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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 온 인류의 소망 (눅 4: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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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온 인류의 소망 (눅 4:21-30)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그 친구는 모 대학 병원의 내과 의사로서 정년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습니다. 그 친구는 십여 년 전에도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된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 친구는 이미 뇌의 이상을 발견하고 그 분야의 전문가의 손을 빌려서 치료하기로 계획했었는데 모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그 조치를 일 주일 연기한 바로 그 사이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도 조기 진단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조치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요즈음 한국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조롱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한국 교회가 이렇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까? 주님도 때가 되면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는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 11절 말씀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한국 교회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한국 교회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한국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저는 오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문에 한국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무엇 때문에, 다시 말해서 무엇을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후 아무리 많은 단추를 잘 끼워도 다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주님의 몸인 교회의 존재 의미를 바로 깨달아 알고 더 늦기 전에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생각했습니다. 랍비들은 회당에서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회당에서 자주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도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한 기사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아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펴서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 

그러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놀라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 4:22) 자기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아마 그냥 놔 뒀으면 그들은 예수님에게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예수님을 배척하게 되었습니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랍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설교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정도 역할만 하셨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를 사칭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펴서 읽으신 글에는 메시아로 인해서 벌어질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셨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일은 은혜의 해에 일어날 것인데 여기서 은혜의 해란 희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빚 때문에 팔았던 땅을 다 되돌려 받습니다. 종으로 팔렸던 사람들도 모두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 이사야가 꿈꾸던 메시아로 인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실제로 그런 일을 성취하셨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은 그런 일을 성취하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통치도 끝내지 못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고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다 고치셨던 것도 아닙니다. 사실 그런 것을 목적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이후로도 이 세상에는 여전히 억압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회당에서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이비 교주쯤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고향 사람이라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기자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예수님에게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했습니까? 

누가복음 기자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새로운 차원에서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차원에서 그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차원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기자도 분명히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모든 것을 바친 주님의 운명은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며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여기서 모든 것은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 내용까지도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집중하는 자에게는 가난도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아무리 잘 믿어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 같지 않습니까?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는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하나님 나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아직도 어둡고 캄캄한 밤을 살고 있지만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주님 때문에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우리가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의 대상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가난한 자란 지극히 작은 사회적 약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는 교회는 결코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의 대상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서 이방인도 모두 해당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이방인의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엘리야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보내심을 받았고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들이 있었지만 엘리사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병을 제대로 고치기 위해서는 먼저 병의 원인부터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 원인을 알았으면 때를 놓치지 말고 치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 교회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이제 분명히 알았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런 사실을 믿는다면 더 이상 우리가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친히 다스리시도록 모든 것을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 인류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김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구원 역사에 동참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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