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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는 생명입니다 (엡 6: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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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생명입니다 (엡 6:18-20)


저는 22살 때부터 교육전도사를 했습니다. 모 교회에서 아동부를 맡겨 주셨는데 그 때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겁도 없이 맡아서 했습니다. 실수도 참 많았는데 목사님과 성도들이 사랑으로 품어주셔서 교역자로 성장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가 80년대 초였는데 장례가 나면 교역자들이 장례를 주관하며 시신을 거두는 염을 직접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염을 직접 하거나, 목사님의 인도에 따라 염을 잘하는 장로님이 했습니다. 

여성도일 때는 염을 잘하는 권사님이 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제가 교육전도사인데도 염을 할 때면 저를 꼭 데리고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고인의 턱을 고일 때 머리를 붙잡게 하셨고, 수의를 입힐 때 팔과 발을 잡도록 시켰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장례 절차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하셨습니다. 그런 훈련이 저의 목회생활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염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유족들은 좋은 수의를 준비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인데도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수의를 준비합니다. 고인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좋은 옷을 입혀드리고 싶다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런데 제가 많은 장례를 치러 보았는데 값비싸고 좋은 수의를 입혀 드렸을 때 고인 중에 고맙다고 웃으시는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비싼 수의를 입고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시는 분도 없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고인의 얼굴의 표정은 좋은 옷 입혀준다고 이리저리 몸을 뒤집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는 무표정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어야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알고, 나쁜 것을 나쁜 것으로 압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악한 마귀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신 후에 18절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활동할 수 있는 생명력이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1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옷이 무겁다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입고 있는 옷조차도 무겁게 느낄 만큼 기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성들을 보면 명품 옷, 명품 가방 하는데 연세가 드신 분들을 보니까 명품이고 뭐고 가벼운 것이 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쟁터에서 갑옷도 힘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갑옷을 입고 힘이 없어 간신히 일어서고 제대로 활동도 못하는데 갑옷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신갑주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그 갑옷을 입고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영적인 믿음의 힘은 기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이 호흡을 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마르고 빈약해져서 제 역할을 못합니다. 기도를 통해 영적인 힘이 공급될 때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 싸워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오늘 18절에 보면 세 가지의 기도 종류가 나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간구는 기도보다는 더 간절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더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문제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내가 끼어들어서 그 사람은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할 때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바울 자신의 사역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 달라고 기도 요청을 합니다. 이것은 기도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하는 기도에서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목회자를 위해, 선교사를 위해 나라를 위해, 북한 땅을 위해, 세계 곳곳의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위해 기도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악한 마귀와의 싸움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깊어지고 넓어지면 악한 마귀와의 싸움의 영역이 나의 영역을 넘어 이웃들과 나라와 세상을 위해 영적인 전쟁을 선포하며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사람, 영적인 지도자가 품어야 할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교회의 성도들이 영적으로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영적인 용사들이 되기를 소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행복한 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폭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깊이가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싸움의 영역을 더 넓혀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18절에서 기도에 대해 말씀하면서 ‘항상’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입니다. 또 한 번은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라는 말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언제나’입니다.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 모든 시간 속에서라는 말입니다.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에서 ‘성령 안에서’라는 말씀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라는 말입니다. 기도는 나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만 더 깊은 의미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되고 싶은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 뜻에 따라 내가 변화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하옵소서’ 이것이 진정한 기도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욕구를 중심으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내 욕구를 중심으로 기도하기에 우리들의 기도의 응답에 한계가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기도와 관련해서 두 개의 성경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얻지 못함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고 기도해도 얻지 못함은 우리의 욕심과 정욕을 중심으로 구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대부분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성령님은 그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기도를 부탁하시면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돌 던질 만큼 좀 떨어진 곳으로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43절에 보면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우셨다는 말입니다. 즉 기도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하게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셨다는 말입니다.  

기도의 진정한 기쁨은 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힘을 얻습니다. 희망을 갖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며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욕심과 정욕으로부터 자유해질 때입니다. 말씀을 읽어도,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순간이 가장 큰 기쁨의 시간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곧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며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기쁨과 생명력을 깨닫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 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렸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느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중간에 두 번씩이나 제자들을 깨웠지만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영적으로 연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을 그들을 향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게는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습관이라고 할 때 좀 부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습관적’이라는 말은 ‘아무 생각 없이’ 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는 말은 그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늘 하시던 대로’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예수님께서 평소에 늘 하시던 ‘거룩한 습관’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입니다. 제자들도 기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에 대한 관심만 가졌을 뿐이지 실제로 기도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평상시에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는 말씀에서 기도는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힘든 훈련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며 사역하는 사람은 곧 지치고 시험에 빠집니다. 기도하지 않으며 교회에서 봉사하면 곧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어느 일이고 꾸준히 하지를 못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봉사하다 보니 인간적인 생각으로 모든 것을 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고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사람에게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의 힘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은 부담이 됩니다. 

그 전신갑주를 입고 활동할 수 없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생명력을 기도를 통해 공급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맘껏 활동하며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한 주 동안 살아갈 때 하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는 영적인 힘과 생명력을 기도로 키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새벽 제단을 통해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하늘의 힘과 생명력을 키워나가는 ‘기도의 거룩한 습관’을 가질 때 예수님이 놀라운 능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의 거룩한 습관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한 주간도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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