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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시와 엉겅퀴 없는 세상을 향하여 (창 3: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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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와 엉겅퀴 없는 세상을 향하여 (창 3:14-19)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처음 입주한 아담과 하와에게는 세 가지 규례가 주어졌습니다. 그 첫째는 노동이고, 둘째는 안식이며, 셋째는 결혼입니다. 그 중 노동의 규례는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도록 주신 것으로 선한 것입니다. 

하지만 선한 노동은 죄로 오염되었고, 이제는 평생토록 수고해야 하는 것으로 변모되었습니다. 

17절=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여기서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땅에 대해 은혜의 손길을 멈추셨다는 뜻입니다. 실로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천지의 운행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을 계속 받지 못한다면 그 무엇이나 필연적으로 황폐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가시와 엉겅퀴’로 상징되는 저주, 그리고 그 저주 하에 사는 인생들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은혜의 향유가 부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저주를 치유하는’ 사명을 다시한번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가시와 엉겅퀴 속의 노동 (= 저주 하에 있는 삶) 

18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모두 유익한 식물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하는 생명력이 강한 잡초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잡초가 번식하기 시작하면 다른 식물은 곧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자신의 밭을 항상 살펴보며 이와 같은 잡초가 생겨나면 바로 제거해야 농사를 망치지 않고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18절의 약속을 보십시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인간 타락은 원래 창조될 때는 그리도 아름다웠던 자연계조차 퇴화시켜 인간과 적대하는 결과를 낳게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이제 이 세상은 온통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온갖 자연 재해에 시달리는 것도 원천적으로는 모두 인간 타락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자연 재해는 죄악이 관영하여 믿는 자를 찾아보기조차 힘든 종말의 때, 즉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최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 가운데 고통하는 인류의 삶은 저주 하에 있는 삶입니다. 가시와 엉겅퀴 속에서 인간은 종신토록 땀흘려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19절). 

본문에서 ‘얼굴(압페카)’은 원래 ‘코(아프)’의 복수형입니다. 따라서 ‘얼굴에 땀을 흘려야’ 는 ‘네 코들의 땀으로’ 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일을 할 때 힘겨운 노동으로 거칠게 숨을 내쉬며 땀을 흘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즐거움으로 빛나야 할 인간의 얼굴이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리라는 본문의 표현은 죄의 폐단이 얼마나 큰 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코 끝에 땀이 맺힐 때마다, 힘이 들어 호흡이 가빠질 때마다, 그리고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질 때마다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죄악의 무게를 가늠하며, 이 죄짐을 벗겨 주실 유일한 분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 없었던 것이 돌연변이적 악성 변화로 생겨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된 것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시와 엉겅퀴는 지금 우리 주위에서 계속하여 자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터에서, 사무실의 복사기 주변과 컴퓨터 서버 안에서, 기획 모임과 판매전략회의에서,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무섭게 자라고 있습니다. 

또한 가시와 엉겅퀴는 인간 정신세계에서도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불안과 공포, 죄책감과 수치심, 무력감과 분노 등 온갖 파괴적인 감정들로 인해 인류는 이땅에서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땅은 저주 하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죄는 인간이 지었는데 왜 땅이 저주를 받고 있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만물의 대표자와 주관자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만물의 대표자로 범죄했는 바, 그에게 속한 모든 만물에도 죄의 영향력이 미쳐 만물도 인간과 함께 저주 아래 있게 되었고, 온갖 악한 것들을 토해내며 썩어짐에 종노릇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자연적 재해들, 예컨대 지진, 태풍, 기근, 홍수 등과 적자생존(適者生存)과 약육강식의 원리들은 모두 인간의 범죄로 인해 우주만물이 저주를 받은 까닭입니다. 

하지만 피조물이 전혀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이 만물의 대표자인 인간과 함께 저주를 받아 썩어짐에 종노릇하고 있다면, 이는 역으로 인간의 구속(救贖)과 갱생(更生)은 그에게 속한 피조계의 구속과 갱생을 시사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과 피조계는 하나로 결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겪는 일은 피조계도 겪게 됩니다. 즉 만물은 인간의 저주에도 동참하게 되고 인간의 영광에도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롬 8:19-22=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로 피조물은 현재 썩어짐에 종노릇하고 있지만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성도들의 몸의 구속(救贖)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날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장차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피조세계가 주는 혜택을 누리며 참으로 기쁘고 복된 삶을 향유하게 될 것입니다. 
 

2. 여자의 후손을 준비하심 (= 구속의 은혜, 은혜의 향유)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본절은 저주 하에 있는 인류를 위해 희망의 빛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너’와 ‘네 후손’은 사탄과 그의 추종세력을 말하고, ‘여자의 후손’은 장차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인류의 구속자로 성육신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본절은 결국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에게 종노릇하는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5절의 메시지를 흔히 ‘원시 복음(Proto Evangelium)'이라 부릅니다.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저주는 더 이상 저주로 끝나지 아니하고 소망과 축복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자의 후손을 준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구속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실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저주마저도 축복으로 바꿀 만큼 크고 놀라우며, 당신의 독생자를 인류를 위해 내어주실 만큼 무한하며 지극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엡 2:3-5= “···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은 15절에서 여자와 뱀,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전개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이 세상은 두 세력간에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도 이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엡 6:12-13=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

세상에서 이 나라와 저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전쟁에 참여한 자들도 누구나 큰 고통을 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생명을 잃기도 하고 큰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때로는 헐벗고 굶주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의한 세력과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성도들은 불의한 자들에 의해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적 전쟁의 최후 승리가 의의 세력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계 15:12).

성도 여러분! 15절 하반절을 보면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의한 세력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의로운 세력의 수장인 예수 그리스도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과 같은 가벼운 해를 입히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께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과 같은 치명적인 해를 입힘으로써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결정적 패배를 사탄에게 안겨줄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예언은 예수께서 불의한 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는 여전히 영적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대세는 이미 결정된 상태라는 것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불의한 세력은 최후 발악을 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모든 불의한 세력을 제압하고 예수님과 함께 사탄과 불의한 자들의 머리를 짓밟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자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고 그로 인해 때로 큰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말씀을 지키며 성실하게 영적 전투를 수행함으로 영광된 승리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가시와 엉겅퀴 없는 세상을 향하여 (= 저주를 치유하는 교회)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성경을 좀더 깊이 살펴보면 창세기 3장의 저주는 죄로 말미암아 강퍅해진 인간의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정교한 치료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무거운 짐들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은혜롭게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하나님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노동에 따르는 싸움들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노동 자체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노동 현장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가시와 엉겅퀴는 인간의 노동을 “평생 동안 수고하는 것”으로 바꿉니다. 

지금 이 땅의 노동자들은 저주받은 노동 현장의 독소들로 인해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기 회사 제품의 판매를 위해 돌아다니다 녹초가 된 세일즈맨은 근육 진통 연고 이상을 필요 합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앉아서 잠시 쉬는 것 만으로는 내면의 피로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상사로부터 끊임없이 업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 회사원은 단순한 휴식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매주 하나님의 사랑 받는 백성들은 어떻게 하면 노동의 현장에서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며 정신적인 강건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 교회와 예배를 통하여 깊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교회라면, 그리고 능력 있는 성경적 설교라면 성도들이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주인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저주를 치유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그리고 특히 설교--는 한 주간 내내 가시와 엉겅퀴 속의 노동으로 지친 형제 자매들에게 “영혼을 회복시키는” 우리의 선한 목자의 사랑과 격려가 흠뻑 스며든 향유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길르앗에는 죄로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유향이 있지 않습니까?

렘 8: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이 유향은 노동으로 인해 상처 입은 정신 또한 치유합니다.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로서 우리 설교자들은 말씀의 생기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크리스천 노동자들은 도처에서 만나는 가시와 엉겅퀴 때문에 연약함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그들도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주심”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거듭되는 실패 때문에 신물내신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이들에게 분명한 성경의 표준을 제시해야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는 십자가의 언어로 말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평강을 누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힘든 노동에 지쳐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의 향유를 발라주는 교회이면 좋겠습니다. 우리교회는 노동 현장에서 받은 정신에 대한 폭력 때문에 상처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받아 치유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이면 좋겠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로 모이는 많은 성도들은 가시와 엉겅퀴 때문에 힘들어진 노동 환경에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어떤 분들은 매우 불결한 환경 속에서 자기 마음의 오물들을 그대로 유지하려 애씁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영혼을 시궁창 같은 냄새 속에 그대로 두려 애쓰면서 한 주를 낭비합니다. 

주일 아침에 예배를 인도하는 예배 인도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로서 목사의 노동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이 예수께서 노동하셨던 동일한 세상에서 노동하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성도들도 목사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위해 노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의 매일의 노동은 가시와 엉겅퀴 없는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의 행진입니다. 예수께서 일생의 노동으로 이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보혈과 무덤에서의 부활은 우리 앞에 소망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열심히 일하십시오. 일터가 다소 어렵고 힘들더라도,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묵묵히 나아가십시오.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의 삶속에 기생하고 있는 저주를 제거하십시오. 교회의 모든 것--예배, 기도, 교제, 봉사, 양육, 각종 사역--을 활용하여 여러분의 노동 현장의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십시오. 예배의 설교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을 치유하며 싸매며 각성시키며 타인들에게 아름다운 향유가 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어느날 우리는 가시와 엉겅퀴 없이 노동하도록 승격될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 눈 가에 땀흘리지 않고, 우리의 영혼에 상처를 주는 죄 없이 노동하게 될 것입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주님의 보좌를 바로 앞에서 바라보면서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할렐루야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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