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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느부갓네살의 꿈 (단 4: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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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의 꿈 (단 4:34-37)


[“정해진 기간이 다 되어,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보고서 정신을 되찾았고, 그리고 가장 높으신 분을 찬송하고, 영원하신 분을 찬양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의 통치 영원하고, 그의 나라 대대로 이어진다. 그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와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뜻대로 하시지만, 아무도 그가 하시는 일을 막지 못하고, 무슨 일을 이렇게 하셨느냐고 그에게 물을 사람이 없다.’ 내가 정신을 되찾았을 때에, 나의 명예와 위엄과 나라의 영화가 회복되었고, 나의 고문관들과 대신들이 나를 찾아왔으며, 나는 이전보다 더 큰 영예를 받으면서 왕위를 회복하였다. 이제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높이며,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바이다. 과연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참되며, 그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니, 그는 교만한 이를 낮추신다.”] 

• 묵시문학의 시대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긴 겨울이 이제 물러갈 채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꽃샘추위가 있다 한들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나로호가 우주 궤도에 진입하던 날, 많은 중죄인들이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습니다. 마땅히 나와야 할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어 사람들은 허탈해 합니다.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씁쓸합니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 현실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거울은 다니엘서입니다.

다니엘서가 기록된 시기는 주전 2세기경입니다. 그 때는 대제국을 세웠던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들을 통해 유입된 헬레니즘 문화로 말미암아 각 나라는 문화적 정체성과 신앙에 일대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시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셀류커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을 ‘에피파네스’ 즉 땅에 나타난 신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는 애굽 원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정복한 후 도성을 불태우고, 성전을 약탈했습니다. 그리고 포고령을 내려 전통적 관습을 포기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율법을 소지하거나 낭독하는 것을 금지했고, 안식일을 비롯해 다른 절기도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에 이방 신들을 위한 신당을 세우고, 그 제단 위에서 부정한 짐승을 잡아 바쳤습니다. 그때는 그야말로 이스라엘 신앙의 암흑기였습니다. 다니엘서는 바로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묵시문학이 그런 것처럼 다니엘서는 자기가 살고 있던 시대를 성찰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를 끌어들입니다. 그가 선택한 시기는 바벨론 제국의 전성기였습니다.

다니엘서는 포로로 잡혀갔던 젊은이들이 그 이방 땅 바벨론에서 어떻게 뜻을 정하여 믿음을 지켰는지, 그리고 사자굴과 풀무불로 상징되는 억압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는지를 아주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주전 2세기의 유대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되새길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야기는 우리를 더 큰 역사 혹은 하나님의 세계와 연결해주기 때문입니다. 

• 평안할 때의 불안한 꿈

느부갓네살 왕의 꿈 이야기를 통해 다니엘은 역사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왕 중에서 아마도 제일 유명한 사람일 겁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다니엘 덕분이라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는 세계사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위대한 정복자요, 위대한 건축가였습니다. <바벨론 연대기>나 <왕들의 원정기>라는 책에는 그가 벌였던 정복전쟁에 대한 보도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는 시리아와 가나안 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고, 파괴하고, 불태웠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는 행복했을까요?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 위대한 정복자라라고 칭송하고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라고 말합니다. 그게 온당한 평가일까요? 춘추전국시대의 현인 노자는 "도로써 임금을 돕는 자는 군대를 강하게 하여 천하를 다스리게끔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일은 반드시 되갚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군사를 일으켰던 곳에는 가시덤불이 자라고 큰 군대가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모든 사물은 강장해지면 노쇠하니 이를 일컬어 도에 어긋난다고 하거니와 도에 어긋나면 일찍 끝난다."(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노자 30장).

지나친 성공은 언제나 불행의 씨앗을 동반합니다. 다니엘서에는 느부갓네살의 꿈 이야기가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거대한 신상’을 보는 꿈입니다(단2장). 다른 하나가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꿈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조서를 통해 이 꿈이 언제 자기에게 왔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느부갓네살이 집에서 편히 쉬며 궁에서 평화를 누릴 때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나를 두렵게 하였다. 침대에 누워 있어도 생각이 번거로웠고, 머리 속에 받은 환상 때문에 나는 번민하였다."(단4:4-5)

‘집에서 편히 쉴 때’, ‘궁에서 평화를 누릴 때’ 불길한 꿈이 찾아온 겁니다. 가끔 SNS 상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이들이 살벌한 논쟁을 마치면서 상대에게 이런 문자를 날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 꿈 꿔." 어느 분이 여행을 떠난 아내와 딸에게 ‘내 꿈 꿔’라는 문자를 보냈더니 아내로부터는 ‘꿈 깨’라는 답이, 딸에게서는 ‘헉’이라는 답이 왔다고 투덜거리더군요. 평안할 때 꾸는 불길한 꿈을 사람들은 무의식이 보낸 손님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때도 많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주술사들과 마술사들과 점성가들과 점쟁이들을 불러 꿈 해몽을 청하지만 누구도 그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니엘을 불러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다’면서 꿈 해몽을 부탁합니다.

꿈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그는 땅의 한 가운데 있는 높고 큰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가 점점 자라서 튼튼하게 되고, 그 높이가 하늘에 닿게 되었고, 땅 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열매도 풍성했고, 새들과 들짐승들이 먹이를 얻고 그 그늘 아래에 깃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늘에서 한 감시자가 내려오더니 큰 소리로 나무를 베라고 명령했습니다. 잎사귀는 떨어지고 열매는 흩어지고 짐승들도 쫓겨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무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쇠줄과 놋줄로 동이고 들풀 속에 버려두어, 이슬에 젖게 하라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 다니엘의 권고

다니엘은 거룩한 영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그 꿈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느부갓네살 왕을 가리키는 상징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꿈은 그와 그의 제국이 번영의 정점에서 겪게 될 운명의 예고였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미쳐서 사람의 세상에서 쫓겨나고, 들짐승처럼 지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세월을 7년이나 보내야 겨우 제정신이 들어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을 다스린다는 것과 누구든지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으실 것"(4:25)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이 이야기가 과거에 빗대 현실을 타격하거나 위로하기 위한 묵시문학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그 ‘나무’의 운명은 어쩌면 제국주의를 지향하면서 폭력으로 약한 이들을 유린하는 이들의 운명임을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입니다.

꿈의 해석은 해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꿈은 미구에 닥쳐올 일을 미리 알려줌으로 그 불행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조언을 합니다. "공의를 행하셔서 임금님의 죄를 속하시고,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죄를 속하시기 바랍니다."(4:27) ‘공의’와 ‘자비’야말로 그가 지금까지 저질러온 모든 폭력과 억압과 착취에 대한 보속이 될 거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제국을 세운 정복 군주 앞에서 포로로 잡혀온 한 외국인이 ‘공의’와 ‘자비’를 요구합니다. 

이게 예언정신입니다. 한 나라가 든든히 서기 위해서는 연약하고, 병들고, 무력한 이들조차 존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압제자들의 눈에는 없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왕보다 더 높으신 분, 역사를 궁극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 그들에게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니엘의 권고에 이어 마치 마침표를 찍듯 "이 모든 일이 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대로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꿈에 본 것이 현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다니엘의 권고는 경청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우매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29절은 그 꿈이 현실이 된 내력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꿈을 꾼 지 일 년이 지난 후 느부갓네살은 왕국 옥상을 거닐면서 혼자 흥에 겨워 말합니다. "내가 세운 이 도성, 이 거대한 바빌론을 보아라! 나의 권세와 능력과 나의 영화와 위엄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느냐!"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너에게 선언한다. 왕권이 너에게서 떠나갔다. 너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뜯어먹을 것이다. 이와같이 일곱 때를 지낸 다음에야, 너는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과,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31-32)

역사 기록을 보면 정말로 느부갓네살이 미쳐서 정권에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떠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본문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벨론은 신흥제국에 의해 무너졌고, 그들이 자랑하던 바벨탑과 공중 정원은 철저히 유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예고하신 일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가장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현실의 곤고함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이야기는 우리를 절망의 어둠 속에서 일으키는 힘이 됩니다. 

•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라

이제 오늘 이야기의 결론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이런 고백을 하도록 합니다.

"정해진 기간이 다 되어,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보고서 정신을 되찾았고, 그리고 가장 높으신 분을 찬송하고, 영원하신 분을 찬양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의 통치 영원하고 그의 나라 대대로 이어진다. 그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와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뜻대로 하시지만, 아무도 그가 하시는 일을 막지 못하고, 무슨 일을 이렇게 하셨느냐고 그에게 물을 사람이 없다."

대제국을 건설한 사람, 오만한 통치자가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사람처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늘을 우러러보고서 정신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땅만 바라보고 살면 짐승이 되기 쉽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영혼의 날개가 커집니다. 땅의 인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직립보행을 하는 까닭은 머리를 하늘에 두고 살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하늘의 뜻에 우리 삶을 자꾸만 조회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늘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 영혼은 추락을 시작합니다. 들짐승처럼 떠도는 느부갓네살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할 때 역사는 비로소 정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나라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나라와 개인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공의’와 ‘자비’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나라 혹은 개인은 어떠한 위기가 닥쳐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통치를 오롯이 받아들여, 하늘이 주는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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