진 제사장적 사명을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뿐 아니라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탄식은 우리의 중보기도가 되며, 우리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새해의 기도제목을 직접 적어서 제출합니다. 저는 그 많은 기도카드를 수시로 꺼내 보면서 한분 한분 짧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참 다양한 제목들이 지난해에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함께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온 가족의 주일성수와 아들의 금연 금주를 위해 기도하시는 어느 권사님을 위해 기도카드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남편의 성령 은사체험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 시부모님과 시동생 시누이까지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하고 있는 집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수술한 구역장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구역원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전도회 회장직을 잘 감당하도록 원하는 여집사님을 위해 마음을 모읍니다. 자신이 맡은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 일일이 이름 적어 기도하는 교사를 위해서는 더욱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배우자를 찾게 하옵소서--금년에 결혼하는 쌍이 많이 나오도록 기도합니다.
편의점 가게가 손님들로 넘쳐나기를 기도하는 여집사님의 기도를 저도 따라합니다. 
직장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기를 원하는 남자 집사님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학원운영이 잘되어 선교활동을 더 잘 하도록 기도하는 형제에게 물권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구역장을 맡아 수고하시는 일꾼들, 사역팀의 팀장으로 애쓰시는 분들, 탈북난민 사역에 동참하는 분들, 부엌에서 수고하며 장애인을 위해 헌신하며 사랑의 도시락과 반찬 나눔을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때는 웬지 더욱 간절해집니다.

성도 여러분! 저의 기도가 이분들의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의 결과로 일어난 극적인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제가 이러한 기도를 지속적으로 하게 될 때 저의 삶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규모 있는 교회의 책임자로서 일하는 방식과 책임 의식에 변화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관심과 사랑이 깊어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분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아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위의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하고 계십니까? 구역원들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중보기도하는 구역장,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교사, 이들은 모두 제사장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겔서 2장에 따르면, 중보기도하는 구역장이 이끄는 구역원들은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상관없이 자신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결국 알게 될 것입니다. 

매일 중보기도하는 교사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상관없이 자신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될 것입니다.


3.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심 (= 듣고 순종하는 종)

2:1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에스겔서 2장과 3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소명을 주시면서,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방향과 약속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2:1). 여기에 어떤 교훈이 담겨 있습니까?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들으려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우리의 자세는 이렇게 겸손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둘째, 에스겔은 “네 발로 일어서라”는 말씀을 들은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2:2).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자원이나 힘으로 성취할 수 있는 사명을 맡기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일을 맡기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무릎을 꿇고 그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 에스겔 3장에서 선지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경험을 이렇게 보고합니다.  

3: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3: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선지자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의 삶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사람들은 한 선지자가 자신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설교가 맥체인(Robert McCheyne)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회중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거룩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랫동안 목회를 해오면서 제가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우리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목회자인 나 자신의 거룩이다’ 라는 것입니다. 목회에 따르는 기쁨과 보람이 적은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압박과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에 육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녹초가 된 적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면 어김없이 주시는 말씀은 “너는 내가 온전한 것처럼 온전하길 원하는가? 너는 진정 거룩하길 원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자주 묻습니다. 

 “나는 정말 거룩하길 원하는가?” “나는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원하는가?” 

어떤 면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만 거룩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핑계하지 않고 진정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고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아뢰려면 그 사람은 언행일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두루마기를 온전히 먹어야 하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구역장 여러분, 교사 여러분, 중직자 여러분, 그리고 사역에 뛰어드신 여러분!  

여러분의 사역 목표를 에스겔 선지자의 그것에 맞추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사람들을 섬기든 간에, 그들이 자신들 가운데 한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을 여러분의 사역의 최종 목표로 삼으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로서, 예수님처럼 살면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하기를 힘쓴다면, 사람들은 불원간에 자신들 가운데 한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라나타! 주님이 속히 오십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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