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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지팡이 (출 5:1-7:13)

첨부 1


하나님의 지팡이 (출 5:1-7:13)

(출5:1-7:13)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출7:8-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1.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3:9-10)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의 이같은 말씀에 “만일 그들이 나를 믿지 않으며 내 말도 듣지 않고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모세가 ‘지팡이입니다.’ 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땅에 던지자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그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시자 모세가 그 꼬리를 잡자 모세의 손에서 그 뱀이 지팡이가 되었습니다.(출4:1-4) 

그 지팡이는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던 지팡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그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의 이적과 권능이 나타나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사양합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못합니다.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이후에도 내가 그러하니 나는 말이 느리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누가 만들었느냐? 누가 사람을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되게 하며, 사람에게 밝은 시력을 주고 맹인이 되게 하는 자가 누구냐? 바로 나 여호와가 아니냐? 자, 가라! 내가 말할 때 내가 너를 도와 네가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러나 모세가 “주여, 제발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라며 극구 사양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출4:14-17)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이렇게 해서 모세는 가족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을 향해 떠났습니다. 


2. 드디어 모세가 애굽 왕 바로 앞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섰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보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기념하는 명절을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바로 왕이 ‘도대체 여호와가 누군데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야 한단 말이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이스라엘 자손도 보내지 않겠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모세가 다시 한 번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3일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무서운 질병이나 칼로 우리를 죽이실 것입니다.”며 좀 더 강하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째서 백성들이 일을 못하게 하느냐? 가서 너희 일이나 하라!’ 며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욱 더 가중시킵니다. 이러한 일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오히려 심각한 원망과 원성까지 듣게 되어 이렇게 하나님께 하소합니다. 

(출5:22-23)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렇게 위로하며 격려합니다.

(출7:1-5)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리고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

(출7: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그래서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 자기 지팡이를 던지자 그것이 뱀이 되었습니다. 그때 바로가 애굽 최고의 마법사들을 불렀습니다. 그들도 마술을 써서 각자 지팡이를 던지자 그것이 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렸습니다.’(출7:10-12) 

‘아론의 지팡이’는 본래 ‘모세의 지팡이’(출4:2)였지만 모세가 아론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면서 아론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아론의 지팡이’로 불리운 것입니다. 그 지팡이를 모세의 지팡이로 부르든, 아론의 지팡이로 부르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용되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을 때 “(출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세가 그 지팡이를 들고 애굽으로 향해 갈 때 ‘하나님의 지팡이’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출4:20)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이적과 권능이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팡이’로 부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지도자로 세우시고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위와 권능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지도하는 권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권력을 위임받은 자로서 그 손에 지팡이를 들고 백성을 지도합니다. 

‘지팡이’는 위임받은 지도력을 의미합니다. 비록 양떼를 치던 지팡이일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권력이 함께 할 때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팡이’는 ‘전지전능하신 권능의 지팡이’를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 르비딤을 지날 때 아말렉 족속이 공격해왔습니다. 이 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출17:9)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는 직접 전선에 나가 싸우고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섰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팔이 피곤해서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붙들어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하여 결국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출17:12-13)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들어 올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간구하는 호소, 기도를 뜻합니다. 모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승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이시며 승리의 근원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 모세를 향해 원망 불평을 쏟아내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출17:5-6)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이렇게 모세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그 지팡이로 반석을 쳤을 때 반석에서 물이 터져나와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갈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광야에 이르렀을 때 물이 없어 또 다시 모세를 원망하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 앞에 나가 엎드려 기도합니다.(민20:6)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민20:8-9)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너희는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지팡이를 잡고 “(민20:10-11)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그러자 물이 터져 나와 온 백성과 가축들이 해갈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말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는 이 말은 마치 자기들이 기적과 능력을 베푸는 것처럼 행동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손에 잡았지만 ‘자기 지팡이’로 반석을 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경거망동한 행동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의 능력으로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온 것으로 경탄하며 그들을 경배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민20:12)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신32:49-52)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신34:4-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비록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을지라도 마치 자기가 권력과 능력의 주체인양 착각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토록 소망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가 너무나 안타까워 하나님께 재고해주실 것을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시며 모세의 간청을 거절하셨습니다.

(신3:23-28)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을지라도 권력과 능력의 주체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기억하여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3. 모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내 백성을 보내라.’며 애굽 바로 왕에게 말하지만 거듭 거절당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만 더욱 가중되자 모세가 그 앞에서 지팡이를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하나님의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이에 바로 왕도 온갖 마술사들을 불러 마술로 지팡이를 뱀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권력이 세상 왕권과 통치력을 제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애굽의 왕들이 착용하던 왕관에는 코브라 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뱀은 왕권과 왕의 통치력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 앞에 세상의 권세가 감히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세 번째 재앙부터는 감히 애굽의 마술사들이 ‘하나님의 지팡이’를 통해 나타나는 이적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결국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출12:29-33)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당대 세계 최고의 애굽의 권력도 ‘하나님의 지팡이’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부자도, 영원한 권력도, 영원한 나라도 없습니다. 그 근본 이유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망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여기 “음부의 권세”란 사망의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 세상 역사가 종말을 고할지라도 영원하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의 영원한 승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뿐입니다. 

노아 당시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때 살아남은 것은 오직 노아의 방주뿐이었던 것처럼 역사 최후에도 승자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이 시대의 노아의 방주인 교회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대학자가 어느 날 나룻배로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꽤 넓은 강이라 배를 타는 시간이 길어지자 무료해진 학자는 사공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사공 양반,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을 아시오?” 
“아이구, 제가 그런 분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요? 플라톤의 철학을 모르는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잃어버린거나 마찬가지요. 
 그는 대단히 훌륭한 철학자였어요. 그럼 프랑스라는 나라가 어디쯤에 있는지는 아시오?” 
“웬걸요. 그런 것을 제가 알 수 있나요.” 
“참으로 안됐군요, 당신은 나머지 인생의 4분의 1을 잃어버렸수. 프랑스는 유럽에 있어요. 예술의 나라죠.” 

계속 모른다는 사공에게 학자는 자꾸만 난감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좀 아십니까?” 
“학자 어른, 전 그런 것 다 모릅니다.” 계속 질문을 퍼붓던 학자는 불쌍하다는 듯이 사공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배가 강어귀에 다다랐을 때 쯤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 때문에 그만 배가 뒤집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물에 빠진 사공은 허우적거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학자에게 소리쳤습니다. 
“학자 어른, 수영할 줄 아십니까?” 
“어푸 어푸, 난 수영 못해요.” 
“그렇다면 학자 어른은 목숨을 잃어버린 거예요”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도 교회를 모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만이 음부의 권세, 즉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모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어도, 건강이 없고 세상에서 힘이 없어도 예수 믿고 교회의 성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사람은 영원한 인생의 승자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하나님의 지팡이’가 함께 하는 교회의 성도로서 사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께서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인생의 승리자, 역사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권세를 삼켜 버린 ‘하나님의 지팡이’,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 갈릴리 출신 유다라는 사람이 ‘하나님만이 유대인의 통치자’라는 구호 아래 납세 거부 운동을 일으키고 무력으로 로마로부터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예수께 납세 문제를 물어봤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세금을 내야한다고 대답하시면 민족의 반역자로, 반대로 납세를 거부하면 로마 당국에 고발해서 그들 눈에 가시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22:21)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 철저히 구분지었습니다. 세속권력에 대해 복종해야 할 의무와(롬13:1), 하나님 말씀에 복종해야 할 책임(행5:29)을 철저히 구분하신 것입니다. 정치와 종교,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를 구분지었습니다. 교회는 사랑과 용서로 다스려져야 하고, 세속국가는 칼과 정의의 힘으로 다스려져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 악한 자들을 정의로 다스리기 위해 세상 권력에 칼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하나님 말씀, 로마서13:1-7을 보겠습니다.

(롬13:1-7)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예수 믿는 성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되었지만, 몸이 살아 있는 한 세상 나라의 백성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두 세계,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조만간 종말을 고하게 될 세상 나라에 모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세상 권세에도 복종해야 하고, 하나님의 권세에도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써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세상 나라의 시민으로써 세속 법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뜻을 실현하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로마서13:4 말씀대로, 세상 나라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선을 베풀기도 하며 정의의 칼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세상 권세는 악한 자를 칼과 정의로 다스려 창조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님의 사역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팡이’가 함께 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지는, 사랑의 뜻을 실현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로마서 13:1에서,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나라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시기도 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세상 권세 위에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상 권세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우리가 비록 세상 나라 권세 아래 세상 나라 백성으로 살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거슬리는 법과 통치자에게 복종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권력 행사를 허락하셨지만 권력을 남용하는 죄까지 허용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 성도들은 한 시민으로써 통치자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아울러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설령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한 통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 성도들이 취해야 할 자세로써 폭력적인 투쟁을 정당화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박해를 가하는 사악한 통치자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B.C.605년경,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을 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포로들 중 왕족과 귀족 출신으로 신체적인 결함이 없고 잘생겼으며 지능 지수가 높고 다방면의 지식을 가졌고 이해력이 빠르고 왕궁에서 섬길 자격이 있는 소년들을 바벨론 언어와 학문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바벨론 왕은 또 자기가 먹는 제일 좋은 음식과 포도주 가운데서 날마다 그들에게 일정한 양을 공급해서 3년 동안의 수련 과정이 끝나면 왕 앞에서 섬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뽑힌 소년들 가운데는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유다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왕궁에 선발된 소년 포로들은 모두 왕이 베푸는 궁중 음식을 먹어야만 했는데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감히 궁중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당시 궁중 음식은 모두 바벨론에서 숭배하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들이었기 때문에 다니엘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르기 위해 궁중음식을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대신 우상 앞에 바치지 아니한 채소와 물만 먹었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여 이 네 소년들에게 학문과 그 밖의 모든 것을 통달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에게는 꿈과 환상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왕이 정한 3년 동안의 수련 과정이 끝나자 궁중 대신은 그들을 느부갓네살 왕 앞으로 데리고 가 시험한 결과 바벨론 출신 소년들보다 월등히 우수하여 왕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 마침내는 바벨론의 총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년이 지난 B.C.585년경에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고 누구든지 그 금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만약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이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라는 준엄한 왕의 명령이었습니다. 

(단3:5-7)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의 명령이 엄한 줄 알면서도 금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즉시 고발했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소환되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왕은 즉시 처형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들이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노라면서 이렇게 회유합니다.

(단3: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시여,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입장을 변호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진다고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그 용광로에서 구해 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지 않으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며 또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을 것이니 왕이시여, 그런 줄 아십시오.’ 그러자 느부갓네살 왕은 잔뜩 화가 나서 평소 때보다 용광로의 불을 7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지시하고 또 건장한 군인 몇 사람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단단히 묶어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 사람은 꽁꽁 묶인 채 뜨겁게 타는 용광로 속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느부갓네살 왕이 깜짝 놀라 일어서면서 자기 보좌관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묶어서 불에 던진 자는 세 명이 아니었느냐?’ ‘그렇습니다. 폐하.’ ‘그런데 어째서 네 사람이 불 가운데 걸어 다니고 있느냐? 저 사람들은 묶여 있지도 않고 상한 흔적도 없으며 더구나. 네 번째 사람은 그 모습이 신들의 아들과 같구나.’ 

그리고서 느부갓네살 왕은 무섭게 타오르는 용광로 앞으로 다가가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이리로 나오너라.’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불 가운데서 걸어나왔습니다. 그래서 총독들과 지방 장관들과 군사령관들과 왕의 고문들이 모여 이 세 사람을 보니 화상을 입지도 않았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았으며 그들의 옷도 상하지 않았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 

그때 느부갓네살 왕이 말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 자기를 신뢰하는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경배하지 않으려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기꺼이 자기들의 목숨까지 내놓았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명령하노라. 어떤 민족이나 백성을 막론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에 대하여 좋지 않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몸을 갈기갈기 찢고 그의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려라.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신은 천하에 없도다.’ 그리고 왕은 바벨론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보다 높은 직책을 주었습니다.(단3:19-30)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이 보여준 신앙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왕궁의 산해진미를 거절한 다니엘의 신앙,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생명을 부지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세 친구의 신앙이 바로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생활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세상 권력이 아무리 막강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벗어난 것이라면 그 세상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나라 권세 앞에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습니다. ‘세상 나라 권세를 자기의 뜻대로 주시며 지극히 천한 자로 세상 권세자로 세우시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훗날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을 알고서도” 권력의 교만을 피우다 하루 아침에 “(단4:32) 사람에게서 쫓겨나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들짐승처럼 7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벨사살 왕은 자기 부친이 권력의 교만으로 7년동안 짐승처럼 살았던 것을 망각하고(단 5:21)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의 기물들을 술잔으로 삼아 연회를 즐기다 그날 밤으로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두 쪽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단5장) 

세상 나라 권세가 아무리 크게 보이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진 모세와 아론이 겨자씨처럼 작고 천하게 보여도 영원한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세상의 지팡이를 삼켜버렸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처럼 세상 모든 권력 앞에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오직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을 세상에서 구원하신 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레 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성도 여러분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 항상 모든 행실에, 어떠한 금권이나 권력, 그 어떠한 관습과 풍습 앞에서도 거룩한 자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벧전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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