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것이 교회입니다 (행 2:1-13)

첨부 1


이것이 교회입니다 (행 2:1-13)

C.S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간을 어떻게 유혹하는가에 대한 최고의 통찰력이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고참 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신참 악마에게 어떻게 인간을 유혹해서 함정에 빠뜨릴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는 바로 교회라네. 내 말을 오해하지는 말도록. 내가 말하는 교회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뻗어 나가며 영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교회, 깃발을 휘날리는 군대처럼 무서운 그런 교회가 아니니까. 자네한테 고백하는데 그런 광경은 우리의 가장 대담한 유혹자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들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인간들은 그 광경을 전혀 보지 못한다네.”

한국에 여행 온 한 관광객이 서울 야경을 보다가 놀란 것 중의 하나가 교회마다 달린 십자가였다는 내용을 한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왜 이렇게 교회가 많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 분의 글을 읽으면서 더 심각한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그것은 왜 이렇게 교회가 많은 데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C.S.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서 그런 고민에 빠진 우리에게 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 답이 무엇입니까? 교회다운 교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사람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주일마다 교회가 간다고 말합니다. 그때 교회는 무엇입니까? 건물입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교회를 건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개척을 하면서 제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인사는 “축하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마치 개업식에 축하를 받는 사장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한 목사의 전유물이 아니고 전유물이 될 수도 없는데 그런 인사를 제게 합니다. 제가 당황하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다 목사님이 하는 거잖아요.

오늘날 가장 큰 비극은 교회가 더 확장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성장이 중단되고 기독교인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가장 큰 비극은 사람들이 교회가 무엇인지 기독교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사도행전을 개척초기에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대체 기독교가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이 시대에 교회이 시작과 기원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는 성경이 바로 사도행전이기 때문입니다.
 

Ⅰ. 그렇다면 도대체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자,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 2-3절 보세요.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뭐라고요? 홀연히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가운데 하나입니다. 출애굽기 19장 16-18절을 보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도 큰 소리와 불 가운데 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 데 그들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교회가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교회가 하나님이 시작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제도라면 어떻게 2000년이 넘게 교회가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가보면 또 어떻습니까? 무슨 문제는 그렇게 많은 지 모일 때 마다 교회에 이런 문제가 있고 저런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친히 만드시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탄생은 120명의 보잘 것 없는 갈릴리 사람들,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권세도 없고 영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런 교회를 만들 수 있었습니까? 그 유일한 해답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돌이켜 보면 정말 우리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시작할 때 장년이 31명이었습니다. 건물을 빌리려니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매월 건물 유지를 위해서 나가야 하는 돈이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편의주의에 길들여진 교인들이 이곳 지역으로 이사와도 주변에 잘 지어진 교회가 있으니 우리교회로 올 리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김목사가 끌어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힘 있는 사람이 끌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바람과 불처럼 역사하셔서 끌어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Ⅱ. 두 번째로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는 성령충만한 공동체입니다.

제가 집사님들과 이야기할 때 제일 안타까운 것 하나가 이런 말입니다. “교회운영도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교회는 기업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기업이 운영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초대교회는 금방 무너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촌사람 중에 기업을 운영해 본 사람도 행정의 달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어떻게 부흥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가능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의 생각과 조직력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탁월한 조직력과 행정력이 있는 사람보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있어야 교회다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세상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다보면 기업을 운영하는 것처럼 교회도 잘 유지가 될 수 있고 성장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교회가 아니라 인간이 디자인 한 교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기업일 뿐입니다.

제가 최근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우리교회가 근래 빨리 부흥하는 교회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김인환 목사가 잘해서 교회가 성장한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교회 운영을 잘해서 성장한 것일까요? 아니요. 성령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고서야 우리가 어떻게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었겠습니까?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고서야 자기 중심적인 우리가 어떻게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바꾸었겠습니까? 사람들이 바뀌는 것, 그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가 우리 교회 가운데 계속 되기를 축복합니다.


Ⅲ. 마지막으로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은 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성령님을 보내셨는가?’ ‘왜 120명의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 충만을 허락하셨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2장 4절 보세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충만함을 받고 무슨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고요? 다른 언어, 즉 방언이 터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여기서 방언은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알 수 없는 말이 아니라 외국어입니다. 사도행전 2장 11절 보세요.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그렇습니다. 흩어진 유대인들과 그들을 통해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였는데 그때 그들이 성령충만함을 입은 갈릴리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각국 언어로 말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도대체 각국에 온 사람들에게 무엇을 들려주시려고 그들의 혀를 주장하신 것일까요? 사도행전 2장 11절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각국 언어로 말한 것은 하나님의 큰 일,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고요? 사도행전 2장 21절 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의 목적은 알 수 없는 방언을 함으로 영적인 우월감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 그 성령께서 바람과 불같이 임하신 것은 바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아니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도 기독교도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케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 충만한 공동체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을 받으셨습니까? 질문을 바꾸어 볼까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열정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요?

이어령 전 장관의 따님이신 이민아 목사님이 약 1년간의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첫째 아들이 있는 천국으로 간 것입니다.

결혼과 이혼, 재혼후 암, 첫째 아들의 죽음, 자폐아인 둘째.. 그러나 그녀는 끊임없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죽기 직전까지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다녔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 땅을 떠나기 며칠 전 책 하나를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그 책은 “땅에서 하늘처럼”입니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만큼 힘들다는 위암 말기 환자가 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끝까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을까요? 그녀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2002년 2월 22일 성령 안에서 거듭났습니다. 영적으로 장애가 있었던 제가 온전한 영접, 온전한 구원, 거듭남의 고백을 하고, 깨닫는 순간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고백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제게 임했고 그때부터 성령님이 저를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약하고 겁이 많았던 제자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치던 제자들이 왜? 아니 그토록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던 이민아 목사님이 왜? 생애 마지막까지 그토록 복음을 전했던 것일까요? 성령이 임했던 것입니다. 이민아 목사는 마지막 책을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이 책을 쓰고 있는 저는 지금 위암 말기 암 환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차고 넘치는 하늘나라의 의와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능력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동안 저의 질병을 여러 번 고쳐주셨기 때문에 또 고쳐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땅에서 그 치유를 온전히 다 받아 누리지 못하고 내몸이 죽는다 해도 저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인 곳, 성경은 그 공동체를 진정한 교회라고 부르게 되지 않을까요?  (김인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