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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 (룻 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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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 (룻 1:19-22)
 
오늘은 주일과 함께 설 명절입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사랑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드리며, 온 가족들이 주안에서 참된 기쁨과 사랑을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양력으로 이미 새해가 시작되어 한 달 정도 지났지만, 그 동안 새해의 결심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설 명절을 맞이하여 우리 성도들 가운데서 많은 분들이 고향을 찾아 가셨고, 이렇게 또 고향과 모 교회를 찾아 오셨습니다. 고향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정겹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 땅을 찾는 것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바로 고향의 향수,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입니다. 고향에는 자기 존재의 흔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이 있고, 헤어졌던 친구들과의 우정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고향이라고 말하며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보다 고향을 찾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물들에게 ‘귀소본능’ 혹은 ‘회귀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동물이 자신의 서식 장소나 산란, 육아 등을 하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다시 그 곳으로 되돌아오는 성질”이라고 합니다. 

회귀본능의 대표적인 것이 연어라는 고기인데요, 연어는 태어나서 넓은 태평양까지 나가서 살다가 3-4년이 지나면 자기가 태어난 곳에 돌아와 산란을 하고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도 이런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 땅이 아무리 멀고 열악한 곳이라도 다시 찾기를 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후에 외국에 입양된 사람들도 자기를 버린 부모, 고국이 한없이 미울 것 같은데, 성인이 되면 자기 부모나 고국을 찾아옵니다. 자기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은 본능적 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육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회귀본능이 있는 것처럼, 영적인 고향을 그리워하는 영적인 회귀본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육신의 고향이 소중하듯이 그 이상으로 영혼의 고향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성경은 바로 ‘하나님 품’, 우리가 장차 돌아갈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영혼의 고향이라고 합니다. 

전 12:7절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 11:15-16절에서는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처럼 성도들의 참된 고향은 바로 하늘나라, 천국인 것입니다. 

육신의 고향이 있지만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을 ‘실향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실향민들의 삶도 안타깝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린 ‘영적 실향민’입니다.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를 부르짖었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1980년 3월 불란서 파리의 한 병에 폐수종으로 입원했습니다. 사르트르는 글로써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 사람입니다. 특히 그는 ‘자유’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수필을 썼고 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달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고 절규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가를 곁에 있는 자기 아내에게도 묻지 못합니다. 결국 입원한지 한 달 만에 죽음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불란서의 신문들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왜 이렇게 비참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사르트르에게는 돌아갈 영혼의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모두들 고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고향은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게 되는 본향, 하늘나라입니다. 오늘 설 명절을 맞이하여 과연 나에게는 돌아갈 영적인 고향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고향을 잃었다가 되찾은 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에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지역에 심각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흉년은 자연 재해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당시 사사 시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다른 신을 섬기고 제멋대로 살던 영적, 도덕적 암흑 시대였습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과 룻기의 첫 절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왜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는지 그 이유를 나름대로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삿 21:25절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룻 1:1절에는 “사사들의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사사 시대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의 방법과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흉년이 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때때로 신앙의 경종을 울리기 위해 자연 재해나 전쟁 등을 통해 징계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면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고, 하나님은 다시 사랑을 베푸셔서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징계를 회피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입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이끌고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갑니다. 이민을 가는 것이 죄된 일은 아니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이 문제였습니다.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 앞에서 당해야 되는데, 하나님을 멀리 떠나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고향을 등지고 떠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이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일종의 교만입니다. 

구약에서 가나안 땅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약속의 땅입니다. 특별히 베들레헴이 어떤 곳입니까? 베들레헴이란 뜻은 ‘떡집’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이곳에 생명의 떡을 즉, 인간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겠다고 이미 정해 놓으신 곳이 바로 베들레헴입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은 특별히 선택받은 땅이요,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입은 복 받은 땅입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고향을 떠나서 가서는 안 될 모압 땅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머물고, 그 땅을 지키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땅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불신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멜렉이 흉년을 피해 이민을 간 모압은 어떤 곳입니까?  

신 23:3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땅으로서 그곳은 롯의 후손이 사는 세속을 상징하는 땅입니다. 또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에 방해를 놓았기 때문에, 서로가 좋지 않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압은 이스라엘 총회에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율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더욱 모압 땅에 가서 이방 며느리를 본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행위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방결혼을 금한 이유는 전적으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고향을 떠난 것은 단순한 이민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요, 신앙의 변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종종 생기지 않습니까?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좀 더 나은 육신적인 삶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갈 때가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신앙의 사람이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버린다면 그것이 곧 불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난 것처럼, 아무런 죄의식이나 생각도 없이 훌쩍 하나님을 떠나고 신앙을 떠나서 세상과 어울려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행동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요, 신앙의 변질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럴수록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의 모든 삶을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보면 모압으로 잘 살려고 이민을 갔던 엘리멜렉의 가정이 어떠한 연유인지는 몰라도 큰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남편 엘리멜렉이 모압 땅에 도착하자 얼마 되지 않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고 말았습니다. 말론이란 뜻은 ‘병자’라는 뜻이고, 길룐이란 뜻은 ‘허약’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아들을 서둘러서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자녀도 낳지 못하고 둘 다 죽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나오미와 두 자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만에 남편과 자식을 다 잃고, 갖고 있던 재산마저 다 없어져 완전히 파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다 이와 같습니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면 잘 살 것 같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결국은 ‘영적인 파산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소리 쳐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영적 타향살이에는 뭔가 문제가 생깁니다. 종국에는 멸망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에 혹 흉년이 왔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혹 기근이 왔습니까? 살기 힘든 어려움이 왔습니까?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자리로 옮겨 가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의 판단대로, 자기의 소견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신앙도 떠나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는 그 순간, 그 길은 성공의 길이 아니라 파멸의 길이요, 불행과 절망의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미는 이제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 늦게나마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오미는 다행히 환란을 당한 후에 그동안 잊어버렸던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기억했습니다. 마침 고향 소식을 들었는데,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돌보셔서 흉년이 그치고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합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은 단지 태어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로 하였다”는 말입니다. 나오미의 이런 결단은 분명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였습니다. 베들레헴은 하나님의 품입니다. 바로 영적인 고향인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낯이 뜨거워서 사람들 만나기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온다는 것이 염치도 없고 창피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돌아와야만 그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돌아오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돌아와야 고통이 멈춥니다. 돌아온다는 것은 모든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또는 교회와의 관계가 다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고통이 끝나고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회복시키십니다. 사 55: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하나님의 품인 베들레헴을 떠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모압을 떠난 것은 축복의 떠남이요, 회복의 떠남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회복의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오미가 모압 땅에서 실패하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데, 하나님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부끄러워서 겨우 왔는데 고향 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또 마침 돌아온 시기가 보리 추수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으로는 추수를 할 때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삭을 다 베지 않고 남겨두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살 길이 열린 겁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룻이 찾아간 곳은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그는 나오미 가문을 위해 기업을 무를 자였습니다. 기업 무른다는 것은 어떤 가문이 망하면 제일 가까운 친족이 책임지는 유대관습입니다. 후손이 없으면 남은 여인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주고 재산도 보상해 줍니다. 

보아스는 마침 신앙이 좋고 부자여서 충분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결국 룻과 보아스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누구냐 하면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입니다. 그 후손 가운데 다윗 왕이 나고, 그리스도가 납니다. 나오미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여러분, 나오미가 회개하고 영혼의 고향인 하나님께로 돌아오니까 이처럼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돌아온 그 한 가지만 보시고 나오미에게 이처럼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영혼의 고향인 주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고향이 있습니다. 육신의 고향과 영혼의 고향입니다. 영혼의 고향으로 가는 길은 천국의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셨습니다. 요 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 피로 대속하시고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고 돌아가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님이 예비해 놓으신 영혼의 고향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번 설 명절은 이 놀라운 사실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친지들에게 전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향을 찾은 가족들에게 육신의 고향만이 아니라, 영혼의 고향을 회복시켜 주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축복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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