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는 누구인가? (고전 1:26-31)

첨부 1


나는 누구인가? (고전 1:26-31)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은 누굴까요?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 아니면 지식이 많은 사람?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은 “자기를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알되 부정적인 시각에서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시각에서 자신을 올바로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잘 몰라서 생기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그런 것을 허다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잘 보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왜 자기 눈 속에 들보는 못 보는 것일까요? 자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거울은 있으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적인 거울은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에게는 더 큰 허물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끄러워해야 하고 통회해야 할 것을 멋으로 여기고 자랑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의 장점을 자랑합니다. 자기만이 갖고 있는 특기와 경험들을 자랑합니다. 지난번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사모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남편 자랑을 합디다. 그리고 자기 자랑을 합니다. 목사님들은 아내 자랑하는 분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자긱 자랑은 좀 합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서는 “자랑할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헛된 것을 자랑하지 않고 주안에서 자랑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제일 중요한 것이 내가 누군지를 올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내 허상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꼴사나운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항구도시이며 당대 최고의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수사학과 변증학이 발달했습니다. 그러기에 뭔가를 주장할 때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면 절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교육과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복음이 전해졌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고린도지역이 항구 도시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유대인 헬라인 이방인들... 그러다 보니 파당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항구도시기에 성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상제사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시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미련한 종교, 천박한 종교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런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면서 우리 성도는 겉보기와는 다른 사람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는 어떤 사람일까요? 

1. 세상에서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입니다. 

좀 전에 말씀 드렸듯이 고린도 지역은 철학이 발달된 도시입니다. 그리고 항구 도시에 당시의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 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전1:18절을 보세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고전1:22절 이하에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강조합니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받으면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런 쓸데없는 말을 따르라는 것이냐?”반응합니다. 그리고는 거부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복음을 듣고 믿는 자가 생기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문제는 그 교회에 누가 들어왔나요?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이것은 당시에 성도들이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은 교회에 안 왔습니다. 낮은 수준의 사람이 왔습니다. 

그러니 고린도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 복음이라는 것은 무식한 대중이나 믿는 것이지 지식인들은 믿을 수가 없는 종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솔직히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등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아도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대중 앞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평가가 뭡니까? 

“본래 학문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당대 사람들이 무식한 사람들이나 믿는 종교로 알았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도 그런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우리 중에는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다”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미련한 자들을 통해서 일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7절 상반절을 보세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왜 우리가 미련하냐고요? 

18절을 다시 보세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미련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그 십자가의 도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입니다. 

그러기에 그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놀라운 능력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복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이 우리를 향해 미련하다 어리석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혜롭다하면 그것이 최고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똑똑해 보여도 하나님이 어리석다 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시편53:1절을 아시지요?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박사학위를 수십 개를 가졌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대한민국에 최고 재벌이라 할지라도 미련한 사람입니다. 왜죠? 그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펴보았는데 쓸 만한 인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없도다”   

오늘 봉독한 본문 앞 구절, 25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왜죠? 우리 하나님은 인간과 우주만물의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어리석지 않지만, 만약에 어리석다하더라도 사람보다 지혜롭습니다. 
또 하나님이 약한 분이 아니지만, 만약에 약하다 할지라도 사람보디 강한 분이시란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리 어리석고 미련해 보여도 그분이 붙잡아 주시면 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강하고 똑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이란 말입니다. 아멘?   

성도는 누굽니까? 


2. 세상에서는 매우 약한 자입니다. 

육체적으로도 약하고 정신적으로도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만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보세요. 다들 대단한 것 같으나 약한 자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세가 약한 자인가요? 강한 자인가요? 그는 매우 강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매우 약한 자였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노예 신분의 백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00일 동안 숨겨 길렀으나 그 부모도 어쩔 수 없이 그를 갈대상자에 담아서 흘려보내야만 했습니다. 강물에 뒤집어져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 악어가 나타나 삼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그가 어떻게 됐습니까? 

인류 역사에 모세와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80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 강대국인 애굽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해 냈습니다. 그리고 가장 열악한 사막에서 40년간 백성들을 통치하고 이끌었습니다. 그는 120세가 될 때까지 그들을 다스렸습니다. 세상에 이런 조건의 지도자는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지요? 그는 약했으나 그를 붙잡고 쓰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은 전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경 출애굽기를 보세요. 
“모세와 함께 하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이 말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것이 모세가 강했던 비법입니다.   

다윗도 보세요. 그는 이새라는 농부의 8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저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하나님이 그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엄청난 군대를 데리고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온 군대가 벌벌 떨고 있을 때 그는 담대히 돌멩이 다섯 개를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결국 그 돌멩이 한 개에 골리앗은 쓰러지고 이스라엘은 엄청난 승리를 했습니다. 볼품없는 소년, 다윗, 그는 약했으나 그를 들어 쓰신 하나님이 강한 분이기에 강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강한 자인가요? 약한 자인가요?   

캐나다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어려서 학대를 받고 살았으나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자수성가 했습니다. 결혼도 했고 귀여운 아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꿈이었던 최고급 스포츠카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차고에서 차를 손질하러 들어오던 그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5살 밖이 어린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못으로 최고급 스포츠카 옆에 낙서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이성을 잃고 손에 잡고 있던 공구로 아들의 손을 가차 없이 내리 쳤습니다. 결국 아들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대 수술을 했으나 한 손을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깨어난 아들은 아버지에게 울며 잘린 손으로 빌었습니다. “아빠 다신 안 그럴게요. 용서해주세요”

소년의 아버지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그 사람은 차 옆에서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차고에서 아들이 차에 남긴 낙서를 보았습니다. 그 낙서의 내용은 “I love daddy”였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자기 혈기를 이기지 못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아들의 손을 망가트려 놓았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그저 본능 따라 사는 짐승과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은 유능하고 실력 있고 똑똑한 사람을 뽑아 쓰지만 우리 하나님은 다릅니다. 멸시받고 약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택해서 들어 쓰십니다. 결국에는 그들이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소망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 믿음을 갖고 살라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어리석고 약하나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위대한 지도자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하지 않다고요? 형편없이 약한 자입니다. 

길에서 넘어지기만 해도 무릎이 깨어집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다리가 부러지는 약한 자입니다. 또 누구에게 말 한마디만 잘못 들어도 상처받고 시험 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약한 우리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27절 하반 절을 보세요.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그러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강한자인 것입니다. 그분이 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그렇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선택받았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었는데 그분이 먼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한 자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3. 세상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천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멸시 받는 것들이었고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28절을 보세요.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린도는 무역이 발달된 도시기에 세계 많은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린도는 항구도시 특성상 우상을 섬기는 신당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역 항구였기에 부유층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로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노예들도 많았고, 가난한 백성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권력도 재력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몸도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 때문에 떳떳하게 자기가 믿는 믿음의 내용을 드러내어 놓고 전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택하셨나요? 그것은 자칭 돈 깨나 있고 힘깨나 있고 지식이 있고 학벌과 문벌이 좋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날마다 원망 불평합니다. 돈이 없다. 건강이 없다. 시간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 불평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시고 적은 것을 가지고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우상 선지자 850명과 홀로 싸워서 이겼습니다. 물론 그것은 엘리야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를 가지고 미디안 사람을 무찌른 것도 약한 것을 가지고 강한 자를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미련하고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우리를 왜 들어 쓰실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십니다. 

29절을 보세요.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앞에서 자랑한다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입니다”. “내가, 내가…….” 하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깁니까? 

하나님이 은혜 주셨고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강 주셔서 된 것이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고 열어주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이 은혜란 말입니다. 
  

2) 오직 주님만 자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31절을 보세요.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주님의 은혜라고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칭찬이 오면 주께서 하셨다고 자랑해야 합니다. ‘훌륭합니다’ 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렘9:23절 이하를 보세요.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자랑해야 할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미련한 자 약한 자 비천한 자, 그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누굽니까? 
겉보기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약한 자입니다. 
그리고 천하고 볼품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겉보기와 다른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겉만 보고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로기에 우리의 육신, 우리의 겉 사람은 날로 약해지고 병들어 가는 존재지만 우리 속사람은 주님의 은혜가 있기에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가 누군지를 바로 알고 나를 나 되게 만드신 주님만을 자랑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