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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미래의 소망이십니다 (출 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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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미래의 소망이십니다 (출 11:1-10)

2013년 2월 첫 주일입니다. 옛날 로마인들은 매년 2월이 되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2월의 명칭도, ‘정화, 깨끗함’이라는 뜻을 가진 ‘febr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어서 ‘February'라는 단어를 쓰게 된 것입니다. 이 2월에 회개하여 우리의 심령을 정화시키고, 깨끗함을 회복하는 한 달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오른손에 성경을 들고 고백하십시다. -“주의 말씀은 내 인생의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삶을 변화시킵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에 마음의 문을 엽니다. 말씀하여 주옵소서. 듣고 깨닫고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아멘.”, 

출애굽기 10장까지 애굽에 아홉 가지의 재앙이 내렸습니다. 이제 열 번째의 재앙이 내릴 차례입니다. 

애굽에 내린 10가지의 재앙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우상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음과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면서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시면서 이 재앙과 심판이 계속해서 내리기 전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시면 우리는 하나님께 겸손히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십니다.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오래 참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단칼에 끝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냥 이 모든 재앙을 한꺼번에 쏟아 부어서 그냥 끝내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래 참으십니다. 

여기서 ‘오래 참음’이라는 것, 영어로 ‘long suffering' 이라는 말은 오랜 고통을 참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으십니다. 심판을 영원히 보류하시지는 않습니다. - 자, 이제 애굽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려고 준비하십니다. 

오늘 본문, (1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애굽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최후의 일격으로 인해 바로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너희를 내 보낼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해서 이스라엘을 내보내시려고 하신 것... 하나님은 우리 하나 잘 되게 하시려고 이 모든 것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쫓아내리니’, ‘국외추방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가 ‘너희는 내 소유가 아니다’하며 원래 소유권으로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2절)“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 봅니다. 하나님은 왜 애굽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약 150년 동안 노예처럼 살아온 것에 대해 밀린 ‘품삯’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동안에 억울한 것, 서글펐던 것, 다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내 쫓긴 것이 아니라 승자의 전리품으로 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훗날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막을 만들 재료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3절)“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여기서 ‘은혜’는 ‘자비, 호의, 호감’의 뜻입니다. 애굽 사람에게서 은금 패물을 취하게 하신 것이 애굽 사람의 호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은혜 있는 것과 은혜 없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사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이행하게 되니까 이방백성들에게까지 높임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사경회 때, 수요기도회에서 감신대 이덕주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게 되었는데, 우리 제천의 신앙의 선배이신 ‘탁사 최병헌 목사님’의 이야기와 그분의 설교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상물 중, 탁사 최병헌 목사님의 장례식 장면과 1주기 추도식 장면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뿐 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분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한 모세, 이방백성들에게까지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4절)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로’, 애굽 역사의 중심부로 친히 들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언제? ‘밤중에’, 이 말씀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재앙의 내용입니다. (5~6절)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열 번째 재앙의 내용입니다. ‘처음 난 것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처음 난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저는 결혼하고 1년 후, 정확히 결혼 1주년 기념일 전날, 큰 아이를 낳았음. 제 아내가 큰 아이를 가졌을 때, 전 무조건 아들인줄 알았습니다. 그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이 ‘배 모양을 모니 아들이 틀림없네’, ‘입덧을 하는 모양새가 아들이네’, 그런 이야기도 하였지만, 그냥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이름은 총각 때부터 지어놓았습니다. ‘상우’라고.... 병원에서는 아들인지 딸인지 일체 말을 안 해줍니다. 나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산 달이 다가오니까, 혹 딸일지도 모르는데, 딸 이름도 지어놓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의논하고, ‘하영’이라고 지어놓았습니다. 산통이 온 날이 토요일인데, 저녁까지 곁에 있다가, 주일 때문에 저는 밤에 교회(광탄)로 갔는데, 다음 날 주일 아침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딸을 낳았다고... 기뻤습니다. ‘하영’... 아침에 빛이 환하게 비추는데, 그 이름에 한자가 생각났습니다. ‘河’(큰 강물), ‘映’(비추다), 큰 강물에 빛이 비추는 영상이 떠올라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원래 작명법에서는 여자 이름에 물 水 변을 안 쓰는데, 나는 목사니까, 그런 것을 믿지 않으니까, 그렇게 지었습니다(그렇지만 제가 부탁을 받고 이름을 지어줄 때에는 여자 이름에 한자로 물 水자가 들어가지 않도록 함). 

아이를 볼 때마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고, 딸 자랑에 바보가 되더라고요. 항상 우리 아이가 최고고, 우리 아이는 가장 영특하고, 천재에요(맘마마... 얘가 말을 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 사실 제 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제 여동생이 1년 먼저, 딸을 낳았는데, 제가 그 아이를 볼 때 너무나 예뻤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가 태어나니까 걔가 안 예쁘더라고요. 처음 난 자식, 또는 장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의 자랑입니다. 

여러분, 부모로서의 보람이 무엇입니까? 자식 자랑입니다. 부모는 자식 자랑하는 맛에 삽니다. 

칠순 잔치를 하는 어느 부모님이 이야기 합니다. ‘나는 잔치 하지 말라고 하는데, 자식들이 그냥 지나갈 수 없다고 하도 난리를 쳐서 하는 거야’, 부모들은 왜 이러는 걸까요? 정말 억지로 자식들이 하자고 해서 잔치하는 겁니까? 자랑하는 겁니다. 자식은 이생의 자랑입니다. 

지금은 자녀들을 많이 두지 않기 때문에 아들, 딸 가리지 않고 다 귀하게 여기지만,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을 두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첫 아이가 아들이면 더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장남과 다른 자식을 차별하였습니다. 

제가 4남매의 장남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밥을 퍼도, 아버지 다음으로 제 밥을 푸셨습니다. 맛있는 것 생기면, 자식 중에서는 제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장남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부터는 늘 동생들 생각부터 하시더라고요.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왜 처음 난 자식, 장자를 귀하게 여겼습니까? 그것은 장자가 ‘미래의 보장과 소망’이니까... 자식이 잘 되는 것이 미래의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온갖 고생을 해도 참을 수 있는 것은, ‘자식이 잘 될 수만 있다면’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사는 인생들에게 미래의 소망은 자식입니다. 

지금까지 애굽에 내린 아홉 가지의 재앙을 보면, 심판 당한 한 가지 한 가지가 다 애굽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 소중한 것은 모두 하나님보다 귀중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식들이 마지막 재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대상인 것입니다. 

제가 부목사 시절, 모시고 있던 담임목사님에게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장남을 잃은 것입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 있었던 사건인데, 목사님의 장남이 신학대학을 나와서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담임 전도사로 목회를 나갔는데, 저녁 예배에 교회 성도들을 태우러 승합차를 몰고 가다가 뚝방에서 차 바퀴가 빠졌습니다. 그 차를 꺼내보려고 차에서 내려서 차를 들다가 흙이 무너지면서 차와 함께 냇가로 굴러 떨어져서 차에 깔려서 사망했습니다. 목사님은 너무나 슬펐지만 큰 내색도 못하고 지냈고, 사모님은 수년 동안 새벽기도회에서 교인들 생각해서 크게 소리도 못내고 울면서 기도하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언젠가는 교회 장로님의 큰 딸이 백화점 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다가 주차 곤돌라에 끼여서 몸이 부서져서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는데, 너무나 큰 아픔을 당하여 울던 그 장로님에게 목사님이 내가 그 심정을 안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보이시는데, 옆에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자식을 잃은 그 슬픔을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입니까? -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선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이 말씀에서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기업’이라는 말은 영어로, ‘business’, 라는 단어도 있지만, ‘inheritance(상속재산, 유산, 계승)\'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자식은 나의 재산이요, 유산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기업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들의 미래의 소망은 자식일지 몰라도, 우리 신앙인들의 진정한 미래의 소망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하나님이 미래의 소망이십니다’,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소서”, - ‘나의 영원하신 기업’, ‘내 인생의 초점’은 주님이십니다. 

(7절)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나니’, 이스라엘 속담에 개는 공격할 때 혀를 움직인다는 속담이 있대요. 그런데 그 개가 혀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듣고, 개 키우시는 분들, 집에 가서 시험한다고 집에 있는 개에게 막 약 올리지 마세요. ‘어디 혀를 움직이나 보자... ’, 그러다가 개한테 물립니다. 

심판을 피할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초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시선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만이 미래의 보장이며 소망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세를 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소중한 것을 치지 않도록, 나의 중심을 언제나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미래의 소망이십니다”, 

(시62:5~7)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이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중심이시오, 하나님만이 내 미래의 소망이시라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복음송,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 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아니하리~ ”, 

여러분, ‘하나님이 미래의 소망이십니다’, 이 믿음으로 굳건하게 신앙생활 하셔서, 세상의 어떤 풍파 속에서도 승리하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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